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1화
마신의 목소리에는 재밌다는 듯 웃음기가 가득했다.
공중에 있던 물건은 곧 마신의 기운으로 감싸인다.
“헉…… 저건 마신의 힘!?”
“오오…… 마신이시여. 내 살아생전 마신의 힘을 직접 목도할 수 있다니…….”
마신의 기운을 눈치챈 마족들이 감동에 북받쳐 소리 질렀다.
여기저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둥 난장판이 따로 없다.
[흥미로운 물건을 가지고 있더군. 지금으로선 사용하기 힘들 테지만 내가 도와주지.]
빨리 확인해 보라는 듯 작게 진동하는 물약 병.
의아한 마음에 물약을 잡아채고 아이템의 설명을 읽었다.
“……이걸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왈칵 표정을 구기고 주변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대답해 주어야 할 마신은 묵묵부답이다.
[용언의 해방[??급]: 수준 높은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물약입니다. 드래곤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태 이상의 효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 숨겨진 효과: 인간의 힘으로 제작되었기에 원래라면 불안정한 성능을 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신의 권능이 섞여 완벽하게 용언을 이겨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이 가지고 있던 비밀.
그리고 영원한 잠, 블랙마켓의 일까지.
모든 사건이 머릿속에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드래곤…….’
도저히 실마리조차 잡을 수 없었던 적.
그 정체는 드래곤이었다.
‘말도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드래곤이란 종족들은 본디 인간의 세상에 관여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진 태초부터 이어지던 법칙.
그걸 어길 수 있는 드래곤이 존재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대체 왜? 법칙을 깨트리면서까지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어.’
과거에서 보았던 소년은 마르바스를 이용해 탑을 오르는 인간들을 방해하려 했다.
그건 명백한 적의.
그 이유와 목적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단 하나였다.
드래곤은 인간을 적으로 돌리려 하고 있었다.
“저…… 마왕님? 괜찮으신가요? 아까부터 왜 말씀도 없이…….”
들이밀어진 거대한 진실에 머리가 아파 올 즈음 아렐리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에는 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족들은 모두 긴장한 채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표정을 숨길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내 앞에는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는 마르바스가 있었다.
“릴리스. 마르바스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졌다 했지.”
“아, 네. 맞습니다. 혹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있다마다.”
짐작도 아닌, 확실한 사실이었다.
아무리 마계의 공작이어도 용언을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뒷말을 삼킨 채 물약 병의 마개를 열었다.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풍겨 오는 병을 든 채 곧바로 마르바스에게 다가갔다.
“그건 대체 뭐죠?”
릴리스는 불안한 듯 다급히 나를 말리려 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독이라는 확신이 엿보인다.
‘치료제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하기사 여태껏 나를 보았다면 당연한 짐작인가.
마음 같아서는 더한 것도 먹이고 싶긴 했다.
그녀는 차마 다가오지는 못한 채 떨리는 눈으로 나와 마르바스를 번갈아 본다.
그저 말없이 마르바스의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커억…… 컥!!”
칠흑과도 검은 물약이 그의 얼굴에 줄줄 쏟아진다.
대충 조준하고 있는지라 반쯤은 코로 들어갔는지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곧 물약은 빈 바닥을 드러낸다.
할 일을 마친 물약 병을 대충 등 뒤로 던졌다.
“크억!!”
“헉!! 제8 군단장!”
쿵 소리와 함께 운 없는 마족 하나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진 않았지만 정확하게 적중한 모양이다.
“8군단장은 마르바스 휘하의 마족 아니던가.”
“다시는 기어오를 생각 마라는 경고시겠지…….”
마족들이 조용히 쑥덕거리며 온갖 추측을 내놓는다.
슬쩍 쳐다보니 그들은 눈치를 살피며 딴청을 피웠다.
“마르바스…….”
“독은 아니니 걱정 마라.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울먹거리며 마르바스의 곁을 지키는 릴리스를 향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다시 마르바스에게 시선을 돌려 회복 마법을 시전한다.
“적어도 팔다리는 영구적으로 마비시키는 물약인 줄 알았는데요.”
아렐리아는 잔뜩 풀 죽은 얼굴이다.
<명예의 제전>을 시작할 때부터 무언가 기대하는 느낌이더니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 모를까, 용언으로 조종받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상태다.
이미 쥐어 터져 정신도 못 차리는 상대를 굳이 탓하고 싶진 않았다.
“뭐, 또다시 덤벼 온다면 생각해 보지.”
“꼭이에요!”
그녀는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워 피식 웃고 말았다.
“크으…….”
어디선가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회복 마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마르바스가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정신이 드나?”
“마르바스!! 괜찮은 건가요?”
“여긴…….”
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릴리스에게 기대어 주위를 훑어본다.
크게 부릅뜬 눈에는 당혹감이 담겨 있다.
“마왕성? 나는 내 창고에 있었는데……. 그리고…… 큭…….”
“마르바스, 진정해요!”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무언가 떠올린 듯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당황과 후회, 그리고 고마움.
그 눈에는 온갖 감정이 담겨 있었다.
“기억이 났나 보군.”
“……나는 조종당하고 있었던 거군. 그리고 마왕, 그대가 나를 구해 주었고.”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릴리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바로 서더니 천천히 무릎을 굽힌다.
구경하며 웅성거리던 마족들의 소란은 점차 멎어 간다.
그들은 경악한 채 나와 마르바스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고맙소. 이 은혜는 도저히 갚지 못할 테지.”
“말뿐인 감사는 되었다.”
“내 온갖 재물을 바쳐도 모자랄 것이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것뿐이군.”
그의 몸은 잘게 떨리고 있다.
하지만 그건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곧 마르바스의 무릎은 완전히 바닥에 닿고, 그 고개마저 낮아진다.
“잠깐, 설마? 마르바스 그대도?”
아렐리아가 답지 않게 허둥대며 당황한다.
그녀의 얼굴은 악몽이라도 꾸는 듯 희게 질려 갔다.
“내 복종의 맹세를 받아 주시겠소?”
릴리스 때와 마찬가지로 그에게서 흘러나온 마기가 내 몸에 흡수된다.
익숙한 상황이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순순히 마기를 받아들였다.
[새로운 펫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르바스[마족]: 마계 북부의 공작. 마계 서열 2위의 강자로, 그 패도적인 힘은 천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악! 안 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미친 공작들아!!”
넓은 홀에는 아렐리아의 히스테릭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 * *
아렐리아는 나를 자신의 성에 데려다준 뒤 홀연히 사라졌다.
우울함을 형상화하면 그 모습일까.
그녀는 세상 모든 불행을 껴안은 듯 서글퍼 보였다.
‘혼자 시간을 보내면 좀 나아지겠지.’
굳이 그녀를 달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붙잡진 않았다.
훌쩍이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녀를 뒤로하고 기사단을 찾아갔다.
그들이 있을 연회장 문을 열기도 전에 소란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마족이 마왕님, 마왕님 하며 우리 폐하를 모시더라니까?”
“역시 우리 위대하신 대제님! 그 카리스마는 어디 가는 게 아니지!”
“대륙을 제패하고 마계로까지 무대를 옮기시다니, 역시 대단하셔! 자자, 이럴 게 아니고 폐하를 위해 한잔하세!!”
기사들은 마치 파티마냥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같이 거나하게 취했는지 붉어진 얼굴이다.
수십 명의 하급 마족이 쉴 새 없이 모자란 술을 채워 넣고 있다.
하지만 인간 술고래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호통을 친다.
“이 쥐꼬리만 한 와인 병 말고, 와인 통을 통째로 가져오라니까?”
한스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와인 병의 모가지에 검을 휘두른다.
와인 병은 깔끔하게 목 부분이 따여 버렸다.
절로 박수가 나올 정도로 주저 없는 검격이었다.
‘……저러라고 가르친 검이 아닌데.’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힌다.
문손잡이만 잡은 채 멀뚱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주정뱅이 소드 마스터는 코르크 마개째 날아간 와인을 만족한 듯 들이켰다.
펠리컨마냥 입을 벌리자 붉은 액체는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그걸 구경하는 기사들은 잔뜩 신이 나 서로를 치켜세운다.
“역시 한스 경!!”
“이 정도는 마셔야 흑사자 기사단이지!”
그들은 서로 껄껄 웃으며 재밌는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마족들은 그와 정반대였다.
정신없게 바쁜 그들은 잔뜩 울상이다.
“인간들은 원래 다 저런 거예요? 그냥 처음부터 술 창고에 데려다 놓을걸…….”
“마왕님의 부하여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대체 공작님은 어디 계신 거야?”
“주방 쪽 말 들어 보니 이미 도착하셨던데요? 그런데 공작님도 와인 몇 병 가져다 달라 하셨대요.”
“뭐? 아렐리아 공작님도? 이게 대체 무슨…….”
팔짱을 끼고 난장판을 이어서 구경했다.
점차 열이 받는 것과 반대로 입꼬리는 점점 올라간다.
그때 잠자코 있던 나를 누군가 발견하고 소리친다.
젊은 모습을 보아하니 내 얼굴만 알 뿐 나를 잘 아는 자는 아니었다.
“어? 황제 폐하 오셨습니다!! 폐하, 한스 경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헤실거리면서 나에게 걸어온다.
한 손에는 빈 와인 잔을, 다른 손에는 와인 병을 들고 있다.
아마 나에게 와인을 한 잔 따라 주려 하는 모양이다.
“……폐하라고?”
터질 듯 붉은 얼굴의 한스가 조용히 읊조렸다.
그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다.
흔들리는 시선들이 나에게 꽂힌다.
“마침 잘 오셨…….”
“다가가지 마!”
“젠장, 비상이야! 웃고 계셔!!”
나는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 미소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기사들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 간다.
“재밌게들 놀고 있군. 나도 끼워 주지 그래.”
와장창-!!
그들은 기어코 들고 있던 술병을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