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8화
‘이게 S급 게이트인가?’
게이트에 입성한 후 확실히 그동안과는 다른 점이 느껴진다.
이곳은 A급 게이트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짙은 마력으로 가득했다.
단순히 등급 하나 올라간 수준이 아니었는지라 미국의 S급과 SS급 헌터들이 잔뜩 긴장하며 세계 곳곳에서 헌터들을 끌어모을 만했다.
하늘은 분명 낮이었지만 회색으로 물들어 있고, 주변은 푸른 숲이 아름다웠던 아스티란과는 다르게 울창하게 솟은 나무들은 분명 살아 있었지만 동시에 죽은 듯한, 음산한 기운을 풍긴다.
이 정도 숲이면 새소리나 나무 소리, 하다못해 저 멀리서 몬스터들의 소리라도 들려야 정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벌레 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확실하게, 아스티란과는 다른 곳이군.”
“네, 북아메리카 대륙의 차원은 시오스이니까요.”
비슷하긴 하지만 아스티란 대륙 곳곳을 다녀 본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간혹 마족들이 마계를 벗어나 내려온 곳도 마기로 인해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냈지만 그것과는 본질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공간이기 때문에 말없이 일행들을 끌고 이동하자 곧 나무들로 둘러싸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라지만 뭔가 잔뜩 부서진 듯한 폐허에 가까웠는데, 여기저기 부러진 병장기들과 돌과 나무들이 가득했다.
“여기서 일단 대기한다. 작전 설명도 필요하니.”
작전 설명 같은 게 필요할 리가 없다.
항상 나는 머리 굴리는 건 책사들에게 맡기고 무력이 필요한 곳에만 직접 뛰어드는 전투만 해 왔다.
그런 내 스타일을 잘 아는 강준하가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진 님, 평소 하시던 대로 진행하실 게 아니었습니까?”
“오늘은 좀 그러고 싶은 기분인데.”
“……그러십니까. 그렇군요.”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나의 개소리에도 납득하며 헌터들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익숙하기에 그러려니 하는 눈치이다.
‘뭔가 이상한 놈이 된 거 같긴 한데, 어쩔 수 없지.’
사실은 아렐리아가 이곳을 둘러보기 위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기 위함이었다.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그녀를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순식간에 아렐리아가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다.
어떻게든 있어 보이게 잘 포장해 말할까 고민하며 대충 성벽 같은 돌덩이 위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패시브 스킬인 <강렬한 직감>에는 아직 딱히 거슬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엔 그저 적막뿐.
몬스터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여긴…….”
“길리안 헌터님, 아는 곳인가요?”
길리안을 비롯해 몇몇 미국의 헌터들이 당황한 얼굴로 아무것도 없는 폐허를 둘러본다.
‘그냥 돌덩이들뿐인데.’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딱히 특이한 것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헌터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나 보다.
그들은 마치 와 본 적 있는 듯이 익숙하게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파헤쳤다.
얼마나 주변을 살펴봤을까, 이윽고 미국의 헌터들은 이곳이 어딘지 깨달은 듯하다.
“이럴 수가……. 여긴 저희가 마지막으로 요정족과 전투를 벌이고 사망한 곳입니다.”
“요정족이라…… 우리가 아스티란에서 마족들과 싸웠던 것처럼 말이죠.”
“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차원계마다 각 종족이 침략했던 건 아실 겁니다. 저희 역시 퀘스트들을 진행하던 중 이상하리만치 요정족과의 마찰이 잦았고, 각 왕국과 방어선을 구축하며 싸웠지만……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귀환했지만 아마 시오스의 왕국들은 모두 멸망했을 겁니다.”
그 이유란 건 인간의 왕이 탄생할 거라는 빌어먹을 <예언> 따위 때문이겠지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고, 혼자만의 비밀로 감춰 둬야겠지.
언젠간 설명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스티란은 대륙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막아내는 게 가능할 줄은……. 부럽습니다.”
“우리 역시 모두 실패했었습니다. 다만 진 님께서 홀로 성공하셨을 뿐이죠.”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강준하가 역시나 팔불출처럼 내 자랑을 해댄다.
이상하게도 좀 조용히 있나 했다.
본인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가만히 있는 놈이 나에 대한 업적을 칭송할 때는 빠지지 않고 항상 주절거린다.
그저 가만히 있는데 대답을 들으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지 길리안이 말을 이어 간다.
“이계에서 온 구원자라고 칭송하던 시오스의 주민들을 생각하면 저는 왜 진 헌터님처럼 잘하지 못했을까 항상 자책하게 됩니다.”
“길리안 님…… 그건 길리안 님의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실패죠…….”
길리안과 미국의 헌터들이 씁쓸한 표정이 되었다.
그들의 슬픔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내 눈앞에서 마족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무수히 많이 죽어 나가던 아스티란의 주민들을 안타까워했고, 그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국은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와 내가 다른 점은 지나간 일에 후회하면서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그들의 죽음은 죽음이고,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했으니까.
‘그래도 저 녀석, 인간성 하나는 괜찮네.’
공략대장을 넘길 때 똥 씹은 표정이 되었기에 명예 따위에 집착하는 놈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그들은 제각기 넓게 퍼지더니 각자 기도라도 하는 듯 자세를 취한다.
시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자가 죽어 갔던 곳이기에 미국의 헌터들이 잠시간 묵념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마왕니임…… 차원문 같은 건 전혀 안 보여요.]”
어느새 순식간에 정찰을 마치고 온 아렐리아가 시무룩한 얼굴로 다가왔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헛짓거리를 한 것이다.
‘젠장…… 이래서 운은 자신 없었는데.’
오늘도 시스템은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한두 번도 아니라지만 이쯤 되면 작정하고 엿을 먹이려는 건가.
도무지 내가 편해지는 꼴을 볼 수 없다는 의도가 아주 잘 느껴졌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살펴보니 뭔가 이상한 게 있었어요.]”
“이상한 거라니? 적이라도 발견했나?”
“[……일단 확실해지면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말을 아낀다.
답지 않게 진중한 태도였다.
그때 주변에서 수상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이상함을 느낀 건 나뿐인지 헌터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이건 확실히 몬스터의 기운이었다.
[스킬: 강렬한 직감이 발동합니다. -적을 감지했습니다-]
내가 짐작한 게 맞다는 듯 터지는 <강렬한 직감> 스킬.
여전히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숲이지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무언가 스치는 듯한 작은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모두 잠깐, 뭔가가 다가온다.”
“네……? 몬스터의 발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는데…….”
“[마왕님, 이건 몬스터 따위의 기운이 아니에요. 좀 더 자연의 근원 그 자체……. 하지만 지나치게 어두워요.]”
갑자기 조용하게 있던 아렐리아가 중2병 같은 소리를 지껄였다.
몬스터가 나와야 하는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아니라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전방을 뚫어지라 주시했다.
계속 정체 모를 기운과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가까워져 온다.
하지만 들려야 하는 발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강준하, 너는 나와 함께 공격에 전념한다. 나머지는 모두 방어 진형을 꾸려.”
“네, 진 님.”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느끼는지 모두 무기를 꺼내 들고 서로를 원형으로 둘러싼 채 주변을 둘러본다.
하지만 여전히 몬스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비행형 몬스터라기엔 하늘 역시 고요했다.
‘처치하는 건 별걱정 없다지만 대체 뭔지 알아야…….’
그때였다.
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한 공터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헉, 공터가 점점 작아지는…… 아니, 나무가 움직이는데요!?”
눈썰미가 좋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세히 보니 과연 나무를 울타리 삼아 둥글게 존재하던 공간이 좁혀져 온다.
“나무 그 자체가 몬스터인 건가?”
“[마왕니임…… 몬스터가 아니에요! 나무처럼 보이지만 요정족이에요!]”
저 높게 솟은 나무들이 모두 요정들이란 말인가.
내가 본 요정이 많은 건 아니지만 모두 날개가 달린, 작은 형태였는데…….
하다못해 내 인벤토리에 가둬 져 있는 레일라도 요정의 전형적인 외형이었다.
‘생긴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수가 상당한데.’
못해도 수백, 아니 수천은 족히 되어 보인다.
검은색의 잎사귀며 나뭇가지들이 꿈틀거리는 나무, 아니 요정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하나하나 크기가 상당한 게, 웬만한 공격으론 베어지지도 않게 생겼다.
다가오는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웬만한 헌터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듯하다.
“드라이어드……! 그렇지만 저런 기운을 가지고 있진 않았었는데?”
“길리안 헌터, 뭔가 아는 게 있나?”
“나무처럼 보이지만 요정족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인지라 청량한 기운이 풍기지 저런 악독한 기운은……! 설마 마기?”
길리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여태껏 상대했던 요정족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꼈는지 주춤거리기까지 한다.
“마기라뇨! 요정족이 마기를 가지게 될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보십시오! 저런 암흑과 관련된 마력은 마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의 말대로 기세가 심상치 않다. 어두운 게 마기와 비슷하긴 해. 하지만…… 다르다.’
마기를 접할 기회가 많았던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마기 역시 칠흑처럼 어두운 마력이긴 하나 본디 그 근원은 세상 그 자체에서 갈라져 나온 것.
따지자면 형태가 다를 뿐 신성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렇게 기분 나쁘고 끈적거리는 기운과 같다고 이야기한다면 태초에 마족을 만들었다는 마신이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 더러운 기운이 마기라니!! 어떻게 그런 천박한 소릴!!]”
헌터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신의 분통을 터트리진 못했지만 적어도 아렐리아를 미치게 만드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그녀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당장 저 인간 놈들을 죽이겠다며 날뛴다.
가뜩이나 상대할 적이 많은 상태에서 이 이상의 위협 거리를 만들 수는 없었기에 그녀를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