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6화
“아, 거기서 그렇게 하면 안 됐었는데…….”
“한국 헌터 일보입니다! 잠깐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경쟁 임무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해 알고 싶은데요!”
“뭐야, 저리 가요.”
튜토리얼이 시작된 지도 일주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탈락해 돌아오는 예비 각성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예비 각성자들에게 벌떼처럼 달려들어 기사에 써 내릴 정보를 요구했지만 가뜩이나 탈락 때문에 기분이 저조한 그들은 인터뷰 요청에 쉽게 응하지 않았다.
“허억!! 안…… 어? 나 설마 탈락한 거야?”
“어? 저기도 왔는데? 인터뷰 해 볼까?”
“됐어. 딱 보니까 E등급이야. 알면 뭘 알겠어.”
장차 랭커가 될 만한 예비 각성자들에게만 관심 있는 기자들은 그날도 C급 이하의 예비 각성자들을 무시하려 했었다.
“드디어 벗어났어! 드디어 훈련을 안 받아도 된다고!!”
“밖의 공기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서로 부둥켜안고 행복해하는 탈락자들에게 기자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고정되었다.
탈락한 사람치고 호들갑을 떨어 대며 기뻐하는 그들은 충분히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뭐…… E급이니까.’
호기심이 일긴 했지만 곧 등장할 다른 탈락자들에 비하면 매력적이진 않았다.
기자들은 다시 고개들 돌리고 그들에게서 신경을 껐다.
하지만 곧 기자들은 크나큰 후회를 했다.
* * *
“이게 말이 돼?? 고작 E급 그룹이 왜 이렇게 본격적인 건데??”
“너희가 용병왕이 나타났다고 도망만 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야! 그건 가짜 용병왕이었다고!!”
제일 처음은 공성조의 역할을 부여받은 한 조였다.
그들은 탈락해 나오자마자 역정을 내며 서로의 탓을 해 대기 시작했다.
“뭐? 가짜 용병왕? 하지만 얼굴이…….”
“그건 가면 같은 거였어! 젠장, 생산계 각성자들을 그렇게 써먹을 줄은…….”
제일 나중에 탈락한 김진호는 가만히 서서 이를 갈아 댄다.
이번 주제는 <공성전>.
당연히 공격을 할 수 있는 예비 각성자들의 주 무대라 생각했다.
자신의 그룹에도 생산계로 잠재 능력을 부여받은 자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모두 무시하긴 마찬가지.
공격계 각성자들은 쓰잘데기 없이 인원만 차지하는 그들에게 짜증을 내며 그저 가만히 있길 원했다.
“그쪽 무기와 방어구들도 기본으로 지급되는 수준이 아니었어. 분명 대장장이 직군들이 강화를 해 준 거겠지.”
“그래 봤자 고작 생산계 아니야?”
“지급되는 무기는 모두 같은 물건이었어. 동일한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우세를 가진다면 당연히 승패가 기울 수밖에 없다는 걸 왜 몰라!?”
“뭐? ……그런데 왜 짜증을 내고 그래? 허참, 고작 튜토리얼이면서……. 난 간다. 김진호, 다시는 보지 말자.”
‘그래, 고작 튜토리얼일 뿐이었다. 진짜로 목숨 걸듯이 싸울 필요는 없던 일인데…….’
많은 변수와 생산계의 시너지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잠재 등급으로 인한 스탯 차이를 이겨 낼 순 없었다.
김진호는 결국 경쟁 임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의 차이에 승패가 결정된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놈 면상이라도 한번 보고 가야겠어.’
그는 며칠을 서성이며 이도윤의 그룹이 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용병왕을 등에 업고 떵떵거리는, 주제도 모르는 그놈의 얼굴에 주먹이라도 한 방 꽂아 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다른 조 나온다!!”
“아, 진짜 미친 거 아냐?? 수성조가 같은 수성조를 공격해??”
“아, 몰라……. 짜증 나. 그래도 점수가 괜찮았는지 나는 B급으로 올라서 만족해.”
다른 조 역시 탈락했는지 우르르 탑을 빠져나왔다.
그때 큰 종소리가 울리며 튜토리얼의 마지막을 알려 온다.
[17기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예비 각성자들의 순위를 정산합니다. 귀환자는 순위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드디어 튜토리얼이 끝이 났다.
김진호는 수많은 예비 각성자 무리를 훑으며 이도윤을 찾기 위해 열중했다.
‘찾았다!’
여전히 빤질거리는 재수 없는 낯짝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곤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이 개자…… 큭!?”
‘이걸 막아??’
고작 E급 주제에 무덤덤하게 주먹을 막아내자 그는 크게 당황했다.
“싸움이야? 뭐야??”
웅성거리는 예비 각성자들의 시선이 모아진다.
기자들 역시 재미난 구경거리에 사방에서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김진호.”
이도윤은 밖을 나오자마자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쳐다보았다.
반투명한 메시지창 뒤로는 친구라고 믿었던 얼굴이 보인다.
곧 마음을 굳게 먹고 주먹을 휘둘렀다.
“악!!”
순식간에 김진호는 바닥을 나뒹굴며 코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이젠 앞으론 마주치지 말자.”
[<경쟁 임무 랭크>1위: 이도윤]
[압도적인 업적! 당신은 자신보다 잠재 랭크가 높은 경쟁자 47명을 처치했습니다. 또한 공성에도 큰 기여를 했으므로 랭크가 올라갑니다.]
[최종 랭크: S]
이도윤의 뒤에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용병왕이 있었다.
* * *
‘역시 싸움은 약한 놈들의 개싸움이 더 재밌군.’
자고로 싸움은 진흙탕 싸움이다.
하지만 좀 더 재밌어지려는 차에 김진호는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보다 나약한 놈이었다.
나는 몇 대 더 때려 주길 바라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기절까지 한 놈을 공격할 무자비한 성격은 아닌 그는 후련한 표정으로 걸어간다.
‘쯧, 착해 빠져 가지곤…….’
저래선 이 헌터 바닥에서 제대로 생활하긴 글렀다 싶었다.
“저, 용병왕님. 인터뷰…… 아, 아닙니다…….”
나는 나에게 달려들려는 기자들을 험악한 눈으로 쏘아봐 주었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음 먹잇감인 이도윤에게 향한다.
“각성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도윤 헌터님, 처음엔 E랭크의 잠재 능력을 부여받으신 게 맞습니까? 그럼에도 경쟁 임무에서 1위를 차지하셨는데, 그 비결이 뭡니까?”
“헌…… 터라. 네, 딱히 비결이랄 건 없습니다. 그룹원 모두의 협조가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는 멀리서 지켜보는 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튜토리얼에서 나가기 전, 그룹원 전원에게 나에 대한 것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협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물론 말로 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놈들을 위해 혹시라도 나불거렸을 시 겪게 될 일에 대해서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잘하고 있군. 쓰잘데기 없는 곳에 내 이름이 나돌아다니는 건 질색이야.’
“혹시 최종적으로 부여받은 랭크를 미리 알려 주실 수 있으신가요?”
“협회에 가서 등록을 하면 모두 아실 테지만, S랭크입니다.”
“허어억!! S급!? 적어!!”
방금보다 취재 열기가 거세졌다.
그에 대기하고 있던 몇몇 협회 직원들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슬금 다가온다.
“혹시 염두에 두고 있는 길드…….”
“자자, 다들 물러나세요.”
누군가가 기자들을 헤치며 나타났다.
기자들은 말을 끊은 자를 찾으며 못마땅하게 뒤를 돌아봤다.
“누구…… 자유 길드장과 부길드장!?”
“다른 5대 길드들 스카우터들도 있어!!”
“젠장, SS급도 아닌데 내가 몸소 오기까지 해야 해?”
세상 순진하게 생긴 얼굴로 욕지거리를 하며 나타난 홍현민과 부길드장 이세하.
그 뒤에도 내가 익숙하게 봐 온 헌터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아주 떼거리로 몰려들었군.’
“이도윤 헌터, 축하합니다. 저는 자유 길드의 부길드장, 이세하입니다. 여기는 저희 길드장님이시고요. 저희 긴밀한 이야기를…….”
“부길드장님? 여기 다 스카웃 때문에 온 거 안 보이나요? 안녕하세요, 이도윤 헌터님. 저는 천상 길드에서 왔습니다.”
전에 한 번 보았던 천상 길드의 차은진이 그들을 부드럽게 말리더니 본인의 명함부터 내민다.
그에 홍현민은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줌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아냐? 오려면 영원 그 아저씨라도 끌고 오지 그랬어.”
“아줌…….”
그녀는 잠깐 멈칫하더니 붉은 립스틱을 완벽하게 바른 입술을 슬며시 끌어 올린다.
방금보다도 더 만개한 꽃마냥 화사한 미소였다.
“그래요, 이 아줌마도 볼일이 있으니까 좀 비켜 주시겠어요, 아직 수염도 안 나는 어린애 씨?”
“뭐!? 나, 나도 성인이야!! 곧 날 거라고!!”
‘정곡을 찔렸군.’
그래도 20살은 넘긴 걸로 알고 있는데, 그제야 확인하니 수염 자국 하나 없는 얼굴이다.
생각해 보니 그는 어린애 취급을 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아마 그게 홍현민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인지 그는 길길이 날뛴다.
“그럼 솜털이라도 난 뒤에 말 걸어 주시죠. 저는 젖비린내나는 애송이와 대화하면 돋는 알러지가 있어서요. 지금도 목이 간질간질한 게 붓는 느낌이네요. 아니, 욕이 나올 거 같은 느낌인가?”
“저, 저 미친 여자가!!”
“길드장님, 보는 눈이 많습니다. 그러게 왜 먼저 시비를 건답니까?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한데.”
“자, 그럼 이도윤 헌터님. 시간 되시면 협회로 향하기 전에 저희 길드 본부로 잠깐 모셔도 될까요?”
완벽한 홍현민의 패배였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을 보는 이도윤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린다.
이게 진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랭커들이 맞는지부터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나야 1랭크 채널에서 자주 본다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당황할 만하지.’
채널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입을 다물고 있기에 저 꼬라지들을 몇몇밖에 모른다는 게 한이 될 정도였다.
피식 웃으면서 한편의 개그 프로그램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도윤과 눈이 마주친다.
시선은 완벽하게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무언가 기분이 쎄하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저는 어떤 길드에도 가입하지 않겠습니다.”
“네? 잘 생각해 보세요. 저희는 다른 S랭크들보다 E랭크에서부터 올라온 당신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요. 원한다면 아티팩트부터 스킬까지 모두 지원해 드릴 예정입니다.”
“저에게 가능성이라…… 아이러니하네요. 어떤 분은 저희에게 그런 건 없다고 하셨죠.”
그는 여전히 올곧게 바라보고 있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곤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하지만 가능성이라곤 없는 우릴 믿으셨습니다. 너희 자신을 좀 더 믿어 보라는 격려하셨죠. 그리고 차별 없이 대해 주셨습니다. 전투계, 생산계 각성자든지 신경 쓰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길드를 만들어 보려 합니다.”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이도윤이 미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맑다고 생각한 그의 눈에서 나만이 보이는 광기가 얼핏 보인다.
분위기는 이미 사이비 종교를 창설하는 교주의 연설이 된 상태.
“갓 헌터가 된 각성자가 길드라니요?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나요?”
“저는, 아니 저희 17기 E랭크 그룹은 모두 모여 길드를 창설하기로 했습니다. 랭크와 생산계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의 믿음으로 활동하는 길드가 될 것입니다.”
“와아아!! 이도윤 길드장 만세!!”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터는 금세 박수 소리로 가득 찬다.
랭크 때문에 이리저리 치여 다니던 저랭크 헌터들은 감동적인 얼굴로 이도윤을 바라본다.
나 역시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내 표정은 좀 달랐다.
“……튜토리얼에서 환각 마법이라도 걸린 건가.”
아니면 성에서 무슨 가스라도 나오고 있었나?
그걸 마시고 저렇게 된 게 아닐까.
아무리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이건 정도가 지나쳤다.
나는 환호성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말없이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