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3화
나는 만들어진 차원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약간의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풍경은 순식간에 바뀐다.
도착한 곳은 어느 성의 내부로 보인다.
“마계에 다시 오신 걸 환영해요, 마왕님.”
주변에는 고풍스럽고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한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다.
그녀는 조금 걷더니 거대한 문 앞으로 이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금세공과 보석으로 장식된 문에 손을 댄다.
그 크기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문은 소음 하나 내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영광된 마왕님을 뵙습니다!!”
문이 열린 곳은 크고 웅장한 메인홀.
그리고 성이 떠나갈 듯 큰 소리가 들려온다.
내 앞에는 고급스러운 붉은 융단이 길게 깔려 있다.
주변에는 수백 명의 마족이 융단을 따라 양옆에 있었다.
고위 마족들만 있는지 묵직한 마기가 숨이 막힐 듯 공간을 채운다.
“이건…….”
“마왕님, 아직 왕관을 받지 않으셨잖아요?”
그제야 아렐리아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게 이해가 갔다.
이건 날 위한 대관식이었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태도를 싹 지운 채 내 뒤에 선다.
얼굴에는 진중함이 가득하다.
‘하여간 허례허식은…….’
피식 웃으면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양쪽으로 정렬해 있는 마족들이 내가 걷는 속도에 따라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는다.
어느새 아렐리아를 제외하고 모든 자가 몸을 낮춘다.
나는 끝에 있는 왕좌에 도달했다.
“이 왕관을…….”
그녀가 어느새 벨벳 방석 위, 검은빛의 보석이 달린 왕관을 내민다.
느릿하게 왕좌에 앉아 왕관을 머리에 썼다.
“마계의 지배자이시여, 마신의 축복과 어둠이 함께하소서!”
그와 동시에 마족들이 일제히 다시금 소리친다.
옆에 있던 아렐리아 역시 같은 말을 하며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본다.
진득한 보랏빛 눈동자는 경외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마왕의 왕관[??]: 마족의 왕이 된 자가 가질 수 있는 왕관. 고대 마신이 핏물과 아다만티움을 용암에 제련하여 만들었다 한다.
여섯 개의 종족이 가진 모든 왕관을 모은다면 신에 필적할 만한 힘을 얻게 된다고 한다. <보유한 왕관: 2/6 요정계의 왕관, 마왕의 왕관>]
[위대한 업적! 인간의 몸으로 마왕이 되는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마왕>을 얻습니다.]
[<마왕>: 모든 마족의 왕이자 마계의 지배자, 요정수의 수호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마족 지배력 +100%, 힘 +200%, 체력 +200%]
‘이제야 마왕이 된 건가.’
요정왕의 왕관을 받았을 때와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어지럽힌다.
[<퀘스트: 왕의 길>이 갱신됩니다.]
[<왕의 길>-(2)
-요정계의 왕: 달성
-마계의 왕: 달성
-천족의 왕: 미달성
-수인계의 왕: 미달성
-거인계의 왕: 미달성
-정령계의 왕: 미달성]
[스킬 <마신의 가호[L]>를 얻습니다.]
[마왕의 권한으로 마계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스킬 <마계의 문>[L]을 얻습니다.]
여기까진 요정왕이 된 것과 똑같았다.
하지만 다른 것은 스킬.
‘요정수의 가호 스킬이 제법 괜찮았는데.’
기대를 하며 다음 메시지창을 기다렸다.
<마신의 가호[L]: 일주일에 1번, 마신의 가호를 부여받습니다. 스킬 발동 시 버서커 상태가 되며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2배로 향상됩니다.>
역시나 가호는 배신하지 않는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붙잡았다.
스탯이 두 배가 된다면 봉인된 스킬들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그저 주먹질 하나에 산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가루가 될 것이다.
‘모든 차원계의 왕이 된다면 대체 어느 정도일지…….’
시스템 메시지를 모두 읽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흐려진다.
어느새 내 주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안개로 휩싸여 있었다.
[이번에도 <예언>이 실행되고 있는가…….]
나직한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담겨 있다.
이윽고 검은 형태가 뭉쳐지더니 사람과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칠흑과도 같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린 장신의 남자.
그 어떤 자라도 홀릴 수 있을 만큼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고운 외관과는 달리,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운이 나를 짓누른다.
“……마신?”
[그렇다, 이번 대의 어둠을 이어받은 자여.]
‘마신이라는 존재는 그저 전설일 뿐인 줄 알았는데.’
[전설이라…… 그렇게 치부해도 좋지. 이미 세상은 그대들의 것이니.]
설마 내 마음을 읽은 것인가.
날카롭게 그를 쳐다보는데 형태조차 없는 그것이 슬쩍 웃는 것이 느껴진다.
[경계하지 말라. 그저 오래 살다 보니 생긴 잔재주에 불과하니.]
“……제법 불쾌한데.”
[뭐? 하하하하…… 재밌는 필멸자구나. 이번 대 마왕은 참으로 재밌어.]
마신은 한참을 웃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검은 마기를 내 몸에 휘감았다.
마치 나를 살펴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음, 이만하면 강단도 있고…… 과거처럼 어리석게 흘러가진 않겠지. 기대하겠다.]
“과거……?”
마치 내가 처음이 아니라는 말투였다.
하지만 내 의문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었다.
[우선 그 전에 그대가 할 일이 있지.]
마신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강제 퀘스트 <마신의 부탁>이 생성되었습니다.]
[<마신의 부탁>: 감히 마계를 어지럽히는 자의 계획을 파헤치고, 방해하라.
* 숨겨진 성공 조건이 존재합니다. (힌트: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성공 보상: ?? 상자. (숨겨진 조건을 발견하고 성공 시 3개가 지급됩니다.)]
오랜만에 보는, 수천 번은 족히 진행했을 퀘스트였다.
하지만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는 평범하지 않다.
심지어 강제로 진행해야 하는 임무이다.
불쾌함으로 내 얼굴이 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신이 직접 주는 퀘스트는 처음인데.”
[과연 그럴까.]
그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콰직-
그때 고요했던 공간에 미세한 소음들이 들려온다.
자세히 보니 주변이 점차 유리가 부서지듯 갈라지고 있었다.
[이런, 아무리 <그녀>의 힘을 빌렸어도 이런 일은 나에게 무리인가.]
그를 감싸던 검은 마기들이 천천히 사라진다.
마치 기운이 빠지고 있는 듯하다.
[그럼 부탁하지. 이건 그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
“보상이나 준비해 두라고.”
[그래, 그대가 만족할 만할 거야.]
나직하게 웃는 마신의 형상이 일렁이며 흐트러진다.
점점 공간은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어느새 눈앞에는 아까와 같은 성의 내부가 보였다.
“마왕님? 왜 가만히 계시는지요?”
아렐리아가 옆에서 작게 속삭인다.
멍하니 있는 내가 걱정되는 얼굴이다.
나는 여전히 찡그린 채로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들이 걱정되셔서 그러시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그제야 내가 마계에 온 목적이 생각났다.
“아스티란에서 온 자들을 가둬 놨다 했지.”
“네, 제 성 지하 감옥에 있어요. 일단 그나마 다른 마족들이 손을 뻗지 않을 곳이 그곳이기에…….”
그녀는 민망해하며 말했다.
내가 아낀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을 감옥에 가둔 것이 미안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로서도 도리가 없었을 것이기에 이해했다.
감옥은 죄수를 가두기도 하지만 보호하는 역할도 겸한다.
주제도 모르고 마계에 쳐들어온 인간들을 자존심 강한 마족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마왕성에서 볼일은 마쳤으니 바로 감옥으로 이동할게요.”
그녀는 내 팔을 잡고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눈앞에는 축축한 지하 감옥이 길게 이어져 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이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헛……?”
웬 기사 하나가 감옥을 막 탈출했는지 도둑놈마냥 서성이고 있었다.
쇠창살 두어 군데가 부러진 개구멍에서는 지금도 다른 자들이 줄지어 빠져나오는 상태였다.
“아니, 이 쥐새끼 같은 놈들이…….”
아렐리아는 그 광경을 보고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부여잡는다.
“젠장, 다들 전투 준비! 마족이 돌아왔다!!”
그들은 황급히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몇 명의 기사가 전투 진형을 만들고 무기를 겨눈다.
“하…….”
“아렐리아, 네가 고생이 많았겠구나.”
“진짜 고집불통들이에요. 인간들은 다 저러나요?”
나와 아렐리아가 한가하게 잡담이나 하며 아랑곳하지 않자 기사들은 당황했다.
천천히 우리를 살피던 그중 한 명이 크게 소리쳤다.
“설마…… 폐하?”
“무슨 소리야, 대제께선 마왕의 손에 돌아가신 것 아니었어?”
“하지만…… 초상화랑 똑같은 모습인데?”
“수십 년이 흘렀는데 그럴 리가……. 설마 황제 폐하의 모습으로 변장한 것인가? 간악한 마족 같으니……!”
쑥덕거리던 기사들이 갑자기 분개한다.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이 아주 화기애애해 보인다.
나도 좀 끼워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일단 공격해!!”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재빠르게 다가와 검을 휘두른다.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슬쩍 몸을 비켜 공격을 회피했다.
‘이 멍청한 놈들을 어쩌면 좋을까…….’
옆에서 한숨만 쉬고 있는데 갑자기 황폭한 마기가 느껴진다.
“빌어먹을 인간들이 오냐오냐했더니 감히…….”
아렐리아가 차갑게 눈을 빛내며 좌중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계의 공작다운 위압감이 흘러나온다.
심상치 않은 마기에 기사들은 주춤거리며 긴장한다.
“아렐리아.”
조용히 그녀를 부르자 천천히 마기가 가라앉는다.
나를 돌아본 아렐리아의 눈에는 억울함이 가득했다.
“마왕니임…….”
“네가 참아라.”
그녀를 다독이고 기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아렐리아의 말을 듣고 경악한 채 굳어 있었다.
“마…… 왕이라고?”
“마왕이 황제 폐하의 외관을 따라 하다니!! 이 무슨……!”
‘아니, 그러니까, 너네 황제 폐하가 마왕이라고.’
저 퍽퍽한 밤고구마 5,600개쯤 먹은 기사들의 답답함에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원래 기사라는 족속들은 융통성 없기 그지없다지만 이쯤 되면 도저히 눈뜨고 봐주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