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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74화 (74/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4화

“일단 한 대씩 쥐어 터지면 되겠지.”

친히 사랑의 매를 든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인벤토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들었다.

손에 쥐자마자 페르아렌의 가운데 박힌 검붉은 보석이 작게 진동한다.

내가 무기를 들자 기사들이 잔뜩 경계한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렬의 페르아렌? ……정말로 폐하이십니까?”

“총사령관님!”

황급히 기사들 사이를 헤치고 나온 자는 중년의 기사였다.

여기저기 칼자국이 새겨져 거칠어 보이는 인상이다.

인생의 풍파가 많았음을 짐작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야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그 모습에서 내 기억 속에 있는 한 인물을 끄집어내었다.

“……카일.”

“살아계셨단 말입니까…….”

그는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는다.

나는 익숙하게 한쪽 손을 내밀었다.

내 손등에 조심스레 이마를 대는 카일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충!!”

뒤에 있던 기사들도 곧바로 눈치껏 검을 바로 하고 예를 갖춘다.

소란을 듣고 있던, 감옥에 있던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릎을 꿇은 자들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전보다 나이를 먹었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씩 보인다.

“잘들 지냈나?”

나는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였다.

* * *

한동안의 소란이 지나고, 분위기가 진정되었다.

나는 아렐리아가 이끄는 대로 대연회장으로 향했다.

2천 명이 훌쩍 넘는 인원을 수용할 만한 큰 공간이었다.

“정말로 마왕이 되셨다니…… 아직도 믿지 못하겠습니다.”

“대륙을 통일하신 위대하신 대제님이라면 가능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사들은 한껏 고양된 상태로 말을 이어 간다.

젊은 기사들도 있었지만 익숙한 얼굴들이 많았다.

나와 전쟁터에서 생과 사를 함께한 자들이다.

“좀 늦긴 했지만 감축드립니다, 폐하. 그토록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으니까요.”

카일이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그에 주변에 있던 기사들도 웅성거리며 한마디씩 더한다.

“그러고 보니 지구라는 곳으로 돌아가신 상태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황제 폐하의 자리는 계속 비워 둔 상태였는데, 이제는 채워도 되나요?”

한 명이 우스갯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와르르 웃었다.

“그동안 폐하 일을 돌아가면서 하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금발의 덩치 큰 중년 기사가 다가와 말한다.

2미터는 훌쩍 넘을 듯한 키에 험상궂은 얼굴이다.

“겁쟁이 티란이군.”

처음 전쟁터에 내던져졌을 때 울먹이던 소년 기사였다.

또래보다 작던 그가 어느새 자라 이렇게 한 마리의 야생 불곰이 되어 버렸다.

“언제 적 별명입니까? 이젠 저도 후작이라고요.”

그는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인다.

얼굴까지 붉히는 통에 다시 분위기는 왁자지껄해진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야 알겠나?”

“알고말고요. 어찌나 일이 많은지 아직도 나랏일은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한동안 서로의 안부를 나눴다.

어느 정도 추억의 이야기를 한 뒤 나는 그들에게 근황을 물었다.

“모두 그동안 어떻게 지냈지?”

“폐하께서 없어지셨을 때 마왕도 함께 사라졌기에 일단 아스티란으로 돌아갔었습니다. 그리고 몇십 년 동안 기사단을 이동시킬 만한 마법진을 만들었고요.”

“대륙에 있는 마족들을 하나하나 찾아 처치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돌아가신 줄 알았던 폐하의 복수만을 위해 살았죠.”

자랑스럽게 말하는 기사단.

그 모습은 공 물어 왔으니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와 같았다.

“……이 미친놈들이…….”

“폐하의 욕설도 오랜만에 들으니 정겹…….”

“뼈 빠지게 대륙에 전쟁도 멈추고 마왕까지 잡았더니 그딴 개 같은 짓거리들을 하고 있어!?”

누구는 원해도 가질 수 없는 평화이다.

기껏 애써서 만들어 놓은 걸 즐기지는 못할망정 사서 고생들을 하고 있었다.

“니들이 무슨 깡패야, 마족이야?? 피와 살육이 없으면 못 참는, 뭐 그런 거야?”

“마왕님, 저희라고 매일 그러지는 않는데요.”

“아렐리아, 넌 가만히 있어.”

“넵.”

옆에 잠자코 듣고 있던 아렐리아가 딴지를 걸어 왔다.

핀잔을 주긴 했지만 덕분에 짜증이 조금 누그러졌다.

“덕분에 귀환했던 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했고.”

“……죄송합니다.”

이 뇌까지 근육인 무식한 놈들만 없었다면 아렐리아가 순식간에 왕관을 가져왔을 텐데.

어떻게든 편하게 쉬고 싶지만 내 팔자는 뫼비우스의 띠마냥 꼬여서 도저히 풀리지가 않는다.

하나를 처리하면 두 개가 몰려와 버리는 미친 상황.

어찌 되었든 지금 내가 할 말은 하나였다.

“……일단 구르자.”

“네!!”

오랜만에 만난 기사단이지만 그들은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 자세를 잡는다.

여기저기 쿵 소리와 함께 머리 박는 소리만 들려왔다.

하지만 이제 이건 시작일 뿐.

그걸 아는 대부분의 자는 벌써부터 긴장한 듯 숨죽이고 있었다.

“다들 식사는 아직 안 했길 바라지.”

빈속이 구역질하기는 더 편할 테니까.

그 뜻을 잘 아는 카일은 유난히 벌벌 떨었다.

* * *

“허억…… 헉……!!”

기사단에 잠시의 쉬는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수없이 굴려 본 결과, 끊임없이 훈련하는 것보다는 약간의 휴식 뒤 다시 하는 훈련을 더 힘들어했다.

긴장했던 몸이 살짝 풀어지면서 다음을 더 고되게 하는 것이다.

대연회장은 여기저기 널브러진 기사들과 땀 냄새로 가득하다.

“그러고 보니 한스는 어디 있지?”

한바탕 돌리고 나니 이제야 생각나는 한스.

그는 마왕을 처치할 때도 함께했던 내 수족이었다.

혹시 이번 마계 원정은 참여하지 않은 걸까.

하지만 그의 성격상 제일 먼저 나서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스는 나를 유난히도 따르던 기사였으니.

“크흠…… 그러고 보니 말씀드리려 했습니다만.”

카일은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나에게 다가온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보아하니 이미 다리는 풀린 지 오래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저…… 그게……. 이미 한스는 저희보다 먼저 출발했습니다.”

“뭐? 홀로?”

“예, 한동안 연락되다 북부로 간다는 말과 함께…….”

“……그걸 진작 말했어야……. 후…… 되었다. 그나저나 북부라…….”

미간을 찌푸리고 옆에 있던 물을 삼켰다.

억지로 서 있던 카일이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다.

“마계의 공작, 마르바스의 영지입니다.”

“마르바스 그 무식한 놈이 발견했다면 가만 둘 리가 없는데……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요!”

아렐리아가 놀라서 소리쳤다.

익숙한 이름에 나는 생각에 빠졌다.

‘마르바스……. 내 예상이 맞다면 퀘스트에서 언급된 자겠지.’

아렐리아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투로 말했지만 이제는 확신이 든다.

그 계획이라는 건 아마도 지구 침공을 뜻하는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하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가야 할 북부였지만 이제는 한스 놈의 목숨까지 걸려 있다.

‘이 귀찮은 자식. 구하러 가긴 한다만…… 아직 살아 있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마.’

일단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진 기사단에 다가갔다.

흐트러진 그들은 내가 가자마자 자세를 바로 하고 긴장한다.

“흑사자단, 우선 여기서 대기하라.”

“명을 받듭니다!”

그들은 한 치의 의문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나는 아렐리아를 이끌고 옆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렐리아, 마르바스에 대해 잘 아나?”

“그러고 보니 인간들이 마계에 온 걸 알면서도 고요해요. 당연히 날뛸 줄 알았는데…….”

“너는 아까 무시했지만 벨리알이 말하길 마르바스가 지구의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

“예?? 직접적으로 말했다고요? 아까 말씀하신 게 그런 말이셨나요??”

그녀는 크게 당황한다.

별 감흥 없어 하던 방금과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그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하셔서 벨리알의 말장난인 줄 알았는데…….”

“넌 모르고 있었던 건가?”

“네, 하지만 정말 벨리알이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사실일 거예요. 마족은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뭐, 이리저리 돌려 말해 진실을 감추긴 하지만.”

이제야 심각성이 와닿는다.

아렐리아 역시 벨리알이 괜한 말을 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 눈치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쳐 죽이고 싶지만…….’

북부로 간 한스가 마르바스의 손아귀에 있을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최악의 경우였다.

우선은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급선무였다.

“말씀하신 대로 인간들은 아직 돌려보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마르바스가 제 성까지 침입할 정도로 정신이 나가진 않았을 테죠. 미천한 인간들을 보호하는 게 마음에 들진 않지만요.”

“그래, 일단 준비해. 이번은 너와 나 둘만 행동한다.”

“알겠습니다, 마왕님.”

그녀는 황급히 어디론가 향했다.

다시 연회장으로 가자 기사들은 눈에 띄게 침울해하고 있었다.

그제야 동료의 안위가 걱정된 것이다.

“분위기가 왜 이래? 누가 보면 벌써 초상난 줄 알겠군.”

“폐하…… 괜찮을까요?”

카일이 우울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어깨에 걸쳤다.

“카일, 나를 못 믿나?”

그는 그제야 굳은 의지가 가득한 눈을 한다.

눈동자에는 무한한 신뢰가 비친다.

“……믿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제 폐하가 하시는 말씀이니까요.”

나는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니까 믿으라는 거다.”

멀리서 아렐리아가 긴 로브를 걸친 채 다가온다.

나 역시 가볍게 몸을 풀며 연회장 밖을 나섰다.

등을 돌리자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사들이 고개를 숙인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폐하의 검에 승리의 빛만이 비추길.”

‘승리의 빛이라…….’

아스티란에 있을 적엔 시도 때도 없이 듣던 말.

괜히 옛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최소 몇 년은 흐른 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사들이다.

수많은 전투를 함께했는지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날 며칠을 그들과 어울리며 만남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추억에 잠길 틈은 없었다.

“한스, 이 멍청이 좀 구하러 가 볼까.”

“마르바스 처치하는 것도 잊지 마세요!”

“그래, 감히 내 구역을 침범하려는 마족 얼굴 구경도 해야지.”

아렐리아는 내 말에 만족한 얼굴로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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