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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42화 (42/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2화

“[해야 할 일이라구요? 그냥 가면 안 되는 상황인가 보네요.]”

아렐리아가 눈치 빠르게 되물어 온다.

“[며칠 전에 그림자 길드에서 보내온 물약 하나 있었지? 투명화 물약과 같이 보내온 거 말이야. 연금조가 만들었다고 자랑하던 물건.]”

“[아, 그 미친 물약…….]”

잠시 물약을 찾으러 갔는지 그녀는 말이 없어진다.

5분 정도 지났을까.

곧 아렐리아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와~ 찾았어요. 다시 봐도 어이가 없는 물약이네요. 의도는 알겠다만 대체 뭔지…….]”

뭐긴 뭐야, 니가 마셔야 할 물약이지.

애써 할 말을 참고 그 물건에 대해 다시 떠올렸다.

[마나 소멸의 물약[B급]: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놀랄 정도로 역겨운 맛이 납니다. 마시는 즉시 복용자의 마나가 전부 사라지고 1시간 동안 마나가 차오르지 않습니다. 단, 복용법을 정확히 지켜 사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복용법: 1. 식후 30분 후에 섭취하세요, 2. 정확한 용량인 1L를 다른 음료와 함께 섞지 말고 전부 마시세요.]

상대방의 마나를 봉인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효과를 발휘하는 물약이다.

하지만 몰래 마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해 결국은 사용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곳에 섞어 마시게 할 수도 없을뿐더러, 녹색의 진득한 그것은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오게 생겼다.

심지어 1리터나 되는 양을 모조리 다 마셔야 하는데, 맛은 대놓고 역겹다고 쓰여 있을 정도.

“[이거 보시자마자 욕하시지 않으셨나요? ……설마 사용하시려고요? 지금 가지고 가면 되는 거죠? 우웩~ 누가 먹을진 모르겠지만 불쌍하네요.]”

그녀가 닥쳐올 불행을 인지하지 못하고 해맑게 농담을 걸어온다.

평소라면 나도 웃으면서 대꾸해 줬겠지만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 가기만 한다.

나는 곧 벌어질 안타까운 상황에 입술을 깨물었다.

“[……마셔.]”

“[……네? 어휴, 이게 통신이 잘 안 되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네요. 죄송하지만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거, 다 마시라고.]”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다.

곧 그녀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차마 말리지도, 대답하지도 못한 채 긴 시간이 흘러갔다.

“[이걸, 이 거지 같은 걸, 마시라고요? 제가요? 진짜 제가요??]”

“[그래, 네가 마셔야 해. 그래야 소환할 수 있다.]”

이곳에 걸려 있는 마법 결계의 종류를 알 순 없었지만 확실하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흔히 결계는 침입자를 걸러 내고 막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일반인이라도 미약한 마나는 존재한다.

아마도 그걸 감지하고 허락받지 않은 자가 나타난다면 바로 경보가 울릴 것이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안 되겠지.’

건물 보안은 철저했지만 그뿐이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무방비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하지만 그 점이 그들의 자신감을 보여 준다 생각했다.

마법이든, 아티팩트를 사용하든 간에 조금이라도 마나가 방출되는 순간 바로 감지되는 건 시간문제일 터.

내가 아렐리아에게 물약을 먹이는 것도 그 이유였다.

“[흐으읍…….]”

곧 단단히 마음먹은 그녀의 심호흡 소리가 들린다.

‘설마 포기했나?’

아무리 기다려도 마시는 것 같지 않아 의아했다.

다그치려는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우욱…… 웁…….]”

듣기만 해도 역한 효과음이었다.

당장이라도 자유를 위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물약과 아렐리아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토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 흐흑…… 우웁…… 으흑흐흑흑……. 우우욱!!]”

울지도, 토하지도 못하는 그녀.

같이 붙어 다닌 세월이 제법 되다 보니 정이 들었나 보다.

누굴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오랜만이다.

“[아, 그리고 투명화 물약 하나도 먹고 와.]”

연금술은 제작 시 마나를 조금이라도 사용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물약은 그렇지 않다.

마셔 버린다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마력을 느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존재한다.

결계뿐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감지할 수도 없는 것.

“[켁켁…… 다 마셨어요.]”

침울한 아렐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곧 그녀를 소환했다.

‘펫을 소환하는 건 시스템의 힘이니까.’

내 예상대로였다.

펫창에 있는 권속을 소환하는 건 마나를 소모하지 않기에 결계에 감지되지 않는다.

투명화 물약을 마셨지만 펫창에 등록된 상태여서 그런지 반투명하게 보이는 그녀가 똥 씹은 얼굴로 나타났다.

“[우물우물…… 왜 마시고 와야 되지 싶었는데…… 마법 결계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마나를 감지할 테니까.]”

딱히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아렐리아가 추측을 마쳤다.

“[외부면 모를까, 내부 보안이야 그 정도 마법만 걸려 있겠지.]”

“[그렇죠. 밖에서 침입하는 거도 아니고, 안에서 적이 나오리라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맞은편 소파에 앉은 그녀의 뺨은 한껏 빵빵하게 부풀어 있다.

아마 물약의 맛을 이겨 내려 사탕이라도 가져온 듯하다.

대체 그 작은 볼에 몇 개나 물고 있는지 몸에서 딸기향이 날 정도이다.

“[잘 아네. 일단 가능한 한 많이 이곳저곳 돌아다녀 봐. 그중에 뭔가 화내는 듯한 여자가 있다면 그녀의 대화를 엿듣고 와.]”

“[네네…… 여기 와서도 계속 이렇게 대화하시는 걸 보니 조심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인가 보네요.]”

“[그야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두고 태연하게 나가는 것 자체가 이상하니까.]”

분명 에이릴은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 와중에 사무실이라는 비밀스러운 공간에 나를 두고 본인만 빠져나간다?

‘이곳에 그 정도로 중요한 물건이 없거나, 아니면 나를 지켜보고 있던가.’

조심스러운 그들의 특성상 후자일 가능성이 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급하게 나간 건 사실이지만 지금 이 상황 자체는 일종의 연출.

내가 의심스럽게 군다면 치료제를 넘기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여러 조건을 걸며 까탈스럽게 굴거나.

‘오자마자 치료제부터 받았어야 했는데.’

“[그럼 다녀올게요. 마나가 없어도 느낄 수는 있으니…… 다행히 멀지는 않아 보이네요.]”

그녀는 사탕을 까드득 씹어 삼킨 채 열려 있는 문밖으로 나간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김이 나던 커피가 미지근하게 식어 갈 때쯤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찾았어요. 엄청나게 화내면서…… 누굴 죽이라고 하는데요? 이름이…… 김지연?]”

“[정확히 찾았군.]”

나는 느긋하게 소파에 기대어 맞은편에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등 뒤, 열려진 문밖의 상황이 유리에 비쳐 보인다.

길드원 몇 명이 날카로운 눈으로 날 주시하며 숨어 있었다.

‘일부러 문을 열고 간 거군.’

예상했던 바였기에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그나저나 지켜보고 있으면 커피나 더 주고 가지, 손님 대접이 개차반이었다.

“[어? 화내다가, 갑자기 웬 가면 쓴 사람이 다가오니까 쩔쩔매네요.]”

‘가면? 김지연이 말했던 후원자 중 하나인가.’

그런 것치고 가면이라니.

수상하다 못해 이상할 정도다.

가면까지 쓰면서 모습을 감추려는 자치고 구린내가 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엄청 수상한데요?]”

그녀는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신난 말투로 말한다.

처음에는 불만스러웠지만 이 상황 자체가 마치 스파이라도 된 것마냥 재밌게 느껴지는 듯했다.

뭐, 스파이보다는 드래곤 모양의 드론에 가깝긴 했지만.

“[연구 성과가 왜 이렇게 느리냐고 다그치고, 여자는 계속 죄송하다고 굽실거리고 있어요.]”

여기까지는 김지연이 말한 대로 뭔가 음모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거짓이나 과장이 섞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진실만을 말했던 것 같다.

점점 커지는 상황에 절로 흥미가 돋아 좀 더 아렐리아의 말에 집중했다.

“[늦긴 했지만 헌터들을 영원한 잠에 재우는 것은……일주일 후 정도면 시행할 수 있다고. 어? 마왕님, 영원한 잠은 어제 병원에서 봤던 그거 아니에요??]”

“[헌터를, 영원한 잠에?]”

그녀가 전해 온 소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일반인들은 실험 상대였나.’

그들의 목적은 단순히 영원한 잠을 이용한 돈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상이 헌터라면 달랐다.

고객층 좀 늘려서 크게 한탕 해 보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닐 것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연금술사도 마왕님을 재울 순 없겠지만…… 이거 심각한 거 아니에요?]”

심각하다 못해 보통 사건이 아니다.

처음에는 김지연이 매달려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해 넘겼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내가 나서야 했다.

‘젠장, 내 소중한 노동력을…….’

뭣 때문에 앞으로 공략할 <검은 탑>에 대한 정보를 협회에 넘기고, 물건들까지 친절하게 만들어 넘기는가.

모두 꿀 좀 빨아 보려는 계획에서 시작했다.

공략할 헌터들이 잠들어 버린다면 모두 허사로 돌아갈 게 분명하다.

‘내 노고도 모르고 감히.’

“[어? 가면 쓴 자는 길드장을 만나러 간다고 하고, 사람들은 돌아가는데요. 아마 마왕님께 가는 것 같아요.]”

“[일단 그자를 쫓아가]”

나는 표정 관리를 하며 등장할 에이릴을 기다렸다.

곧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늦었군요. 다시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할까요?”

“급한 일은 모두 마무리가 되었나 보군.”

“마무리라…… 네, 아직이지만 곧이겠죠. 원인이 사라지면 되니까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말이야. 곧 가야 할 것 같은데.”

“저런, 바쁘신 손님을 두고 제가 너무 여유를 부렸네요. 뭐, 생각할 시간도 좀 더 드려야 하겠고요. 그럼 다음을 기약하기 전에…….”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맞은편 소파에 다시 앉는다.

그러면서 인벤토리를 열더니 내 앞에 물약 하나를 놓는다.

“이건 잘 지내보자는 선물입니다. 부디 받아 주세요.”

고급스러운 유리병 내부에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찰랑인다.

“설마 치료제인가?”

“네, 맞습니다. 박민호 헌터의 여동생에게 쓰시면 될 겁니다. 아시는 것처럼 가격이 상당하지만 선물에 돈을 받을 순 없죠.”

“가짜는 아니겠지.”

“물론 아닙니다. 용병왕님을 속이다니…… 그런 무서운 일은 할 수 없죠.”

수십억짜리를, 그것도 1년에 몇 병 만들지도 못한다는 걸 그냥 주다니.

평소대로라면 배포가 큰 그들이 마음에 들었어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날카로운 눈으로 물약을 한번 살피고 재빨리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박민호 헌터도 치료제를 기다리고 계실 테니, 저희는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죠.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다음에도 이 인연이 계속되면 좋겠군요.”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 건물을 빠져나왔다.

멀리서 환한 웃음으로 배웅하는 에이릴이 보인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미소였다.

차에 시동을 걸고 5분 정도 달리자 건물은 저 멀리 떨어져 보인다.

‘이쯤이면 되겠군.’

차를 인적 드문 곳에 세우고 인벤토리를 뒤적여 쓸 만한 물건들을 찾았다.

몇 개를 착용하고 난 뒤 아직 연구소에 있을 아렐리아에게 말을 건넸다.

“[아렐리아, 지금 상황은?]”

“[여기 구조 엄청 복잡하네요. 지금은 길드장 전용 연구실이라는 곳에 왔어요. 처음에는 영원한 잠에 대해 이야기하나 싶더니…… <주인님>을 실망시키지 말라고 하는데요. 너는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주인님이라? 대체 누굴 말하는 거지?]”

<주인님>?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단순한 후원자는 아닐 거라 생각했지만 미다스의 손 자체를 쥐락펴락하는 정도인지는 몰랐다.

내 본능이 앞으로 상대하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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