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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32화 (32/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2화

“생각이 바뀌었다.”

롱보우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툭 말을 뱉었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활이지만 무게감과 밸런스가 나쁘지 않았다.

“……네? 그게 무슨 말씀…….”

워낙 흘리듯 말했는지라 모두들 어리둥절하다.

내가 다시 무기를 쥐어 드는 걸 보고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긴장하는 자들도 있었다.

‘쓸 만하군.’

활은 오랜만이라지만 걱정은 전혀 없었다.

내가 다루지 못하는 무기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

“김진호!! 떠들어 대지 말고 너도 어서 성문 공격을 도와!”

들고 있던 롱보우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마력 역시 한껏 끌어모아 화살은 푸른빛으로 휘감긴다.

목표는 제일 뒤에 서 있는 지휘관.

“커억-!!”

그는 단숨에 급소를 꿰뚫리고 쓰러지더니 금세 먼지가 되어 버린다.

하도 허무하게 죽어 버린 탓에 적들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전쟁의 기본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거지.’

아스티란에 있을 때도 종종 써먹었던 방법이다.

감히 기어오를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강한 무력.

그걸 직접 눈앞에서 목도하는 자들은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인다.

내 예상처럼 성문을 부수던 적들은 지휘할 자를 잃어버려 크게 당황한다.

“헉!! 리더가 죽었다!!”

“아니, 한 방에 죽을 수가 있어? S급인데?? 어…… 어떻게 해!?”

갈피를 못 잡는 적들만큼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은 없다.

나는 입만 벌리고 구경하는 주변의 그룹원들을 다그쳤다.

‘이 자식들은 여기 소풍 왔나…….’

“뭐 하는 건가? 궁사들은 빨리 공격해. 마법사들도.”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다른 헌터들도 구경만 할 생각하지 말고 도와. 아무리 근접 계열로 스킬을 부여받았다지만 활 정도는 쏠 수 있지 않겠나?”

내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허둥대는 적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예비 각성자들인지라 처음 잡아 보는 무기에 서툴기가 그지없었다.

공격은 빗나가기 일쑤였지만 많은 숫자에는 장사가 없는 법.

눈먼 화살일지언정 적 그룹원들은 차근차근 줄어 갔다.

“마…… 마법사!! 적을 공격해!!”

“아니, 화살이 날아오는데 어떻게 캐스팅에 집중해요!?”

적 마법사들의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그러면서도 수백 개의 화살은 그들을 향해 쏘아지고 있었다.

나도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묵묵히 화살을 날렸다.

“도망…… 악!!”

그제야 도주를 시도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탈락해 먼지가 되어 버린 상황.

처음에 왔던 200여 명에 가까운 수에 비하면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김진호를 포함한 예비 각성자들은 간신히 치명상을 피한 채 멀어졌다.

“서…… 설마 우리 이긴 거야?”

한 명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의 말이 시작점이 되어 모두 얼싸안고 승리의 기쁨을 누린다.

“척 봐도 다들 우리보다 등급이 높았었는데……!!”

“도망가는 거 봤어? 우릴 E랭크라고 무시하더니!”

다들 꼴좋다는 반응이다.

그러면서 나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보는 게, 모두 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과거 아스티란의 전쟁에서 병사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새삼 과거가 생각나 아련해지는 찰나였다.

그때 분위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음울한 목소리가 들린다.

“……경쟁 임무에 관심 없으셨던 것, 아니었습니까?”

돌아보니 이도윤이 죽고 싶다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모습에는 자존심이 상한 기색이 역력하다.

“제가 불쌍해서 그러신 겁니까? 듣던 바로는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으시다는데요.”

그제야 웃고 떠들던 주변 그룹원들도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가. 용병왕 성격은 유명한데…….”

“죽이지 못하는 걸 아니까 그럴지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그는 여전히 강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무서움도 없진 않은지 다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그는 당장이라도 기절할 듯한 낯빛이다.

그 모습에서 나는 어디서 본 동물이 떠오른다.

‘……치와와?’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는 모습이 꼭 닮아 있었다.

‘도와줘도 지랄이군.’

평소라면 주먹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나와 붙어 다녔던 박민호라면 이미 이상함을 깨닫고 도주를 시도했을 것이다.

물론 애초에 나에게 저 정도로 기어오르지도 않겠지만.

‘넌……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내가 그냥 넘어가는 일은 잘 없다.

이도윤이 오늘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알았다면 오늘부터 조상님의 은덕에 감사하며 명절마다 꼬박꼬박 제사상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심정을 모르는 그는 여전히 시건방을 떨어 댄다.

“말씀해 보세요. 왜 제가 모욕당하자마자 그런 행동을 하신 건가요.”

그의 모습에서 과거의 나를 엿봐서 그랬을까.

이상하게도 자존심을 세우는 그가 밉지만은 않아 피식 웃었다.

그에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꼈는지 그가 울컥하다 말을 삼킨다.

“동정심이라…… 맞는 말이다. 그런 건 옛날에 모두 버렸지.”

“그렇다면 왜…….”

글쎄다.

그건 나도 모를 일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스스로를 잘 알기에 나는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나는 벙찐 얼굴로 서 있는 그를 버려두고 뒤돌아갔다.

‘탈락시키는 건 이미 타이밍이 지났으니…… 남은 건 하나인가.’

이 거지 같은 경쟁 임무를 끝내는 방법은, 탈락 아니면 빠른 승리뿐이었다.

나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홀로 전장을 휩쓸겠다 마음먹었다.

검 한 자루를 챙기고 성문 밖을 나가려는 그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른다.

[경고! 경쟁 임무는 그룹원들과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그룹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채 혼자 전투를 진행하시게 된다면 기권 상태가 되며 남은 경쟁 임무 기간 동안 대기실로 보내집니다.]

[기권자의 대기실: 모니터상으로 경쟁 임무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경쟁 임무가 끝날 때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미친…….’

시스템창의 메시지가 내 뒤통수를 가격한다.

도움이라니, 이 쓸모라곤 오크가 싸 놓은 똥보다도 없는 E랭크들의 도움이라니.

심지어 혼자 나서면 대기실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독방에 갇히게 된다.

“이 개 같은 시스템…….”

[힌트: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회성이 없는 당신이라도 이번만큼은 인간관계를 넓혀 보는 것이 어떨까요?]

시스템창이 한술 더 떠 힌트랍시고 개 같은 말을 지껄였다.

한동안 나의 쌍욕 퍼레이드가 줄기차게 이어졌다.

시스템의 사돈의 팔촌까지 욕하고 나서야 나는 제정신을 차렸다.

‘이 버러지들을 데리고 뭘 하라는 거야, 젠장.’

할 수 없이 투덜거리며 내성으로 돌아갔다.

이제는 정말로 방도가 없었다.

* * *

이미 상대를 격퇴해서 그런지 한동안 잠잠함이 계속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며칠 동안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성을 조사하다 지도 하나를 발견했다.

지도는 일반적인 아날로그식이 아닌, 시스템의 영향으로 실시간 정보를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거기에는 지도상이 어쩌고 떠들어 대는 적들의 말마따나 각 그룹의 성과 공격조의 주둔지가 표기되어 있었다.

[경쟁 임무에는 총 5개의 수성조와 5개의 공격조가 존재합니다. 각 조에는 S~D랭크의 예비 각성자들이 한 그룹이 되어 주둔해 있습니다.]

[현재 상황: 수성조 4개, 공성조 5개. 서쪽 성 1개가 함락되었습니다. 남은 깃발은 4개입니다.]

각 성의 그림 위에는 등급도 표기되어 있었다.

모두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가운데, E랭크 조라 쓰여 있는 우리의 성이 초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이러니까 E랭크들만 모여 있는 성이랍시고 헐레벌떡 오지…….”

다른 랭크들이 뒤섞여 있는 그룹에 비해 만만해 보일 만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밸런스가 맞지 않는 상태다.

다른 자들에게 생각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한 번쯤 의심해 볼 만도 할 것이다.

‘아까 그들은 머리에 뇌가 아니라 우동 사리가 채워져 있는 건가.’

위치를 보아하니 제일 가까운 주둔지에서 시작한 그룹인 것 같았다.

기왕 근처에 있는 김에 등급도 낮아 보이겠다, 다른 그룹에 선수라도 뺏길까 허겁지겁 공격을 시도해 온 모양이다.

깊은 생각을 하기엔 너무나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깃발에 눈이 먼 것이다.

“다들 준비됐나?”

“네,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만…… 괜찮을까요?”

내 부름에 몇 명의 예비 각성자들이 모여든다.

인원수가 많기에 미리 조를 짜 두었다.

그중에서도 훈련 중에 그나마 쓸 만해 보이는 자들을 골라 리더 역을 부여했다.

그 와중에 이번 전투에서 제일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이도윤은 긴장을 숨기지 못한다.

“주둔지에는 몇 없을 테니 걱정 마라. 그저 일러 준 대로만 한다면 충분해.”

“하지만…… 저희는 인원수만 많다 뿐이지 스탯도 낮고…….”

다들 그의 말에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전의 승리로 어느 정도 분위기는 바뀌었으나 역부족인 듯하다.

“스탯이라…… 그래. 적들이 너희보다 훨씬 강하긴 하지.”

“네, 그러니까…….”

“하지만 전쟁은 뛰어난 장군도 중요하지만 결국 병사들의 싸움이야.”

나는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들의 말대로 E급 각성자들만 있어 가지고 있는 힘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미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는 모습들은 누가 봐도 약자 그 자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모두 했다. 나머지는 너희가 하는 바에 달렸다.”

“우리가 하는 것에 따라…….”

모두가 감동한 듯 벅차오른 얼굴을 한다.

그때 한 명이 조심스레 손을 들고 나에게 질문해 온다.

그녀는 한껏 기대하는 표정이다.

“아무것도 없는 저희를 이렇게까지 믿어 주시다니…… 용병왕님은 저희에게서 가능성을 보신 건가요?”

“가능성? 그런 건 너희한테 없다.”

“네??”

“조금도 없어.”

단호한 대답에 그들에겐 실망 어린 기색이 가득했다.

무슨 선택받은 용사라도 될 줄 알았나 보다.

하지만 내 말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었다.

‘애초에 잠재 등급부터 E를 받은 놈들이 가능성은 무슨 얼어 죽을 가능성.’

내가 믿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다.

오직 믿는 건 나 자신뿐.

“이 정도까지 해 줬으면 지는 게 더 이상하지.”

“하긴…… 어제까지 훈련을 계속했더니 어느 정도 손발이 맞아진 것 같긴 합니다.”

“아……. 훈련…… 힘들긴 했죠…….”

궁수조의 리더를 맡은 자가 갑자기 아련한 얼굴로 중얼거린다.

그러다 훈련을 떠올렸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그냥 힘든 수준이 아니지 않나요.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아…….”

“우리 조에 20명은 훈련받다가 탈락했어요……. 죽기 직전까지 훈련하는 게 아니고, 진짜 죽을 정도로 힘들어서…….”

“그래도 우린 이겨 냈어……! 그 미친 훈련을!!”

글썽거리는 눈으로 말하는 예비 각성자들.

그걸 보는 나는 어이가 없어 혀를 찼다.

‘쯧. 그깟 것도 버티지 못하면서 무슨 헌터가 되겠다고…….’

그래도 처음에 말랑했던 그들은 제법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럭저럭 봐줄 만한 상태.

하지만 그걸 보는 내 기분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망할 시스템 같으니라고.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야.’

이 기본도 안 된 놈들을 데리고 다니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며칠 훈련시키는 동안은 옛날 기분도 내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나름대로 따라오려 애쓰는 모습들이 재밌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해 줬는데도 이기지 못하면 머저리나 다름없다.

“기왕 시작한 거, 지는 꼴은 절대 못 본다.”

“예……? 그건 당연…….”

“만약 패하고 돌아온다면…….”

내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 긴장한다.

“제발 죽여 달라고 빌 때까지 굴려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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