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80화 (80/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0화

[승자인 마왕에게 전리품, <마르바스의 목숨>이 주어집니다.]

[마신이 당신에게 마왕이 된 기념 축하 선물이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쓰러진 마르바스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한 가닥 빠져나온다.

그 덩어리는 작게 뭉쳐지더니 마석의 형태가 되었다.

[마르바스의 영혼석[??급]: 마르바스의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 파괴 시 마르바스 사망.]

마계 서열 2위라는 마르바스의 목숨줄이지만 사실상 나에겐 하등 쓸모없는 물건이다.

차라리 같은 크기의 최하급 마석이 더 탐이 날 지경.

우선 퀘스트 진행은 이어서 해야 했기에 대충 주워들고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영혼석을 얻음과 동시에 공간은 점차 허물어진다.

다시 주변 풍경이 바뀌고 익숙한 왕좌가 보인다.

넝마짝이 된 마르바스와 마왕성의 메인홀을 가득 메운 마족들.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그들의 눈에는 공포와 경외감이 가득하다.

넓은 공간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아티팩트 사용 조건은 이만하면 되었겠지.’

[지나간 기억의 구슬[??급]: 마신의 힘이 담긴 고대의 유물입니다. 사용 시 상대방의 과거 기억 중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원하는 시점을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 상대가 기절해야만 사용 가능.]

인벤토리에서 방금 얻은 구슬을 꺼내 들었다.

손에 마력을 끌어 올려 힘을 가하자 낡은 구슬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요동친다.

이윽고 주변은 점차 흑백으로 변해 간다.

‘시간이…… 멈춘 건가.’

마족들은 석상마냥 굳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공기의 흐름마저 멈춰 버렸다.

신의 힘이 담긴 아티팩트라더니,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일까.

잠시 당황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이어서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지나간 기억의 구슬을 사용합니다.]

[주의: 1회용입니다. 한 번 사용한 후에는 바꿀 수 없습니다. 대상을 지정한 후 읽을 기억의 시점을 정하세요.]

“마르바스의 과거. 그리고…….”

그가 지구 침공의 계획을 세울 때라고 말하려는 그때.

무언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마신이 해결하지 못해서 직접 내려 준 퀘스트야. 이렇게 간단할 리가 없다.’

이전에는 마계를 어지럽히려는 자가 마르바스라고 생각했다.

숨겨진 성공 조건은 그의 계획을 알아내는 것이고.

하지만 정말 그게 마르바스를 의미하는 것일까?

‘릴리스는 어느 순간부터 마르바스가 변했다고 했지. 마치 다른 사람과 같았다고.’

그렇다면 변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퀘스트의 힌트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 했지.

비로소 생각의 정리를 마쳤다.

분명 이 계획의 배후는 따로 있었다.

“……마르바스가 변하게 된 시점으로.”

[마족 마르바스에게 변화가 생긴 과거의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점차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눈이 감긴다.

몸은 무언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마왕이 죽었단 말인가?”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방금 전 쓰러트렸던 마르바스의 목소리였다.

눈을 뜨자 바로 앞에 놀란 얼굴의 그가 보인다.

‘얼굴이 너무 눈앞에 있는 거 아닌가.’

인상을 찌푸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낯선 성의 복도였다.

본능적으로 마르바스의 성임을 알아차렸다.

‘과거를 볼 수 있다더니, 아예 기억 속으로 들어온 거군.’

마치 영혼처럼 몸이 반투명하다.

마르바스의 머리통에 손을 가져다 대었지만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나는 지금 그저 기억이라는 영화의 관람객에 불과했다.

“네, 아스티란의 황제라는 인간입니다.”

“인간이라고?? 하, 여태껏 마계의 역사에서 인간이 마왕이 된 적은 없었거늘.”

그는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거칠게 화를 낸다.

휘하의 마족이 움찔거리자 옆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르바스, 물론 저 역시 받아들일 순 없지만 지금은 운명에 순응할 때예요. <예언>을 잊었나요? 한낱 피조물이 <그녀>를 거스를 순 없는 법이죠.”

그의 팔을 붙잡고 다독이는 것은 릴리스였다.

내가 보았던 그녀는 위태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건강해 보인다.

“맞습니다. 그는 정당한 힘의 율법에 따라 마왕이 된 자입니다.”

“고작 인간 따위가 그 정도로 강하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듣던 바에 의하면 그 힘이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마왕에 필적할 거라 하더군요. 대부분의 마족은 이미 그를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해요.”

“젠장, 인간인 마왕이라. 그 반쪽짜리가 아주 신이 났겠군.”

연신 궁시렁거리며 긴 복도를 걷던 그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 앞에 선다.

옆에서 줄곧 따라오는 마족에게 시선을 던지자 그는 말없이 사라졌다.

“언제까지 아렐리아를 그렇게 부를 셈이에요? 이미 그녀는 어엿한 남부 공작이에요.”

“인간과 섞인 반마족 따위를 내가 인정할 성싶은가?”

“사실 저도 그 천박한 피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요.”

‘뭐? 아렐리아가 반마족이라고?’

그제야 아렐리아와 다른 공작들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 이해가 간다.

은근슬쩍 마르바스를 만류하는 릴리스의 말에도 가시가 있었다.

그토록 배척당했으니 이제 와서 하하호호 지내는 것도 무리였으리라.

“마계가 멸망할 징조인가. 아주 말세야.”

“벌써부터 남부 대공이 새로 탄생한 마왕에게 복종의 맹세를 바칠 거라 떠들고 다니더군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반마족과 인간의 조합이라. 끼리끼리 잘들 놀고 있군.”

그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지 잔뜩 구겨진 종이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고 발걸음을 옮긴다.

지하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의 끄트머리.

그곳에는 견고해 보이는 문 하나가 있었다.

“나는 잠시 밖에 있을게요.”

눈치껏 릴리스가 거리를 벌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열었다.

보안이 중요한 장소인지 몇 개의 두꺼운 철문이 연달아 이어진다.

한참을 걷고 마지막 문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했다.

안은 수많은 보석과 금괴로 번쩍인다.

아마 마르바스의 보물 창고인 듯했다.

원하는 물건이 따로 있는지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산더미 같은 보물을 헤치고 걸어간다.

찰그랑-

계속 그를 따라가는데, 어디선가 미세한 소음이 들렸다.

그도 놓치지 않고 들었는지 고개를 돌린다.

한구석에는 작은 덩치의 어린아이가 여유롭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중삼중으로 가려져 있는 장소에 나타난 침입자의 모습을 확인한 마르바스는 경악했다.

나 역시 그를 확인하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미친, 마계까지 올 수 있는 자들이라고?’

정말로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다가오는 그를 뚫어져라 살폈다.

결코 이건 신기루 따위가 아니었다.

‘……가면.’

그는 블랙마켓의 직원들이 흔히 쓰고 있는 흰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잠자코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마르바스는 잔뜩 날이 선 채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소환해 손에 쥔다.

“그건 자네가 알 필요가 없네만.”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말투.

그는 느긋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을 잡았다.

천천히 가면을 벗자 어린아이 특유의 발그레한 뺨이 보인다.

곱슬거리는 눈 부신 금발과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어린 천사 같았다.

하지만 그 외모와 다르게 금색의 눈동자는 무기질적이다.

소름 끼칠 만큼 조금의 감정의 조각도 비추지 않는다.

찬찬히 그 모습을 훑어보는데, 금빛 시선과 눈이 마주쳤다.

‘설마 날 바라본 건가?’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과거의 편린에 불과할 뿐.

그의 존재가 무엇이든 간에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일은 불가능했다.

“……내 눈에도 정확히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니. 이건 마신의 힘인가.”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여전히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마르바스에게 다가간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뭐, 원래의 목적은 따로 있으니 상관없나.”

그가 손을 천천히 앞을 향해 뻗는다.

공격의 신호라고 생각했는지 마르바스가 황급히 마기를 끌어 올렸다.

이윽고 바스타드 소드가 휘둘러지려는 찰나.

금빛의 마력이 마르바스를 향해 쏘아진다.

“큭…… 몸이 움직이질 않아!?”

그는 말 그대로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침음을 삼켰다.

이미 맞붙어 보았기에 그의 힘은 잘 알고 있었다.

‘저 마르바스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정도라니.’

그는 이래 봬도 나름 마계의 공작 중 하나다.

그건 가위바위보 따위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다.

이처럼 무기력하게 제압당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도 믿지 않을 소리였다.

“그대는 나를 위해 힘써 줘야겠어.”

“개소리 마라!!”

마르바스는 마기를 끌어 올리지만 꼼짝도 하지 못한다.

바로 앞에 자리 잡은 그가 무언가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마법을 시전하는 듯해 귀를 기울였지만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시스템의 힘으로도 번역이 되지 않는 건 처음이다.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기라도 하단 말인가?’

터무니없는 생각이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지금 일을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의 정체조차 짐작 가지 않는 상황.

잠자코 지켜보자 금빛의 마력은 점점 마르바스의 몸을 휘감았다.

이윽고 모든 일이 끝났는지 잠자코 있던 그의 고개가 푹 꺾인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 는 마르바스……. 마계의 북부 공작…….”

“그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내가 할…… 일…….”

잠시간 침묵이 흐른다.

마르바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눈앞의 소년을 쳐다본다.

“……탑에 오르려는 인간들을 죽이는 것…….”

금빛의 소년은 만족한 듯 나직하게 웃는다.

하지만 그건 기계적인 미소일 뿐, 눈은 여전히 무감각하다.

“……그래, <그녀>는 아직 해방되어서는 안 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 내가 있는 방향을 쳐다본다.

마치 나에게 들으라는 말인 것마냥.

[마르바스의 기억이 끝났습니다.]

[기억의 구슬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마르바스와 소년의 모습이 천천히 먼지처럼 흩어진다.

점차 눈앞의 장면은 흐려지고, 약간의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정지된 채 무채색이던 마족들은 조금씩 생기를 찾는다.

“……×발, 이거 영 찝찝하기만 한데.”

마르바스의 과거에 등장하는 정체 모를 소년.

분명 블랙마켓과 깊게 관련이 있는 자다.

그것도 마계쯤은 동네 편의점 가듯 쉽게 오갈 수 있는 힘을 지닌 자.

그 존재가 심기에 거슬려 기분이 더러워졌다.

[<마신의 부탁>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의 숨겨진 성공 조건을 발견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눈앞에 주먹만 한 상자 세 개가 툭 떨어진다.

마신이 직접 걸었을 보상이라 평소 같았다면 기대했을 텐데.

지금으로선 살펴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훌륭하다, 마왕이여. 참으로 만족스럽구나.]

“나에게 이걸 보여 주려 했던 건가?”

인상을 찌푸리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마신의 기운이 내 몸에 잠시 들어오더니 물약 하나가 허공에서 떠다닌다.

어딘가 익숙한 모양새를 보아하니 내 인벤토리에 있던 물약이었다.

[%$!#의 해방[??급]: 수준 높은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물약입니다. %$!#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태 이상의 효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건 왜?”

빼앗기라도 할 셈인가.

지켜보고 있을 마신을 향해 으르렁거리자 어이없다는 듯 웃는 소리가 들린다.

[욕심이 많은 자군. 뭐, 되었다. 그 정도 욕망도 없는 자가 마왕이 되는 것보다는 나으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