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70화
몇 달 후 헌터계에는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다.
전 세계에 뻗어 있던 블랙마켓이 다섯 개의 지점으로 축소된 것이다.
자신의 나라에 지점이 생긴 헌터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렇지 못한 헌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른 나라로 원정을 떠났다.
“예상한 대로입니다.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존에 멈춰 있던 만큼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내 앞에는 검은 가면을 쓴 자가 있었다.
기존의 블랙마켓을 흉내 내는 이도윤이었다.
멀끔한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가면에 걸린 마법으로 목소리도 달라져 있었다.
“예전 블랙마켓이 정체를 극도로 숨겼기에 일이 제법 수월했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블랙마켓의 운영에 대한 것들을 파악하고,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급한 일정만큼 밤낮으로 뛰어다니던 길드원들의 조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어차피 정체를 모르는 자들이었으니까. 누가 한들 헌터들이 신경 쓸 리가 없지.”
“그렇긴 합니다. 몇몇은 의심하긴 했지만 어차피 조사해 봤자 기존처럼 나오는 것이 없을 거라 판단한 것 같더군요.”
“전에 있던 블랙마켓이 어지간히 잘 해낸 모양이야. 우리야 한시름 덜었으니 다행이지.”
나는 건물 안에서 밖을 내려다보았다.
마법으로 철저히 분리된 블랙마켓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은 지중해에 있는 개인 섬으로, 프랑스에 있는 블랙마켓 전용 텔레포트 포탈과 연결되어 있었다.
섬 밖에는 대규모 환영 마법이 걸려 있어 그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걸로 보인다.
다른 지점들도 비슷한 형태로 꾸려지고 있었다.
“그래도 진 님이 해 주신 일들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렴, 누가 직접 나섰는데.
이 정도도 안 돼서야 곤란했다.
만족한 미소를 짓고 밖을 구경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
“들어오세요.”
이도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리고, 검은 가면을 쓴 직원 하나가 나타났다.
“서류…… 가져왔다……. 그럼…… 이만…….”
어눌하게 말한 그는 용건을 마치고 바로 돌아간다.
그걸 보는 이도윤은 착잡한 얼굴이다.
“진 님이 보내 주신 직원들이 말을 잘 듣긴 합니다만…….”
그는 말을 흐리며 내 눈치를 본다.
의아하게 그를 쳐다보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했다.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이상하다라…… 그럴 만도 하지.”
그는 더 할 말이 많아 보이지만 애써 가려 말하는 눈치이다.
“정체는 여전히 밝혀 주지 않으실 건가요?”
“알아봤자 좋을 건 없는지라.”
“믿을 만한 자들이겠지요? 혹시나 비밀 유지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됩니다.”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 특별히 엄선한, 입이 무거운 자들이니까.”
그보다 입이 무거운 자들은 전 세계를 뒤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나는 지금도 헐떡이며 마력을 뽑아내고 있을 크레아시론이 떠올렸다.
[스켈레톤을…… 직원으로 사용하신다고요? 그것도 천에 가까운 숫자를요?]
[아크 리치가 되었으니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아니…… 단순한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닐 테고…….]
[대충 안내와 접객 정도만 가능하면 된다. 머리 쓰는 일은 길드원들이 할 테니까.]
[……제가 못한다고 해도 강행하실 거죠?]
[잘 아는군.]
어차피 스켈레톤들이 더 이상 재료를 캐러 다닐 필요도 없었다.
마력이야 변화하는 공간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을 테고.
남은 인력…… 아니, 언데드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심하던 차에 잘된 상황이었다.
협회와 거래할 스크롤도 만들고, 스켈레톤을 뽑아내기까지 하니 크레아시론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꿀 좀 빨아 볼 생각으로 희희낙락하던 그의 얼굴이 다시 죽상이 된 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진 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좀…….”
이도윤이 가면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스켈레톤 직원들을 생각했는지 얼굴은 잔뜩 찌푸린 상태였다.
방금은 멀리 있어서 몰랐지만 아무래도 썩어 가는 냄새가 좀 나긴 하겠지.
나는 간단하게 그의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탈취제라도 좀 뿌려. 향기가 나는 아티팩트를 하나씩 걸어 주는 것도 좋겠군.”
“아무리 그래도……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 마음대로 취급해도 돼.”
스켈레톤들에게 나빠 할 기분이 존재할 리가 없다.
여전히 찝찝한 얼굴인 이도윤은 곧 나에게 스켈레톤이 놓고 간 서류를 몇 장 가져왔다.
“간단하게 정리한 재무제표입니다. 이 정도 속도면 1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아이디어들도 헌터들에게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특히 새벽 배송 시스템이 인기입니다. 고가의 아티팩트는 상황이 다르다지만, 간단한 물건들은 모두 그걸로 거래하고 있습니다.”
새벽 배송은 내가 낸 아이디어였다.
블랙마켓이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이면 간단하게 구매가 가능하다.
포션 같은 소모품을 바로 받아 볼 수 있는 시스템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였다.
특히나 성질 급한 한국 헌터 사이에서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말씀드린 김에 한번 마켓을 둘러보시죠. 초창기에 몇 번 오가시긴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나는 흔쾌히 승낙하고 복장을 갈아입었다.
직원들이 모두 착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목소리를 바꾸고, 착용자의 인상을 희미하게 하는 가면과 검은 정장.
모두 그림자 길드의 제작 팀이 만든 물건이었다.
“상가는 계속 짓고 있는 건가?”
“지금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각 생산계 길드에서 계속 요청을 해 오고 있습니다.”
밖을 나서니 확실히 초반에 비해 규모가 더 커진 것이 보였다.
길드의 이름이 걸린 간판들은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길게 이어져 있다.
“B랭크 연금술사가 만든 포션들 팝니다!!”
“오, 수수료가 낮아졌네?”
“재정비한다더니 확실히 깔끔하고 좋아졌어. 지점들이 줄어든 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곧 늘린다고 하니 괜찮겠지.”
물품별로 구역이 나뉜 거리는 헌터들로 붐볐다.
경매장으로 들어가는 VIP들도 줄지어 있었다.
대충 봐도 블랙마켓은 성공적이었다.
“분위기가 꽤 괜찮군.”
“만족하시니 다행입니다.”
흐뭇하게 주변을 구경하며 다니고 있을 때였다.
검은 가면을 쓴 직원 하나가 슬며시 다가온다.
“길드장…… 호출……. 찾는다…… 누군가…….”
길드의 헌터인 줄 알았는데, 아까와 같이 온몸을 감싼 스켈레톤이었다.
“……확실히 냄새가 나긴 나는군.”
“하하…… 헌터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클레임이 들어옵니다.”
스켈레톤이 가까이 다가오니 약하긴 하지만 이상한 냄새가 난다.
돌아가면 대량의 탈취제를 구입하라 지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아주 강한 걸로.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스켈레톤에게서 멀어졌다.
“길드원이 찾나 보군요. 이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좀 더 구경하시겠습니까?”
“아니, 이만하면 됐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니 길드원 몇 명이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도윤도 덩달아 긴장한 채 그들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시죠?”
“아, 오셨군요! 길드장님, 한국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서요? 길드의 일인가요?”
“그게…… 당장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길드장님의 조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도윤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칫한다.
‘설마 그 한호의 회장 말인가.’
“할아버지께서요…….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장거리 텔레포트를 준비해 주세요.”
“이미 준비는 마쳤습니다. 기다리신 지 시간이 조금 되었다고 합니다.”
이도윤은 황급하게 마법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 대체 할아버지께서 왜 길드에 찾아오셨는지……. 요새 몸도 불편하신데.”
“몸이 안 좋다고?”
나는 그의 말이 의아했다.
현대 의학에 마법까지 발달한 지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웬만한 질병은 물론 노화로 인한 것들까지 고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마법 물품들이 한두 푼이 아니라지만 한호의 회장 정도 되는 자가 그 정도도 없을 리가 없었다.
“요즘 앓아눕는 때가 많으시다고 하더군요. 전에는 정정하셨는데, 이상한 일이긴 합니다.”
“지병이라도 있나?”
“그럴 리가요. 한두 달 전부터 그러십니다. 의사들도 확인해 봤지만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간다.
아픈 몸을 끌고 길드까지 찾아올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빨리 가 봐야겠습니다. 아, 따라오시겠습니까?”
“어차피 나도 한국에 돌아가야 하긴 하니까.”
“잘됐네요. 마침 할아버지께서 진 님에 대해 궁금해하시던데요. 인사라도 하면 좋겠군요.”
“나를?”
‘전에 듣기로는 헌터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도윤이 각성한 뒤에도 본체만체한다고 했었다.
의아한 마음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도 의문이긴 합니다. 요새 헌터계 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대체 무슨 바람이 드신 건지…….”
일단 한호의 회장은 나 역시 궁금했기에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곧 건물 지하의 텔레포트 마법진이 가동되고, 한국에 있는 그림자 길드의 건물에 도착했다.
이도윤은 길드장실로 향하는 지금도 무언가 골똘히 고민하고 있었다.
“도련님, 오셨군요. 회장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문밖에 있던 자가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맞이한다.
정장을 말쑥이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였다.
대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상.
하지만 나는 그를 보고 잠깐 멈칫하고 말았다.
‘……이거 설마.’
그들은 인상을 구기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긴 했지만 곧 다시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이네요, 비서님.”
제법 친밀한 사이인지 굳어 있던 이도윤의 표정이 살짝 풀어진다.
“이쪽은 그 유명한 용병왕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아, 진 님. 여기는 김형우 비서님입니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의 곁에서 비서로 일하셨죠. 지금은 가족 같은 사이입니다.”
“하하하, 가족 같다니요. 저는 그저 부하 직원일 뿐이지요.”
그는 시원스럽게 웃으며 이도윤에게 눈짓한다.
“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노하시기 전에 들어가 보시지요.”
“아…… 그럼 진 님, 저는 들어가 보겠습니다.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대화가 끝나면 곧 모시겠습니다.”
“그래, 급한 일인 듯하니.”
이도윤은 황급히 길드장실로 들어간다.
나는 천천히 김형우라 불린 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말끔하게 정돈된 외모의 그는 누가 봐도 훌륭한 비서로 보인다.
“저희만 남았군요. 용병왕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나에게 다가온다.
나 역시 입꼬리를 올리며 그를 마주했다.
“그래, 우리만 남았군.”
“이야기라도 천천히 나누…… 컥!!”
나는 그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