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1화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 네??”
그녀는 떡하니 벌린 입을 도무지 다물지 못한다.
“왜?? 왜라뇨??”
그러고는 고장 난 기계마냥 왜냐는 소리밖에 하지 않는다.
당연히 도움을 줄 거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정보야 이만하면 들을 만큼 들은 것 같고…… 생각보다 별거 없군.’
영원한 잠 자체를 만들어 낸 것은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거대한 음모니, 뭔가 있다느니 하는 그녀의 말은 별로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길드에서 퇴출당한 원한으로 복수라도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도 자신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려서.
“이 상태라면 사람들이 영원히 잠들어 있을 거라니까요? 몇백 명이나 되는데, 그들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그래서 그게 뭐.”
“아니, 미다스의 손 길드가 더 이상 저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그걸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았다.
미다스의 손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든, 아니면 그 이상의 포부가 있든 간에.
나와 연관성이 없는 이상 나서는 것이 더 이상했다.
“치료제를 몇 개 구한다면 제가 분석해서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럼 사람들을 모두 깨울 수 있다고요! ……아니, 하다못해 영원한 잠 생산 시설이라도 없앤다면!”
“없앤다면 그들이 얌전히 물러설 것 같은가? 알려진다면 협회는 물론 모두와 척을 질 일이야. 그 정도 생각 없이 일을 벌이진 않았을 거다.”
오히려 들켰다 싶으면 잠적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다면 이미 영원한 잠에 빠진 사람들은 치료제를 절대 구할 수 없게 된다.
지금 그나마 목숨을 유지시키는 석화를 막는 물약조차 구하지 못한 채로.
“지금처럼 목숨줄 붙여 놓고 있는 것도 미다스의 손이란 걸 생각해.”
“아직 치료제는 만들지 못하지만 그 정도는 석화 물약쯤은 저도 제작할 수 있어요!”
“혼자서? 참으로 대단한 연금술사 납셨군.”
그녀는 24시간 공장을 풀가동시킬 수 있는 크레아시론이 아니다.
하물며 물약을 만드는 데 드는 재료도 한두 푼이 아닐 터다.
김지연의 꾀죄죄한 몰골.
연구에만 몰두하는 전형적인 연금술사의 모습이었다.
‘뭔가 뒷배가 있어 보이지도 않고.’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차라리 내가 아닌, 협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더 맞다.
대의를 위해 움직이는 건 나보다는 헌터 협회 쪽이 더 어울린다.
그들이라면 김지연과 비슷한 실력의 연금술사 한둘 정도는 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정도 숫자로는 미다스의 손이 제작하는 물약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양이겠지만.
“……정말 이기적이시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진심으로 웃고 말았다.
그런 날 보는 김지연은 더욱 얼이 빠진 표정을 한다.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던가.
박민호를 돕기로 생각한 것도 그저 그가 내 사람 중 하나라서일 뿐.
“차라리 협회에 말해 보지 그래. 솔직히 협회에서도 당장 이 상황을 끊어 버릴 타개책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인 나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절망적인 상황에 낙담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울고 있기라도 한 모양인지 그녀의 온몸은 잘게 떨린다.
“울 거면 나가서 울…….”
“울긴 누가 운다 그래요!? 당신 말대로 협회에 갈 거예요! 그리고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나면 용병왕이 얼마나 재수 없는 사람인지 온 세상에 떠벌리고 다닐 거라고요!!”
쾅-!!
고개를 든 얼굴에는 눈물 자국은커녕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분을 못 이기겠는지 탁자를 한 번 발로 차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 없는 탁자만 저 멀리 쓸쓸하게 나뒹굴었다.
아까 핸드폰 던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녀는 연금술사가 아니라 공격계 헌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보니 근골이 제법 괜찮은 게…….’
내가 심각하게 그녀의 자질에 대해 고찰하고 있을 때도, 그녀는 못내 분함을 참지 못하겠는지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두고 봐요!!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요!”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치던 그녀는 말없이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야 무섭기는 한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진짜예요……!”
도망가듯 카페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녀는 내가 뒤늦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달리기까지 한다.
“……뭐지, 저 미친 여자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자코 두고 보기만 할 뿐이었다.
* * *
다음 날, 점심시간이 다 될 무렵 박민호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님, 어제 그 에이릴이라는 간부에게서 연락 왔습니다. 주소 하나를 보내왔는데…… 거기로 좀 와 달라고 하네요.]
문자에 찍혀 있는 주소를 보니 경기도 외곽 부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본사와는 다르게 연구실은 한적한 곳에 위치한 모양.
오매불망 완치 물약만을 기다리고 있을 박민호를 위해 준비를 마치고 바로 연구소로 향했다.
차로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좁은 산길을 따라갔더니 건물 하나가 보인다.
“어서 오세요, 진 헌터님.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착한 곳에는 에이릴과 길드원 몇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는 됐고, 연구실부터 가지.”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건물 안은 미로처럼 복잡했다.
곳곳에는 경비로 보이는 헌터들이 무장한 채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저히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문을 지나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슬슬 짜증이 나는 차에 그녀는 수수한 철문 앞에 서서 나를 향해 돌아본다.
“여기입니다. 내부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죠? 저희의 주요 사업들이 모여 있는 연구소라 그렇습니다. 그만큼 보안 마법도 상당하답니다.”
허튼짓할 생각은 하지 말라는 듯 그녀는 빙그레 웃는다.
아무리 나라도 여기서까지 행패 부릴 수 없다는 양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영원한 잠에 빠지면 천천히 돌처럼 굳어 가는 건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 연구실은 석화를 막기 위한 1차 보조 물약을 만드는 곳입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들어간 곳은 넓은 연구실이었다.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는 연금술사가 수십 명은 되어 보인다.
“여기 있는 마나초가 보이시죠? 방금 따온 듯 싱싱해 보이지 않나요? 저희는 한낱 마나초도 최상의 품질을 쓰고 있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약초는 익히 보던 마나초였다.
그녀의 말대로 과연 지금 다시 풀밭에 심는다 해도 자라날 듯 뿌리조차 손상되지 않은 상등품이었다.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웃음을 흘렸다.
‘흔히 들어가는 재료 정도만 보여 준다는 건가. 뭐, 그 정도는 예상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연금술에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마법 재료들만 즐비했다.
물론 연금술은커녕 희귀한 약초를 보면 음식에 넣기 바쁜 내가 그 재료를 본다 해도 똑같이 만들 순 없다.
연금술은 조금의 순서만 틀려도 실패하는, 어려운 학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혹시 모를 사태를 방비한 것이다.
‘이 정도 일을 꾸미는 길드가 허술해도 그건 그거대로 이상할 노릇이지만.’
그러니까 이처럼 당당하게 나를 연구소로 초대할 수 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럴싸한 이곳을 보고 납득할 수 있게.
“저희 연금술사들은 모두 B랭크 이상의 헌터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실력은 국내에서도 익히 잘 알려져 있죠. 해외에 있는 연금술 길드라 해도 저희만큼 체계적이진 않죠. 진 헌터님이시니까 알려 드리는 건데…… 저희가 만드는 물품들은 모두 해외에서도 인정받은 지 오래고, 곧 미국에도 지사를 낼 예정이랍니다.”
뭔가 거대한 비밀이라도 말해 주는 양 그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속삭인다.
그러니까 우릴 믿고 어서 투자해. 같이 손잡으면 더 좋고.
에이릴이 마음속으로 하는 말이 들릴 지경이다.
“단순한 마음으로 나를 이곳까지 초대한 게 아니군.”
“진 헌터님이시라면 그 정도 예상은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를 사무실로 보이는 공간으로 데려갔다.
테이블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커피와 약간의 다과가 올라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희는 용병왕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와 연금술 길드라…… 연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여지까지 나와 연이 닿기 위해 애쓰는 단체들은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 무력을 탐내는 곳들이다.
물약 팔이나 하는 연금술사들에게 그것이 필요하리라 생각되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 헌터님이 맺고 계신 인연들이 필요하다 할 수 있겠죠. 아레스 길드부터 시작해 대한 헌터 협회까지요. 그들에게서 받는 신임과 지지가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꽤 재밌는 상상을 하는군그래. 하지만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아서. 나에게 떨어지는 이익은?”
“역시 말이 통하실 줄 알았습니다. 길드의 순익 일부분을 떼어 드리죠. 저희는 앞으로 진 헌터님이 쓰시는 모든 물약을 제공해 드릴 겁니다. 그걸 사용하시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신다면 저희의 신뢰도는 급상승하겠죠.”
“지금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건가.”
“이미 저희의 물약은 완벽합니다. 그 안정성도, 유명세도요. 하지만 월드 랭킹 1위가 믿고 애용하는 물약이라면…… 협회에서도 저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죠.”
그녀는 자존심이 상한 듯 협회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협회에서도 이렇다 할 증거는 아직 없다지만 미다스의 손이 의심스럽긴 매한가지였나 보다.
“진 헌터님은 그저 저희 물약만 쓰시면 됩니다. 그처럼 간단한 일에 저희 길드의 막대한 수익을 떼어 드린다는 거고요. 고민하실 거리가 아니죠.”
내가 거래에 흥미를 보이는 척하자 그녀는 신이 난 듯 계속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계약을 받아들일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내가 먼저 밝히진 않겠지만…… 곧 침몰하는 배에 탑승할 순 없지.’
들키지 않을 비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지금이야 영원한 잠에 대해 잘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시기상조.
언젠가 알려질 사건에 내 이름이 협력자로 들먹여진다?
얻게 될 대가가 엄청난 게 아니라면 그건 아무리 나라도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생각하실 시간도 조금 필요한 듯하니 저희와…….”
“에이릴 님!! 큰일 났습니다!”
거의 다 넘어왔다 생각했는지 한층 더 자신만만 해졌던 에이릴의 얼굴이 삽시간에 일그러진다.
그녀는 불쾌함을 숨기지 못한 채 불청객을 쏘아본다.
“내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찾아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게 아닙니다! 김지연…….”
다급히 찾아온 길드원이 말을 얼버무리며 내 눈치를 슬쩍 본다.
에이릴 역시 심상치 않은 사안이라 생각하는지 다가가 귓속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봤자 사무실이 망망대해도 아니고, 그들의 대화는 내 귀에 생생하게 들려온다.
“김지연이 어제처럼 난동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오늘은 협회에서요!”
“뭐? 안 말리고 뭐 했어??”
“길드원들이 말리기 위해 파견 나간 상태입니다만, 박신우 지부장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하이에나 같은 놈이…….”
그녀는 차가운 눈초리로 길드원을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진 헌터님, 죄송합니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금방 끝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흔쾌히 손짓으로 대답하고 커피잔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그녀는 문을 제대로 닫을 생각도 못한 채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내심 궁금했지만 쫓아갈 순 없는 노릇이고.
방법이 없나 머리를 굴리다 마음속으로 아렐리아를 불렀다.
“[아렐리아]”
“[네에? 항상 말을 하셔서 직접 부르시더니…… 어쩐 일로 이렇게 대화를.]”
“[잠깐 와 줘야겠다. 아, 그 전에 잠깐 해야 할 일이 있어.]”
나는 집안에 굴러다니고 있을 재밌는 물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