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64화
요정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가자 도착한 장소는 부유층들이 거주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로고만 봐도 알 듯한 명품 매장이 양 길가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져 있고, 많은 사람이 쇼핑을 위해 들락거린다.
우리가 서 있는 주변에도 온갖 고급 스포츠카들이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여긴 블랙마켓이 있을 곳 같진 않은데…….”
“그건 저도 공감입니다.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블랙마켓이라기보다는 요정을 사 간 헌터가 머무를 만한 곳이군요.”
“쯧, 여긴 꽝인가. 빨리 뒤져 보고 다른 곳으로 가 봐야겠군.”
강준하의 말에 공감하며 기운이 짙게 느껴지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곧 도착한 곳은 거대한 정문과 높은 담이 있는 저택.
요정의 기운은 이 저택의 지하쯤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살짝 멀리 떨어져 구조를 샅샅이 훑어보니 경비로 보이는 헌터 몇이 날카롭게 주변을 주시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게 보인다.
“이걸 쓰시죠.”
그는 인벤토리에서 웬 후드와 마스크 두 개를 꺼냈다.
얼떨결에 받은 후드의 가슴 쪽에는 검을 형상화한 듯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게 뭔데?”
“정보 길드인 나이트 로드의 복장입니다. 이거라면 저희의 소행이라고는 눈치채지 못할 겁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이건 어디서 나서…….”
“정체를 숨기고 행동해야 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일단 그가 준 물건들을 착용했다.
어느새 갈아입은 강준하의 모습을 힐끗 보니 과연 정보 길드답게 수상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얼굴 자체를 가리는 듯한 마스크는 눈만 뚫려 있어 누군가를 특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목소리 변조 마법이 새겨져 있어 행동하기엔 편하실 겁니다.”
복장을 갖춰 입고 강준하와 시선을 교환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와 함께 저택에 침투하였다.
순찰을 하는 헌터들을 뒤로 한 채 몰래 들어간 내부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는 거실을 지나쳐 요정의 마력이 제일 잘 느껴지는 곳을 찾다 보니 도착한 곳은 웬 서재였다.
‘서재에 존재하는 비밀 공간이라.’
지나치게 무난한 발상이긴 하지만 주인 외에는 함부로 드나들기 힘든 장소인 만큼 적절하긴 하다.
강준하는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벽을 만져 보며 어딘가 존재할 스위치를 찾는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기에 나 역시 서둘러 수상해 보이는 장식물들을 건드려 보았다.
딸각-
“찾았습니다.”
강준하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벽을 만지자 작은 비밀 통로가 튀어나왔다.
과연 그곳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듯한 계단이 있었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한참을 걷자 마법사들 특유의 연구 공간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끄윽…….”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리기에 그곳을 쳐다보자 마법사로 보이는 한 헌터가 뒤돌아 있는 게 보인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기척을 숨긴 채 다가갔다.
그는 무언가 실험을 하고 있는 듯 온갖 마석과 약초들을 정신없이 뒤섞고 있었다.
그리고 책상 한가운데는 내가 찾고 있는 요정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르겠군.’
조그마한 요정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온갖 상처로 가득했다.
그때였다.
마법사가 뒤를 돌아보다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누구…… 헉!?”
그는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복장의 우리의 모습에 극도로 경계했다.
붉은 머리카락에 안경을 쓴 그는 왜소한 체구의, 전형적인 마법사상이다.
흐릿한 외모였지만 어디인가 익숙하다.
‘……S급 게이트 공략에 참여했던 미국의 헌터군.’
갑자기 게이트로 등장한 티타니아를 향해 복수를 해야 한다며 아우성치던 헌터 중 제일 심하게 분노에 몸을 떨던 자였다.
“……뭐야, 나이트 로드인가. 의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빨리도 찾아왔군.”
그는 후드 가슴팍에 새겨져 있는 문양을 흘낏 보더니 주변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놀라던 것도 잠시,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심을 찾는 마법사를 보니 정보 길드와 볼일이 있었던 듯하다.
소란을 피운다면 곤란해지는 건 우리였기에 잠자코 그를 지켜보았다.
“몰래 잠입하고 이 장소를 찾아내다니, 과연 나이트 로드답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여긴 내 개인적인 연구 공간이니 다시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는 옆에 놓인 차를 따라 마시며 여유까지 부린다.
그러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를 보며 답답하다는 듯 작게 소리친다.
“나는 바쁘니까 빨리 의뢰한 내용이나 알려 주지 그래? 용병왕은 어떻게 되었나?”
‘……날 말하는 건가?’
말에 잠시 움찔했지만 곧 침착함을 찾고 뚫어져라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나에 대한 건 왜 물어보는지 궁금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지?? 역시 용병왕의 약점은 찾긴 힘든 건가?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하다못해 조그마한 정보라도 들고 오란 말이야!”
나에게 적의가 있는 자였나.
저런 놈쯤이야 한두 명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는 발광하는 그를 보며 들고 있던 검을 검집째 휘둘렀다.
“컥……!”
머리를 맞은 그는 일격에 기절해 버렸다.
천천히 쓰러지는 몸체를 발로 밀어 버리고 책상에서 작은 숨을 내쉬고 있는 요정을 들어 올렸다.
“죽이진 않으십니까?”
“우리 정체를 알아차린 것도 아니고, 상관없다. 괜히 죽여서 랭크 보드에서 이름이 사라진다면 나라 차원에서 조사를 할 텐데 그럼 더 귀찮아져.”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깨어나면 나이트 로드만 곤란해지겠군요.”
“애먼 곳만 들쑤신다면 나야 좋지.”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요정과 함께 잠입했을 때처럼 몰래 저택을 빠져나왔다.
빠르게 머물고 있는 호텔에 도착하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요정을 흠뻑 적실 정도로 최상급 포션을 붓자 몸을 뒤덮고 있던 상처가 빠르게 회복된다.
“으…… 으…….”
무릎에 놓여져 있던 요정이 정신을 차렸는지, 가늘게 눈을 떴다.
“헉…… 여긴 어디……??”
사색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는 요정.
당연히 있어야 할 어두침침한 지하실이 아닌 공간을 발견하고 진정을 찾아간다.
“정신이 들었나 보군.”
“어……? 인간…… 아니, 요정왕……?”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다른 요정들처럼 내게서 요정왕의 기운을 느꼈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자 요정의 큰 눈망울엔 눈물이 맺힌다.
“으아아앙-!! 요정왕님!! 너무 무섭고 아팠어요……!”
한참 동안 요정의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눈물과 콧물로 입고 있던 옷이 축축하게 젖어 든다.
애써 찝찝한 기분을 느끼지 않으려 노력하며 가만히 있자 내 품에 안겨 울던 요정이 천천히 눈물을 그쳤다.
“헉……! 맞다. 혹시 다른 요정 못 보셨나요? 제리라고 하는데, 같이 잡혔지만 다른 곳으로 가 버렸어요!”
“아직이지만 곧 찾아 주마. 짐작 가는 곳은 있으니까.”
“꼭 찾아 주셔야 해요…….”
다시 울먹이려는 요정을 서둘러 다독이고 요정계로 향하는 차원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보이는 익숙한 요정계의 모습에 그녀의 얼굴이 환해진다.
뽈뽈거리며 날아가는 요정을 보며 당황할 티타니아의 모습이 상상 된다.
‘가출 요정이 계속해서 나타나니 어리둥절하겠군.’
피식 웃으며 잠자코 앉아 있던 강준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른 한 요정도 찾으러 바로 가실 예정입니까?”
이틀째 잠을 자지 않은 상태라 그에게 미안했지만 어차피 헌터들은 일반적인 사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강준하도 이 정도는 끄떡없겠지.
“그 전에 여길 정리하고. 위치가 위치인 만큼 미국 땅을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어디길래 그러십니까?”
“……태평양 한가운데. 지도를 봐도 별다른 건 없어서 텔레포트로 이동할 순 없을 것 같아.”
다른 요정의 기운이 잡힌 곳은 망망대해였다.
아마도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무인도일 것이다.
그야말로 블랙마켓과 관련이 없을 수가 없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장소다.
“제게 개인 비행 면허가 있습니다. 마석이 달려 있는 전용기라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가서 하나 바로 수배해 올 테니 준비를 하고 계시죠.”
“그래. 그나저나 방을 비우려면 미국 협회 쪽에 연락을 해 봐야 하나…….”
무작정 떠나려니 호텔을 내어 준 협회 쪽에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존 협회장의 명함을 찾으려 널브러진 짐들을 뒤적거리는 그때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똑똑똑-
“안녕하세요, 진 헌터님. 혹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타이밍 하고는.”
문을 열어 주니 그곳에는 길리안이 서 있었다.
호텔에 머문 뒤로 계속 다른 사람들의 방문은 거절했는지라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진 헌터님, 오늘은 어쩐 일로 열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해야 할 말도 있고. 우선 들어와.”
그가 스위트룸에 딸려 있는 응접실에 들어가며 강준하를 마주치곤 흠칫 놀란다.
얼떨떨하게 서로 인사를 하긴 하지만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그……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강준하 헌터님은…….”
“상관없어. 강준하라면 비밀을 지켜 줄 테니까.”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닌…… 하. 알겠습니다.”
이번 기회 아니면 또다시 문조차 열어 주지 않을 거라는 짐작을 했을까.
잠시 고민하던 그는 내 맞은편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는다.
그래도 손님이라 무언가 주긴 해야 하는데 딱히 줄 건 없기에 생수 한 병을 내주었다.
서울이었다면 아리수를 내주었을 텐데…….
타지에 얼마나 있었다고 마실 수 있는 깨끗한 수돗물이 나오는 내 조국이 그리워진다.
“바쁘실 테니 바로 본론을 얘기하겠습니다. 미국은 당신을 원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헌터인 진 헌터님을요. 그저 말 한마디면 됩니다. 그러면 그 즉시 미국의 귀화를 위한 온갖 절차가 1시간 만에 완료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재물이나 권력을 요청하셔도 모두 듣지도 않고 흔쾌히 응하신다고…….”
“기각.”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어떤 참신한 소리를 할까 싶어 들여보낸 것이었는데, 모두 예상대로.
은근슬쩍 미국의 위대함을 자랑한다거나, 고생하는 한국 헌터들보다는 미국 헌터들이 훨씬 좋은 처우를 받는다는 둥…….
여태껏 존 협회장이 안달복달하며 했던 말들이 있기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요청이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 자세히 설명드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백악관 측에서도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그게 무엇이든지요.”
“관심 없다. 아, 그리고 우린 지금 바로 떠날 거니까 존 협회장에게 안부 전해.”
“네??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입니까?”
이제는 울상이 되어 이것저것 조건을 제시하는 길리안을 억지로 내쫓았다.
그래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차마 문을 두드리진 못하고 한동안 서성이다 돌아갔다.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권력이니 돈이니 모두 넘칠 만큼 가져 봤으니까. 무엇을 준다 해도 그닥 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도 제법 살기 좋고 말이야.”
차라리 다른 조건들을 말했으면 모를까, 제일 원치 않는 것들을 나열하다니.
나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듯했다.
“그나저나 들을 때 미동도 없네. 조금 놀랄 줄 알았는데. 역시 너는 내가 수락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던 건가.”
눈치 빠른 강준하라면 당연히 이 정도는 눈치챘으려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귀화 의지가 없다는 것도 모두 알아차리고 평온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뇨, 예상 못했습니다.”
“……뭐?”
“미국으로 귀화하시면 저도 따라 귀화하려고 했습니다.”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