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63화
“아버지라고??”
“수인족의 왕!?”
상상도 못한 정체에 모두가 놀라고 있건 말건, 수인족 부자 상봉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들아, 몸은 좀 어떠하느냐? 이 상처는 다 뭐고! 인간 놈들이 이런 것이냐? 내 이놈들을 모두……!”
“조금 고생하긴 했으나 괜찮습니다. 복수도 했고요.”
“그깟 몇 놈 쳐 죽인 것으로는 내 성이 차지 않는다. 이곳의 인간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다.”
수왕은 따스한 눈빛으로 아들을 살피던 것도 잠시, 살기를 풍기며 주변을 쳐다본다.
그 시선이 닿는 끝에는 나와 강준하가 있었다.
명백한 적의.
“어디다 대고 감히 그런 눈빛을…….”
불쾌감을 온몸으로 표출하며 나 역시 마력을 끌어 올렸다.
상대가 수인족의 왕이건 신이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블랙마켓의 직원들이 더 몰려올까 잠자코 봐주고 있었지만 시건방진 저 눈을 도저히 봐주기가 힘들었다.
‘오늘 여기에 뼈를 묻어 주지.’
내 기운이 심상치 않다 여겼는지 수왕이 선공을 날린다.
챙-!!
“진 님!!”
강준하는 그의 공격을 보지 못했는지 공격을 막아 낸 뒤에야 뒤늦게 무기를 들어 올린다.
순식간에 2:1의 상황이 되었지만 그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호승심을 불태우려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끄떡도 없다 이건가.”
어느새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길게 뻗어져 있다.
‘저걸로 공격한 건가.’
생각보다 강한 힘이다.
무기를 들고 있는 손이 아직도 저릿했다.
힐끔 바스타드 소드를 보니 고작 일격에 금이 가려 한다.
크게 좋은 무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손톱 따위에 상할 정도로 약한 무기는 아닐 터.
‘과연 한 차원계의 왕이라 할 만하군.’
이미 타락으로 어느 정도의 마력을 잃었던 티타니아와는 다른, 흉폭한 힘.
이 정도면 마계에서의 마왕과 비교할 만하다.
또다시 이어질 공격에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 옆에서 비명 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아버지! 저분은 저를 구해 준 인간입니다!”
“뭐? 인간 따위가 널 구해 줬다고?”
아들과 나를 번갈아 보는 수왕은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들은 약삭빠른 족속들이라, 구해 주는 척 너를 속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저를 납치한 자들이 저분도 공격했습니다. 서로 적인 듯했습니다.”
그는 아들의 말에도 여전히 의심한다.
허나 믿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는 마력을 갈무리한 채 자세를 바로잡는다.
이 상황 자체에 넌덜머리가 난 듯 빠르게 정리한 후 어서 돌아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인간이여, 오해해서 미안하군. 우선 내 아들을 구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겠다. 그리고 우리 종족들도.”
고개를 까닥이며 가볍게 인사를 하는 수왕.
기본적으로 인간을 무시하는 고고한 종족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나도 이종족 노예는 역겨운지라.”
“인간 중에서도 이렇게 명예로운 자가 있었다니, 놀랍군.”
그냥 분탕질을 치려고 한 것이지만.
하지만 결과적으론 내가 그들을 구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감사 인사를 거절하진 않았다.
지금은 그냥 빨리 가출한 본인의 아들과 수인 종족들을 데리고 사라져 줬으면 좋겠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미 시끄러운 일을 많이 만들어 우선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으므로.
“너를 우리 종족의 은인으로 삼겠다. 나는 모든 수인족의 사자왕, 아슬란.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는 주먹을 쥔 채 가슴께에 얹더니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주변에 있는 수인족들도 모두 왕을 따라 같은 인사를 한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고 사자왕은 고개를 들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종족 전체가 은혜를 입었을 때는 왕의 물건을 선물하는 관습이 있다.”
그는 팔에 걸려 있던 금빛 팔찌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무런 장식이 없는 심플한 디자인이지만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이었다.
“대대로 수인족의 왕에게 내려오는 팔찌이다. 이걸 본다면 혹시나 지구에서 마주칠 수인족들도 그대를 존중할 것이다.”
“굳이 만나고 싶진 않지만, 받아는 주지.”
“흠……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더러운 인간계의 공기를 더 이상 마시고 싶진 않군. 모두 떠날 준비를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수왕이 차원의 문을 열 준비를 했다.
본신의 능력을 백 퍼센트 발휘할 수 없는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챙기며 수왕의 옆에 옹기종기 모이고 있을 때였다.
“저…… 은인이시여.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수인족의 왕자 파렌. 진 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슬쩍 다가온 가출 소년이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마음대로.”
“진 님, 저희 아버지만큼 강한 자는 처음 봤습니다! 특히나 인간이 이렇게까지 강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인간만 아니셨으면 저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을 정도입니다! 혹시 수인계에 닿게 되면 저를 꼭 찾아 주세요!”
소년은 여태껏 잡았던 무게는 모조리 집어 던진 채 내 옆에서 쫑알쫑알 떠들었다.
대충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 대단하다 정도의 말들이었다.
준비를 모두 마친 수왕이 데려갈 때까지 쉴 새 없이 나를 향해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다음에 뵐 수 있는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이 정도 말 많은 상대는 오랜만이라 말없이 듣고만 있는데도 지쳐 온다.
끝까지 가려고 하지 않아 결국 목덜미를 잡힌 채 차원의 문을 넘는 소년을 보자 박민호가 생각났다.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지에는 움푹 파인 상처가 가득하다.
‘난리를 쳐 놨긴 했네.’
또 다른 적들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기에 자리를 피하고자 남아 있던 이종족들과 함께 인벤토리에 있던 텔레포트 스크롤 찢었다.
이윽고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고, 모두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 정도까지 했으면 돌아가는 건 다들 알아서 할 수 있겠지.”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하나둘 고마움을 표현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자신의 차원계의 문이 열린 곳으로 이동하려는 것이리라.
남은 것은 내 주머니에 있던 요정 둘.
“너희도 이만 나와.”
“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즐거웠지만요.”
“맞아, 맞아!! 스크롤을 찢으면 퓽! 하고 마법이 나가고! 어서 돌아가서 모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쪼르르 요정들이 날아오르고, 나와 강준하의 머리 위를 맴돈다.
재잘거리며 내 어깨에 올라탔다가, 머리를 헤집는 등 정신이 없었다.
“그만하고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요정들.”
“좀 더 있으면 안 돼요, 요정왕님?”
재미있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요정족답게 눈을 반짝이며 물어본다.
하지만 이 수다 요정들을 데리고 다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티타니아에게 안부 전해 줘. <요정계의 문>.”
[<요정계의 문>[L]: 요정왕의 권한으로 요정계로 향하는 차원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상당한 마력이 빠져나가고, 눈앞에는 차원계의 문이 생겼다.
일렁이는 차원문 안에는 회복해 가는 요정계의 풍경이 비친다.
“지금 돌아가기 싫…… 꺅!”
버팅기는 요정들을 양손에 쥐고 문 안으로 던져 넣었다.
이제 좀 조용해졌네.
숨을 돌리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웠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임을 알려 주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간만에 잠깐 유희나 즐길까 해서 왔는데, 밤을 새워 버렸군.”
“전부터 수상한 집단이라고 짐작하곤 있었지만…… 그보다 숨기고 있는 게 더 많을 듯합니다.”
“그래, 이종족 경매도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지.”
이제야 요정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팔찌 같은 터무니없는 물건이 이해가 간다.
경매로 쉽게 요정을 구할 수 있다면야, 그런 걸 만들어 낼 만한 발상도 할 수 있겠지.
물론 이종족 경매장이 이곳 미국에만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분명 여기 있던 경매장 말고도 다른 이종족 노예들이 더 존재할 것이다.
“블랙마켓을 파헤칠 생각이십니까?”
고민하고 있던 생각을 정확히 읽은 강준하가 물어 온다.
물론 이종족 노예라는 것만 해도 난동 부릴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도, 마지막에 등장했던 용아병의 존재가 더욱 거슬린다.
“용아병이라…… 대체 그놈들이 뭘 그렇게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야겠어.”
“아는 정보 길드가 있긴 하지만 최근에 이상하게 연락이 되지 않는지라…… 자체적으로 찾으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겁니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건 나도 공감하는 바였다.
여태껏 아무도 밝혀내지 못한 블랙마켓의 정체이니까.
그래도 <검은 탑>은 다른 헌터들에게 공략을 맡길 예정이었으니 파헤칠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남은 건 시간 싸움일 뿐.
그동안 나는 블랙마켓 쪽에 주력하면 된다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다른 이종족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요정들은 빨리 요정계로 돌려보내 줘야 할 텐데……. 한두 마리도 아닐 테고, 골치 아프게 됐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며 블랙마켓을 털기에는 아직도 갇혀 있을 요정들이 신경 쓰인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요정은 다른 머리카락 팔찌를 위해 머리털을 쥐어뜯기고 있을 것이다.
“오늘 소란으로 당분간 이종족 경매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갇혀 있는 감옥을 쉽게 찾을 순 없을 텐데요.”
“그래, 요정들이 위치 추적기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 잠깐.”
강준하가 말을 하다 말고 멈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빠져 버렸다.
‘게이트 안에서 레일라를 인벤토리에서 꺼냈을 때 티타니아가 그걸 바로 감지했었지.’
심지어 시오스와 요정계라는 차원의 경계마저 넘었다.
혹시 요정왕이라면 요정의 위치 정도는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나는 얼른 눈을 감았다.
주변 시야가 차단되고, 귀에는 간간이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집중력을 끌어 올렸다.
이윽고 모든 오감이 차단되고, 세계에 흐르는 마력의 기운이 더욱 섬세하게 느껴진다.
‘다른 건 필요 없다. 오직 요정의 기운만.’
티타니아를 떠올리자 꽃내음과 풀숲의 향기가 맡아지는 듯하다.
최대한 그녀와 비슷한 마력의 기운을 느끼려 노력했다.
‘내 생각이 맞았군.’
지구에 있는 수백에 가까운 요정의 기운이 느껴진다.
본능적으로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마저 알 수 있었다.
“……찾았다.”
무력감, 공포, 슬픔.
그런 감정을 지니고 있는 요정은 전 세계에 딱 둘이 있었다.
그나마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요정을 발견하셨단 말입니까?”
“그래, 둘이다. 그것도 하나는 가까운 곳에 있다.”
나는 먼 곳을 응시하고 곧바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