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5화
무리를 이끌고 다른 성으로 진격하는 도중 공성조 한 무리를 만났다.
“공성도 안 하고 있더니, 여기서 놀고 있었나.”
나는 그들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들이 머무는 곳은 여유로움으로 가득했다.
깃발도 얻었겠다, 곧 끝날 경쟁 임무를 기다리며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로서는 열 받을 상황이다.
‘겁쟁이들이 게으르기까지 하다니…….’
“공성조? 아니 파란 옷이라면…… 수성조인가? 수성조가 어떻게 밖에…….”
리더 격인 자가 우리 앞을 막아선다.
그러면서 내가 들고 있는 깃발을 향해 흘깃 눈길을 준다.
로브를 쓰고 있는 탓에 내 정체를 알 수 없기에 그런 것일까.
건들거리는 모습에선 당당함이 묻어난다.
“이게 웬 횡재냐…….”
그들의 눈빛은 금세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처럼 변한다.
탐욕으로 눈알이 희번덕거린다.
주제도 모르는 자들의 행태에 금세 기분이 저조해진다.
“비켜.”
“허? 깃발을 내놓으면 비켜 줄 의향도 있는데.”
“하…… 별 거지 같은 놈이…….”
“뭐? 이 자식이……!”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들고 있던 도끼는 금방이라도 휘둘러질 듯 번뜩거린다.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실랑이할 시간은 없었다.
철컥-
“잠깐 빌리마.”
옆에 있던 이도윤이 들고 있던 검에 손을 대었다.
검집에서 검이 매끄럽게 빠져나오고, 휘둘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촤악-!!
“아악!!”
“헉…….”
주변은 삽시간에 고요해졌다.
이 상황 자체가 믿기지가 않는 얼굴들이다.
그의 몸뚱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제야 공성조들은 벌린 입을 다물고 수군거린다.
“리…… 리더가…….”
“검 한 방에 죽었어? 그래도 A랭크인데……!?”
나는 허둥대는 그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공격을 하며 쓰고 있던 로브가 벗겨져 공격조가 날 알아보고 경악했다.
“용…… 병왕? 허억!! 진짜 용병왕이다! 이번 튜토리얼에 참여했다더니…… 여기에……?”
“세 번은 말 안 한다. 비켜.”
“……넵!!”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정면은 썰물이 빠져나간 듯 비어진다.
이미 가로막은 자가 탈락한 걸 봤기에 나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한다.
흘깃거리는 눈에는 공포가 가득하다.
“와, 역시 용병왕님…….”
“난 나가면 팬클럽이라도 가입하려고.”
“아, 그 최근에 박민호 헌터가 만든…….”
그룹원들이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와중에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박민호, 이 자식이…….’
저번에 마주쳤을 때 묘하게 분주하다 싶었더니 그딴 걸 만들고 있었나.
하여간 오만 짓거리를 다 하고 다닌다.
그 자식을 어떻게 갈궈야 하나 고민하며 걸으니 저 멀리서 조그마한 성이 보인다.
적은 수가 수성하는 만큼 사실상 작은 저택에 가까운 형태였다.
“진 님, 다 온 것 같습니다!”
성문 바로 앞에서 그룹원들은 긴장한 채 정면을 주시한다.
대규모의 인원이 몰려오자 수성 측에선 큰 소란이 일어났다.
“공성조? 아니, 수성조인데?”
“앞은 용병왕인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성벽에서 누군가가 공손하게 질문해 왔다.
수성조의 상징인 푸른 옷을 입고 있으니 적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말없이 뒤쪽에 나열해 있는 그룹원들을 향해 눈짓했다.
그들은 금세 내 의중을 파악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콰앙-!!
“헉!! 공격이다!!”
“아니, 저 미친놈들 진짜!!”
“수성조가 여기서 무슨 깽판이야?!”
그제야 그들은 태도를 달리한다.
말없이 성벽과 성문을 부숴 대는 걸 보고는,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임을 깨달은 모양이다.
“와, 공격 한 방에 성벽 절반이 무너지는 게 말이 돼??”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가 않는다, 진짜…….”
그룹원들은 마력을 담아 깃발을 휘두르는 나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잔뜩 벌어진 입은 당장 침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놀러 왔나? 지금 나한테만 일을 시키겠다 이거지?”
“헛! 죄송합니다!! 방패조, 돌격해!”
그제야 그룹원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려는 상대편을 막아섰다.
순식간에 전쟁터는 난장판이 되었다.
“마법사!! 성벽…… 아니, 성벽은 이미 부서졌으니 적들을 공격해!”
“절대 전열을 무너트리지 마!”
힘의 차이가 상당하지만 우리 쪽은 생각보다 잘 싸워 주고 있었다.
한 명의 적에게 수십 명이 달려들어 전투를 이어 가는 게 손발이 척척 맞았다.
‘역시 훈련은 배신하지 않나. 하긴, 용병대도 훈련 한번을 할 때마다 실력이 확 늘었지.’
아무렴, 누가 만든 훈련법인데 저 정도도 못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나는 전투를 힐끗 보고 딛고 있던 땅을 박찼다.
도약 한 번에 무너져 내린 성벽에 도착했다.
“뭐…… 뭐야!? 언제 온 거야?? 다들 공격에 경계해!”
내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자 당황하는 그들.
수성조는 허둥대며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내성의 문은 저쪽인가.’
하지만 내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다시 빠르게 몸을 움직여 목적지에 도달했다.
“저기 용병왕이 달려온다!!”
바로 앞에 성의 모습이 보였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막아!!”
“저걸 어떻게 막아!? 무슨 황소마냥 오는데!!”
콰아앙-!!
마력으로 몸을 감싸고 벽에 부딪혔다.
벽돌이 우수수 몸 주위에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
“왜 이렇게 빠른 거야!!”
“언제 여기까지 온 거야!? 방금 쳐들어온 거 아니었어?”
적들은 순식간에 바뀌는 전투 양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절규한다.
‘그래도 전에 있던 공성은 막아냈을 텐데 영 허술하군.’
혀를 차고 내성의 로비에 진입했다.
지금 막 내성을 빠져나가려는 자들이 주춤거리며 나와 맞닥뜨렸다.
부서진 뒤쪽을 슬쩍 보니 어느새 내 그룹의 선발대들도 몇 명 도착해 있었다.
서로 긴장한 채 무기를 겨누는 상황.
“진 님, 저희가 처치하겠습니다.”
어느새 따라온 이도윤이 나를 엄호하며 말한다.
검을 든 얼굴은 제법 진지하다.
‘누가 누굴 지키겠다는 건지.’
빠르게 진입하며 수많은 적을 상대한 탓에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갑옷은 먼지투성이에 몸 여기저기는 상처가 가득하다.
어이가 없어 미적지근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럴 필요는 없다.”
“예? 위로 올라가시려면 모조리 없애야 할 텐데요. 귀찮은 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귀찮은 일이 맞긴 했다.
허나 게으른 자는 극강의 효율을 추구하는 법.
주변을 훑어보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깃발은 저쪽인가.’
성 내부를 보아하니 내가 있던 성과 구조는 비슷했다.
그렇다면 서 있는 곳 바로 위층에 있는 공간이 깃발이 있는 위치일 것이다.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쳐다보니 상대편의 나머지 인원도 우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지켜!”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기를 쥔 채 나를 마주 보며 대치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너희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라.”
그동안 행동하는 걸 질색하는 나를 잘 아는 이도윤이 당황한다.
당연히 여기까지 했으니 다음은 자신들에게 맡길 거라 생각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고지가 코앞이다.
이쯤은 너그럽게 움직여 줄 마음이 있었다.
‘마력은…… 이 정도면 되겠군.’
깃발에 불어넣은 마력이 휘몰아친다.
덜덜 떨리는 깃대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 요동친다.
다행히 특수한 아이템이라 그런지 강대한 마력을 버텨 내고 있었다.
콰아앙-!!
서 있던 곳의 바로 위를 향해 깃발을 휘둘렀다.
곧 천장이 부서지고, 나를 압사할 듯 벽돌들이 큰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린다.
“콜록콜록!!”
“어떻게 된 거지? 먼지 때문에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
“갑자기 천장은 왜 후려친…… 헉, 설마!!”
성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진동하며 큰 굉음을 낸다.
폐허에는 커다란 벽돌들로 가득 찼다.
“끄윽…….”
그새 돌에 깔린 자들이 하나둘 탈락한다.
돌가루가 만들어 낸 먼지들는 여전히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렵지 않게 원하는 물건을 찾아내었다.
“겨우 이것 때문에 그 고생을…….”
나는 그걸 보고 표정을 와락 구겼다.
내가 들고 있는 깃발과 비슷해 보이지만 가운데 그려져 있는 문양이 다른 깃발.
경쟁 임무에서 마지막 남은 깃발이었다.
성큼 다가가 깃발에 손을 뻗었다.
[B조 깃발의 주인이 정해졌습니다!]
[현재 공성조 2조(1조: 깃발 1개 / 2조: 깃발 1개), 수성조 1조 남았습니다. 총 남은 깃발은 1개입니다.]
[당신의 그룹은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E조 전원의 점수가 크게 올라갑니다.]
[압도적인 차이로 더 이상의 경쟁 임무는 무의미하다고 판단, 경쟁 임무 <공성전>을 마칩니다.]
[곧 순위가 집계됩니다. 제 17기 튜토리얼을 마칩니다.]
어디선가 큰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튜토리얼의 끝을 알리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