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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75화 (75/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5화

“여기는 마르바스의 성 주변이에요. 이 정도 거리라면 감시도 느슨하겠죠.”

그녀의 말대로 언덕 너머에는 검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이 보인다.

고요해 보이는 그곳은 알 수 없는 불길함으로 가득했다.

“지나치게 조용한데.”

“제가 알기로는 최근까지도 성을 떠나지 않았을 거예요. 답지 않게 가만히 있어서 소멸할 때가 다가왔나 싶었는데, 그런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세웠을 줄은…….”

아렐리아는 내 말은 믿긴 하지만 여전히 마르바스가 그럴 리 없다는 투였다.

“마왕의 자리라도 탐내는 건가.”

“마르바스가요? 아닐 거예요. 전형적인, 전투에 미쳐 있는 마족이에요. 오히려 마왕의 자리에 올라 책임질 일들이 많아지는 걸 싫어하죠.”

“생각할수록 이상한데. 무언가 목적이 있긴 할 텐데.”

처음에는 단순히 나를 방해하려는 속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왕의 자리도, 그 무엇도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지구를 침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주변의 누군가가 부추긴다면 모를까.”

“그럴 만한 자가 있나?”

“음…….”

그녀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한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르바스의 연인인 동부의 공작이 있어요. 북부 대공은 오직 그녀의 말만 듣죠. 하지만 그녀가 부추겼을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그쪽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상대라…….”

결국 이야기는 도돌이표였다.

마르바스 혼자서 생각한 일이진 않겠지만 그게 누구의 계획인지는 모르겠다는 것.

마계의 공작이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행동할 리도 없었다.

“일단 가 봐야 알겠군.”

“동감이에요.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성 쪽을 훑어보았다.

굳게 닫힌 문과 거대한 성벽은 쥐새끼 한 마리도 드나들기 힘들어 보였다.

몰래 잠입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다.

‘그냥 하던 방식대로 할까.’

손에 든 검을 단단히 쥐었다.

내 모습을 살피던 아렐리아가 조용히 소곤댄다.

“설마 또 부수려는 생각은 아니시겠죠?”

‘눈치는 빨라 가지고…….’

“걱정 마. 한스가 아직도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게 좋겠지.”

“저는 인간 따위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지만 일단 그 문제가 아니에요. 성은 파괴할 수 없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치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견고해 보이지만 어차피 고작 돌덩어리일 뿐이다.

내 힘을 모르는 것도 아닐 터인데 그녀의 말에서는 확신마저 느껴진다.

“왜지? 마력을 쏟는다면 저 성을 통째로 무너트리는 것쯤은 어렵지도 않아.”

“저건 성의 형태이지만 어떻게 보면 마신을 섬기는 신전과도 같아요. 마왕성을 포함한 각 공작의 성들은 태초부터 만들어진 장소라 한낱 피조물의 힘으로는 불가능해요.”

‘성이지만 사실은 마계의 근원과도 같다라…….’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비슷한 형태가 떠오른다.

“요정수와 같은 개념인가?”

“맞아요. 요정수가 요정계를 지탱하는 뿌리인 것처럼, 성들도 그렇죠.”

“그럼 부수는 건 문제가 없겠군.”

“제 말을 뭘로 들으신 거예요? 파괴가 문제가 아니라 상처조차 내지 못할 거라니까요?”

그녀는 내 말을 허튼소리로 치부하며 무시했다.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듯이.

“이미 요정수에도 공격해 봤는데. 죽어 가는 것치고 튼튼하긴 했지만.”

“요정수를요?? 아니, 그걸 파괴할 생각을 하셨었단 말이에요?”

아렐리아는 경악하며 소리 질렀다.

커다랗게 뜬 눈은 눈알이 데구루루 빠져나올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래, 그러니까 한스를 빼내면 저 성은 바로 없애 버려야겠어.”

요정수와 비슷하다니 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다음 대 북부 공작은 노숙을 해야겠지만.’

그 정도야 조그마한 첨탑 하나 정도 남겨 두면 될 일이었다.

원래 원룸부터 시작해야 살림 늘려 가는 재미도 있는 법이다.

집이 너무 크면 관리하기도 힘들 테니 마왕 된 자로서의 조그마한 배려였다.

“균형을 파괴하면 마계 자체가 무너질지도 몰라요!”

“아, 그럴지도.”

생각해 보니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긴 했다.

요정왕의 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요정계 자체를 없애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으니까.

하지만 마계는 이미 나의 지배를 받고 있다.

나는 내 밥그릇을 걷어차는 멍청한 놈은 아니었다.

“한 차원계를 소멸시키려고 하셨는데 그럴지도, 라니요. 너무 가볍게 넘기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젠 저도 모르겠네요. 마왕님이 하시는 일들은 항상 따라가기가 버거워요…….”

“그런 것치고 잘 따라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랬나요?”

말릴 때는 언제고, 그녀는 내 작은 칭찬에 금세 기분이 풀린다.

아렐리아는 다시 생글생글 웃으며 부끄러워했다.

“아, 이럴 때가 아닌데. 지금은 성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죠.”

그러면서 그녀는 허공에 손짓을 한다.

아공간을 열었는지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진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내 앞에는 완벽한 피크닉 세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자자, 여기 앉으세요. 완벽하진 않지만 성의 구조가 그려진 문서도 있어요.”

널찍한 돗자리 한편에 엉거주춤 앉았다.

곧 간단한 마실 것과 음식 따위가 차려진다.

미리 준비했는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서둘러 성을 떠나는 것 같더니, 이러려고 그랬나.”

작게 한숨 쉬고 그녀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베어 물었다.

숲과 풀들이 어우러진 이곳은 소풍하기 좋은 장소이긴 했다.

저 멀리 떨어진 을씨년스러운 마족의 성만 없다면.

“제 성은 인간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자자, 여기 지도 좀 보세요.”

사실상 지금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지 아렐리아의 얼굴은 밝다.

그녀는 낡은 설계도면 같은 것을 몇 장 꺼내 늘어놓는다.

“마르바스의 성은 정문과 후문이 있어요. 다른 입구 같은 것은 없죠. 성벽에도 마족들이 줄지어서 감시를 하고 있을 거예요.”

“후문이라고 경계가 소홀하지는 않을 테고…… 결국은 정면 돌파밖에 없나.”

“하지만 결국 몰려드는 마족들 때문에 발이 묶이게 되겠죠. 지하 감옥은 중앙쯤 있을 텐데, 마르바스가 눈치채고 한스라는 인간을 빼돌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에요.”

그녀는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심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방법은 없었다.

“……잠깐. 누군가 다가온다.”

갑자기 주변에 미세한 마기가 느껴진다.

감추려고 노력한 듯했지만 조금씩 새어 나오는 마기는 제법 묵직하다.

‘어림잡아도 상급 마족 이상.’

“네? 저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요?”

아렐리아는 당황해 주변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다.

‘……왜 <강렬한 직감>이 경고하지 않지?’

설마하니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가뜩이나 대부분 봉인되어 몇 개 없는 스킬이 이 모양이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당연히 이곳은 마르바스의 영지이니 적들밖에 없는 곳이다.

위협을 감지하는 <강렬한 직감>이 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역부족이었나요.”

나무 뒤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마족은 기다란 로브로 몸을 감싼 여자였다.

“내 기감을 속일 정도라고?”

아렐리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그러면서 진득한 마기를 잔뜩 끌어모은다.

당장이라도 공격을 가할 기세였다.

“오랜만이군요, 남부 공작.”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로브를 걷어 내렸다.

보랏빛이 섞인 붉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올곧은 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적의는 비치지 않는다.

“릴리스?? 동부에 있어야 할 당신이 왜 여기에 있지?”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자 아렐리아의 마기가 더욱 흉폭해진다.

“진정하세요. 공격할 의사는 없습니다.”

“진정? 하! <다크 스피어>!!”

콰앙-!!

아렐리아가 다짜고짜 마법을 쏘아 냈다.

거친 파괴음이 들리고, 먼지가 걷힌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쥐새끼 같은……!”

“큰 소란이 난다면 마르바스의 정찰대가 올지도 모릅니다. 조심성이 없군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릴리스가 창백한 안색으로 나무에 기대어 있다.

공격을 아예 피하진 못했는지 얼굴에는 긴 상처가 난 채였다.

“그게 네가 원하는 바겠지!”

“절대요.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세요.”

그녀는 비틀거리며 천천히 몸을 낮춘다.

어느새 무릎마저 꿇고 완벽한 항복의 자세를 취한다.

그제야 씨근거리던 아렐리아가 진정하고 마기를 거두었다.

“대체 속셈이 뭐지??”

“마왕님과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디 시간을 내주세요. 아주 잠시면 됩니다.”

그녀가 곧은 눈으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를 올려다본다.

무시하기엔 굉장히 간절한 태도였다.

“……나를?”

“귀담아들을 필요도 없어요! 릴리스는 제가 아까 말했던 마르바스의 연인이에요! 그 말인즉슨, 마왕님의 적이라고요!!”

아렐리아가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친다.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도 감정적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 앞에서는 밝은 모습이지만 나는 그녀의 원래 모습을 안다.

마족다운 잔인함, 그리고 냉혹함.

아렐리아는 본디 차가운 성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 상황에서 자제력을 잃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렐리아.”

단호하게 그녀를 부르자 흠칫한다.

이제야 본인의 행동을 자각했는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처 숨기지 못한 분노가 일렁인다.

“……마왕님 앞이 아니었다면 당장 사지를 찢었을 거예요.”

“남부 공작이 마왕을 맹목적으로 따른다더니, 과연. 저런 모습은 처음이군요.”

“뭐??”

간신히 진정시켜 놓은 아렐리아가 다시금 날뛸 준비를 한다.

릴리스에게 그만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앞에 다가온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마계 동부를 지배하는 공작, 릴리스입니다.”

부드럽게 예를 취하는 그녀.

힘에 부치는지 비틀거리긴 했지만 우아한 자세가 돋보인다.

“인사는 됐고. 여기 온 목적은?”

“……마르바스에 대해 이야기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가 진행하려는 계획을요.”

“지구 침공 말인가.”

“그걸 어떻게……?”

혹시나 무언가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꺼내 든 카드는 내게 전혀 흥미를 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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