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1화
“커억…… 컥…… 이게 무슨……!”
그는 당황하며 공중에서 버둥거린다.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연기 한번 잘하는군. 다른 사람들은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
한호 회장의 비서가 헌터일 리도 없는데 미약한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처음 보는 자의 마나라고 하기엔 그 기운이 익숙했다.
“내가 마기를 못 느낄 거라 생각했나?”
그는 그제야 반항을 멈춘다.
나는 틀어잡았던 멱살을 놓고 옷매무새를 다듬는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 당황했냐는 듯 그 모습에서는 여유마저 넘친다.
“과연 마왕님이시군요.”
“여태껏 안 들킨 게 신기할 지경이군. 운이 좋았나.”
“글쎄요,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건데요. 뭐, 운이 따라 줬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눈을 번뜩이며 나를 쳐다보는 김형우.
정체를 들켰지만 차분해 보인다.
‘무슨 목적으로 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소 좀 옮기지.”
아무도 오지 않는 길드장실 앞이지만 혹시 몰랐다.
나는 그를 끌고 빈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대충 의자 하나를 끌어다 앉아 팔짱을 끼고 그를 쳐다보았다.
“일단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마왕님.”
회의실에는 김형우가 퍼트린 마기로 가득 찬다.
폭발할 듯한 마기에 창문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진동한다.
“후…… 원래 모습은 오랜만이군요.”
성격 좋아 보이는 중년의 신사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창백한 피부에 마족 특유의 뿔을 달고 있는 그.
어둠의 종족답게 사악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저는 악마족의 벨리알이라고 합니다. 감히 영광된 마왕님을 뵙습니다.”
벨리알은 과장된 몸짓으로 무릎을 꿇고 간단히 예를 취한다.
그 모습은 마치 무대 위 연극배우와 닮아 있었다.
떨떠름하게 보고 있자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본다.
“물어볼 말이 많으신 얼굴이시군요. 아, 여기에는 제가 결계를 쳐 두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족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라지만 지금은 설명이 필요하겠군.”
“침묵을 지키는 건…… 안 되겠죠?”
콰앙-!
나는 인벤토리에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는 움찔하더니 미소를 지운다.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판단한 것이다.
“농담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아도 다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어차피 저야 마르바스의 편도 아니고요.”
마르바스는 마계 북부를 다스리는 대공의 이름이다.
“왜 여기서 그자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지?”
“현재 마계 상황에 대해 모르십니까? 남부 대공이 그동안 마왕님을 보좌했다고 들었는데요.”
“아렐리아가 마계에 돌아간 지 시간이 좀 지났는데.”
그러고 보니 금방 돌아와야 할 그녀가 아직도 귀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돌아간 마계이기에 해야 할 일이 많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그곳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아렐리아[드래곤]: 블랙 드래곤 일족의 헤츨링. 하지만 영혼이 소멸되어 버린 빈 껍데기에는 마족이 들어가 있다. * 현재 본래의 모습인 마족으로 돌아간 상태.]
하지만 펫창에 있는 그녀의 상태 정보에는 별다른 조짐이 없다.
위험에 빠진 상태였다면 바로 돌아왔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났다라…… 그럴 만도 하군요. 제가 가끔 마계에 돌아갔을 때만 하더라도 정신없어 보였으니까요. 몸을 빼낼 틈도 없을 겁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지?”
“아렐리아 대공 자체는 지금 괜찮습니다. 뭐…… 곧 일이 벌어져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내 시선을 피한다.
벨리알은 아까부터 특유의 화법으로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은 채 내 질문을 이리저리 피해 가고 있었다.
눈썹을 꿈틀거리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일이라…… 그래. 마계에서 마왕인 날 빼고 무슨 재밌는 일을 꾸미고 있을까?”
“재미보단 솔직히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야 명령을 받는 입장…….”
써겅-!
“크악!!”
나는 옆에 놓여 있던 페르아렌을 휘둘렀다.
깔끔한 일격이었다.
단숨에 벨리알의 왼팔이 베어졌다.
그는 당황한 것도 잠시, 눈에 살기를 띠고 나를 쳐다본다.
“반쪽짜리 마왕 주제에……!!”
곧 다른 한 손으로 마기를 모으려고 하는 벨리알.
나는 다시금 검을 휘둘렀다.
“<다크 배리어>!!”
그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듯 재빨리 보호 마법을 영창했다.
하지만 내 마력이 담긴 검이 배리어에 닿자 산산조각 나 버린다.
빠르게 찔러진 검은 그의 복부 중앙을 정확히 뚫었다.
“아악!!”
검붉은 피가 흥건하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서 꿈틀거린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다시금 뽑아 그의 남은 오른손에 꽂아 넣었다.
“크아악!!”
“여태껏 시건방진 태도를 봐준 것도 아량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네 말마따나 반쪽짜리일지언정 마족의 왕이긴 하니까.”
“큭……!”
검을 반쯤 비틀었다.
그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도 없는지 작은 신음 소리만 낼 뿐이다.
손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아 묻어 있는 피를 가볍게 털어 냈다.
벨리알은 여전히 가쁜 숨을 쉬며 쓰러져 있다.
“죄송…… 합니다. 크윽…….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대화할 기분이 생겼는지 그는 비틀거리며 내 발밑으로 기어 온다.
하여간 마족들은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족속들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 엄살은.”
나는 심드렁하게 벨리알을 쳐다보았다.
“하…… 하하……. 듣던 대로 대단하시군요.”
그는 회복 마법을 사용해 지혈을 하고 공손한 태도로 꿇어앉는다.
그러더니 잘린 팔에 시선을 한번 던진다.
날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색은 더욱 하얗게 질려 있다.
“후…… 이제 좀 살겠군요. 목숨만은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자애로운 마왕이라서, 그 정도에서 봐주지. 두 번은 없겠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살기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죽이기엔 그가 아직 말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았다.
“자애라…… 팔 한쪽을 거침없이 베어 내신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다음에는 목을 베어 주지. 그러면 내 배려를 알 수 있겠군. 허튼소리 하지 말고, 빨리 마계에 대한 이야기나 하지 그래.”
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제가 여기 오게 된 이유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저는 지금 한호의 회장과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뭐? 설마 회장이 마족을 불러냈나?”
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가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당황한다.
“회장이 소환한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이 몸의 주인이었던 김형우라는 자였습니다. 아렐리아 대공이 소환되었을 때 기억나십니까?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제물을 바쳤을 때요.”
갑자기 여기서 하나비 길드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그때 이미 마기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마족을 처음 소환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과 김형우를 연관 짓긴 힘들었다.
“비서라는 자가 그쪽과 협력하고 있는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를 소환하고 계약을 맺자 하더군요.”
“계약 조건은?”
“한호의 회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김형우와 하나비 길드가 이해가 간다.
아마도 하나비 측에서는 장차 회장이 될 김형우에게 힘을 실어 줄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길드에도 큰 이득이 되리라 판단했겠고.
“계약 내용은 말해선 안 되는 것이지만 마왕님이라면 괜찮겠죠. 그때 말했던 것이 <이 몸이 한호의 회장이 되는 것>이었는지라…….”
벨리알은 슬쩍 웃으며 말한다.
마족답게 음흉한 미소였다.
‘그놈은 하필 계약 내용을 그 따위로 해서…….’
마족과 계약할 때는 조건을 상세하게 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멋대로인 마족들이 자기 좋을 대로 계약 내용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 계약에도 허점이 있었다.
‘이 몸’이라는 것은 결국 몸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상관없단 뜻 아닌가.
벨리알은 그걸 알아채고 김형우를 죽이고 몸을 차지한 게 뻔했다.
“멍청한 놈.”
“그건 동감입니다.”
마족과 계약을 진행할 때 서류를 검토해 주는 직업이 있다면 성공할 텐데.
끝까지 꼼꼼하게 조건을 알려 주고, 계약상 허점을 알려 준다면 더 좋고.
‘저러니까 마족이 욕을 처먹지.’
하지만 마족들 입장에서야 계약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는데 뭐가 잘못된 거냐 할 것이다.
그들은 어지간히 뻔뻔한 종족이었다.
“처음에는 계약을 위해 회장에게 접근했는데…… 재밌는 고민을 하더군요.”
“한호의 회장씩이나 되는 자가 고민이라.”
“사실 제가 원래 있던 비서가 아니라는 건 금방 눈치챘습니다. 마족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혹시 본인의 아내를 살릴 수도 있냐고 물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와 이중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제 조건은 조만간 한호의 회장을 이어받는 것이어서 영혼을 제물로 받진 않았죠.”
결국 벨리알은 편하게 계약을 진행하기 위해 다른 계약을 이용한 것이었다.
약삭빠르게 본인이 힘들이지 않고 회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그가 한 계약 조건은 절대 이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걸 수락했다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마족에게 그런 편리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을 턱이 없다.
누군가 부활시키는 것이 가능했다면 마족이 아니라 신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계약은 신성한 것이라 아무리 마족이라도 무조건 지켜야 했다.
“뭐, 언데드로 살아나도 살아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미친 새끼.”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허탈할 정도였다.
내 말에 그는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마족답게 일을 잘 처리했다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뭐, 어쨌든 제가 지구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마르바스 대공이 저에게 한 가지 명령을 해 오더군요.”
“마족들이 아무리 힘의 법칙을 따른다고 해도 그 말을 쉽게 수락했다고?”
지금은 내 말을 고분고분하지만 벨리알은 척 봐도 상당한 고위 마족이다.
못해도 군단장급.
그 정도의 강자가 마르바스의 명령이랍시고 순순히 허락할 리가 없다.
“워낙 재밌는 말이어서요. 한호의 회장이 되면 영혼들을 끌어모아 지구와 마계를 잇는 통로를 만들라고 하더군요. 인간계 침공이라니, 정말 대단한 발상…….”
콰악-!!
“아악!!”
나는 벨리알의 남은 오른팔마저 잘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