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4화
김지연은 내가 내민 서류를 들고 경악한다.
내용은 평생 내 밑, 그러니까 그림자 길드에 소속된다는 말들로 가득하다.
‘마침 연금술사로 이루어진 팀도 있겠다, 써먹기 딱 좋겠지.’
관리는 이도윤이 도맡아 해 줄 테니 나는 생색만 내면 된다.
지금은 뜨내기들밖에 없는 상태이니 김지연처럼 경험이 많은 연금술사가 온다면 그들도 좋아할 테고.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이 취업난 시대에 취직했다는 기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이건 그냥 노예 계약서잖아요!! 평생 도망갈 구석도 없는!!”
급여는 최저 임금에 휴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뿐.
사직서는 제출할 수 없고, 정년퇴직은 80세다.
‘그래도 정년까지 보장해 준 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말이지.’
특히나 고심해서 적은 부분이다.
“이게 말이 되는 계약서라고 보세요??”
“당연히.”
태연자약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뒷골이 땡기는지 목 뒤를 부여잡는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이다.
“치료제는 만들겠지만 그건 꼭 그림자 길드일 필요는 없잖아요! 제 부탁을 들어주신 건 고맙지만 다른 곳을 찾아보겠어요!”
“다른 곳이라…….”
그림자 길드가 아니라면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요새 감옥이 많이 좋아지긴 했나 봐. 연구 시설도 존재했던가?”
“그런 특례는 없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쩔 수 없겠군요. 조치를 취해 두겠습니다.”
“예?? 감옥이라뇨??”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말에 동조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내가 박신우와 쿵짝이 잘 맞을지는 몰랐는데.
제법 센스가 좋았다.
“너, 길드에서 영원한 잠을 만드는 데 가담하지 않았나.”
당연한 사실이다.
생판 다른 연구 파트인 그녀가 영원한 잠을 만들어 낸다는 길드의 비밀을 알아낸다?
그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본인이 무얼 만드는지는 정확히 몰랐을지언정 어느 정도 발을 담그긴 했을 것이다.
“그…… 그걸 어떻게……. 하지만 제가 만드는 게 정말 그런 건지 몰랐다고요!”
내 예상대로 그녀는 크게 당황한다.
계속해서 변명을 주절거리기에 단호하게 말을 했다.
“무지가 변명이 될 순 없지.”
“하지만…….”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애꿎은 서류만 쳐다본다.
이미 다른 길드원들은 철창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고민하는 기색이다.
“선택해. 길드에서 치료제를 만들 것이냐, 감옥에 갈 것이냐. 길드를 선택한다면 협회에는 내가 잘 말해 두겠다.”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지만, 진 헌터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 사건을 해결하신 분이시니까요.”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길드밖에 없잖아요…….”
“네가 피해자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길은 이것뿐임을 잘 알지 않나.”
“…….”
그녀는 영원한 잠에 빠진 자들을 생각하는지 낯빛이 어두워진다.
결국은 잔뜩 울상인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이걸로 조금이라도 잘못을 빌 수 있다면…….”
김지연은 조심스럽게 펜을 들어 사인을 했다.
모든 서류에 이름을 적고, 그녀는 가만히 나를 쳐다본다.
그 얼굴에는 죄책감과 후련함이 섞여 있었다.
“내가 길드장은 아니지만 환영하지. 생각보다 괜찮은 곳일 거야.”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악수를 요청하며 손을 내민다.
맞잡은 손에는 단단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런 우리를 보는 박신우가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말을 꺼낸다.
“……감옥은 가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았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박신우의 눈빛은 진지했다.
“이미 연락도 마쳤는데, 취소해야겠군요.”
……내가 그의 센스가 좋다는 생각을 했던가.
고지식한 박신우에게 그딴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렐리아 발톱의 때 만큼이나.
* * *
그토록 자신하더니, 김지연의 실력은 진짜였다.
내가 치료제와 재료 목록을 넘긴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녀는 치료제를 완벽하게 만들어 냈다.
그림자 길드의 연금술사와 손발이 잘 맞는지 요새는 잠도 아끼며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한다.
아직 영원한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백 명이 채 안 되지만 이 정도 속도라면 나머지도 시간문제였다.
“남은 건 이건데…….”
나는 침대에 누워 손에 들려 있는 물약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의 해방[??급]: 수준 높은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물약입니다. %$!#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태 이상의 효과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칠흑같이 검은 물약.
그저 검기만 한 게 아니라 오묘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아렐리아가 쓸어 담아 온 물약 중에 섞여 있던 것이다.
‘<주인님>이라는 자의 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그 물건 같은데 말이지.’
설명이 개같이 쓰여 있어 도무지 사용처를 알 수가 없다.
아무리 뚫어져라 살펴보아도 물약엔 입이 달려 있지 않아서, 자기소개를 해 주진 않는다.
‘일단 가지고 있자.’
언젠간 쓸모가 있길 바라며 인벤토리에 휙 집어넣었다.
사건도 모두 해결했겠다, 남은 건 느긋하게 시간을 죽이는 일뿐.
몇 날 며칠을 그저 침대에서 보냈다.
“[마왕니임, 언제까지 그러고 계실 거예요?]”
아렐리아가 가만히만 있는 내가 답답한지 뽀르르 날아와 투정을 부린다.
처음에는 어딜 나가지도 않고 그녀와 어울려 주자 좋아하긴 했지만 이 이상은 지겨운 듯했다.
“어차피 <검은 탑>은 다른 헌터들이 해결할 테고…… 여유 좀 즐기자.”
“[어휴, 이러다 침대와 한 몸이 되겠어요. 버섯이라도 자라는 거 아니에요?]”
헌터 몸에서 자라는 버섯이라.
그건 좀 흥미가 생긴다.
다른 생각에 빠져 버린 나를 그녀가 일깨운다.
“[이러지 마시고 친구라도 만나고 오세요!]”
마치 부모라도 된 것마냥 잔소리를 퍼붓는다.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걸 알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친구라…….’
그러고 보니 요새 강준하를 만난 지 오래되긴 했다.
최근에는 박민호와 어울려 다녔기에 잊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한번 길드로 찾아오라 연락받은 참이었다.
“아레스 길드라도 다녀올까.”
“[일단 어디라도 나갔다 와요! 휴식도 좋지만 자고로 인간은 부지런히 움직여야 된답니다.]”
인간도 아닌 것이 제법 인간처럼 말한다.
최근 TV에 열중하더니 이상한 말을 배운 모양이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그제야 만족한 듯 거실로 날아갔다.
“튜토리얼이 끝난 지도 시간이 제법 지났으니 강준하도 여유가 있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먼저 문자를 하자 칼같이 답장이 왔다.
[마침 오늘은 일이 없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충 씻고 준비하니 벌써 점심에 가까운 시간이다.
오랜만에 그와 함께하는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준하는 까탈스러운 성격처럼 입맛도 까다로웠다.
‘전부터 맛집 하나는 끝내주게 찾아냈지.’
멋진 외식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맛이 돈다.
바로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섰다.
점점 허기가 져 나도 모르게 속력을 냈는지 금세 아레스 길드에 도착했다.
당당하게 복도를 가로질러 길드장실의 문을 열었다.
“아, 오셨습니까. 오랜만에 뵙는군요.”
“어, 잘 지냈냐.”
건들거리면서 내 길드에 온 것마냥 편히 자리를 잡았다.
금세 늘어지는 나를 보고 그가 슬쩍 웃어 보인다.
“요새 협회에 자주 오가신다 들었습니다. 최근 그쪽은 미다스의 손 길드 때문에 바쁠 텐데…… 혹시 관련 있으십니까.”
관련이 있다 못해 내가 해결까지 한 일이었다.
내가 한 일이라는 걸 밝히고 싶진 않아 입 다물고 있으라 했기에 세간에는 협회의 업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뭐, 그런 거지.”
개떡같이 말했지만 그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벌써 점심시간이군요. 밖으로 나가시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강준하는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고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고를 생각도 없이 차려진 만찬은 예상대로 흡족했다.
“너…… 입맛 하나는 여전하구나.”
“칭찬이십니까?”
“니가 전부터 입맛 하나는 까다롭기가 하늘을 찔렀지.”
“딱히 그렇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아스티란에 있을 때 진 님께서 해 주신 요리를 먹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군요.”
내가 그 정도로 요리를 잘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모험을 하며 같이 다니던 몇몇 동료에게는 자주 음식을 해 줬었다.
요리하는 걸 즐기기도 했지만 그들의 음식 솜씨는 하나같이 지옥 구덩이에서 비벼진 음식물 쓰레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차마 내 입에 밀어 넣는다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강준하의 요리.’
그중 그의 솜씨가 가장 걸출했다.
생김새는 그럴싸했지만 맛은…… 오싹할 정도.
맛 표현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긴 하지만 사실이었다.
고블린의 숨통 정도는 단숨에 끊을 수 있을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상 독극물과 다름없었다.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십니까?”
“……아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일단 먹자.”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이어 가기 위해 다시 아레스 길드로 향했다.
오랜만의 외출이 생각보다 즐거워 시간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며 대화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내가 진 님이 계실 때는 찾지 말라고 했을 텐데.”
쭈뼛거리며 등장한 자는 아레스의 부길드장이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협회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협회?”
아직도 미다스의 손 길드 때문에 바쁠 협회라니.
이해가 가지 않아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도 들어 보니 심각하더군요. 자세한 건 1랭크 채널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가을하늘: 각 길드장님, 마탑 한국 지부장님, 그리고 진 님, 비상사태입니다. 당장 협회로 찾아와 주시길 바랍니다.]
뜬금없이 박신우의 다급한 호출.
나까지 불러 대는 거 보니 어지간히 심각한 사안인 듯한데.
“……대체 협회는 혼자 할 줄 아는 게 뭔지.”
강준하는 한숨을 쉬며 자리를 정리하고 외투를 걸쳤다.
행동 하나하나에 싫은 기색이 가득하다.
“랭크 헌터들을 모조리 부를 정도의 비상사태라니, 심각한 거겠지. 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네, 하지만 차로 얼마 걸리지 않으니 조금 있다 가시는 것도…….”
[가을하늘: 정말 비상사태이니 여유 부리면서 오시지 마십시오. 특히 자유 길드장님.]
[홍: 뭐?? 가만히 있던 난 왜 걸고넘어져? 나 진짜 바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치, 부길드장?]
[세하세하: ㅎㅎ…… 길드 일은 걱정하시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홍: 형?? 세하 형!?]
[영원: 또 무슨 일이려나…… ^^]
[가을하늘: 미국에 S급 게이트가 터졌습니다. 현재 각국에 도움 요청을 하고 있는데, 다른 길드들은 모조리 탑 공략에 들어가 있는 상태라…… 저희밖에 여력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