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8화
‘영원한 잠이라고? 뉴스에서 지나가면서 들었던 것 같은데…….’
저들이 저렇게 잠들어 버린 것에는 영원한 잠이라는 병이 원인인 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만 보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어째 요새 협회 올 때마다 박민호와 마주치는 기분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했다.
‘저 녀석, 얼굴이 왜 저래?’
하지만 당연히 웃고 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항상 생글생글 미소를 띤 채 나사 빠진 것마냥 다니던 녀석이라 의문이 들었다.
“다들 비켜 주세요, 사람들을 옮겨야……. 아, 박민호 헌터…….”
상황을 정리하는 협회 직원이 박민호를 보고 슬금슬금 말없이 멀어진다.
명백하게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선배님, 박민호 헌터님에게도 비켜 달라 해야 하지 않나요?”
“쉿, 조용히 해. 박민호 헌터님 여동생 일 잊었어?”
그의 여동생이라면 항상 말하던 박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대학생이었다.
과거 용병대 시절, 술만 마시면 버릇처럼 동생들의 이름을 말했기에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상황에서 그의 여동생에 대해 말이 나오니 뜬금없기 그지없었다.
좀 더 자세히 들어 보려는 찰나, 멀리 있던 박민호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해 온다.
“아, 형님. 여기서 또 뵙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그래, 너도 별일 없었나.”
“네, 저야 항상 똑같죠. 형님도 협회에 볼일이 있으셨나 보군요. 그나저나 하필 이런 일을 보게 되시다니…….”
그는 씁쓸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무언가 놓치기라도 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시계를 본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죄송합니다, 형님. 간만에 뵈어서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지만…… 병원에 가는 날이라서요.”
“병원? 어디 다친 건가.”
“아, 동생 때문입니다. 병상에 누워 있던 기간은 좀 됐습니다. 눈도 뜨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서요. 간병인이 있긴 하지만 미덥진 못해서…….”
동생들이 있다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그중 한 명이 병원에 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아마 귀환한 뒤에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교통사고라도 당했나. 아니, 그래도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발달된 현대 의학과 헌터들의 치료 기술이 합쳐져 정복하지 못하는 병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신조차 못 차릴 정도의 상황이라는 말에 의아해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형님은 모르실 수도 있으시지만…… 영원한 잠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탑 등장 이후로 생긴 병입니다. 특이하게 한국에서만 발병하고 있지만요. 그 병에 걸린 자들은 그대로 잠들어 버립니다.”
“영원한 잠이라…… 전에 뉴스에서 본 것 같기도 한데. 게이트가 열릴 때 간혹가다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 단체로 쓰러진다고 했던가.”
이제야 협회 직원들이 박민호의 여동생을 들먹이며 눈치를 보던 것이 이해가 간다.
똑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긴 그를 방해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네, 그래도 헌터들은 걸리진 않는 병입니다. 다행히 연금술 길드 미다스의 손에서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제 동생도 그 길드 산하의 병원에 입원해 있고요.”
“원인은 뭐지? 걸린 자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은데.”
“글쎄요…… <검은 탑>과 귀환자들의 등장 이후로 원인 모를 일들이 한두 개여야 말이죠. 미다스의 손에서도 원인은 알 순 없다 발표했지만 다행히 치료법이라도 있는 게 어딘가요.”
‘원인은 모르는데, 치료는 가능하다고?’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물론 어디 다친지 모르지만 무작정 마시기만 하면 치유가 되긴 하는 치유 포션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본질적으로 마법의 힘이지, 연금술의 힘은 아니다.
연금술은 그보다도 더 고차원적인, 말하자면 정립되어 있는 학문 같은 것.
“그 병원, 내가 따라가도 되나?”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내 경험상 시스템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데 도가 트긴 했을지언정 그건 주로 헌터들 상대였다.
‘그런데 헌터는 피해 간다…… 라.’
“네? 상관은 없긴 한데…… 그렇다면 따라오시죠. 제 동생도 한번 소개해 드리고 싶긴 했었습니다.”
박민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이끌었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커다란 건물 앞.
병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곳이었다.
“여기가 연금술사 길드인 미다스의 손에서 운영하고 있는 병원입니다. 영원한 잠에 걸린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치유하는 곳입니다.”
미다스의 손이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었다.
실력 있는 연금술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길드.
아직은 국내에서만 유명한 정도이지만 세계적인 길드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 여겨지는 곳이었다.
그런 길드에서 운영하는 것이라 그런 건지 일반적인 병원의 느낌이 아니었다.
외부도 기가 질릴 만큼 으리으리했지만 내부는 한술 더 떠 마치 호텔에 온 느낌이다.
‘영원한 잠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은 미다스의 손 길드밖에 없다고 하니까 당연한 건가.’
돈을 있는 대로 긁어모으고 있는 듯하다.
혀를 차며 박민호가 안내하는 병실로 갔다.
꽤 돈을 들였는지 들어간 공간은 박민호의 동생밖에 없는 1인 병실이었다.
[환자명: 박민주]
“……제 동생입니다.”
박민호는 씁쓸한 얼굴로 누워 있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인상의 그녀.
오랫동안 누워 있던 탓에 몸의 근육이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매일같이 게이트를 돌더니, 이것 때문에 돈이 필요했었나.”
“물론 헌터 협회에서 영원한 잠에 걸린 자들에게 어느 정도 지원비가 나오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기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상당해서요.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게 하는 유지 비용도 꽤 비쌉니다. 물론 병 자체를 치유하기 위한 물약을 사기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고작 물약으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라고?”
그런 것치곤 박민호를 포함해 환자 보호자들의 표정이 지나치게 좋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은 전혀 찾을 수 없던 얼굴들.
그저 기약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자들의 모습이었다.
“길드에서도 1년에 몇 병 만들어 내지 못하는 물약이죠. 그걸 마신다면 빠르게 회복되어 깨어난다고 하더군요. 그 탓에 가격도 상당하지만요.”
“S급 중에서도 랭킹이 좀 낮긴 하지만 그래도 너도 나름 국내 랭커 중 하나 아니었나? 의사니 변호사니 따져도 버는 돈으로 치면 너와 비교조차가 불가능할 텐데.”
“그나마 그 정도라도 되니까 동생을 아무 탈 없이 유지시키면서, 물약을 살 돈을 모을 수 있는 거죠. 보통은 팔다리 하나쯤은 천천히 석화되는 걸 막을 수 없습니다.”
“깨어나지 못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건가. 헌터 협회가 이걸 방관하고 있는 것도 우습군.”
협회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긴 했다.
한두 푼도 아닌 돈을 길드에 퍼부어 주는 것만 해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마법사는 많지만 실력 있는 연금술사는 현저히 적습니다. 특히나 미다스의 손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지금은 아무리 협회라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죠.”
“그 물약이란 건,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인가?”
“일단 예약제긴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드의 길드장이나 유력 인사들은 상황이 다른…… 아.”
거기까지 말한 박민호가 설마 하는 눈으로 나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지금 현재 유명한 사람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자.
나를 제외하고는 논할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 정도라면?”
“버선발로 나오는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하실 테죠.”
박민호의 눈빛이 갑자기 바뀐다.
순식간에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자세를 바로 하는 그.
“형님! 제발 부탁입니다! 저를…… 아니, 제 동생을 도와주세요! 아직 물약값의 절반 정도밖에 모으지 못했지만 뼈가 부서져라 일해서 모두 갚겠습니다!!”
본인이 말하고도 뻔뻔하다고 느꼈는지 더욱 고개를 숙인다.
절박함에 그의 목소리마저 떨린다.
“형님이 원래 이런 거 정말 싫어하시는 건 알지만…… 제발…….”
점점 작아지는 박민호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도와주려고 했는데 말이지.’
아무리 나라도 남의 불행을 구경하러 병원까지 오는 악취미는 없다.
이미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려 마음먹었다.
‘이게 내 실수로 아스티란에서 박민호를 죽인 것에 대한 유일한 보상일지도 모르니까.’
아스티란에서 이간질당해 죽은 사실은 모두 잊겠다고, 심지어 정말로 죽은 건 아니고 지구로 돌아오지 않았냐고 했던 박민호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그의 죽음은 명백한 내 실수.
지나간 과거는 과거지만 그렇다고 모두 잊어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형님, 제가 강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지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왜 그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지? 이유는?]
[……염치없는 것 압니다. 지구에 두고 온 어린 동생들이 있습니다. 차마 동생들을 두고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순 없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너는 남을 위할 때만 부탁하는군.”
딱 두 번.
여태껏 박민호가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도움을 요청한 횟수이다.
그리고 두 번 모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동생들을 위해서였다.
“일어서.”
“아…… 네, 형님!”
“돈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까짓 거 넘칠 만큼 많으니까. 일단 미다스의 손과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지?”
“어……?”
박민호는 본인이 도와 달라고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해 줄지 몰랐다는 얼굴이다.
멍하니 있던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경악해 소리 지른다.
“정말 도와주시는 겁니까?? 아니, 물론 제가 말하긴 했지만…… 형님은 이득 없이 쉽게 움직이시는 성격은 아니시잖아요!? 악!!”
병원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내는 그의 동그란 머리통에 주먹을 날렸다.
순식간에 진지했던 분위기가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그라진다.
물론 그가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아스티란에서 있었을 때는 함부로 누굴 돕거나 하지 않았으니까.
“대체 날 뭘로 보고 있던 거냐.”
“하지만…… 아,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와 비교했을 때 세월도 많이 지났고, 무엇보다 여기는 지구이다.
전쟁에 끌려 나온 어린 소년병을 불쌍하게 여기고 다가갔을 때 숨겨져 있던 칼을 휘두르지 않는 곳.
‘그때는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 게 힘들었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나도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갔을 때 항상 나를 믿고 따르면서 지지해 주던 동료들이 없었다면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자에는 박민호도 포함되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따스한 눈빛이 되어 그를 바라보았다.
“왜…… 왜 그렇게 보십니까? 또 때리시려고요?”
‘이 자식이…….’
긴 한숨을 쉬고 펫창을 열어 집에 있을 아렐리아를 소환했다.
아렐리아의 마법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박민호가 화들짝 놀라 뒤로 내뺀다.
“[하암…… 여긴 어디죠? 무슨 일이세요, 마왕님?]”
“여기 누워 있는 사람, 마법적인 영향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
마탑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병이지만 그녀라면 무언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몰랐다.
마족들이 사용하는 환영 마법 중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 마법이 있었기에 내심 간단하게 풀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흑마법이라면 시전한 마족 몇 명 족치는 일쯤이야 그 어느 방법보다 쉽겠지.’
“[흠…… 딱히 그런 마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일단 알겠어요.]”
아렐리아는 조그마한 몸뚱이로 박민주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한참을 살펴본다.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보던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박민주와 연결되어 있는 링겔이었다.
그녀는 갸웃거리며 거꾸로 매달려 있는 물약통을 툭툭 친다.
“[이게 뭐지?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