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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34화 (34/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4화

5분.

감히 내가 지키고 있는 성에 쳐들어온 적들을 처치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미…… 미친…… 괴물…….”

마지막까지 반항하던 자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카앙-

나는 들고 있던 깃발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바로 직전까지 공성조들을 후드려 패던 무기였다.

별다른 무기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깃발을 사용했지만 생각보다 손에 착착 감기는 게 마음에 쏙 들었다.

“건방진 새끼들…….”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싶으니 신나게 온 게 분명했다.

“생각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이려나.

깃발을 지키고 있는 자가 한 명도 없다는 생각이 어느 놈 머리에서 나온 건지 궁금할 정도이다.

‘덕분에 내가 움직이고 말았잖아, 젠장.’

이 정도로는 몸이 풀리지도 않는다.

애매할 때 끝나 버린 탓에 나는 팔을 움직여 스트레칭을 했다.

곧 찌뿌둥했던 근육이 풀리고, 나는 원래 계속 누워 있던 곳에 자리 잡았다.

‘계속 누워 있는 것도 일이네.’

침대가 아닌 탓에 잠자리는 불편했다.

하지만 눕는 걸 포기할 수는 없었다.

‘대체 이놈들은 언제쯤 오는 거야.’

나는 다시 푹신하게 깔려 있는 담요를 끌어다 자리를 정돈했다.

어느 정도 눈을 붙였을까, 주변이 소란스러워진다.

“……잖아. 조용히 해!”

“너나 조용히 해. 용병왕님 자다 깨면 엄청 짜증 내시는 거 몰라?”

‘벌써 일어났다, 이놈들아.’

나는 미간을 찡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 깨셨어요?”

“그래, 당연히 이기고 왔겠지?”

“네!! 힘들긴 했지만 저희는 50명밖에 탈락하지 않았어요!”

마법사조의 리더가 자랑스럽게 말해 온다.

그녀는 마치 칭찬이라도 해 달라는 모습으로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50명이나?”

“어…… 어?”

“야,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나머지 리더들이 주춤거리며 그녀를 타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연신 훈련이 어쩌고 하는 게, 또다시 받게 될 훈련을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진 헌터님, 그런데 깃발은 왜 저기에…….”

먼지투성이가 되어 버린 이도윤이 내가 바닥에 내팽개쳐 놓은 깃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갈 때 쓰고 있던 가면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맨얼굴이었다.

“아까 웬 하룻강아지들이 주제도 모르고 덤벼 오길래. 그거에 좀 썼다.”

“네? 하룻강아지라니……. 설마 다른 공성조가 왔었나요?”

눈을 크게 뜨고 당황한 그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섰다.

성 바깥의 넓은 공터에는 돌아온 예비 각성자들이 여기저기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입고 갔던 갑옷과 무기들은 이미 넝마가 되어 바닥을 굴러다닌다.

“대장장이조! 이거 다 가져다가 옮겨서 수리하고 다시 강화 진행해!”

“저희 연금술조에서 치유 포션을 만들어 왔어요! 힐러분들은 마력 낭비하지 마시고 쉬고 계세요.”

내가 깃발을 지키고 있을 동안 지하 공간에 숨어 있던 생산계 예비 각성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그들은 막 전투를 벌이고 온 전투계 각성자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어? 하준 님, 저희가 만든 가면 어디 갔나요?”

“아…… 그거…….”

생산계 한 명이 궁금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어느새 내 뒤를 따라 나온 이도윤이 얼굴을 긁적이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나도 궁금했던 차다. 기분 나쁘게 내 얼굴을 본떠 만드는 것까지 참았더니, 그새 어디다 버리고 온 거야?”

“……제 실수로 망가져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면은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장치 중 하나였다.

생산계 각성자들이 여럿 붙어 만들고, 가능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환영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약간의 마법을 걸었다.

물론 내 눈에는 조악하기 그지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 체구와 비슷한 이도윤이 사용하자 그럭저럭 눈속임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내게 다가오려는 자들도 없을 테니 가까이서 확인할 방도도 없을 터였고.

“뭐, 됐다. 어차피 두 번 사용하진 않을 테니까.”

“좋은 전술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전술도 써먹을 상대가 있어야 쓰는 거지. 경쟁 임무는 곧 끝날 거다.”

그룹원들이 공성조를 습격하러 가는 사이에 나는 틈틈이 지도를 확인했다.

[현재 공성조 2조(1조: 깃발 1개 / 2조: 깃발 1개), 수성조 2조 남았습니다. 총 남은 깃발은 2개입니다.]

다섯 개의 공성조는 이제 두 개만 존재한다.

깃발은 우리 측과 다른 수성조 것만 남은 상황.

“깃발이 두 개요? 나머지 하나는…….”

“공격해 온 쪽의 깃발은 그대로 없어지는 개념인가 보더군.”

마지막 남은 자가 들고 있던 깃발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렇다면 실제로 점수를 낼 수 있는 것은 수성조가 가지고 있는 깃발뿐이다.

“만약 모든 수성조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남은 공성조끼리의 싸움을 막는 시스템이겠군요.”

“다른 공성조들도 깃발이 사라진 건 알겠지. 그렇다면 우리나 다른 쪽으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방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너희에게 맡겨도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같은 그룹원이라도 더 이상 돕는 건 과했다.

“저희를 믿어 주시는 겁니까?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는 감동했다는 듯 말한다.

‘여기까지 해 줬으면 이제 좀 알아서 해 보라는 거지만.’

굳이 오해는 풀어 주지 않았다.

이도윤은 곧 그룹원들에게 다가가 무언가 지시를 내린다.

모두가 동점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누군가 우세한 승리를 노린다면 승부는 지금부터였다.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만큼 앞으로의 전투는 지금보다 더 격렬해질 것이다.

‘설마 겁쟁이들만 남진 않았겠지.’

꽤 재밌는 구경거리가 벌어질 것 같다.

* * *

“이 자식들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망할 경쟁 임무는 끝이 나지 않았다.

당장 남은 깃발을 향해 공성조들이 전투를 벌일 거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틀렸다.

“얻을 건 얻었으니 몸 사리고 있는 건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혹시 공성에 실패하면 가지고 있는 깃발도 잃어버린 채 탈락할 테니까요.”

“이래서야 늙어 죽을 때까지 여기 갇혀 있게 생겼군.”

“……설마 그러겠습니까. 어느 정도 이 상태가 유지되면 끝이 나겠죠.”

이도윤이 나를 위로해 온다.

처음엔 나를 볼 때마다 건방진 눈빛을 보내더니 이제는 완전히 내 수족을 자처하며 수발을 들었다.

오늘도 어디선가 구해 온 침대를 낑낑대며 들고 왔다.

“낮잠이라도 주무시죠. 생산계 조가 할 일이 없어져 심심해하기에 제작하라 했습니다.”

구해 온 성의도 있기에 속는 셈 치고 누워 보았다.

‘흠, 이거 제법…….’

침대는 과학이라지만 이 침대는 마법이다.

몸이 꺼질 듯한 푹신함에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겨 온다.

그러다 정신을 부여잡고 벌떡 일어났다.

“……젠장.”

나도 모르게 편안함에 취해 버렸다.

침대, 온갖 마실 거리부터 먹거리까지.

곳곳에는 낮잠을 즐기는 나를 위한 암막 커튼까지 쳐져 있었다.

주변은 마치 휴양지라도 되는 듯 안락함이 가득하다.

“뭔가 더 필요하신가요?”

주변을 기웃대며 뭔가 더 추가할 만한 것이 있나 살펴보던 생산조의 조장이 말한다.

그의 말에도 여전히 인상을 구기자 안절부절못한다.

“진 헌터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맡겨 주세요!”

“네! 맞아요. 저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셨는데, 그 정도야 상관없습니다.”

“연금조가 피로 회복제를 만들어 냈다는데, 그거라도 드시겠습니까?”

그룹원들이 내 심정도 모르고 병아리마냥 종알댄다.

올려다보는 두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하다.

그들을 무시하고 성 밖으로 나갔다.

“동쪽 구역 함정 설치 완료되었어요!”

“기본 지급 무기들 업그레이드 완료되었습니다, 더 할 건 없나요?”

많은 예비 각성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특히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생산조들이 눈에 뜨인다.

곳곳에서 전투 계열을 위해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한두 번 정도의 공격을 막을 순 있겠는데요?”

“고위 클래스 마법사들이라면 더 단단한 배리어 마법을 펼치겠지만…… 일단 우리는 진 헌터님 말씀대로 하죠. 가진 마력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걸로…….”

“거기, 검을 더 강하게 휘둘러!”

전투 계열들도 이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훈련을 진행한다.

여기저기서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처음 경쟁 임무 자체를 포기하려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서로 고생한 만큼 동료에 대한 믿음으로 뭉쳐져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공터는 그야말로 생기로 가득했다.

“……이대로는 안 돼.”

“예? 물론 진 헌터님께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다들 노력하고 있습니다.”

뒤따라온 이도윤이 어리둥절하게 되묻는다.

“그게 문제다.”

“문제라니요……?”

다들 지금 상황에 너무나 잘 적응했다.

나쁜 건 아니라지만, 여긴 곧 나가야 할 장소.

지금도 지구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들이 적응할 곳은 이곳이 아니라 튜토리얼 밖의 헌터 사회여야 했다.

“우린 밖으로 나간다.”

“……밖이요? 성 밖으로 나간단 말씀이신가요?”

이도윤도 이미 여기에 살림이라도 차린 모양이었다.

“언제까지나 여기서 미적대고 있을 셈이야? 그룹원들, 전투 준비를 하고 모두 모이게 해.”

“예?? 설마…….”

그는 경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리가 공성을 한다.”

내 말에 잠시 벙쪄 있던 이도윤이 곧 정신을 차린다.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성 입구에는 이미 준비를 마친 그룹원들이 각자 무기를 든 채 도열해 있었다.

“진짜로 성을 치실 생각이세요? 우리는 수성조인데, 아니…… 이게…….”

“수성조라고 공격을 못하라는 법 없지 않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일단 따라와.”

성문 밖으로 향하는 나를 얼떨떨한 얼굴의 그룹원들이 뒤따른다.

내 손에는 우리 성의 깃발이 쥐어진 채였다.

‘내 예상이 맞았군. 깃발을 들고 이동하는 것에는 제약이 없어.’

깃발을 무기로 사용할 때 눈치챈 사실이다.

적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 실패 조건이지, 뽑아 들 때는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저…… 전에 공성조가 들고 왔던 공성 무기라도 들고 갈까요?”

한 명이 멀리 떨어져 있는 공성추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론 공성에는 필수품이라고 일컬어지는 물건이긴 했다.

“저런 원시적인 물건은 필요 없다.”

직접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금 같은 시간이 걸려 있다면 그건 상황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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