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2화
“크윽……!!”
그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하지만 반항할 생각은 못한 채 더욱 내 발밑에 넙죽 엎드릴 뿐이었다.
“그래, 재밌는 발상이긴 하군. 지구의 침략이라…….”
다른 차원계가 지구를 침략하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내 밑에 있는 마족일 줄은 몰랐다.
“왕이시여…… 부디 자비를……. 저는 그저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마왕께서 인간이신 건 알지만 지금은 모든 마족의 왕 아니십니까…….”
벨리알이 벌벌 떨며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자비를 구걸한다.
“마르바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군.”
내가 지구에 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공격을 해 오려는 자다.
그건 곧 나를 적으로 돌린다는 소리.
마르바스는 마왕인 나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대공이 마왕님을 적대하는 건 사실입니다……. 허나 저는 다릅니다……. 마왕님께서 같은 종족을 그토록 아끼고 계신지는 몰랐습니다……. 평생 충성을 바칠 테니…….”
나는 차갑게 조소했다.
마르바스와 일을 함께하면서 그 정도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이다.
“인간인 나를 마왕으로 섬기는 것이 탐탁지 않았겠군 그래.”
“그때는 마족이 아닌 자가 전대 마왕을 죽였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는 쿠데타를 진행하려는 마르바스의 편을 들었음을 시인했다.
더 이상 들을 말은 없었다.
나는 다시금 검을 들어 그에게 휘둘렀다.
“컥-!!”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벨리알이 천천히 쓰러진다.
이윽고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부스스 사라진다.
치명상을 입어 마계로 돌아갈 틈도 없이 소멸된 것이다.
콰직-
그가 소멸하자 회의실에 걸려 있던 결계 마법이 사라진다.
나는 밖으로 나와 길드장실 앞으로 다가갔다.
때마침 이도윤이 대화가 끝났는지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진 님!!”
그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열린 문 안을 살펴보니 회장은 쓰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의사나 힐러를 불러와야 합니다!!”
“……이유는 알 것 같으니 소란 피우지 말고 기다려.”
“예? 그게 무슨 말씀…….”
마족과의 계약이 끊겨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나는 침착하게 안으로 들어가 회장을 살폈다.
‘기운이 엉망으로 꼬여 있군.’
소량의 마기가 심장 부근에 침범해 있는 상태였다.
헌터라면 모를까, 일반인의 몸으로는 마기를 감당할 수 없다.
천천히 마력을 그의 몸 안으로 흡수시켰다.
곧 마기는 내 마력에 밀려나 밖으로 빠져나온다.
“크윽…….”
회장이 천천히 눈을 떴다.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지만 곧 편안해질 터였다.
“급한 불은 껐다. 괜찮아질 거야.”
“감사합니다, 진 님!!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어느새 이도윤이 뛰어와 회장의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아직 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상태였다.
이도윤이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고, 따듯한 차 한 잔을 조심스럽게 내민다.
회장은 곧 정신을 차리고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 했다.
“도윤이에게 듣던 용병왕이군. 난 이영수라 하오. 내 목숨을 살려 주셨군. 고맙소.”
그는 진중한 얼굴로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나이는 내가 더 많을 테니 편하게 말하겠다. 물어볼 게 있는데.”
“300년 넘게 살다 귀환했다고 들었소. 원하시는 대로 하시오.”
이영수는 전혀 개의치 않은 태도이다.
오히려 옆에서 이도윤이 뭐 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이도윤, 넌 나가 있어.”
“네? 하지만…….”
“진 헌터님 말대로 하거라.”
그는 머뭇거리더니 곧 밖을 나갔다.
길드장실에는 나와 이영수만 남아 고요해졌다.
“한호의 회장을 내가 좀 띄엄띄엄 봤나 보군. 다시 봤어. 인맥이 아주 좋군 그래.”
“……무슨 말이오?”
“그 정도 자리가 되면 아는 마족 한둘쯤은 생기는 건가?”
“……그걸 어떻게…….”
그가 눈에 띄게 당황한다.
주름진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계약을 했더군. 아내를 살리려고 했다고.”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소중한 이요. 하물며 회장직 따위는 더 말할 필요도 없지.”
“그 알량한 목숨은 상관없다지만 회장씩이나 되는 그 자리가 짊어진 무게도 모르나?”
일반적인 기업의 회장으로서 느껴야 할 책임감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
마족이 인간계의 중추에 올라섰을 때 벌어질 일들.
그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회장의 자리는 잠깐 넘긴 뒤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소. 굴러온 돌이 쉽게 빼앗을 만한 위치가 아니니.”
마족을 속여 먹으려고 했다는 소리인가.
꿈이 큰 건지, 간덩이가 큰 건지.
잠시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다.
‘허…… 그래. 뭐,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한다만.’
요새 헌터 쪽에 관심을 가진다 하더니만 그래도 그는 기본적으로 일반인이었다.
마족에 대한 것들을 파악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
“거기까지 알고 있으니 말하긴 쉽겠군. 무언가 그와 내 연결이 끊어진 느낌이 들었소. 설마…… 그를 죽인 거요?”
“맞다. 벨리알은 죽었어.”
“……그럼 내 아내는…….”
“정말 아내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는가…….”
그는 침통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한 눈치였다.
굳이 벨리알이 언데드로 살려 냈을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와 나 사이에서 침묵이 이어진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군. 난 이만 나갈 테니 이도윤에게 잘 설명하도록.”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영수는 그리움에 젖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를 위했다라…….”
그렇다고 그가 한심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 역시 멍청하다 못해 어리석은 짓거리들을 했었으니까.
애써 과거를 생각하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비릿한 피의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아, 진 님. 끝나셨습니까?
“들어가 봐. 그리고 당분간은 연락되지 않을 거다.”
밖을 나오자 이도윤이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잔뜩 굳어 있는 내 분위기를 읽더니 곧 길드장실로 들어갔다.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한번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 * *
‘아렐리아…….’
그동안은 알아서 잘 있겠거니 싶어 딱히 말을 걸지 않았었다.
애도 아니고, 천 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다.
하물며 마계에서 대공의 자리까지 올라 있는 강자인데 위험에 빠질 일은 없다 생각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엔 벨리알이 한 말이 걸린다.
‘큰일이 벌어질 거라 했지.’
벨리알이 거짓을 말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마족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지 않을망정 거짓말은 잘 하지 않는 종족이니까.
일단 마계 일을 파악하기 위해 아렐리아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아렐리…….]”
“[마왕님!! 큰일 났어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 경우에는 마족인가.’
때마침 그녀가 호들갑 떨며 나에게 대화를 걸어왔다.
그나저나 큰일이라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한 듯했다.
“[그동안 연락 못해서 죄송해요! 마계 상황이 너무 급하게 굴러가는지라…… 이제야 조금 여유가 생겼어요.]”
“[그렇지 않아도 나도 대충 알고 있다. 마르바스가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고.]”
“[북부 공작이요?? 그 뇌가 슬라임으로 되어 있는 녀석이요? 그 자식이 그럴 리가 없는데요?]”
“[벨리알이라는 마족이 그러던데.]”
“[벨리알이요? 그 음흉한 놈이 괜히 뭔가 있는 척한 것 같은데요. 마르바스는 꿍꿍이는커녕 계획이라곤 하루치도 못 세울 놈이에요. 아니아니, 일단 그 무식한 놈이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그녀의 말이 의아했다.
마르바스에 대한 것도 아니라니?
“[인간, 인간들이 마계에 쳐들어왔어요!!]”
“[……뭐라고??]”
‘미친, 마족이 침략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침략했다고?’
내가 구해 낸 아스티란에서 평화를 즐겨야 할 인간들이라니.
귀환했던 시간 동안 마족마냥 전투를 즐기게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래서는 마족과 인간이 뒤바뀐 꼴이었다.
“[대제님의 복수라는데……. 이거 마왕님 말하는 거 맞죠?]”
이내 아렐리아가 내 의문을 풀어 주었다.
‘가만히들 있을 것이지…….’
아마 나와 같이 싸우던 동료들은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상태일 것이다.
몇십 년이 지났을 텐데 그동안 내 복수랍시고 이를 갈고 있었을 테고.
잠시 그리운 동료 몇 명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 녀석들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한차례 큰 전투가 있었죠. 마족들은 감히 인간들이 침략해 온 것에 분노했고요.]”
“[설마 모조리 죽였나?]”
“[다행히 제가 돌아갔던 시점에 시작된 일이라서요. 일단 제 성에 모두 가둬 놨어요. 그런데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상황은 안 봐도 뻔했다.
당장이라도 탈출하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 있을 것이었다.
“[너희 왕은 이미 우리의 마왕님이 되셨으니 이럴 필요가 없다고는 했는데요.]”
아렐리아가 나름 중재를 하려고 애를 썼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이 믿을 턱이 없었다.
아스티란의 왕이 이젠 마족의 왕이 되었다니.
마계에서 지나가던 케르베로스도 안 믿을 소리였다.
“[아렐리아, 날 마계로 소환할 수 있나?]”
“[아, 직접 오셔서 설명하신다면 좋을 테죠.]”
잠시 적막이 흐르고, 눈앞에 시꺼먼 마기가 뭉쳐진다.
곧 안개 같은 마기가 흩어지고 아렐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같이 긴 머리를 우아하게 늘어트린 그녀는 매혹적인 자태로 서 있었다.
“마왕니임-!!”
도도하게 주변을 훑어보던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울상이 되어 다가온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보고 싶었어요!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었는데, 마왕님께서 아끼시는 인간들이라서 신경 쓰느라고…….”
그녀는 촉촉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면서도 칭찬이라도 해 주길 바라는 듯 은근슬쩍 몸을 밀착한다.
잔뜩 신이 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은 모습이다.
“그래, 고생했나 보네.”
“망할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네요. 마족의 말 따위는 듣지 않는다나 뭐라나. 정말 건방져서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었지만…….”
그녀의 눈에 흉폭한 기세가 서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방긋 웃으며 내 팔을 이끌었다.
“일단 당장 마계로 돌아가요. 인간의 몸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차원을 넘나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마족인 제가 문을 열 테니 상관없겠죠. 어차피 마왕님의 마력도 조금 쓸 테니까.”
잠시 그녀가 눈을 감고 무언가 중얼거린다.
순식간에 내 마력이 빠져나간다.
절반 가까이 소모되었을까, 그제야 그녀는 눈을 뜨고 앞에 검게 소용돌이치는 문을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