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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83화 (83/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3화

따라오려는 아렐리아를 말리는 것도 한세월이었다.

곧 준비를 마친 기사단이 안내하는 장소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숲에 있는 마법진이었다.

“차원 이동 마법진인가. 이 정도 규모면 시간깨나 들었겠군.”

“폐하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카일은 뿌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똥 씹은 얼굴로 어서 마법진이나 구동시키라 손짓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멀뚱히 보고만 있을 뿐이다.

“갈 길이 바쁜데 뭣들 하는 거지.”

“음…… 그게 말입니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며 주춤거린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응당 깔려 있어야 할 마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아니겠지.

최악의 예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돌아갈 마석이 없는 건가?”

“네, 마계에 뼈를 묻을 생각을 했기에…….”

설마하니 생각했던 건 사실이 되어 돌아왔다.

‘이 답도 없는 미친 새끼들…….’

마계로 향하는 티켓은 왕복 티켓이 아니었다.

그건 저승으로 가는 편도권일 뿐.

어이없음을 숨기지 못한 채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옆에 있던 한스가 멋쩍게 웃으며 금화 하나를 슬쩍 꺼내 보인다.

“노잣돈은 있습니다만…….”

“앗, 저도.”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품 안에서 다 같이 동전을 꺼냈다.

금색 동전을 살펴보니 과연 아스티란의 장례식에서 흔히 쓰이는 형태였다.

일반적인 거래에서 사용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을 위한 금화다.

꼴에 서로의 장례는 챙겨 주려 들고 온 것이 분명했다.

뭘 자랑이라고 당당하게 들이미는지. 하물며 생각이라는 건 하고 사는지.

저 거대한 머리통 속이 궁금해진다.

“아예 관짝도 짊어지고 오지 그랬나.”

“그렇지 않아도 고민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너무 무거울 것 같았습니다.”

“목 위에 있는 건 무겁지 않고?”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기사들은 움찔거렸다.

잔뜩 기가 죽은 모습이다.

길게 한숨을 쉬고 인벤토리에서 거대한 마석 몇 개를 늘어놓았다.

모두 차원 이동쯤은 버틸 수 있는, 고순도의 최상급 마석들이었다.

“역시 폐하이십니다.”

“이방인들이 사용하는 인벤토리라는 건 봐도봐도 신기하군요. 아공간도 아닌 것이…….”

그들은 재빨리 움직여 텔레포트 마법진 주변에 마석을 맞춰 넣는다.

이윽고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마법단 소속의 마법사 몇 명이 자리를 잡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기사단 전원이 올라갔다.

곧 마법의 시동 주문이 길게 들린다.

콰직 소리와 함께 마석이 엄청난 마나를 내뿜고, 마법진이 빛을 내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빛에 휩싸였다.

눈이 부셔 인상을 찌푸리고 도착한 곳을 살펴보았다.

“헉?? 설마 흑사자 기사단?”

주위에 얼쩡거리던 궁정 마법사 몇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얗게 질린 얼굴은 마치 유령이라도 마주친 듯하다.

“마석을 가져가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잘 구하셨나 봅니다. 정말 다행이군요.”

“모든 마족을 없앨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신다더니……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헛소리까지 지껄이고 갔던가.

그러니 이들이 이렇게까지 놀랄 수밖에.

한 명은 이미 합동 장례식까지 지냈다며 호들갑을 떨어 댄다.

“제국에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까?”

“네네……. 우선 고생이 많았을 테니 각자 편히 쉬실 만한 곳으로 모시라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카일은 마법사들을 만류하며 무리를 이끌었다.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서쪽 궁을 바꾼 공간이었다.

하기사, 대륙 시간으로는 몇십 년은 족히 흘렀을 터였다.

구조 몇 개쯤은 바뀌는 게 당연한 일이다.

‘집주인 없다고 많이 개조를 했나 보군. 다른 곳은 얼마나 바뀌었을지…….’

바뀐 장소를 과거와 비교해 보는 일도 재밌긴 할 것이다.

나름대로 기대하며 천천히 중앙궁을 향해 걸었다.

하지만 가다 보니 무언가 풍경이 낯익다.

“폐하께서 가신 후 거의 보수만 했을 뿐 바뀐 것은 거의 없습니다.”

“조금 더 현대화하자는 말은 많았지만 모두 반대해서요.”

기사들이 슬그머니 내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익숙한 황궁의 모습.

알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여 말없이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사실상 귀환한 지는 몇 달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스티란에 갈 시점은 몇십 년은 족히 지난 후일 거라 마음먹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

어느덧 내가 주로 정무를 보던 중앙의 사자궁이 보인다.

들어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모두 내 입만 바라보며 말을 기다린다.

“흑사자 기사단.”

“예!! 부름을 받듭니다!!”

넓은 대로에 기사단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에 주위를 지나다니던 귀족과 궁인들이 호기심 섞인 눈으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늦었지만, 모두 나를 위해 마계까지 쫓아오느라 수고들 많았다.”

“아닙니다!!”

“고맙다는 말은 않겠다. 시키지도 않은 고생을 사서 한 것들이니.”

내 농담에 그들은 와르르 웃어 보인다.

여기저기서 생각해 보니 괜히 한 것 같습니다, 따위의 말들이 들려온다.

“한 번 맺은 기사의 맹세는 어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허나…….”

그들은 다시 입을 다물고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인다.

분위기가 진정되자 나는 다시 말을 이어 했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 살지 말고 제국을 위해 살도록.”

“하지만…….”

“두 번 말하진 않겠다. 어디까지나 나는 이방인이다.”

“제발 그런 말씀 마십시오!”

“황제 폐하는 저희의 영원한 대제이십니다!”

기사들은 침통한 얼굴로 무릎 꿇는다.

나는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바라보았다.

전쟁터에 있을 적보다 더 고생했는지 하나같이 꼴들이 말이 아니었다.

‘이 짐 덩어리들…….’

피식 웃음이 났지만 재빨리 다시 표정을 굳혔다.

내 어깨에 올라가 있는 목숨들은 지금도 많았다.

더 이상의 책임이 늘어나는 것은 피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눈앞에 내 사람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보고도 무시할 만한 성정은 못되므로.

“적어도, 이후는 너희 자신을 위해 살아라.”

사람이 한평생을 피와 복수로 살 수는 없는 법.

지금까지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아스티란은 평화의 대륙이 되었다.

그들도 이제 행복해질 때도 되었다.

* * *

카일과 한스만 남기고 모두 돌려보냈다.

거대한 원형의 테이블에는 오직 나와 그들뿐이었다.

“저희만 따로 부르시다니…… 중요한 말이 있으십니까?”

카일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도 고생만 하다 온 그들을 굴려 먹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미약한 도움이나마 필요한 때였다.

“드래곤 레어가 어디 있는지 아나?”

“컥!! 쿨럭쿨럭…….”

“예?? 지금 무어라 하셨습니까?”

내가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해서 놀란 건가.

찾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인내심을 발휘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상대하려는 적이 드래곤이었더군. 어느 차원계에 있는 놈인진 모르겠지만 아스티란부터 하나씩 족쳐 보다 보면 뭐든 나오겠지. 하다못해 작은 정보라도.”

드래곤이 동네 똥개도 아니고, 몇천 마리씩 있지는 않을 터.

그래 봬도 나름 영물에 속하는 전설 속 생물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다는 것.

“심지어 적이란 말입니까? 허…….”

“지구에 터를 박고 있는 듯하다만. 차원계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놈이니 확신할 순 없어.”

“쿨럭쿨럭……. 으음…… 전부터 위험한 일에만 엮이시는데…… 괜찮으십니까?”

이제야 기침을 멈춘 한스가 조심스럽게 물어 온다.

그의 말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 묻어난다.

카일 역시 공감하는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전부터 말하시던, 퀘스트란 것입니까?”

몇 번 말하지 않았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굳이 대답하진 않고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걱정으로 가득했던 그들.

이제는 서서히 분개하기 시작한다.

“그놈의 퀘스트…… 돌아가신 뒤에도 마찬가지셨습니까? 더 이상 위험한 일은 하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리 신의 명령이라지만…….”

쿵-!!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한스는 테이블을 내리친다.

큰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는 균열이 생긴다.

여전히 그의 힘 하나만은 무식했다.

“대체 왜 폐하만 이런……!”

“그만.”

내 말에 둘은 입을 다문다.

그제야 내 앞에서 무례를 범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은 사색이 되어 간다.

갑옷이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바로 무릎을 꿇는다.

고개 숙인 기사들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들었다.

“……죄송합니다. 벌을 주십시오.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원래라면 이 정도도 가벼이 넘어가지 않았을 터.

하지만 나를 향한 염려에서 비롯된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에게 이 정도 아량은 베풀어 줄 마음이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던지 너희의 알 바는 아니지 않나.”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나는 차갑게 그들의 오지랖을 묵살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신 드래곤을 잡아 오겠다며 난리를 피울 작자들이었다.

사지로 걸어가는 일임을 스스로도 잘 알 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맹목적이고 비틀린 충성심.

그것이 어디까지 발휘되는지 이미 몇 번이나 깨닫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그저 폐하의 뒤만 따라갈 수 있을 뿐.”

카일은 쓰게 웃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흐른다.

한스는 나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위치라면 알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네가?”

카일도 아닌 한스가 안다니.

나는 못 미더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카일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우리를 번갈아 보던 그가 결국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제가 못 믿을 놈인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믿어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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