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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77화 (77/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7화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릴리스가 안내한 곳은 자신의 성이었다.

다른 공작의 영역에 오자 아렐리아는 연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대체 우리가 북부에 온 것은 어떻게 알았지?”

“알아차렸다기보다는, 당연히 오실 줄 알고 주변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예상한 대로 한스가 인질이 된 셈이었다.

그게 마르바스가 아닌 릴리스의 인질일 줄은 몰랐지만.

그녀가 긴 복도를 걷다 화려하게 장식된 문 앞에 선다.

“나름 손님 대접을 하고 싶었지만 보통 손님이 아니었는지라.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아주세요.”

릴리스가 묘한 말을 하며 문을 열었다.

내부는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장식으로 즐비하다.

척 봐도 귀빈을 접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 방이었다.

하지만 침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장 날 풀어!!”

그건 두꺼운 쇠사슬로 온몸이 묶인 한스였다.

꼬질한 갑옷에 초췌한 안색을 보아하니 고생깨나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소리는 여전히 팔팔하다.

“아, 공작님. 드디어 오셨군요!”

주변에서 수프 그릇을 들고 쩔쩔매던 마족 하나가 달려온다.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하다.

“오늘도 음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저번처럼 억지로 먹일까요?”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고생이 많았어요.”

“정말입니까? 매일같이 어찌나 난동을 부리던지…….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난처하던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곧바로 싱글벙글 문을 닫고 나가고, 방에는 우리만 남았다.

“젠장, 이거 빨리 풀란 말이야……. 폐하의 복수를 하러 가야 하는데…….”

한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계속 중얼거린다.

앞뒤 못 가리고 나서는 건 예전과 똑같았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한 모습에 혀를 작게 찼다.

“나이 먹는다고 그 성격이 어딜 가진 않나.”

“웬 폐하의 목소리가…….”

한스는 멍한 눈으로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잠시 시선이 마주친다.

그의 얼빠진 표정은 가관이 따로 없었다.

“……유령??”

“멀쩡히 살아 있다만.”

“말도…… 안 돼…….”

그는 여전히 현실을 부정하며 날 바라보기만 한다.

생각해 보니 그는 내가 마왕의 마지막 공격을 받을 때 가장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제일 슬퍼하던 동료였다.

‘고아인 시절부터 거뒀으니 당연할 만도 하겠지.’

유난히 나를 아버지처럼 따르던 한스다.

지구로 귀환하기 전만 해도 아직 젊은 청년이었는데.

그런 그가 이제는 거무튀튀한 중년의 기사가 되어 있다.

“마왕님, 일단 쇠사슬부터 치울까요?”

우리의 재회를 지켜보던 릴리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전히 중얼거리는 그가 안쓰러워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이라고??”

그녀의 말을 들은 한스가 눈을 번뜩인다.

방금 전만 해도 기운이 없어 보였는데, 어느새 마나를 맹렬히 분출하고 있었다.

“감히 폐하를 죽인 마왕이 아직 살아 있었던가?”

“자꾸 죽은 사람 취급하는데…….”

“그것도 황제 폐하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아까 만났던 기사단과 같은 반응이다.

당연한 반응이긴 했지만 또다시 설명하려니 귀찮음이 앞선다.

‘레퍼토리가 변하질 않네.’

떨떠름하게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내 침묵이 긍정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는 부들부들 떨더니 쇠사슬을 파괴하려 애쓴다.

그렇지 않아도 금방 풀어 줄 텐데, 엉뚱한 곳에 힘을 쓴다.

“내 당장 너를 죽이고 평생의 원한을 갚겠다!!”

“아, 귀 따가워.”

어찌나 목소리가 우렁찬지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이……!!”

퍼억-!!

말없이 손을 들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깔끔한 일격에 한스의 커다란 몸뚱이는 천천히 침대로 쓰러진다.

“아렐리아, 이거 기사들이 있는 네 성으로 옮겨 놔.”

“네에.”

세게 때리진 않았으니 금방 정신 차리겠지.

그럼 카일이 나 대신 친절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하여간 저놈은 전부터 남의 말은 죽어라고 듣지 않았다.

‘깨어나면 두고 보자.’

한스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쇠사슬을 잡아 뜯자 아렐리아가 그를 둘러매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럼 저희의 거래는 마무리가 된 건가요?”

“그래, 저 날뛰는 놈 데리고 있느라 수고했다.”

“그 정도쯤은 괜찮아요. 마르바스를 살려 주신다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릴리스는 못을 박듯이 재차 말한다.

혹여 내 생각이 바뀌었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잊지 않았으니 걱정 마라. 받을 건 받았으니 바로 가도 되겠군.”

방금까지는 한스가 위험할지도 모르는지라 성에 잠입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슬리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

‘일단 가서 마족 경비병 몇 죽이면 되겠지.’

설마하니 대놓고 난동 부리는데 나타나지 않을 리가 없다.

성을 부술 수는 없으니 이목을 집중시키는 게 가장 좋을 터.

성벽을 타고 올라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릴리스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이다.

“마르바스의 성에서 직접 전투를 하실 계획이세요?”

“괜찮아. 성을 직접 공격할 생각은 없으니까.”

“예?? 마계의 뿌리와 다름없는 성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마족이 수천은 될 거라고요!”

감히 내 힘을 의심하는 건가.

이미 겪어 보기까지 했으면서 이제 와서 헛소리라니.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자 그녀는 당황하며 손사래를 친다.

“아까는 물론 마왕님의 무력에 대해 말한 것이긴 합니다만, 지금은 절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날 말리려 하는 거지?”

“저는 당연히 <명예의 제전>으로 진행하실 줄 알았는데요. 마르바스의 성이 무대가 되는 게 아니고요.”

그녀는 <명예의 제전>을 운운하며 펄쩍 뛴다.

명칭부터 마계답다 싶었지만 처음 듣는 것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자 릴리스는 경악한다.

“설마…… 모르셨어요?”

“그게 뭐기에?”

“아렐리아 공작이 당연히 설명했을 줄 알았는데……. 하기사, 일단은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오셨을 테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녀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금 입을 뗀다.

“마족들이 싸움을 사랑하고 힘을 숭상하는 종족임은 잘 아시죠?”

“알다마다.”

그것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이 몇 번인지.

마계에 처음 왔을 때 온갖 불나방들이 달려들어 골머리를 썩였다.

처음에는 그저 인간이 마계에 침입했기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냥 새로운 강자가 나타난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내 강함을 깨닫고 나서는 확 줄어들었지만.’

“비슷한 힘을 가진 마족끼리의 전투는 빈번한 일이죠. 하지만 그 차이가 확연할 때, 그때부터는 상황이 달라져요.”

“힘의 법칙에 따라 덤벼들지 않는 것, 아니었나?”

“그건 맞지만 강한 마족들이 자신보다 아래인 마족에게도 이유 없이 무력을 휘두르지 못합니다.”

듣고 보니 이상했다.

마족 중에서는 싸움 자체를 즐기는 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게 자신보다 약한 자들에게 향하진 않았다.

‘그저 꼴에 자존심 때문이겠거니 했는데.’

“강한 힘에는 강한 구속이 필요한 법이죠. 그것이 마계의 혼란을 막는 규칙. 학살을 무작정 진행하는 마족은 마신의 강력한 신벌을 받게 됩니다.”

마신의 신벌이라…….

그녀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간다.

그 벌은 결코 가벼운 성질의 것이 아니겠지.

“그래서 내가 그곳에 있는 마족들을 처치하는 걸 반대하는 거군.”

“먼저 덤벼 온다면 모를까,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겠죠. 서로 손도 못 댄 채 대치만 하게 될 겁니다.”

이 무슨 주둥아리만 살아 있는 양아치 싸움이란 말인가.

서로 한 대 쳐 주길 원하며 소리를 빽빽 질러 대기만 할 뻔했다.

먼저 친 놈이 합의금을 잔뜩 물어 줄 거라 믿으면서.

“귀찮아지겠는데. 그래서 그 <명예의 제전>을 말한 건가?”

“네, 맞습니다. 제전이 이뤄진다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다릅니다. 직접 마르바스를 지목하신다면 그도 더 이상 숨지 못합니다. 당연히 그걸 염두에 두고 계신 줄 알았는데…….”

마족들은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얽매여 있는 게 컸다.

‘뭐, 그래도 방도가 없는 건 아니니 상관없나.’

“그래서 <명예의 제전>은 어떻게 하면 되지?”

“마왕님~ 던져 놓고 왔어요. 어? 설마 제전을 진행하시려고요?”

때마침 돌아온 아렐리아가 내 말을 듣고 반응을 보인다.

두 눈을 반짝이는 게 잔뜩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드디어 마르바스에게……. 어찌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지! 죽이지 않는다는 건 좀 아쉽지만 뭐, 그때 가서 생각이 바뀌실 수도 있으니까요.”

“남부 공작, 마왕님의 결정을 번복하게 하지 마세요.”

“나야 마왕님의 의견을 따를 뿐이지.”

릴리스와 아렐리아가 또다시 투닥거리려 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이가 좋지 않은지.

무언가 이유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짐작은 되지 않는다.

그들을 말리고 다시금 목적을 환기시켰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화를 참으며 말하자 아렐리아가 그제야 내 눈치를 본다.

“<명예의 제전> 말씀이시지요. 그럼 다시 마왕성으로 가야겠군요.”

그녀가 박수를 치자 텔레포트가 발동되었다.

방금 대관식을 하느라 보았던 마왕성의 메인홀이 보인다.

왕좌에 앉자 아렐리아가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제전은 처음 보네요. 대체 몇백 년 만인지……. 우선 <명예의 제전>을 선포한다고 말씀하시면 될 거예요.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거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무런 규칙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우선 일러 준 대로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그럼…… [<명예의 제전>을 선포한다.]”

분명 한국어로 말을 했지만 뜻만 알 수 있을 뿐,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말에는 의지가 담겨 순식간에 내 마력을 앗아 간다.

마치 드래곤들만 가능하다던 용언과도 비슷했다.

‘대체 뭐지??’

콰앙-!!

당황하려는 찰나, 왕좌 앞 로비의 허공에서 커다란 천칭이 떨어져 내렸다.

검붉은 그 물건은 재질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마신의 성물, <피의 천칭>입니다. 이제 곧 마계에 축제가 벌어지겠군요.”

이름답고도 불길하기 짝이 없는 성물이다.

마신의 악취미가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현 마왕이 <명예의 제전>을 선포하였습니다! 상급 이상의 마족들이 소환됩니다. 마왕 고유의 권한으로 직접 지목한 상대는 강제로 제전에 참여하게 됩니다. 단, 마계 4대 공작 중 과반수 이상이 찬성해야 합니다.]

[다음 단계는 마계 공작 전원이 모인 후 진행됩니다.]

[마왕성으로 마족들이 소환되기까지: 12시간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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