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61화
‘이걸 그냥 다짜고짜 때려 부숴? 하지만…….’
강준하는 여전히 나를 걱정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무작정 행동하기엔 걸리는 점이 여러 가지였다.
특히 이 정도 규모의 경매장이라면 그만한 방비도 철저할 터.
“저는 괜찮으니 행동하고 싶으신 대로 하십시오.”
염려하는 기색이 느껴졌는지 강준하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그로 인해 블랙마켓을 적으로 돌리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같이 지낸 세월만큼 나를 잘 알기에, 내가 이곳을 부수고 나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물론 아스티란에 있었을 때는 최강이라 불리는 내 힘만을 믿고 날뛰었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잘 아는 전쟁터가 아니다.
단편적인 정보도 파악할 수 없는 적들의 소굴에서 무작정 행동하기엔 걸리는 것도 여러 가지이다.
특히나 혼자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선.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이미 한번 나의 잘못된 판단으로 죽음을 겪었던 강준하다.
뼈아픈 실책을 겪었던지라 다시는 그런 식의 빌어먹을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젠장.”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시선을 분산시켜 줄 무언가가.
주먹을 꾹 쥔 채 경매장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이번 요정족은 7번 손님에게 낙찰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면 이종족들을 구할 수 있다더니…… 시오스에 있었을 때 당했던 복수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겠군.”
낙찰받은 자는 시오스 차원에서 요정족에게 죽었던 귀환자였는지 경매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가는 요정족을 보는 눈빛이 활활 타고 있었다.
경매에서 실패한 다른 헌터는 그자를 보며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혹시 이종족이 제압에서 풀리기라도 하면 역으로 목숨을 잃게 될 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 복수에 눈이 멀어 버린 모습이었다.
“잠깐, 제압에서 풀린다…… 라.”
“다음 경매는 사자 수인족입니다. 수인족에서도 몇 없다는 사자족! 무려 수인족의 왕과 같은 종입니다! 가격은 50억부터 시작합니다!”
“무언가 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강준하, 여기에 몇 명이나 되는 이종족이 잡혀 있을 것 같나?”
“글쎄요. 1부와 2부를 나눠 진행하는 것 같으니 열 명 정도에서 끝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경매에 올라오지 않는 이종족도 있을 것 같고.”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기감을 집중해 보았다.
온갖 마법 결계를 휘감아 놓았는지 여러 마력이 느껴지지만 곧 원하는 마력을 찾아내었다.
하나하나가 강하지만 인간들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수십은 지하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모두 인간들을 찢어 죽이고 싶어 하겠지.”
“그건 굳이 노예로 팔려 온 것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른 차원계의 종족들은 모두 인간을 증오…… 설마…….”
강준하가 경악에 찬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단순히 이곳에서 행패만 부릴 줄 알았나 보다.
물론 그것이 내가 항상 하던 방식이긴 했지만 조금 달라질 필요도 있겠지.
“하지만 몰래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인데요. 이곳 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특히 저희 둘 다 암살계이기보다는 근접형 헌터인지라…….”
“누가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간대?”
아까 낙찰받았던 폭탄을 장난스레 던졌다 놨다 하며 슬쩍 웃어 보였다.
[<폭발구>[S급]: 약 500미터 반경을 휩쓸어 버릴 수 있는 폭탄이다. 드워프가 제작하고 마법사가 마법을 불어넣은 합작품. 마력을 불어넣으면 5초 뒤 터진다. 사용자의 마력량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강한 헌터들이 많을 테니 모두 죽진 않을 겁니다. 약간의 소동은 일어나겠지만요.”
“그거면 충분해.”
[푸른 수정의 보호 반지[SSS]: 고대 전설적인 마법사가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제작한 반지입니다. 9서클 배리어 마법이 새겨져 있습니다.
배리어 발동: 1/3회 가능. +지력 150, +행운 99, +마력 10% 증가.]
인벤토리에서 적절한 물건을 찾아내 손가락에 끼웠다.
배리어 스킬이 1회만 남아 있었지만 S급 아티팩트의 폭발쯤이야 한 번으로도 간단히 막아 줄 것이다.
강준하를 쳐다보자 준비가 되었다는 듯 무기를 꺼내 쥐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 멋진 파티에 폭죽이 빠져서는 안 되겠지.”
폭죽이 아니라 폭탄이지만.
그런 사소한 건쯤은 신경 쓰지 않고 들고 있던 폭발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5…….
마력을 모두 흡수한 폭발구가 당장이라도 터질 듯 푸른빛을 내뿜으며 진동했다.
4…….
사자 수인족마저 낙찰이 끝나 새로운 이종족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대충 무대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좌석의 중간쯤을 조준했다.
3…… 2…….
“<배리어>.”
1…….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크억……!!”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마력 충전량이 많았는지 생각보다 폭발의 규모가 컸다.
그래도 어느 정도 보호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지 건물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폭탄이 터진 곳이 뿌옇게 먼지로 휩싸였다.
“지금!”
강준하와 눈빛을 교환한 후 앞장서서 1층 홀로 뛰어내렸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로 아비규환이 된 그곳을 지나 무대 쪽으로 다가가니 이종족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던 문이 보인다.
쾅-!!
재빨리 발로 차 단단해 보이는 강철문을 부숴 버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들리는 비명 소리들을 뒤로 한 채 지하로 내려가자 기감에 잡혔던 이종족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보인다.
“당신들 누구야!!”
“이곳은 들어오면 안 되는…… 젠장, 적이다!!”
역시나 감옥에는 지키고 있던 많은 직원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접근해 온다.
“크악!!”
“본부…… 여기는, 지하 감, 큭…….”
감히 블랙마켓의 중심부를 공격해 오려는 헌터들은 없을 거라 생각했을까.
생각보다 그들은 형편없는 솜씨였다. 이 정도면 A급은 될까.
말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빠르게 정리하고 나니 바닥에는 열 몇 명의, 검은 가면을 쓴 직원들이 기절해 누워 있었다.
“곧 들이닥칠 테니 서둘러.”
인벤토리를 열어 쌓여 있던 마법 무효화 스크롤을 한 뭉텅이를 꺼내 강준하에게 던졌다.
최대한 고등급의 스크롤을 줬으니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자, 이제 얼마나 많이 잡아 왔는지 구경할 타이밍인가.”
강준하가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가 제일 가까이에 있던 감옥문을 부쉈다.
그곳에는 방금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던 사자 수인족이 있었다.
“누구…… 인간? 또 무슨 일을 하려고 찾아온 거냐!”
겉모습은 꽤 앳되어 소년으로 보였다.
하지만 인간과 다르게 밀빛의 머리 위에는 사자 특유의 귀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봉인 술식이 새겨진 목걸이를 목에 차고 있었지만 기운은 없어 보일지언정 전혀 기죽어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날 수치스럽게 만들겠다면 차라리 죽여라!!”
긍지 높은 수인족답게 패도적인 기색을 숨기지 않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했다.
말없이 다가가자 잔뜩 약 오른 고양이마냥 귓털을 삐죽이며 경계를 숨기지 않는다.
“캬악-!! 내 몸에 손대지 마!”
강준하라면 마법을 해체해야 봉인이 풀리겠지만 이 정도라면 나에겐 문제없겠지.
대충 6서클 정도의 봉인 마법으로 보이기에 쉬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바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그의 목에 겨누었다.
“그래, 차라리 죽……!!”
촤악-!! 철컹!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휘두르자 두꺼운 단면이 깔끔하게 잘려 나간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목걸이를 부숴 버릴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목에는 약간의 생채기가 생겼다.
“……넌 이곳의 악한 인간들과는 다른 건가.”
꽤 상처가 깊게 난 것 같은데 아프지도 않은지 피가 흐르는 목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말한다.
어리둥절하게 올려다보는 모습이 제법 순진해 보여 그 나이대의 소년 같아 보였다.
손도 못 대게 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허술해 보이기까지 해 피식 웃음이 난다.
“인간이 다 똑같은 인간이지. 다름을 굳이 찾진 마라.”
귀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호감을 숨기지 못하는 그가 제법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복실복실한 머리에 손이 갔다.
움찔거리긴 했지만 내가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은지 피하지 않는다.
손을 얹어 잠깐 토닥여 주고 다른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잠깐……! 어딜 가! 이 나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야?”
“딱히 너만 구출하려는 건 아닌데. 어려 보이는 거 보니 가출이라도 한 모양인데, 어서 수인계로 돌아가.”
옆 감옥문을 부수고 있는데 나를 쫓아와 쫑알거리기에 귀찮아 대충 대답해 줬다.
이곳에서는 무언가 방해하고 있는 결계가 있는지 요정계의 차원문도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저 소년 정도면 방해하는 자들을 충분히 제거하고 블랙마켓을 빠져나갈 수 있겠지.
중간에 잡힌다 해도 내 알 바는 아니었다.
원래 내 목적은 경매장을 망하게 하는 거지, 이종족의 구출은 아니었으니까.
“인간……? 아니, 설마 이 기운은 요정왕? ……어떻게?”
“티타니아 님이 아니신데……?”
“요정족인가. 너희는 내가 직접 데려다줄 테니까 따라와.”
“정말 요정왕이라고요? 꺄악!”
다음 감옥문을 열자 은은한 꽃향기가 난다.
그곳엔 꽃의 요정으로 보이는 조그마한 요정 둘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둘 다 덥썩 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숨이 차는지 주머니 위로 머리만 빼꼼 내놓은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본다.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무시하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한두 번 하니 이 짓도 익숙해져서 이제 감옥문을 부수고 봉인구를 해체하는 데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일단 이 정도인가.”
마무리가 된 듯해 잠시 쉬며 강준하가 있는 방향을 슬쩍 보니 그 역시도 끝난 듯했다.
“진 님, 모두 마치고 왔습니다.”
소란이 일어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기에 다른 직원들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탈출하려는 이종족들의 힘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굳이 우리가 날뛰지 않아도 되겠네.”
나는 난장판이 된 이곳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이미 인간들에 대한 증오로 눈이 멀어 버린 수십 명의 이종족은 끊임없이 지상으로 올라가며 전투를 벌이고 있는 듯했다.
계단 쪽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그럼 이대로 빠져나가시겠습니까? 생각보다 이종족들이 많아 소란이 커졌습니다. 몸을 숨기는 것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냥 나간다고?”
그럴 리가 있나.
지금은 애피타이저 같은 거지.
아직 메인 메뉴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끝낼 수가 있나.
“인벤토리.”
나는 전쟁터가 아닌 이상 굳이 쓸 곳이 없어 처박아 뒀던 각종 파괴 마법이 새겨진 스크롤들을 꺼냈다.
스크롤 찢을 시간조차 없는 전투라면 모를까, 이미 우리에겐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자들이 많은 곳엔 이만한 것이 없겠지.
변화의 미궁 때처럼 검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혹시나 추적당할 때 빌미를 제공할까 우려되었다.
‘그만한 마력을 담아 공격할 수 있는 헌터는 소수일 테니까.’
모르긴 몰라도 전 세계에서 열 명 내외이지 않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정체를 들키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양을 가지고 계시다니.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파괴 마법 스크롤의 절반은 될 겁니다. 특히나 이런 고등급은 마탑에서도 쉽사리 거래하지 않는 품목입니다.”
강준하에게도 아까처럼 스크롤 더미를 쥐여 주자 그가 살짝 질렸다는 듯 말한다.
비싼 소모품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크레아시론이 있기에 언제든지 리필이 가능하기에 아깝지 않았다.
“인벤토리를 그대로 가지고 올 수 있는 특혜까지 얻었는데, 이 정도는 기본이지.”
온몸을 가릴 수 있는 검은 로브를 걸치고 그에게도 던져 주었다.
왕이 된 후로는 항상 번쩍거리는 갑옷 따위나 입고 다니다 로브로 정체를 감추려니 오랜만에 용병대 때의 임무로 돌아간 듯해 감회가 새로웠다.
“하나씩 던지면서 가 보자고.”
“네, 진 님. 그곳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쓸데없이 비장한 강준하와 함께 텅 비어 버린 지하 감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