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69화
[홍: 이야, 이걸 진짜 며칠 만에 클리어해 버리네. 미국에서 따라붙으려고 난리던데, 이 속도면 넘보지도 못할 테고…… 밤마다 베개에 눈물 자국 좀 나겠네.]
[가을하늘: 그것보다 헌터분들이 전원 무사하게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영원: 참여했던 저희 길드원분들을 대신해서 저도 감사 인사드립니다. 나비 길드장님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하던데요?]
[하얀나무: 하하하…… 저희도 길드장님 귀환하시고 나서 첫 공략이라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영원: 그런데 진 헌터님처럼 스킬도 사용하지 않으셨다던데…… 서채아 헌터님은 원래 마검사 아니셨나요?]
[하얀나무: 그렇긴 합니다만…… 뭐, 사정이 있으시겠죠.]
[혜라: 그래도 진 헌터님이 알려 주신 공략법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설마 했는데 정말로 아스티란 9대 미궁이 또 등장하다니…….]
[가을하늘: 가설이 맞았군요. 다른 층도 미궁이 나올 확률이 높을 듯합니다.]
[아스티란짱짱: 우리 이러다 20층 한 달 만에 공략하는 거 아닌가 몰라.]
[영원: 진 헌터님의 공략법에 SS랭크 서채아 헌터님까지…… 덕분에 다른 나라들보다 편하게 공략하겠군요~^^]
“진짜로 미궁이 나왔나 보네.”
그동안 준비한 보람이 있긴 했다.
12층에 뜬금없는 던전이 나올까 약간의 걱정이 있긴 했지만 덕분에 앞으로의 공략에는 참여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대충 20층까지는 나 없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시간은 벌었군.”
“서채아 헌터가 활약을 했나 봅니다. 협회에서도 나비 길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듯하니, 저희는 그동안 블랙마켓에 집중할 수 있겠군요.”
강준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하다.
앞으로도 국내 헌터계는 <검은 탑>에 시선을 빼앗길 것이다.
타이밍이 제법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협회입니다.”
“협회도 탑 공략에 신경 쓸 테니 어느 정도는 괜찮을 듯한데요, 관심 있어 보이는 게 박신우 지부장이라…….”
“맞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꼬리 잡히는 건 감수해야 할 겁니다.”
‘하필 그 독종인가.’
그놈의 박신우는 대체 일을 언제 하는 건가.
도대체 끼지 않으려는 곳이 없었다.
가뜩이나 바빠 과로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오만 데 신경 쓸 여력이 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뇌물이라도…….”
“박신우는 그런 걸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다. 이미 아레스 길드에서도 샅샅이 뒤져 보았어. 그는 보기 드물게 깨끗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지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뒤가 구리지 않다니.
대한민국 헌터계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런 게 먹힐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적당한 미끼를 보여 주는 게 좋겠군.’
오히려 내가 꺼낼 수 있는 카드가 많아서 탈이다.
그중 제일 적당하고, 나에게는 전혀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을 생각해 보았다.
그 와중에 그 깐깐한 박신우를 속일 수 있다면 더 통쾌하겠고.
여러 방편을 생각하는데, 내 앞 두 명의 분위기는 심각해진다.
“쓸데없이 청렴해서…….”
청렴해서 욕먹는 자는 세상에 박신우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강준하는 미간을 찡그리며 불쾌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는데, 둘의 대화는 점점 재밌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함정을 파 보는 건 어떨까요?”
“일부러 약점을 만든다라. 괜찮을지도…….”
두 길드장의 고민은 이제 박신우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데까지 가 버렸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슬슬 적당히 마무리를 짓기 위해 손을 튕겨 작은 소리를 내었다.
그들의 대화는 바로 중단되고, 나에게 시선이 몰렸다.
“이번만큼은 내가 해결해 주지.”
“예? 진 님께서요?”
“이런 일까지 신경 쓰시게 할 순 없습니다.”
모두 미안한 얼굴로 나를 만류한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봤자 나만큼 괜찮은 해결 방법을 낼 순 없을 터였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어. 마침 그가 관심 있어 할 자를 알고 있으니.”
물론 그자가 실존 인물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내 미끼를 덥썩 물 것이다.
감히 내 일에 관심 가지려는 박신우니 이 정도 취급은 마땅했다.
* * *
변화하는 공간 안.
오랜만에 크레아시론의 오두막에 찾아갔다.
“헉? 주인님? 여긴 어쩐 일로…….”
그는 나를 발견하고 테이블 위를 황급히 치운다.
“……주사위?”
바닥에는 떨어진 주사위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어이가 없어 주사위를 주워들고 그와 번갈아 쳐다보았다.
“하하하……. 별건 아니고 주사위 아티팩트나 제작해 볼까 싶어서…… 크흠.”
“차례…… 주인……. 판…… 엎기…… 안 됨…….”
테이블 주변에 있던 스켈레톤 하나가 그를 재촉한다.
뼈다귀만 남은 손에는 카드 몇 장이 들려 있는 상태.
주종 관계고 나발이고 이번 턴에서 기어코 마무리를 짓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저 멍청한 언데드가!”
“일 없다고 아주 살판났구만.”
애먼 스켈레톤만 쥐 잡듯이 잡아 대는 그를 보고 혀를 찼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구실에는 있어야 할 물건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이거 뭔가 시키기라도 해야겠는데…….’
괜히 배알이 꼴린다.
주인인 나는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데 권속이 놀기만 해서야 쓰겠는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지는지 그가 눈치를 본다.
“저…… 주인님, 시키실 일이라도?”
없어도 어떻게든 만들어 줄 생각이다.
일단 급한 일부터 처리할 요량으로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물건을 꺼내 들었다.
“일단 입어라.”
“로브랑…… 마법사용 아티팩트들이네요. 혹시 저를 위해 준비하신 겁니까?”
크레아시론이 감동한 듯 아이템 무더기를 들고 가만히 있다.
“이미 죽은 놈이 욕심만 많아 가지고……. 일 마치면 돌려받을 거야.”
“그럼 그렇지…….”
그는 작게 궁시렁거린다.
그러면서도 몸은 착실하게 복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이러면 됩니까?”
“괜찮네.”
모든 치장을 마친 크레아시론은 누가 봐도 훌륭한 고위 마법사로 보인다.
낡았지만 고급스러운 팔찌며 목걸이들은 한눈에 봐도 고등급 아티팩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무리로 이 가면.”
블랙마켓의 직원들이라면 흔히 쓰고 있는 검은 가면.
이 연극에 제일 중요한 물건이었다.
아직도 어리둥절한 그를 앉혀 놓고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무려 그 박신우를 속여야 하니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내 계획은 여기까지다. 잘할 수 있겠지?”
내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크레아시론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래? 자신감 생기는 방법을 하나 알고 있긴 한데.”
콰앙-!!
주먹을 휘둘러 옆의 테이블을 가격했다.
테이블이었던 것은 순식간에 작은 조각이 되어 휘날린다.
그에 크레아시론은 크게 움찔했다.
“내가 그 방법을 꺼내게 하진 않았으면 좋겠군.”
“갑자기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그가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목소리에는 비장함마저 서려 있다.
‘준비는 이만하면 된 것 같고…….’
핸드폰을 꺼내 박신우에게 연락을 했다.
역시나 답장은 바로 왔고, 그는 우리의 방문을 흔쾌히 수락했다.
곧 크레아시론과 변화하는 공간을 빠져나와 협회로 향했다.
“주인님……? 정말 괜찮을까요?”
협회 건물에 다가갈수록 점점 불안해지는지, 크레아시론은 온몸을 감싼 로브와 검은 가면을 쓴 채 나를 쳐다보았다.
가면 밑에는 내가 붙여 준 흰색의 긴 수염이 붙어 있는 채였다.
풍성한 수염이 어색한지 그의 손이 자꾸 얼굴 쪽을 향한다.
“넌 그냥 시킨 대로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다 할 테니까.”
“하지만 주인님…….”
“말투도 바꿔. 가능한 고압적이면 더 좋고.”
“제가 감히 어떻게 주인님께…… 후…… 아닙니다.”
“정 뭐하면 아까 말한 그 방법대로 해 줄 수도 있다만.”
“테이블처럼 되고 싶진 않은데요…….”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일러 준 대로 자세를 바로 한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커다란 마석이 박힌 스태프를 든 크레아시론.
누가 봐도 꼬장꼬장한 노년의 대마법사였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착한 협회에서는 박신우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러면서 크레아시론을 아래위로 날카롭게 훑어본다.
“소개시켜 주신다는 분이…….”
“스크롤을 만든 대마법사가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았나?”
“아, 그분이십니까. 영광입니다.”
그는 여전히 경계는 풀지 않았지만 한층 누그러진 게 보인다.
“마침 내 친우도 할 말이 있다기에 데리고 왔지.”
“반갑소. 나는 멀린이라 하오. 본명은 따로 있지만 내 친구들은 그렇게 부르고 있지.”
“예, 멀린 님. 저는 박신우라고 합니다.”
나는 떨떠름한 얼굴의 그를 보며 소파에 걸터앉았다.
생각보다 크레아시론이 연기에 물이 올랐는지 잘해 주고 있기에 걱정은 없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만…… 하실 말씀이라는 게 무엇인지요.”
“내가 하는 사업에 대해 말하려고 찾아왔소. 최근 협회에서 내 일에 파고들려 하던데, 불쾌하기 짝이 없더군.”
“예? 그게 무슨……. 설마, 블랙마켓의 주인이십니까?”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와 크레아시론을 번갈아 본다.
나는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애써 감춘 채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박신우를 향한 사기극은 이제야 막을 올리고 있었다.
* * *
“……그럼 일러 주신 대로 알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멀린 님. 아, 소개해 주신 진 헌터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크흠, 우린 이만 가 보지. 할 일이 많아서.”
“당연히 바쁘시겠죠. 다음 거래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신우는 웃으며 우리를 배웅했다.
나는 협회를 나와 곧바로 변화하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잔뜩 굳어 있던 크레아시론이 그제야 주저앉는다.
“생각보다 잘하던데? 수고했다.”
이번 박신우와의 거래는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우리는 블랙마켓에 대해 더 이상 파고들지 않겠다는 박신우의 확언을,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제공받을 고등급 스크롤 마법을 약속받았다.
더불어 한국에 세워진 블랙마켓 본부의 지원도.
“주인님…… 제가 노는 게 싫으셨나 봅니다.”
그가 원망 어린 말투로 말한다.
그래도 전에 미친 듯이 공장을 돌리던 때에 비하면 한층 여유가 있었을 텐데.
할 말은 많았지만 그의 추측이 사실이긴 했다.
그저 크레아시론의 어깨를 살짝 만져 줄 뿐이었다.
“악!!”
나도 모르게 힘이 실려 버렸나.
크레아시론이 어깨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