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6화
미국으로 가기 위한 준비가 한창인 대한 각성자 협회.
급작스럽게 벌어진 일이기에 조용해야 할 공간은 어수선했다.
“진 님, 보상 전부를 요구하시다니요.”
강준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협회에서 했던 말처럼 욕심이 많다 타박할 셈인가 싶었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혹시 돈이 급하게 필요하십니까? 그 정도라면 제가 드릴 수 있습니다.”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내가 무슨 도박이라도 하다 전 재산을 날려 버린 거라 상상하고 있는 얼굴이다.
“돈? 그런 건 썩어 넘친다.”
“그렇다면 왜…….”
“어차피 가야 할 게이트라면 뭐라도 얻어 내는 게 맞지. 나도 맨입으로 일할 순 없으니까.”
그곳에서 얻을 보상은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임금으로 노동하는 건 더더욱 관심이 없었고.
그 정도는 말해 줘야 내가 순순히 게이트에 참여하는 걸 의아하게 보지 않을 테지.
강준하는 그 와중에도 내가 말하는 게 진실인지 여전히 눈치를 살피고 있다.
내가 그토록 믿음이 없었나 어이가 없어 한마디 하려는 찰나, 공략대에 참여하기로 한 몇 명이 다가온다.
“진 헌터님, 탑 공략 이후 오랜만에 뵙네요. 이번에도 저희 길드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왜 이렇게 엄마처럼 굴어? 징그럽게……. 내가 애냐고!”
짜증을 팍팍 내며 껌을 씹고 있는, 사춘기가 늦게까지 온 듯 여전한 싸가지의 홍현민과 그의 보호자처럼 보이는 김세하였다.
‘나 같아도 걱정할 만하다.’
홍현민이 제대로 전투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는데, SS급이라지만 저 철없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걱정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진 헌터님. 저도 탑 공략 때 뵈었죠? 천상 길드에서는 저와 보조계 정예 두 명이 참여할 겁니다.”
천상 길드의 길드장, 이영우와 두 명이 나에게 다가온다.
앞서 시끌벅적한 자유 길드와는 다르게 침착하게 인사를 건넨다.
‘차라리 이 길드가 믿음직스럽네…….’
여전히 투닥거리는 홍현민을 보자 약간 머리가 아파졌다.
‘게이트 공략이 아니고 애 보기가 될 수도…….’
그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왔다.
게이트 입성하고 공략을 시작할 때 홍현민, 저놈만은 요주의 인물로 여기고 절대 한눈팔지 않아야겠다 다짐했다.
‘저번 탑 공략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테니까.’
게이트는 보통 다수의 몬스터가 무리를 지어 등장한다.
아무리 내가 있다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적들 사이에서 한 번에 수십 명을 지킬 순 없다.
벌써 당당하게 짐이 되리라 선언하는 듯하는 그의 태도에 머리가 아파져 온다.
그가 다치기라도 했을 때 자유 부길드장의 원망이 걱정되는 게 아니라 까불거리다 함정이나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건드려 쉽게 끝날 공략이 길어질 것 같았다.
보모 노릇은 사절인지라 차라리 아무것도 못하게 묶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뭐야, 용병왕 눈빛이 우리 길드 세하 형이 날 바라볼 때랑 비슷한데…….”
나처럼 욕을 하도 얻어먹고 다녀서 그런가? 주제에 눈치는 빨랐다.
“길드장님의 목숨줄은 용병왕님께 달려 있습니다……. 길드에서 하던 대로 하시지 마세요……. 어디다 버리고 가실지도 몰라요.”
“하하…… 자유 부길드장님, 그래도 우리 한국 팀 공략대장이신데 그러시겠습니까? 저희 모두 용병왕님 믿고 가는 건데요.”
이영우는 그러면서 슬쩍 내 눈치를 본다.
말은 그렇게 하긴 하지만 쉽게 믿지는 못하는 눈치다.
“그래도 용병왕께서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니, 이건 흔한 게 아니죠.”
목적은 거기에 있었나.
그는 곧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를 관찰한다.
내가 어느 정도 역량을 가진 자인지 가늠해 보는 것이다.
“눈빛이 마음에 안 드는데.”
“아,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는 슬쩍 웃으며 무해한 표정을 한다.
그 모습에는 여유마저 느껴진다.
‘길드장은 허투루 하는 게 아니었나.’
차은진이라는 훌륭한 패가 있으니 그녀의 보좌로 올라선 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능구렁이가 따로 없었다.
차라리 좀 싸가지가 없지만 알기 쉬운 홍현민이 상대하기 더 나을 정도.
‘천상 길드라…… 만만한 상대는 아니겠어.’
나 역시 그림자 길드라는 단체를 휘하에 두고 있으니 슬슬 길드들의 생태에 대해 알아야 할 때도 왔다.
그중에서도 이영우는 가장 요주의 인물로 기억해 두어야 할 듯하다.
지금은 웃으면서 대하지만 언제든지 상황이 변한다면 당장 뒤통수를 칠 길드라면 천상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왠지 모르게 미움받아 버린 것 같네요.”
이영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길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모든 정비가 끝난 듯 협회 분위기가 정리되고, 이윽고 김동식 협회장이 나타났다.
“진 헌터님, 말씀하신 대로는 했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미국의 헌터들까지 사실상 30명도 안 되는 인원이 공략하는 것인데……. S급은 A급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얼굴 가득 걱정이 묻어나는 그에게 대충 고개를 까닥였다.
곧 김동식은 모든 걸 포기한 것마냥 한숨을 쉰다.
이제 와서 말릴 순 없다 판단한 것이다.
“보통은 협회장으로서 절대 허락하지 않겠지만…… 진 헌터님의 말이라면 어쩔 수 없죠. 안 되는 것도 되게 하시는 거로 유명하셨던 분이시니까요. <검은 탑>에서만큼 활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그 정도였나? 꽤 빡셌던 퀘스트들이 많았지만 어느 정도 비빌 구석이 있어 보여서 진행했던 것들이었는데.
앞에서 전설이었느니, 불가능한 것은 전혀 없어 보였느니 칭찬을 하는데 머쓱해졌다.
욕에는 익숙해도 칭찬에는 익숙하지 않은지라 도대체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는 그런 나에게 빙그레 웃어 보인다.
“준비가 다 된 듯하니 헌터분들은 이동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비상 상황이니 서울 공항에서 이륙한다고 했나? 가까워서 좋네.”
대통령과 국빈만 이용할 수 있다는 서울 공항 구경도 해 보고, 전에 지구에서 회사의 노예로 일했던 때와 비하면 팔자 많이 폈다.
미국의 게이트가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상황이라는 거겠지.
아무래도 국력 차이가 있으니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도 있을 테고.
* * *
공항으로 이동하는 헬기 안.
강준하는 흔들리는 내부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여유롭게 검을 손질한다.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만,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온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미력하게나마 진 님을 돕겠습니다.”
“[감히 마왕님을 돕는다는 소리를 하다니. 연약한 인간 주제에.]”
드래곤의 몸에 있더니 정말로 동면이라도 하려는 듯 요새 부쩍 잠이 많아진 아렐리아가 어느새 깨어나 말을 거든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마법계인 아렐리아를 믿고 가는 것도 있다.
정신 계열이나 마법 계열은 골치 아프긴 한지라 내 힘으로 해결하기엔 귀찮은 일이 생길 경우 큰 몫을 할 테니까.
물론 아공간에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크레아시론도 있지만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을 때는 쓰지 못하는 게 단점이다.
“그래, 네가 있으니 든든하다.”
내 말에 아렐리아는 뿌듯한 얼굴로 거 보라는 듯 강준하를 쳐다본다.
알아듣진 못하지만 그녀의 몸짓에서 대충 짐작이 가는 듯 그의 표정이 묘해진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그거, 드래곤이 맞긴 합니까?”
“……아마도.”
“아마도라니. 일단 알겠습니다만, 해가 된다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런 펫 없이도 저와 진 님이라면 충분히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고도 남을 겁니다.”
“[저 미친 인간이 감히!?]”
‘보스 몬스터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만큼 까다로운 상대는 없긴 하다.
하지만 S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 자체는 사실 나에겐 별 감흥이 없었다.
저번 강원도 게이트 때의 크라켄급이라고 생각하면 아스티란에 있었던 고대 지하 감옥들보다는 난도가 떨어질 텐데, 그 정도라면 쉽겠지.
‘어차피 A급이나 S급이나 배때기에 칼 들어가면 죽는 건 똑같을 테니.’
다만 조금 걱정되는 것은 아스티란에서 거의 모든 몬스터를 잡아 봤던 것과는 달리 북아메리카 지역은 차원계가 달라 시오스라는 지역의 게이트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아스티란과 비슷한 생태계와 세계관이라고는 하지만 처음 보는 몬스터가 있을 수도 있다.
미국의 헌터들이 처치해 봤던 몬스터라면 공략법이 있어 다행이겠지만 만약 아니라면 맨바닥에 헤딩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지.
‘내가 다칠 일은 조금도 없겠지만 문제는 다른 헌터들.’
이미 호언장담을 해 놓은 상태기에 어디 하나 잘린 곳 없이 곱게 데려와야 할 것이다.
나는 만반의 준비를 위해 가지고 있는 스킬을 한 번 더 훑었다.
“스킬창.”
-극의의 일격(S) LV. 8
-절대 방어(SS)(모든 스탯이 10% 하락 중) LV. 5
-웨폰 마스터(L)(패시브) LV. 9
-하드 아머(S)(패시브) LV. 7
-강렬한 직감(S)(패시브) LV.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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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SS) LV. 9 (봉인 중)
-스피릿 소드(S) LV. M (봉인 중)
일단 그동안 아껴 뒀던, 탑에서 나온 스킬 봉인 해제권으로 공격력과 방어력을 올려 주는 패시브 위주로 봉인을 해제했다.
특히나 <강렬한 직감>은 위험한 상태를 예언에 가깝게 미리 경고해 주고 적의 약점이나 전투 판단에 도움을 주는, 내 밥줄 스킬이었다.
어느 정도 강해진 뒤로는 직감이고 나발이고 그냥 앞길 막는 게 있다 싶으면 때려 부수는 게 편해 무시한 지 좀 됐지만…….
‘지금이라면 이것만큼 적절한 스킬이 없다.’
<극의의 일격>이 단일 공격이기 때문에 몰려오는 적을 상대하기엔 적절하진 않기에 게이트에 입성하자마자 바로 보스 몬스터를 찾아 한 번에 모가지를 따 버리는 게 내 계획이었다.
물리 계열은 내가, 마법 계열은 아렐리아 담당으로. 다시 생각해도 완벽한 플랜이다.
물론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아렐리아를 보내 게이트 안을 샅샅이 뒤져 보게 하는 것.
내 예상이 맞다면 큰 소득이 있을지도 몰랐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말이지.’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현실은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라고.
요정계에 대한 정보를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고작 돈 따위를 위해 여기까지 몸소 나서지는 않았으니까.
“아렐리아, 목적은 잊지 않았겠지?”
“[게이트에 입성하면 요정계와 이어지는 차원문을 찾아라. 이거 말씀이시죠? 일단 시도는 해 볼게요.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지도…….]”
“나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 걱정 마라.”
“[게이트 안이 시오스 대륙 전부와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일부분만 떼어진 상태일 테니까요. 운이 좋길 바라야죠.]”
다른 건 몰라도 운은 자신 없는데.
시작도 전에 헛수고를 하게 되리란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