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6화
“……씨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시스템창에 삿대질하며 쌍욕을 퍼붓자 티타니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대답을 요구하는 표정으로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러든 말든 분노가 치밀어 올라 끊임없이 시스템창에 욕을 지껄였다.
“왜 그러시는 건가요?”
“야, 이 미친 ×끼!! 진짜 시스템, 이 개자식아!! 좋게좋게 나가는 법이 없냐고!!”
[오류! 요정족이 아닌 자, 인간족이 요정왕을 계승받았습니다. 요정족이 아니므로 <타락>을 취소합니다.]
‘……뭐? 취소?’
[요정수와의 동기화 완료! 해당 요정왕의 <타락>이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요정수 역시 <타락> 상태에서 점차 회복합니다.]
[요정수 회복 남은 시간: 270일 16시간 57분 남음…….]
모든 시스템 메시지가 끝나고 요정수가 타락 상태에서 회복한다는 말과 함께 방금까지 내 몸에 흡수되었던 마력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하늘로 높게 솟았다.
그리고 끝없이 뻗어 가는 그 마력은 초록색에서 푸른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빛나더니 반짝이는 가루가 되어 요정계 전체를 뒤덮을 듯 넓게 퍼져 나간다.
이윽고 무지갯빛으로 마력이 일렁이고, 어두웠던 회색빛의 요정계가 점차 맑은 하늘로 변해 가며 잘게 부수어진 마력이 닿는 곳곳이 아름다운 자연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아…… 요정계가…….”
그걸 보는 티타니아는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 닦을 생각조차 못하고 떨리는 손을 아래로 떨군다.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빠르게 피어나는 잔디와 이름 모를 하얀 꽃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마치 조금만 더 힘을 주면 부서져 버릴 것마냥 섬세한 손길이었다.
젖어 있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그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는 요정계의 하늘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 * *
“이것도 좀 드셔 보시지요. 저희 요정계에서는 꿀을 이용한 음식이 아주 훌륭해요. 다른 차원의 종족들에게도 유명하답니다.”
티타니아가 꿀이 잔뜩 들어간 달달한 음식들을 계속해서 권유했다.
부모를 죽여 버린 원수를 대하듯 할 때는 언제고.
앞에 놓인 꿀 덩어리들보다 더 달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요정계의 타락을 늦추다 못해 복구시키자 그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극진히 대하고 있었다.
“음식에 손을 전혀 대지 않으시는데…… 배부르신가요? 그럼 산책이라도 하실까요? 제가 좋은 곳들을 잘 알고 있…….”
“그만 좀 하지. 아까부터 시오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몇 번은 말했던 것 같은데.”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지 않는 구 요정 여왕, 티타니아가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온갖 권유를 차갑게 개무시하며 이제 볼일은 끝났으니 시오스로 돌려보내 달라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내 의견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녀는 본인이 하고 싶은 할 말만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있어 주시면 안 되는 것인가요? 왕께서도 요정계 풍경이 퍽 마음에 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요정계가 마치 흑백의 그림에서 다양한 색채를 가진 수채화가 되어 가는 장면은 내가 봐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장면이었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지금의 풍경 역시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역시 나는 감정이라고는 마지막 한 톨까지 고물상에 팔아먹었나 보다.
휴가 온 것마냥 풍경을 구경할 때는 언제고 이내 지겨워지고 말았다.
“이런 곳은 할 일 없는 노후에 탑골 공원 대신에 머무르고 싶은 곳이지 할 일이 태산인 지금은 아니야. 심지어 지금 게이트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하하, 더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남은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건 저도 잘 압니다. 그리고 탑에 오르신다고 하셨으니…… 가까운 시간 내에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시 보게 된다고?”
대체 탑에 오르는 것과 요정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새롭게 들어온 정보에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되물었다.
하지만 내 말에 꼬박꼬박 대답해 주던 그녀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이만 잠시간 이별의 시간이군요. 아, 그러고 보니 시오스로 돌려 보내드리면 바로 다시 지구로 돌아가시나요?”
“지구에 게이트가 열려 버려서 말이야. 나가려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해야겠지…….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타락한 요정족이 나타날 수도 있고.”
“확실히, 지금의 시오스에서는 회복해 가는 요정계의 힘이 제대로 닿지 않아 아직 요정들이 타락해 있겠군요. 그들을 처치하실 건가요?”
“나도 요정왕이 된 이상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말로 하기엔 타락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데.”
내 말이 끝나자 티타니아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왕께서 약간의 도움을 주시긴 해야겠지만.”
“약간의 도움이라면 얼마든지.”
“제가 이걸 시도해 보는 건 처음이긴 한데…….”
그녀는 갑자기 두 눈을 감고 집중한다.
온 힘을 다 쏟는지 강대한 마나가 한곳에 뭉쳐졌다.
눈앞에 작고 둥근 마력 덩어리가 둥실 떠다닌다.
“후우…….”
아까보다 더 낯빛이 좋지 않아진 그녀가 비틀거린다.
가뜩이나 가녀린 몸이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하다.
“……괜찮은 건가?”
“네네……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보통은 이렇게까지 인위적으로 하진 않지만.”
“다시 태어난다니?”
“마족들이 소멸에 가까운 치명상을 입을 경우 마계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저희는 요정수의 열매로 돌아오게 된답니다.”
그녀는 웃으며 빛이 사라진 물체를 들어 올렸다.
푸른색의 열매는 그녀의 눈동자와 닮아 있었다.
“어차피 이 몸은 타락이 진행된 상태.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잔디를 조심스럽게 파헤친 티타니아는 그 열매를 땅에 묻었다.
준비가 다 되었는지 티타니아는 바로 차원 이동의 텔레포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마법이 완료되자 그녀의 마력이 내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을 느껴진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점이 보였다.
텔레포트의 마력이 나만 감싸는 것이 아니라, 티타니아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잠깐, 이동하는 건 나만 가는 것이 아니었……!?”
“<텔레포트>!!”
내 말이 끝나기 전에 그녀는 차원 이동 텔레포트의 주문을 완성했다.
눈앞의 풍경이 급작스럽게 뒤바뀌었다.
저 멀리서도 보이던 커다란 요정수는 온데간데없었고, 방금까지 내가 있던 공터가 보였다.
……그리고, 황당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여러 헌터도.
“……진 님!?”
“뭐야, 갑자기 끌려갔다더니 돌아오긴 했네? 잠깐, 근데 저 뒤에 심상치 않은 기운의 여자는 누구…….”
[요정족 티타니아가 시오스에 도착합니다.]
“……인지는 시스템이 설명해 주네?”
“[티타니아? 저 미친×이 여기에 왔다고!? 마왕님?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를 잘 아는 아렐리아가 차마 나에게 다가오진 못하고 저 멀리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돌아온 것에 어리둥절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 귀환한 것에 대해 헌터들이 안도하며 날 반가워하던 것도 잠시였다.
요정 티타니아의 등장이라는 시스템 메시지는 그야말로 좌중을 경악에 몰아넣을 만했다.
[강대한 힘을 가진 적의 등장으로 기존 게이트의 등급이 변화합니다.]
[S급 게이트 → SS급 게이트로 난이도 상승.]
시스템의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티타니아에게 보스 몬스터 특유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녀도 그걸 느꼈는지 미소를 띤다.
“티타니아, 어떻게 할 셈이지?”
“걱정 마세요. 다 예상한 바이니.”
생글생글 웃고 있는 티타니아와 다르게 헌터들은 혼비백산한 채 주춤거린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각자의 무기를 쥔 그들은 언제든지 전투를 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준비는 준비일 뿐, 몇몇은 손이 덜덜 떨려 도저히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듯 보인다.
“젠장!! 난이도 상승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SS급 게이트라고?? 이게 말이 됩니까!?”
“티타니아라면 시오스를 멸망시켰던 요정 여왕 맞죠……?”
가뜩이나 전 세계 헌터들에게 SOS를 쳐야 할 만큼 벅차하던 S급 게이트였는데, 듣도 보도 못한 SS급 게이트의 등장에 모두 당황해 소리친다.
그 와중에 시오스에서 귀환한 미국의 헌터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였다.
그들은 공포와 복수심으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
당장이라도 전투가 벌어질 듯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진다.
헌터들은 모두 긴장하며 우리를 주시한다.
하지만 티타니아는 여전히 웃으며 여유를 부릴 뿐이었다.
“애써 힘들이지 않아도 될 터인데.”
그녀는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인다.
그때 무언가 익숙한 마력이 내 검에 휘감긴다.
검은 슬며시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쥐고 있는 손에 본능적으로 힘을 주려 했지만 티타니아는 윙크하며 고개를 작게 흔든다.
“괜찮아요.”
이것도 그녀가 생각한 계획 중 일부겠지.
가만히 티타니아가 하려는 일을 지켜보았다.
검이 어느 정도 직각으로 세워지자 티타니아는 대뜸 몸을 가져다 대었다.
“큭……!!”
내가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도 직전에 티타니아의 몸은 꿰뚫려 피를 쏟아 낸다.
손에는 뜨끈한 액체가 느껴졌다.
“……미친.”
어이가 없어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쩐지 다시 태어나니 뭐니 하더니만 자살을 택할 계획이었나.
“[아니, 저 여자가 미쳤나??]”
오직 아렐리아만이 눈치챘는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지켜보고 있었다.
“이러면, 보스 몬스터를 처치한 셈이겠죠? 허억…….”
정확히 급소를 관통했는지 티타니아는 숨을 헐떡인다.
“헉!? 용병왕이 티타니아를 단숨에 처치했어!!”
처치가 아니라 사실상 그녀의 자살이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헌터들은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을 오해하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요정 살해자가 되어 버렸다.
“……그냥 말로 하지 그랬나.”
계획을 미리 말해 줬다면 원하는 대로 해 줬을 텐데.
그녀는 내 질문에 멋쩍게 웃어 보인다.
“혹시 요정왕으로 요정을 죽이게 되면 시스템의 제재가 가해질까 싶어서요…… 쿨럭…….”
슬슬 그녀의 호흡이 작아진다.
눈에는 작별이 아쉬워 죽겠다는 듯이 미련이 뚝뚝 흘러넘친다.
“다시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요정왕님. 다음에 또 오셨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으실 거죠?”
“잘 아는군. 하지만 내가 없다고 놀고 있지 말고 나를 대신해서 요정계를 잘 다스리고 있도록. 나중에 검사할 거니까.”
“하하…… 여부가 있겠어요?”
그녀는 죽어 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래도 고통은 느낄 터인데, 대단한 의지다 싶었다.
혀를 차고 헌터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는데, 뺨에 낯선 감촉이 느껴졌다.
쪽-
“……?”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의 왕이시여. 그대 앞에 축복이 가득하길…….”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뺨에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싱긋 웃은 그녀가 방금까지 있었던 것은 거짓이라는 듯 스르륵 사라진다.
[띠링!]
[SS급 게이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14시간 31분 6초 기록. 게이트 출구가 열립니다.]
[최초의 SS급 게이트 클리어. 참여한 헌터들에게 칭호와 보상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