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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31화 (31/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1화

[경쟁 임무 산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임무: 공성전>]

[공성 / 수성 중 수성조의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공성조는 붉은색의 옷, 수성조는 푸른색의 옷으로 표시됩니다.]

[각 그룹의 성 중심부에는 깃발이 하나씩 존재합니다. 공성조의 경우 가장 많은 깃발을 빼앗은 그룹 순으로 순위가 정해집니다.]

[수성조는 몰려오는 공격을 막아내고 깃발을 지켜 내세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고, 우리는 하얀빛으로 휩싸였다.

곧 공간 이동이 끝나고 눈앞에는 단단한 돌벽들이 보인다.

‘공성전이라…… 이 정도 규모로 큰 전투는 진행할 순 없겠고, 그냥 장난에 불과하군.’

일반적인 성이라고 불릴 만큼 크진 않지만 망루 등 있을 것은 제법 갖춘 형태이다.

특히나 우리가 있는 곳은 험준한 산을 끼고 있는 곳이었다.

수성을 하기에 최적인 위치이다.

물론 물자가 끊긴다면 발이 묶인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튜토리얼을 하다 굶어 죽어 탈락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으므로 장점밖에 없을 것이다.

“와, 여기가 경쟁 임무 장소인가?”

예비 각성자들은 도착하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마치 어딘가 여행이라도 온 듯 서로 대화하는 게 제법 화기애애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이 분위기는…….

‘전혀 뭘 해 보려는 의지가 없군.’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 그룹은 그야말로 망했다.

이제는 앉아서 서로 수다를 떠는 모습이다.

지금 당장 어느 그룹이 공성을 시작해 올지 모르는 판국이지만 화기애애하게 통성명이나 나누고 있는 게 대학교 MT를 방불케 한다.

“과자 드실래요?”

“좋습니다. 저는 마실 걸 좀 들고 왔는데…….”

‘허, 놀고들 있네.’

어차피 나도 뭘 해 보려는 생각은 없었으므로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벌러덩 누웠다.

이대로 며칠 동안 휴가라도 온 느낌으로 지내면 될 것이다.

경쟁 임무가 끝나면 나도 탑 밖으로 나가게 되겠지.

눈을 감고 따스한 햇빛을 즐기는데, 무언가가 해를 가렸다.

‘낮잠이라도 자려고 했는데.’

인상을 찌푸린 채로 반쯤 기대어 일어나니 몇몇 헌터가 무리 지어 있었다.

“저…… 진 헌터님. 저희 이제 뭘 하면 될까요?”

‘모두가 아무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닌가.’

그래도 그건 이들의 사정이다.

내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그들을 그대로 무시한 채 다시 누웠다.

눈치 보던 사람들은 다시 쭈뼛거리며 어딘가로 향한다.

“진 헌터님도 튜토리얼에 관심이 없으신가 봐.”

“당연하지. 귀환자들이 여기 오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나는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며 경쟁 임무에 대한 내용이 담긴 시스템창을 훑어보았다.

그곳에는 여러 규칙이 읽기도 귀찮게 줄줄 적혀 있었다.

[깃발은 총 5개입니다. 획득한 수에 따라 순위가 정해집니다]

[공성조에는 기본적인 공성 무기가 주어집니다.]

[남은 제한 시간: 90일 남음]

“×발, 90일?”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아무리 욕하며 삿대질해 봐도 시스템창에 적힌 90일은 수정되는 법이 없었다.

“이번 튜토리얼 기간이 보통 한 달인 거에 비하면 길긴 하지……. 이제 보셨나 봐…….”

모두가 겁먹어 내 눈치만 살피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바닥을 발로 굴렀다.

단단한 벽돌이 마치 두부로 만들어진 것마냥 움푹 파인다.

그에 예비 각성자들은 더욱 움츠러든다.

“최대 기간이긴 합니다만, 아마 그전에 끝날 수도 있겠죠. 특출 난 그룹이 있거나, 혹은 우리가 탈락한다면요.”

누군가 한 명이 다가오며 말한다.

“저는 이도윤입니다. 용병왕님을 직접 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이도윤.

20대 초중반은 되었을까, 앳돼 보이는 얼굴이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함께 나이와 맞지 않는, 제법 깊어 보이는 눈이 시선을 끈다.

“탈락이란 말이지…….”

생각해 보니 그것이 이곳을 나가는 가장 간단하고 빠른 방법이다.

경쟁 임무에서 탈락하는 방법은 깃발을 빼앗기거나 모두가 전멸했을 때겠지.

하지만 깃발을 빼앗기는 데는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몰랐다.

마음을 먹은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병장기 중 손에 가장 익은 롱소드를 쥐어 들었다.

“진 헌터님, 검은 왜……?”

그 녀석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

하지만 서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게 수상하긴 한지 어깨를 움츠린다.

“악의는 없다.”

“……예? 그게 무슨 말씀…….”

“가만히 있어라. 아무리 나라도 움직이면 잘못 찌를지도 몰라. 그래도 잠깐 따끔하고 말 거다.”

사실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일지언정 그 정도는 쉽지만, 귀찮은 일을 덜기 위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내 말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주춤거리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어차피 여기서 죽는다 해도 진짜로 죽는 건 아니니까.’

단숨에 끝내줄 테니, 이 정도는 정말로 찰과상을 입은 정도일 것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검이 그의 몸에 닿는 순간, 무언가 내 검을 튕겨 낸다.

삐빅-!!

[경고! 자신의 그룹원에게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젠장.”

시스템 메시지를 듣고 바로 검을 손에서 놓았다.

바닥에 부딪힌 롱소드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나뒹군다.

“미친, 지금 용병왕이 우릴 죽이려 했던 거야!?”

“갑자기 왜?? 설마 튜토리얼이 길어질 거란 말을 듣고……?”

“……저를 탈락시키려고 했던 건가요.”

내 앞에 있던 그는 표정을 굳힌 채 떨리는 손으로 목을 쓰다듬는다.

방금 공격당할 뻔한 그 자리였다.

주변에 있던 자들의 경악한 목소리가 성에 울려 퍼지고, 뜬금없는 소란에 궁금해진 다른 그룹원들이 기웃대기 시작한다.

구경거리가 되긴 싫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짜증 나는군.’

털썩 주저앉자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얌전히 누군가 성을 공격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

‘그냥 그룹원들을 이끌어 주는 척하면서 사지로 몰아넣을 걸 그랬나.’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게, 신뢰도는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잘 느껴진다.

한차례 사건이 지나가자 그들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 성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러면서도 내 주변은 절대 다가오지 않는 게, 방금 전 일이 충격적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눈을 감고 그저 한참을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어? 저쪽에 누군가 다가오는데?”

“우리보단 인원수가 적긴 한데…… 공격하러 오나 봐.”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모두 성벽에 바짝 붙어 바깥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법사와 궁수들은 성벽 위를 경계하고 나머지는 성문부터 공격해! 문을 뚫어 버리고 일제히 들어간다!!”

고개를 내밀어 밖을 보자 적들이 커다란 공성추를 끌고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색의 옷을 입은 걸 보니 공성의 역할을 부여받은 공성조였다.

거리가 제법 떨어진 곳에서는 누군가가 그들을 향해 소리치며 지휘하고 있다.

“나 저 사람 알아! 이번에 잠재 등급으로 S랭크를 받은 예비 각성자야!”

한 명이 지휘관 역할을 하는 자를 확인하곤 소리 지른다.

예비 각성자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한지 다들 아는 눈치였다.

‘벌써 전열을 가다듬고 온 건가.’

경쟁 임무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저만한 인원을 통솔해 온 것은 칭찬할 만하다.

“공격하라니까 대체 뭐 하는 거야?”

“저…… 근거리 계열이라 검밖에 못 쓰는데요.”

“그럼 공성추에라도 붙어 있어!! 지도를 보니 여긴 고작 E급만 모여 있는 곳이야, 문만 뚫으면 우리가 이긴다!”

하지만 그는 우왕좌왕하는 예비 각성자들을 제대로 통제하진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놓고 성문을 통과하려 애를 쓰는 모습을 보니 이 임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쯧, 공성전이 뭔지 잘 모르는군. 성을 대놓고 돌파하려 하다니.’

지금은 신나게 성문을 부수고 있지만 그저 위에서 끓는 기름이라도 떨어트리면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수성은 공성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

수성을 하고 있는 적들보다 열 배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알려진 것도 그 이유였다.

‘대충 공성조는 200명 정도인가. 원래라면 불리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등급에 따른 스탯 차이가 현저히 차이 날 테니 얼추 맞는 밸런스처럼 보인다.

막말로 A등급 헌터 하나를 처치하기 위해서는 최하 등급인 E등급 수십 명이 달려들어야 상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햄스터 떼들의 습격을 받는 인간과 같은 꼴이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E등급만 모여 있는 성이라고 너무 만만히 본 것이 아닌가.’

그 한심한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한 명이 나를 알아본 듯 소리를 지른다.

“헉!! 저기 용병왕 아니야??”

“성문 뚫는다 해도, 이거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패기가 넘치던 상대편은 그대로 굳어 버린다.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는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구경만 하며 멀뚱히 지켜볼 뿐이었다.

‘아주 가관이군.’

내가 팔짱까지 끼고 밑을 내려다보자 그룹원들의 가뜩이나 없던 의욕이 더욱 바닥으로 치닫는다.

처음에 긴장하던 상대편도 내가 이 상황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는 우리가 만만했는지 그들의 분위기가 점점 풀려 간다.

그때 성벽 밑의 누군가가 내 옆에 서 있던 이도윤을 발견하고 떠들어 댄다.

“뭐야, 이도윤이잖아? 무려 E랭크를 받은 예비 각성자?”

‘잠깐, 저 새끼는??’

내가 본 게 맞나 싶어 눈을 비비며 확인했다.

재수 없는 낯짝의 그놈은 여전히 주절거리며 시비를 털어 대고 있었다.

“……김진호.”

“허.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군. 그래도 덕분에 내가 직접 널 탈락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건가?”

“…….”

“김진호라고?”

저 이름이 맞다면 정말로 저놈은 내가 아는 놈이다.

내 중얼거림을 들은 이도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어렸을 때 잠시 지내던 동네에 있던 친…… 구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좋지 않은 관계가 되어 버렸지만요.”

그는 내가 그저 이 상황이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설마 저놈, JJ물산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놈 맞나.”

“……예? 맞습니다만 어떻게 아십니까? 지금은 아마 없어진 회사이긴 합니다만…… 그곳에서 다음 사장이 되기 위한 후계자 교육을 받았었습니다.”

내가 아스티란으로 넘어가기 전, 매일같이 욕하며 출근하던 회사의 김진호 팀장이 맞았다.

회사에서 통용되던 별명은 개진호.

소극적이던 이미지도 많이 변했고, 말단 사원에 가까운 날 기억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때는 어린놈의 새끼가 허구한 날 거들먹거리며 사원들을 괴롭혀 댔었다.

그의 취미는 커피 뒤엎기, 밤새워 작성한 서류 찢어발겨 회사에 뿌리기 등등…….

‘다시 생각해도 정말 천하의 쌍놈…….’

그래도 아스티란에서 별의별 놈들과 부대끼다 보니 이제 저 정도는 별생각이 없다.

이제 와서 고작 예비 각성자에게 복수랍시고 직접 손을 쓰는 것도 체면 떨어지는 일이고.

“네가 이 모양이니 너희 아버지도 널 버린 거지! 무려 용병왕도 E랭크인 널 재활용도 못하니까 방관하는 거고. 이 인생의 패배자 새끼야!”

[일을 이거밖에 못 해 와!?]

[저…… 팀장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회의실이라도 가셔서…….]

[니들은 다 인생의 패배자야! 이 한심한 밥버러지 새끼들!!]

여전한 그의 말버릇.

이전에 나도 들었던 말이다.

‘저 새낀 여전히 저러고 있네.’

옆을 보니 이도윤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꾹 쥔 주먹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지만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저 울분을 참는다.

마치 과거의 나처럼.

‘허, 이거 제법…….’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것도 잠시.

이도윤에게서 투영되는 내 옛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든다.

“……맞는 말입니다. 저는…… E랭크 헌터니까요. 영원히 김진호를 이기지 못할 겁니다.”

음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궈 버리고 마는 이도윤.

주변의 예비 각성자들이 그를 안타까워하며 다독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옆에 있던 무기대에서 활을 꺼내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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