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50화
사람이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입이라고 했던가.
물론 입으로 망했던 적이 한두 번은 아니긴 했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농담으로 숲 전체가 드라이어드로 되어 있진 않을 거라 했지……. 씨발.’
그런데 그게 짜잔, 진짜였습니다!
시스템이 보고 있다면 분명 이런 말을 했겠지.
욕밖에 나오지 않는다.
멋대로 지껄인 말이 사실로 돌아왔다.
이 빌어먹을 악운은 어디까지인지.
운명의 여신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나는 전생에 운명의 여신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한 뒤 도망이라도 갔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 순간,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띠롱-!
[<업적: 나무 9,999그루 베기>를 달성하셨습니다.]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나무 학살자>: 숲을 푸르게, 푸르게! 하지만 그런 문구와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는 당신! 진정한 자연의 파괴자입니다! 그동안 죽인 나무들을 위해 오늘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 보는 게 어떨까요?]
<나무 학살자: 나무를 베어 낼 때 공격력 +100% 증가, 도끼 속성 장착 시 +200% 증가.>
엄청난 능력치의 칭호다.
하지만 순간 어이가 없어 벙쪄 버렸다.
‘……이거 나 멕이는 거지? 어!? 빌어먹을 시스템 새끼야, 나 멕이는 거 맞지!?’
스탯 그까짓 거 하락하든 말든,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저번처럼 시스템의 방벽을 파괴하고 와야 했던 것이 분명했다.
내가 지금 개고생을 하는 것을 비웃는 듯한 칭호와 설명.
분통이 터졌지만 선심 쓰듯 던져 준 칭호의 효과 하나만은 지금의 상황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현재 장착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칭호를 빼고 <나무 학살자>로 냉큼 바꿔 장착하였다.
“진 헌터님!! 여기도 좀 도와주세요……!!”
여기저기서 우는소리를 하는 헌터들이 속출했다.
전투를 시작한 지 오래되긴 했는지라 모두 지쳐 버렸다.
처음과 같이 날카로운 공격은커녕 피곤이 역력한 기색이다.
‘도대체가 내가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한 건지…….’
미국 헌터들만 들어왔다면 사이좋게 몰살이라도 당했을 게 뻔하다.
전투계 헌터들은 간신히 무기를 휘두르고 있고, 마법계와 보조계는 없는 마력을 쥐어짜며 연신 마력 회복제를 물처럼 들이켜고 있었다.
“인벤토리!”
[파괴 왕의 도끼[SS]: 고대 미궁을 지키고 있던 괴물, 미노스의 황소가 지니고 있던 도끼입니다. 신의 금속이라 불리는 미스릴로 만들고, 고대의 주술사가 축복하였습니다. 공격력 +50% 증가, 힘 +50% 증가.]
빠르게 인벤토리를 뒤져 칭호 <나무 학살자> 효과를 사용하기 위해 도끼를 찾아 꺼냈다.
웬만하면 무기의 왕이라는 검을 사용하는 걸 즐기지만 지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진 님, 그걸 쓰시는 건 오랜만에 보는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내 도끼를 알아본 강준하가 반가운 듯 말했다.
용병왕 시절 이것저것 다른 무기에 손을 대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동안 사용하던 도끼이다.
하지만 모든 병기의 왕은 검이라 했던가.
묵직한 손맛도 괜찮긴 했지만 결국 마지막은 검으로 정착하고 말았다.
덕분에 도끼 숙련도 랭크는 검보다는 좋지 않았다.
‘그래도 문제는 없지.’
<웨폰 마스터(L)(패시브) LV. 9: 모든 무기의 주인 된 자에게만 주어지는 스킬입니다. 어떠한 무기도 어렵지 않게 능숙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모든 무기 공격력 +90% 증가>
초반에 얻고 나서 한동안 유용하게 사용하던 패시브 스킬이다.
나를 용병왕의 자리로 올려 주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칼질 한 방에 썰리지 않아야 할 것도 썰리는 최근에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스킬이다.
‘스킬 봉인 해제권을 여기다 사용해 놓길 잘했네.’
내 키만큼이나 거대한 도끼였지만 최대로 올린 힘 스탯 덕분에 나뭇가지만큼이나 가벼웠다.
오랜만에 한 손으로 휙휙 돌려 보니 묵직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는 게 퍽 마음에 들었다.
“거기 비켜!!”
“크윽……!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에 있던 헌터가 내 외침을 듣자마자 재빨리 자리를 피해 비켜 준다.
써겅-!
손을 다 벌려도 감싸 안지 못할 만큼 커다란 나무가 도끼질 한 방에 쓰러졌다.
심지어 그 뒤에 있던 드라이어드들도 마력을 이기지 못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한 번의 공격으로 열 마리가 사라진 것이다.
“응? 이거 생각보다…….”
칭호 효과가 굉장하다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페르아렌을 사용할 때보다 더 쉽게 드라이어드가 베어져 나갔다.
마치 두부를 써는 듯이 힘조차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찌르기에 강한 검보다는 무언가를 베는 데 특화된 도끼가 더 어울리는 듯하다.
‘진작 도끼부터 휘두를걸…….’
역시 옛날부터 나무꾼들이 애용하던 것엔 다 이유가 있던가.
단숨에 드라이어드를 날려 버리자 무기를 바꿀 때부터 힐끗 쳐다보던 헌터들이 이제는 대놓고 나를 구경했다.
자신들이 고전하던 단단한 적들이 쉽게 처치되자 놀란 듯하다.
“뭐야, 여태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더 좋은 무기가 있었는데도 그냥 몸풀기 삼아 싸웠던 건가? 우릴 놀리나? 무슨 여기가 놀이터도 아니고……!”
헌터들, 특히 미국 헌터들은 온갖 억측을 하며 수군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신들린 것마냥 도끼를 휘둘러 댔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에 익숙해져 아까보다도 더욱더 빠른 속도로 적을 처치할 수 있었다.
혼자서 대부분의 적을 베어 내자 무한정 쏟아질 것 같았던 드라이어들의 수가 확실히 줄어든 것이 보인다.
지쳐 있는 다른 헌터들도 그것이 느껴졌는지 동태 눈깔이었던 눈이 희망으로 변했다.
“이제 거의 마무리인 것 같습니다!!”
“이게 끝나긴 할 줄이야…….”
“다들 조금만 더 힘내세요!”
[우워어억-!]
쿠웅-!!
드디어 마지막으로 달려들던 드라이어드까지 쓰러져 먼지로 변한다.
하늘조차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주변을 빼곡하게 감싸던 숲들이 사라졌다.
바닥에는 우리가 바빠 줍지 못했던 온갖 마력석과 아이템들이 잔뜩 떨어져 있어 하나의 동산으로 보일 정도였다.
드라이어드가 더 없다 확신한 헌터들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물…… 물 있는 분 있나요……? 죽을 것 같아…….”
“중상 입으신 분은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저기 지친 헌터들이 떠들며 상황을 정리하는 소리로 공터가 시끄러워졌다.
애쓴 보람 있게 상처를 입은 자들은 몇몇 있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어, 힘들어 보이긴 하지만 헌터들의 표정은 밝았다.
“와……. 아무리 S급 게이트라지만 이게…… 말이 되는…….”
“진 님,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나도 조금 피곤해진 건 사실이기에 대충 아무 곳에나 걸터앉고 흙먼지를 물로 씻어 내며 주위를 살폈다.
“강하신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힘이라니…….”
“괜히 용병왕, 용병왕 하며 칭송하는 게 아닌가 보네요.”
이영우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나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다른 헌터들 역시 그의 말에 한두 마디 얹어 감사하다고 소리친다.
다들 위험했던 상황이 한 번씩은 있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도와준 덕분에 나에게 목숨을 빚진 자들이었다.
“뭐, 별거라고……. 피곤해 보이는데 일단 좀 쉬어라. 다들 마찬가지다. 보스 공략대로 차출되었던 헌터 중 부상자들이 있으면 따로 말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처음 나의 실력에 반신반의했던 미국의 헌터들도 이제는 나를 완벽하게 공략대 대장으로 인정했는지 아까와는 다른 태도로 나를 대했다.
역시 사람은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치달아야 곁에 있는 사람 귀한 줄 안다. 아, 이 경우에는 좀 다른가? 하여간 변화된 지금의 상황은 나쁘진 않았다.
‘뭐, 당연한 건가. 본인들이 한 게 뭐 있다고.’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가 처리하고 남은 찌끄래기들만 상대했는데 그 정도도 모른다면 헌터 명함은 내놓아야겠지.
“[마왕니임…… 저도 다쳤어요……. 요기! 요기 좀 보세요!! 망할 요정족 놈들이……!]”
아렐리아가 짧고 통통한 다리를 슬쩍 들어 보인다.
대체 어디를 다쳤다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집중하자 발톱이 살짝 긁힌 것이 보인다.
고작 이거로 그러느냐고 한마디 하려다가, 만사를 귀찮아했던 아렐리아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전투에 임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그래. 수고했다…….”
“[그렇게 잠깐 보시지 마시고요!! 자세히 좀 봐주세요!!]”
“저…… 진 헌터님, 잠깐 괜찮으십니까?”
투덜거리는 아렐리아를 토닥이고 있는데 잘생긴 얼굴에 여기저기 상처가 난 길리안이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말해.”
“저…… 우선 저희 헌터들의 목숨을 구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같은 S급 게이트지만 강원도 게이트 때와는 전혀 다른 전투였는지라……. 아마 진 헌터님이 아니셨으면 반 이상이, 아니 몰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사치레라면 됐다. 해야 하는 일이었고.”
“겸손하시기까지……. 대체 누가 진 헌터님을 그렇게 말했는지……. 절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닙니다. 미국의 헌터들을 대표해 감사 인사드립니다.”
길리안이 나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여 보인다.
우리의 대화를 은근슬쩍 주시하고 있던 다른 미국 헌터들도 쭈뼛거리며 나를 향해 짧게 눈인사를 했다.
“나에겐 별거 아니었다. 약해 빠진 너희라면 모를까.”
“……인성.”
“뭐? 누구야?”
누군가 작게 건방진 소리를 씨불였다.
고개를 빠르게 돌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태연하게 치료하고 있는 헌터 중에서 찾아내긴 힘들어 보인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그쪽을 째려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 무리 쪽에 홍현민이 있긴 했는데, 설마 저놈이……?
“하…… 하하……. 이 감사 인사는 게이트 밖으로 나가면 따로 다시 드리겠습니다. 급한 일이 없으시면 관광이라도 하고 가시지요. 호텔 숙박, 기타 체류 비용까지 모두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한국의 헌터들과 좋은 자리를 만들면 좋겠군요.”
“……뭐, 생각해 보고. 일단 쉬어.”
“네, 알겠습니다. 준비가 마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길리안이 미국의 헌터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그들을 다독이며 무어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다들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심각했던 방금의 상황과는 다르게 나름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며 치유계 헌터들이 해 주는 치료를 받으며 컨디션 회복에 전념하고 있었다.
“강준하, 아렐리아. 대충 마무리 지었으면 이쪽으로 잠깐 와 봐.”
“무슨 일이십니까, 진 님?”
“[조용히 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이 드라이어드, 아렐리아가 말하기로는 요정족이지만 타락했다고 했지.
보통이라면 말이 통할 정도로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이성을 잃은 채로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 무언가 이상 했다.
헌터들에게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