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0화
“젠장, 입부터 틀어막아!!”
길드원 한 명이 주변에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아무도 듣지 못했겠지만 일반 사람들과는 월등히 다른 청력을 가지고 있는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려온다.
‘……만들어 냈다고? 설마 영원한 잠에 대해 잘 아는 자인가.’
다급히 길드원 몇 명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자연스럽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김지연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치지만 성인 남자 몇 명이 작정하고 힘을 쓰니 이겨 내지 못한다.
한동안 물 밖에 나온 물고기마냥 퍼덕거리던 그녀도 힘이 빠졌는지 길바닥에 주저앉는다.
몸부림 탓에 그녀가 쓰고 있던 안경이 바닥에 부딪혀 깨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웁!! 우웁!!”
“김지연 헌터,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정신적 치료가 필요하시면 저희가 비용을 모두 내어 드리겠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지셨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중 직위가 있어 보이는 자가 다가오더니 안타까운 듯 말한다.
정말로 전 동료인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완벽한 메소드 연기.
올해의 헌터 연기상이 있다면 당연히 저자가 수상하게 될 것이다.
“역시 미다스의 손이네. 퇴출당하긴 했어도 동료긴 했다, 이건가.”
“길드 복지도 끝내준다고 들었는데…… 나도 연금술사였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길드처럼 게이트나 돌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것도 아니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이 상황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헌터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배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그의 친구였다면 진심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을 적극 추천해 주었을 것이다.
상황은 점점 고조되어 모두 끌어안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흑흑…… 같이 연구실에서 밤샘 연구했을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제발 치료에 집중하시고 다시 돌아와 주세요.”
“으흐흑……!! 가족 일 때문에 그토록 힘드셨던 걸 진작 알았다면 슬픔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웁!? 읍읍!!”
‘허, 각본 한번 잘 짜네.’
스토리는 이미 클라이막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난다면 이제 김지연이 사실은 불치병에 걸린 상태였다, 따위의 내용까지 나올 것 같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인벤토리에 팝콘이 있던가…….’
이미 주도권은 미다스의 손 쪽으로 돌아온 상태이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그들을 지켜보다, 이제는 천천히 조용해졌다.
흥미를 잃은 관중들도 하나둘 자리를 뜬다.
“김지연 헌터, 이제 좀 진정이 되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밤늦은 길에는 김지연과 길드원 몇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거리가 제법 떨어진 곳에서 몸을 숨기고 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하, 쫓겨났으면 얌전히 지낼 것이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보는 눈이 완전히 사라졌다 생각했는지 그들은 막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윽…… 침…….”
그중 한 명이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는다.
그러곤 더러워져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닥을 향해 던진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손수건이 그녀의 손등에 내려앉는다.
“이…… 나쁜 놈들아…….”
김지연은 울먹이며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기운이 빠져 버렸는지 말에는 힘이 없다.
“카악- 퉤. 덕분에 퇴근 시간이 늦어졌네.”
모두가 돌아가고 차가운 밤공기가 감도는 길거리에는 김지연만 남아 훌쩍인다.
완전히 길드원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모습을 드러내 그녀의 앞에 섰다.
“김지연이라고 했나?”
“누…… 구? 헉…… 용병왕?”
나를 확인한 그녀의 눈물 맺힌 눈망울이 더욱 커진다.
놀란 얼굴로 멍하니 있던 그녀가 소매를 끌어다 눈을 거칠게 비빈다.
“훌쩍…… 무슨 일이시죠.”
“우리, 잠깐 할 이야기가 있을 것 같군.”
“예……? 저랑요?”
“일단 여기는 보는 눈이 있을 테니 저쪽으로 가지.”
턱짓으로 어두워 보이는 작은 공원을 가리켰다.
침침한 가로등만이 간신히 주변을 밝히는 곳이다.
인적이 드문 만큼 보는 눈이 없는 곳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장소였다.
“저, 저기…… 저길 가자고요? 저랑? 둘이?”
‘저기가 뭐 어때서 그러지? 한적하니 좋아 보이는데.’
그녀의 눈에는 공원이 지옥의 아가리로 보이는 듯 점점 사색이 되어 간다.
“예!? 나중……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요? 하다못해 나중에 통화로…….”
겁에 잔뜩 질린 그녀가 결사반대를 외치며 반항했다.
아무리 밤이 늦어 사람이 없는 곳이지만 이러다간 아까와 같은 구경거리가 되어 버릴 것이다.
심지어 내 얼굴을 아는 자가 많으니 사진이라도 찍힐지도 모른다.
‘가녀린 여자를 핍박하는 용병왕, 같은 기사가 나오겠군.’
나는 이제는 경기라도 일으킬 듯한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듯한 그녀를 달랠 자신은 결단코 없다.
차라리 추후 진정되면 만나기 위해 연락처를 받는 게 나을 듯싶었다.
“그럼 전화번호라도 말해.”
“전화번호요!? ……아! 저 핸드폰 없는데요??”
“……집 전화번호는?”
“저 노숙하는데요!?”
‘진짜로 미친 건가.’
김지연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한다.
미다스의 손 길드는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정신 병동에 처넣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였다.
따르릉-
“히익!!”
때마침 어디선가 벨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위치는 그녀의 연구복 주머니였다.
“아니, 이게 왜 여기 있지?? 제 거 아닌데요!”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냅다 허공으로 던져 버렸다.
전직 투포환 선수라 생각될 정도로 깔끔한 실력이 돋보인다.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버린, 핸드폰이었던 것.
그걸 지켜보는 우리 사이에 잠깐 적막이 감돈다.
“……아직 할부 1년도 넘게 더 남았는데에에에…….”
증거인멸을 시도하던 그녀는 그제야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허망한 눈으로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을 쳐다본다.
사라져 버린 핸드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지만 칠흑처럼 어둡게 변해 버린 하늘은 보인다.
더 이상 그녀의 정신 나간 짓거리에 어울려 줄 시간이 없었다.
“……그럼 카페라면 괜찮겠지.”
“……네.”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모두 한 그녀가 조용히 대답했다.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카페의 간판이 보이기에 뒤돌아 향했다.
조심스럽게 내 뒤를 쫓는 김지연과 함께 곧 카페에 도착했다.
다행히 마감에 가까운 시간인지 정리를 하고 있는 듯한 아르바이트생만 보인다.
“죄송하지만 저희 마감…… 헉! 용병왕……?”
“마실 건 필요 없어. 공간을 좀 빌리고 싶은데.”
카운터로 다가가 인벤토리에서 현금 다발을 꺼냈다.
대충 100만 원 정도 되는 액수였다.
“헉!? 아침까지 쓰셔도 됩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세요!”
그는 눈치껏 돈을 챙겨 들고 카페 밖으로 뛰쳐나갔다.
센스 좋게 영업 중이라 적혀 있는 팻말을 뒤집어 놓은 것은 덤이다.
나는 놓여져 있는 의자 중 대충 하나를 잡고 걸터앉았다.
“앉아.”
“예…… 예……. 어휴, 이게 무슨 일이람…….”
그녀는 허둥대며 내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지…….’
한동안 카페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점점 다리까지 떨어 대는 그녀가 당장이라도 도망치려는 그때, 나는 입을 뗐다.
“아까 병원 앞에서 있었던 일을 보았다.”
“아. 그걸 보셨나요…… 부끄럽네요…….”
김지연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미다스의 손에 있었다고. 쫓겨난 거라 들었는데.”
“쫓겨나다뇨!? 아니, 쫓겨나긴 했지만!! 그건 그놈들이……!”
소리치던 그녀가 곧 내 눈치를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아마 초면인 내가 미다스의 손과 어떤 연결 고리가 있는 건지, 신뢰할 수 있긴 한 건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나는 한숨을 길게 쉬고 말을 이어 갔다.
“믿든 안 믿든 자유지만 나는 미다스의 손과 관련이 없어. 내가 혼자 활동하고 있는 건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겠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까 네가 말했던 말이다. 영원한 잠을 그들이 만들어 냈다고 하는 것 같던데, 맞나?”
“…….”
어지간히 의심이 많은 성격인지 그녀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을 떼굴떼굴 굴리는 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늠해 보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도 아까 전 상황까지 보았지만 혹시나 있을 그녀와 미다스의 손 관계를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제가 아까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나와 그녀의 눈이 마주친다.
나뿐만 아니라 김지연 역시 나를 어떤 사람인가 재어 보고 있었다.
‘재밌군. 감히 나를 저런 눈으로 보다니.’
보기보다 제법 신중한 성격으로 보인다.
어디 산골짜기에 있지 않은 이상, 내가 누구인지는 보고 들었던 게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오직 자신의 눈으로 나를 직접 판단하려 하고 있었다.
‘이게 연기일 리 없지.’
지금은 나로 인해 겁을 먹어 흔들리고 있지만 투명한 시선에는 곧은 의지가 보인다.
나는 그동안 겪었던 여러 인간군상으로 인해 사람 하나는 잘 본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녀는 확실하게 이걸 말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도 영원한 잠이라는 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그걸 유일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미다스의 손까지도.”
“네에?? 아니, 그걸 어떻게…… 헙!”
벌떡 일어나 소리친 그녀는 바로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을 아꼈다.
굳이 뒷말은 듣지 않아도 필요가 없었다.
이미 행동에서 그녀는 모든 걸 보여 주고 있었다.
‘보아하니 내 생각이 정답인가.’
“병원에서 치유받고 있는 환자들…… 영원한 잠을 만들어 냈다는 건, 그들을 말하는 거겠지? 이미 검증을 받은 물약에 손쓸 수 없으니 그걸 담은 병 자체에 손을 썼더군.”
“그것까지 알고 있다니……. 수면 마법은 길드 내에서도 몇 명밖에 알지 못하는 건데…….”
“석화를 막는 치료제와 완치 물약은 밖에 유출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관리하고 들었다. 표면상으로는 특허 때문이라지만…… 혹여 고위급 마법사가 알아챌까 그런 거겠지. 맞나?”
“……네, 정확해요. 마법사는 아니시라고 들었는데…… 마력의 흐름을 보는 눈이 좋으신가 보네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부서진 안경 뒤로 침착함을 찾은 눈에는 굳은 결심이 내비친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고 계시네요. 제가 말한 영원한 잠을 만들어 냈다, 라는 말은 말 그대로입니다.”
“그대로라니…… 설마.”
“네. 통칭 영원한 잠, 길드 내에서 부르는 명칭은 프로젝트S. 게이트가 열리는 소란을 틈타 미다스의 손에서는 연금술을 이용한 가루를 살포합니다.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아까보다 후련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간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계획 중 일부분일 뿐, 그들은 더 거대한 음모를 꾸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걸 눈치채자마자 길드에서 퇴출당한 것이고요.”
“음모라…… 이 정도 규모의 일을 홀로 벌이진 않았을 테고.”
“말씀대로 길드의 단독적인 범행은 아닌 거 같아요. 정기적으로 드나드는 외부인이 있었거든요. 저에게는 길드의 후원자라고 했지만 그런 것치곤 연구팀장이 지나치게 저자세였던 게 마음에 걸려요.”
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더니 내 손을 마주 잡는다.
손을 빼려 했지만 떨리는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저에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런 사실까지 도달한 사람도요. 듣자 하니 이 사건에 관심이 크신 것 같은데, 제발 저와 함께 그들을 무너트려 주세요…….”
나는 그녀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한차례 정리했다.
미다스의 손과 영원한 잠 사이의 연관성이 생각보다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