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67화
잠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소금 덕분에 완전히 굳어 버린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를 했다.
개운하게 맥주라도 한 캔 할까 싶어 냉장고를 뒤적이며 버릇처럼 1랭크 채널을 열었다.
‘흠? 박신우 지부장?’
[가을하늘: 진 님, 혹시 지금 협회로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부득이하게 1랭크 채널로 연락드립니다.]
[홍: 또 안 받아? 그냥 휴대폰 없애는 게 나을 듯. 요금이 아깝다.]
그제야 휴대폰을 살펴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는 게 보인다.
굳이 부른다고 찾아갈 마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할 일도 없었기에 바로 차 키를 꺼내 들고 협회로 출발했다.
도착한 곳에는 기다렸다는 듯 익숙한 직원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부장님과 협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받아 간 협회장실에는 박신우와 김동식이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오셨습니까.”
이제는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해진 협회장실에서 커피를 얻어 마시고 있자 박신우가 얘기를 꺼냈다.
“모두가 외면하던 미국에 도움을 준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존 협회장이 연신 감사하다 말하더군요. 아, 그리고 게이트에서 큰 수확이 없으셨다 하던데…… 미국 협회 쪽에서 아티팩트 명단을 보내왔습니다.”
김동식은 미소를 지으며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
헌터들이 본다면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 할 만한, 최소 S급 이상의 아티팩트들이 설명과 함께 가득 쓰여 있었다.
“원하시는 물건 세 개를 정하시면 바로 보낸다 하더군요. 그러면서 언제 한 번 한국에 올 테니 꼭 좀 뵙자고 하는데…… 콧대 높은 미국 협회가 그렇게 안달 난 건 처음 봤습니다.”
“다른 나라의 협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들의 나라에서도 S급 게이트가 나타날 확률이 있으니 미리 잘 보이려는 거겠죠.”
옆에 있던 박신우도 한마디 거든다.
어차피 만날 생각도 없기에 그들의 말을 대충 흘려들었다.
‘딱히 필요한 물건은 없군.’
서류를 들고 쭉 훑어보았지만 역시나 나에게 필요할 만큼 좋은 물건은 없었다.
대충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아티팩트에 체크 표시를 하고 다시 서류를 넘겨주었다.
박신우는 건네받은 서류를 내려놓고 잠시 뜸을 들인다.
“드디어 오늘이 물건을 받는 날이군요. 스크롤은 준비되셨습니까? 혹시 시간이 촉박했다면 더 미뤄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한국은 12층 이후로 탑 공략을 멈춘 지도 제법 시간이 지났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미 10층 가까이 공략을 마무리한 상태.
협회에서도 슬슬 탑에 오르고 싶을 것이다.
“물론.”
인벤토리를 열어 수백 개의 스크롤을 쏟아 내었다.
돈으로 환산해도 백억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개중에는 마탑에서도 1년에 한두 개만 풀어내는 고위급 스크롤도 섞여 있었다.
“대체 어떤 대마법사이신지……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가능할지는 솔직히 몰랐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박신우는 직원 몇 명을 불러내 스크롤을 정리하게 했다.
물건들을 빠짐없이 훑어보는 그의 눈에는 감탄이 서려 있다.
‘대단이라…… 능력도 능력이지만 체력이 대단하긴 하지.’
리치가 체력이라는 게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 언데드만의 능력이긴 하다.
‘크레아시론도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며칠 전 보았던 크레아시론의 몰골이 떠올랐다.
아크 리치가 되었어도 초췌하긴 마찬가지였다.
[여기…… 스크롤 382장입니다.]
[……이걸 진짜로 두어 달 만에 만들어 내네. 수고했다.]
[크흑……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금부터는 원하는 연구 마음껏 하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수고했단 말과 함께 어깨를 토닥여 주니 턱뼈를 덜그럭거리며 좋아하던 그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덕분에 이후 있을 <검은 탑>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겠군요. 그동안 참여하지 않았던 나비 길드에서도 힘을 보태기로 했으니 기대가 됩니다.”
“나비 길드라…… 확실히 큰 전력이긴 하겠지.”
“아직은 서채아 헌터가 회복에 열중하셔야겠지만…… 곧 커다란 도움이 될 겁니다. 세계적으로 몇 있지도 않은 SS랭크니까요. 심지어 국내 2위라니…… 실종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흘깃 쳐다본다.
최초 발견자이니만큼 무언가 알겠지, 싶은 얼굴이다.
하지만 나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짐작 가는 게 있긴 하지만 나조차도 정말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블랙마켓이 어쩌니 말을 해도 믿어 줄지도 모르겠다.
“큭…… 진 헌터님?”
박신우가 나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하다.
말없이 있는 김동식의 표정도 잔뜩 굳어 있는 상태였다.
그제야 내가 마력을 끌어 올린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화가 났는지 난폭한 마력을 뿌려 대고 있었다.
“미안하군.”
천천히 마력을 갈무리했다.
그제야 그의 표정이 원상태로 돌아온다.
“……아닙니다. 저희가 진 헌터님을 너무 오래 잡아 두고 있었나 보군요. 바쁘실 텐데, 자리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동식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친절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이 대화를 끝내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나 역시 볼일을 다 마쳤으니 계속 협회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럼 가 보도록 하지.”
“마법 스크롤에 마법 재료까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에 대한 금액은 계좌로 내일까지 입금해 드리겠습니다.”
한두 푼이 아닐 텐데 일시불이라니.
새삼 협회에 대한 영향력이 느껴진다.
‘어차피 다 내 피 같은 세금에서 나온 거겠지만.’
헌터들이 게이트를 공략할 때마다 협회에서 떼어 가는 수수료가 어마어마하다.
온갖 아티팩트에 대한 거래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그들이 그리 불쌍하지만은 않았다.
더 가열차게 일해라, 협회야.
‘수수료를 저렇게 떼어 가니까 블랙마켓 같은 암시장이 활성화되지……. 잠깐…… 수수료?’
그러고 보니 그림자 길드에서 슬슬 우는소리를 해 왔다.
처음에는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게 보였다.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난처한 듯 요즘 사정에 대해 말해 주었다.
길드에 들어간 김지연이 연금술사 팀의 책임자 자리에 올라가면서부터 시작된 자금난.
한호 그룹이 그 정도도 감당 못하느냐 물었더니 난처한 듯 말꼬리를 흐렸었다.
‘그러고 보니 그림자 길드에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었지. 한번 가 봐야겠군.’
잘하면 그들의 고민거리와 블랙마켓에 대한 소소한 복수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만 슬슬 마무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마음먹었다.
“그럼 제가 마중을…….”
박신우가 내 의중을 읽고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조용해야 할 사무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가실 수 없으시다니까요!”
“……왜죠?”
“협회장님과 지부장님은 회의 중이십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이러지 말고 따로 약속을 잡고 돌아가는 게…….”
벌컥-
박신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쩔쩔매는 협회 직원과 두 명의 헌터가 있었다.
“중요한 손님 앞에서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아! 지부장님……. 그게, 설명을 드려도 워낙 막무가내이신지라…….”
한 명의 헌터는 본 적이 없다지만 다른 한 명은 익숙했다.
“아…….”
여전히 툭 치면 쓰러질 듯 하늘하늘한 서채아.
창백한 낯빛을 한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메마른 눈동자는 나를 보자 황홀한 듯 반짝인다.
“죄송합니다. 저는 나비 길드의 부길드장, 이승민입니다. 저희 길드장님이 진 헌터님께서 협회에 오셨다는 걸 아시자마자 꼭 뵈어야겠다 하셔서-”
“서채아예요.”
그녀는 다짜고짜 옆에 있던 남자의 말을 끊고 통성명을 해 온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었지만 긴장한 듯 얼굴마저 붉혀 오는 터라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김진이다.”
대답을 했지만 돌아오는 다음 말은 없었다.
한동안 나와 그녀 사이에서 침묵이 흐른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하겠는지 그녀는 애꿎은 입술만 깨문다.
“채아야, 진 헌터님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려는 거 아니었어?”
그녀는 당황해 재촉하는 이승민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할 말이 없다면 난 돌아가지.”
대체 뭐 하자는 수작인지.
그림자 길드에 가려는 계획을 방해받아 기분이 언짢아진다.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그녀가 내 소매를 붙들어 온다.
“아!”
서채아에게 잡힌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녀는 황급히 소매를 붙잡은 손을 놓는다.
그러면서 손을 쳐다보는 게 본인이 왜 그랬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채아야! 아니, 얘가 대체 왜 이러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원래 이런 행동을 하지도 않는데…….”
“불쾌하군. 이딴 헛짓거리에 어울려 줄 마음은 없는데.”
“죄송…….”
기억을 송두리째 잃었다더니 그 기억에는 예의범절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쳐다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직 제정신이 아닌 사람에게 화를 내 봤자 소용없는 짓이겠지.
“난 바쁜 사람이라. 할 말이 있다면 시간 날 때를 기다려.”
그녀를 뒤로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서채아가 뒤에서 다급하게 소리친다.
“언제……!”
이제야 용건을 말할 마음이 들었나.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언제 바쁘지 않으신데요?”
아까보다 더 큰 목소리이다.
그녀는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이 되어 있었다.
“글쎄, <검은 탑>을 모두 공략하면?”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나를 모두가 경악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이게 웬 미친 소리냐는 표정들이다.
“탑 99층을? 그게 무슨 말이 되는…….”
“그냥 차라리 평생 안 보겠다 말씀하시지…….”
“정말 <검은 탑>을 공략하기만 한다면 제 말을 들어 주실 건가요?”
서채아가 그게 정말이냐는 듯 화색한다.
그 반응에 오히려 의아하기까지 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 정도 절박함이면 빚보증을 서 달라는 일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알았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꼭이에요!”
서서히 멀어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그림자 길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