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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53화 (53/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3화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이여,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요?”

티타니아가 귓구멍이 막혔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요정 여왕이라 요정계에서 몇백, 몇천 년이 흐를 만큼 오래 살았을 테니 귀가 먹는 중이려나.

이쯤 되면 여왕이 아니고 요정 할머니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요정계를 오랫동안 다스리느라고 늙어 버린 그녀를 위해 장유유서 정신을 발휘해 나는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해 줬다.

“요정 왕의 자리를 원한다고.”

“미친 인간입니다, 여왕님!! 더 대화를 이어 갈 필요가 없으십니다!”

“이거 필요한 거 아니었어? 아니면 도로 다시 가져갈까?”

“젠장!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인 거야!!”

“…….”

안타깝게도 미친 건 내가 아니고 내 발밑에 있는 레일라인가 뭔가 하는 작은 요정일 텐데.

그녀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슬픔으로 얼룩진 얼굴이 아닌, 분노가 가득한 얼굴이다.

“왕의 자리를 원한다라…….”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달려들 듯했던 티타니아가 의외로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니,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찢어 죽이고 싶어 보이긴 했는데, 아직까진 꾹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어느 동네의 마족들이 갑자기 생각나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중에 마계에 가서 마왕 된 도리로 마족도 좀 보고, 기어오르는 녀석들 있으면 살짝 손 좀 봐주고 해야 할 텐데.

불필요한 전투는 아무리 나라도 사양인지라 그놈들도 이렇게 대화가 통하는 상대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겠지.

“……그대 이름이 뭔가요?”

뜬금없이 티타니아가 내 이름을 물어 온다.

지금 와서 통성명이라도 하며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하려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나야 꿀리는 게 없는지라 순순하게 대답해 줬다.

“김진. 그냥 진이라고 부르면 된다. 아, 말 놓지는 말고.”

“진…… 진이라……. 당신, 아스티란을 구원했다는 그 인간이군요.”

“나를 아나? 요정 여왕씩이나 되는 자가 알아주니 영광인데?”

“그리고 이번 대 마왕이 된 자이죠. 맞나요?”

“이 인간이 전에 말씀하셨던 마왕입니까!? 젠장!! 레일라를 붙잡은 건 요정계에 쉽게 오기 위한 사악한 계략이었단 말인가? 마계의 왕답게 비겁하게 머리를 쓰는구나!”

“듣는 왕 기분 나쁘니까 말 좀 곱게 해라.”

사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쉽게 요정계에 오게 된 건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다.

설명을 하고 싶어도 이미 나를 각종 음모 술수에 능한 음흉한 마왕으로 보고 있는지라 말해 봐야 입 아플 것 같기도 했다.

헤센이라는 요정이 어느새 내가 던져 버린 창을 주워 왔는지 다시 나를 향해 무기를 꼬나쥐었다.

“당장 차원 이동을 다시 펼치셔서 이 악독한 마왕을 돌려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일라를 돌려받기 전까지는 그럴 생각 없습니다, 헤센.”

“여왕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이자는 마왕이라고요!!”

급기야 손님을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인다.

올 때야 너희 마음대로였지만 갈 때는 그렇게 호락호락 갈 생각은 없다, 이 자식들아.

차원 간의 텔레포트라면 당연히 긴 영창을 필요로 할 테고, 그쯤이야 공격을 퍼부으면 집중하지 못해 쉽게 취소될 테니까.

“몇 남지 않은 타락하지 않은 요정계의 요정입니다!! 그걸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요? 하!”

돌려줄 놈은 아무 생각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는 티타니아였다.

요정족인 줄 알았는데 핏줄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나…….

뭐, 보아하니 간단하게 요정계를 넘길 생각은 없는 듯하다.

‘당연하긴 하지. 누가 나한테 마왕 좀 넘기지 하면 개소리하냐고 주먹부터 나갔을 테니.’

사실 나도 말로 간단하게 왕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길래 간단한 농담을 했을 뿐인데, 실패한 듯하다.

“마왕, 당장 봉인을 풀고 레일라를 이리 넘기세요.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방금 말한 대로, 넘겨준다면 몸 상하지 않고 보내 주겠습니다.”

“여왕님!!”

“나도 두 번 말하진 않는다. 왕의 자리를 넘겨. 그럼 이 소금통 따위 까짓거 넘겨주…….”

“<라이트닝 썬더>!!”

콰콰쾅!!

갑작스럽게 날아오는 마법이었지만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에 이런 걸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나는 몸을 뒤쪽으로 움직여 간단하게 마법을 피했다.

“고매하신 요정 여왕님도 별다를 건 없나. 무작정 덤벼대는 건 마족이랑 똑같나 보군?”

“여왕님을 그런 더러운 마족과 비교하지 마라!!”

비교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 게, 지금 너네 여왕이 한 짓 좀 보라고.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하며 창을 쥐고 있는 헤센의 기세가 방금 기습적으로 창을 날려 버릴 때와는 달리 꽤 위협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기세를 살펴보니 SS급의 헌터와 싸워도 간단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로 보인다.

하지만 여왕이라면 모를까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내 눈에는 풋내기로 보일 뿐.

“그럼 협상은 결렬인 건가?”

“닥쳐라!!”

까앙-!!

헤센의 공격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매섭게 날라 왔지만 페르아렌을 인벤토리에서 재빨리 꺼내 휘둘러 막아냈다.

까앙-!! 깡!! 카드득-!!

몇 번 공격의 교환이 끝나고 무기를 서로 맞대고 있었는데, 이만하면 놀아 주기는 끝난 것 같아 힘을 가해 그를 날려 버리던 참이었다.

“<윈드 스톰>!”

마무리 지으려던 것을 눈치챘는지 정정당당한 싸움에 비겁하게 티타니아가 마법을 날렸다.

마법이 적중하려는 적절한 타이밍에 크게 무기를 휘둘러 헤센과 함께 마법을 튕겨 내자 두 요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깟 마법쯤이야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튕겨 내면 그만이다.

물론 나만큼 섬세한 컨트롤과 강대한 마력을 지니지 못하면 불가능하겠지만.

“자, 대화할 만큼 한 것 같고……. 우리 이제 몸의 대화를 해 볼까?”

* * *

이 드넓은 요정계에 타락한 요정만 있는 것도 아니고, 웬 두 마리만 덜렁 있다 싶었는데.

역시나 전투가 진행되자 수백의 요정 수호 기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날개도 요정 여왕처럼 반쯤은 까맣게 물들어 있다.

‘타락이 진행된 건가…… 그래도 제법 강하군.’

그들은 개개인이 S급에서 SS급 헌터와 필적하는 실력자였다.

사실 나에 비하면 한참은 부족한지라 문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빌어먹게도 협공에는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물량으로 상대한다면 이쪽도 생각이 있지.’

나는 한참 노동을 하고 있을 크레아시론을 불러냈다.

갑작스레 소환된 그는 잠시 멀뚱거린다.

“주인님……? 여긴?”

“요정계는 처음이지? 인사들 나눠.”

그제야 내 목적을 깨달은 크레아시론은 다급히 언데드들을 불러냈다.

넓은 공터는 순식간에 죽은 자들로 가득 찼다.

“리치라니 이런 악독한!!”

악독은 개뿔.

고작 한 명을 상대하려고 몰려든 요정 쪽이 더 치사한 게 아닌가 싶다.

아크 리치가 되었다더니 확실히 전보단 강해진 크레아시론은 생각보다 잘 싸워 주고 있었다.

요정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다지만 마나만 있다면 언데드는 계속 일어난다.

‘역시 이런 전투는 네크로맨서들의 무대지.’

그들은 망자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죽은 동료가 되돌아나 자신들의 적이 된다.

그걸 보는 요정들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주인님, 슬슬 마나가…….”

하지만 모두를 상대하는 데는 역부족인 듯하다.

크레아시론은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겠는지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잠시 주춤하는 사이.

멀리서 마법을 날려 대는 티타니아가 놓치지 않고 매섭게 공격한다.

순식간에 언데드 한 부대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슬슬 마무리하지.”

그녀가 없다면 전투는 금방 끝날 것이다.

나는 티타니아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흠? 그나저나 유리병이 어디 갔지.’

주변은 여왕의 강력한 마법으로 인해 황폐해진 상태다.

그 와중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레일라가 들어 있는 병은 피해서 마법을 날리는 것을 보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워낙 전투가 격렬한지라 내가 봐도 불쌍한 그녀는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신세는 면치 못했다.

“야, 이 인정머리도 없는 새끼들아. 저거 좀 신경 쓰지 그래? 어차피 병이 깨져도 봉인 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찾아 헤매던 요정인데……. 내가 봐도 안쓰럽네. 쯧.”

병을 보고 있던 건 티타니아뿐이었는지 요정 기사들이 레일라를 슬쩍 보더니 사색이 되어 그제야 병을 들어 재빨리 요정 여왕에게 건네준다.

어차피 레일라가 그녀의 품으로 들어가든 말든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건 나뿐인지라 신경 쓰지 않았다.

대충 공격을 받아 주며 그 상황을 보는데, 그녀가 손을 떨며 이미 기절해 버린 레일라를 봉인한 유리병을 부숴 버리더니 소중하게 품 안에 넣는다.

“레일라…… 아……. 가여운 내 아이…….”

다친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느냐 살벌하게 날아오던 그녀의 마법이 중단되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몇 남지 않은 요정 기사들을 공격해 날려 버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몰아친 검격에 모조리 기절해 버린 듯했다.

“끝났군.”

상황이 대충 마무리된 듯해 크레아시론을 다시 돌려보냈다.

그는 공손히 인사를 한 뒤 사라진다.

폐허가 되어 버린 요정계.

그제야 티타니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절망한다.

“……!! 다들……!”

“걱정 마. 죽진 않은 듯 같은데. 아직은 말이야. 그런데 우리 여왕님은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랜 시간 쥐어와 손에 착 붙는 페르아렌을 장난스럽게 휙휙 돌리며 다가갔다.

티타니아가 부르르 떨며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째려본다.

하지만 보호해 줄 요정 기사도 없어 마법을 영창하거나 하는 멍청한 반항은 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도 왕 자리를 내놓을 생각은 없나?”

“……그냥 나를 죽이세요. 하지만 이 아이만은……. 부디…….”

모든 걸 포기한 듯이 아까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요정 여왕.

이제는 눈물을 흘리며 항복의 의사를 밝혀 온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지도 못한 채 주저앉아 있는데, 계속된 전투에 지쳐 피로한 기색을 숨기지도 못해 가녀린 모습에 더욱 처연한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이제 와서 웬 눈물?’

어림도 없지.

자기 목숨은 상관없으니 다른 자는 살려 달라는 말을 한 자들은 워낙 많았었다.

결국은 이 악마 같은 용병왕, 따위의 소리를 귀에서 피 날 정도로 들어왔던 나이기에 조금의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 않는다.

‘레일라, 저거 살려 주면 나중에 분명히 복수하겠다며 귀찮게 군다.’

알량한 동정심을 내비치다가 동료를 잃어 봤던 다수의 뼈아픈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코웃음만 치고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덤벼 오는 자는 모두 죽인다.

그것이 내 철칙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어차피 너를 죽여 봤자 요정 왕이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그걸 어떻게!?”

당장이라도 날아올 검을 기다리고 있던 티타니아가 놀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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