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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52화 (52/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2화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

“……저도 보입니다. 이 요정 이름인 것 같은데……. 불길하군요. 빨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으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스킬 <강렬한 직감>이 아니더라도 수백 년을 구르다 보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 촉은 저 메시지가 이제부터 엿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문구로 들렸다.

[요정 ‘레일라’를 오랜 시간 동안 간절히 찾던 요정 여왕이 마력을 알아차립니다.]

[레일라 소환 중…… 오류: 봉인되어 있음, 소유자 진.]

[소유자와 함께 강제 소환합니다.]

[카운트다운. 5초 뒤에 이동합니다. 5…… 4.]

“강제 소환이라고? 미친!?”

역시나 나의 예상은 조금도 비켜 나가지 않았고.

“[마왕님!!]”

“진 님!!”

‘이 미친 시스템아…….’

익숙한 텔레포트의 기운이 느껴지고, 마력이 몸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얌전히 공략만 하려던 S급 게이트에서 별 개 같은 일이 다 벌어지네……. ×발…….’

* * *

시오스 대륙과 연결된 요정족 차원계.

원래는 푸르른 자연과 함께 각종 요정이 평화롭게 깔깔거리며 뛰어놀던 곳은 적막만 감돌고 있었다.

대부분의 요정계는 타락으로 인해 검게 물들어 버렸고, 원래의 모습은 조금밖에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모습.

아직 예전의 풍경을 미약하게나마 간신히 간직하고 있는 요정계 중앙에는 시들어 버린 요정수가 찬란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였다.

모든 요정이 태어나는 고향인 요정수에는 요정의 열매가 원래의 10분의 1밖에 열리지 않았고, 그나마도 대부분은 썩어 있었다.

“여왕님, 오늘도 여기에 계셨습니까?”

슬픈 눈으로 요정수를 쳐다보던 요정 여왕 티타니아가 자신의 수호 기사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반짝거리는 금발과 숨 막힐 정도로 화려한 외향은 그대로였지만 여덟 장의 날개 중 세 장은 검게 물들어 있어 누가 봐도 그녀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매일 이 정도 양이라도 요정력을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요정수는 죽어 버릴 테니까요…….”

당장 죽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았을 요정수였지만 지난 몇백 년간 억지로 목숨을 연명시키던 것은 오직 티타니아의 강력한 힘이었다.

그나마도 다른 요정과 마찬가지로 아직 완전히 타락해 버리진 않았지만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타락에 예전과 같은 마력은 온데간데없었다.

티타니아조차 점점 정신을 부여잡지 못하고 이성을 잃고 날뛰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예정된 요정계의 멸망.

오직 시간문제일 뿐이었지만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티타니아가 수호 기사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미 요정수는 뿌리부터 썩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하셔도…….”

“요정 여왕인 나조차 모든 걸 포기해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기적적으로 회복해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다시는 그때처럼 멍청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고 티타니아는 생각했다.

‘<그녀>가 우릴 버릴 줄이야…….’

티타니아가 잠시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요정계와 함께 멸망해 버려 이제는 생명체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오스에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이건…… 레일라……?”

수백 년 전 왕의 재목으로 보일 만한 지구의 인간들도 없애 버리고 오겠다던 레일라의 기운이 느껴졌다.

한사코 뜯어말렸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출해 버리고, 그 뒤로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자신의 측근 요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유난히 작고 여려 다른 요정과는 다르게 열매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품에 안고 딸처럼 키운 레일라.

모든 요정을 사랑해야 하는 요정 여왕이지만 유독 아픈 손가락으로 느껴지는 요정이었다.

“레일라라고요?? 그녀가 요정계로 돌아왔습니까?”

“아니, 가깝지만…… 요정계는 아니고 시오스에서 느껴집니다. 지금의 시오스는 위험할 텐데……. 지금 당장 소환해야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마력을 긁어모아 텔레포트에 온 힘을 썼다.

하지만 그때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레일라가……. 봉인되어 있군요.”

‘누가, 감히.’

잘 흥분하지 않은 티타니아 그녀답지 않게 거대한 분노를 뿜어냈다.

자신의 힘조차 방해하는 강대한 봉인의 힘이 소환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마침 봉인을 건 당사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이 느껴졌기에 그조차 강제 소환하리라 마음먹었다.

“헤센, 돌아온 가출 요정을 맞이할 준비를 해요.”

“봉인되었다더니, 소환에 성공하신 겁니까?”

자신의 수호 기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하자 티타니아가 생긋 웃어 보인다.

“……그리고 불청객도요.”

티타니아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싸늘하게, 차원 간의 텔레포트가 행해지고 있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티타니아의 말에 긴장한 헤센이 무기인 창을 소환해 쥐어 들었다.

봉인된 레일라만 소환하기는 힘들어 봉인 소유자와 함께 소환한 모양인데.

누구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요정 여왕이 직접 가르친 레일라를 봉인할 정도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직접 요정계로 소환하는 게 맞는 일인지…….’

예전과 같은 힘을 가지지 못한 요정계와 요정 여왕.

헤센은 왠지 모를 불길한 생각이 엄습했다.

티타니아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레일라를 볼 수 있다는 기쁨과 상대에 대한 분노에 눈이 멀어 버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우리 레일라가 돌아오는군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던 텔레포트의 구동이 끝나고 나타난 것은 웬 인간이었다.

그것도,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유리병에 레일라를 가둔 채였다.

“여기가 요정계인가? 생각보다 별건 없는데.”

낯선 곳에 소환되었지만 불안에 떨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관광객처럼 이곳저곳 둘러보던 진의 눈이 요정수에 닿았다.

가까이 다가가 이곳저곳 두드려 보고 발로 차 보기까지 하는데, 헤센은 어이가 없어 말리지도 못하고 멍하니 구경할 뿐이었다.

“이게 요정수? 세계수와 버금갈 정도로 크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던데……. 크긴 한데, 이건 뭐.”

죽기 일보 직전이잖아.

그가 중얼거리는 말이 헤센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날카롭게 찌르고 갔다.

헤센 본인도 방금까지 그렇게까지 생각했지만 자신이 말하는 것은 상관없어도 남이 말하니 울컥 화가 났다.

챙-!!

“감히 위대한 모든 요정의 고향에 그런 말을 하다니!!”

“아니, 누가 봐도 시들시들해서 죽어 가는 모양인데,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나? 그리고 니들 고향이지 내 고향이냐?”

강력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위압감에 떨었던 것도 잠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창을 들어 진의 턱 끝에 가져다 대었다.

분명 목에 어느 정도 들어간 것 같았지만 피는커녕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평소라면 힘의 차이에 당장 창을 거두었을 테지만 반쯤은 이성을 잃어 헤센의 눈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억지로 초청해 놓고, 손님 대접도 엉망이고 말이지.”

진은 무기가 목에 닿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느릿하게 중얼거린다.

그러곤 곧 고개를 슬쩍 돌려 헤센을 바라본다.

놀라기는커녕, 아무런 감정조차 느낄 수 없는 눈빛.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느껴져 순간, 그는 소름이 돋았다.

심지어 진은 그를 보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기까지 했다.

‘웃어……?’

오싹-!!

헤센이 왠지 모를 불길한 마음이 들어 무기를 회수하려는 그때였다.

진이 창을, 그것도 날카로운 창끝을 손으로 쥐더니 힘을 주어 가볍게 뺏어 들더니 저 멀리 휙 던졌다.

전사된 도리로서 자신의 무기를 빼앗기는 것만큼 최악의 상황은 없었다.

당황한 헤센과는 달리 그는 당연한 행동을 한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장난감은 치우자고. 그런 걸 대놓고 휘두르는데 봐줄 인내심은 없는지라.”

그제야 느껴진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어쩔 줄 몰라 도움을 요청하듯 티타니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소환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병 안에 담긴 레일라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으흑…… 끄흐흑…….”

“…….”

진 역시 요정계에 도착한 직후부터 자신의 손에 있는 유리병에 닿아 있는 티타니아의 시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유리병을 흔들어 보였다.

답지 않게 화사한 웃음.

하지만 그를 잘 아는 박민호가 본다면 또 사건 하나 단단히 치르겠다는 예상을 쉽게 할 만큼,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실제로 진은 보스 공략을 하러 가는 계획을 방해받은 것 때문에 상당히 빡이 쳐 있는 상태였다.

“이게 네놈들 목적이지? 감히 날 여기까지 강제 소환한 이유.”

“……나는 요정 여왕 티타니아. 강제 소환한 건 미안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봉인해 지니고 있는 것은 감히 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돌려주세요. 태어났을 때부터 제가 보살펴 온, 제 측근 요정입니다.”

손바닥만 한 어린 요정과 다르게 성인의 모습을 가진 티타니아가 간절하게 부탁했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청순한 그녀의 모습은 어떤 남자가 봐도 당장 간이고 쓸개고 빼 줄 만큼 가녀려 보였다.

하지만 남의 눈에 눈물이 흐르건 피눈물이 흐르건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진은 시큰둥했다.

특히나 요정의 가루만큼 쓸 만한 물건을 내놓는 놈을 거래가 아니고 공짜로 달라는 그녀의 심보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요정 여왕 정도면 가진 것도 많을 텐데, 있는 놈들이 더하다더니.’

카악- 퉤.

급기야 침까지 뱉으며 껄렁하게 그녀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진.

그 모습은 마치 일수 받으러 온 어둠의 형님을 연상하게 한다.

“이거 어쩌나? 난 내 것은 쉽게 내주지 않는 성격이라.”

“지금 돌려주신다면 잘못은 묻지 않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돌려보내 드리겠습니다.”

너 따위의 목숨은 간단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며 그녀가 오만하게 말한다.

진은 가뜩이나 소환당해서 좋지 않았던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그는 진득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병을 휙 흔든다.

그에 정신 놓고 울고 있던 레일라가 병 안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철퍼덕 넘어졌다.

“꺄아아악!!”

“레일라……!!”

“여왕님!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시오! 위험한 자입니다!”

“아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미안하게 됐다.”

진은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레일라를 눈앞에 두고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슬픔에 눈이 멀어 버린 그녀가 허둥대며 진을 향해 손을 내뻗는다.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헤센은 극도의 경계를 하며 여왕을 말렸다.

손이 닿으면 팔 하나쯤은 가뿐하게 잘라 날려 버리려고 했던 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병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어서 삐딱하게 자세를 잡더니 유리병 위에 턱 발을 올려놓았다.

“무사히 돌아가는 것쯤이야 당연한 거고, 이거와 맞바꿀 거래를 하는 게 어때? 마침 내가 요정계에 원하는 물건도 있고.”

“인간 따위가 감히 여왕님께 거래를 청하다니! 건방진!”

“그만 하세요, 헤센! 인간이여, 원하는 게 뭡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 내놓겠어요!”

“이제야 자세가 괜찮네. 그래, 내가 원하는 건…….”

거래의 기본은 상대방이 원하는 물건을 지니고 있는 것.

심지어 상대가 이렇게 안달복달한 상태면 무엇을 요구하든 쉬운 일이다.

하지만 진은 절대 간단히 내놓을 수 없는 것을 원했다.

그는 입꼬리를 올려 누가 봐도 섬뜩한, 바로 전보다 더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왕.”

“……왕이라니 무슨 말인가요?”

“요정계의 왕의 자리를 원한다, 요정 여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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