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30화
“튜토리얼…… 참가라고?”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들고 멈춰 버리고 말았다.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아니면 내가 아스티란에 있을 동안 지구에서 튜토리얼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 메시지가 보이셨나 보네요……. 한동안 귀환자가 없었던지라 저도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형님도 귀환자셨죠.”
“튜토리얼 기간이라…… 협회에서 준 가이드북에서 본 적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보고 바로 쓰레기통에 처박았지.’
장수만 300장이 넘는지라 살펴볼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그만한 걸 어느 세월에 다 읽고 있는단 말인가.
그래도 튜토리얼에 대한 부분은 조금은 기억이 난다.
분명 예비 각성자들이 헌터로 거듭나기 위한 교육 기간으로 적혀 있었다.
“튜토리얼 기간이 시작되면 모두 동시에 잠재된 등급을 부여받는 거 아시죠? 하지만 잠재 등급은 잠재 등급일 뿐, <검은 탑> 내에서 받는 튜토리얼 임무, 일명 경쟁 임무를 훌륭히 진행하면 잠재 등급보다 높은 등급을 부여받을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가산점이 주어지는 거죠.”
“어찌 되었든 예비 각성자를 위한 기간이었으니 나랑은 상관없는 일 아니던가?”
“귀환자가 없었던 최근까지 그렇긴 했습니다만…… 귀환자가 돌아오는 시점에는 좀 다릅니다. 그때 열린 튜토리얼에는 귀환자까지 같이 들어가게 되죠. 시스템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다들 추측하기론 다른 차원에서 있던 귀환자들이 지구에 적응하게 하기 위한 거라 예상하고 있어요.”
“아니, 그딴 곳에 끌려가는데 적응을 하면 뭘 얼마나 적응한다는 거야?”
“사실 형님이 특이한 겁니다. 물론 간간이 멀쩡해 보이는 귀환자도 있긴 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겪고 돌아온 귀환자들의 정신 상태는 좋게 말하려 해도 정상인과는 동떨어져 있으니까요.”
그제야 귀환했을 첫날, 모두가 숨죽이며 내 행동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건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말이 좀 통한다 싶으니 개떼처럼 달려들긴 했지만.
“좋든, 싫든 지구에서만 지냈던 각성자들과 부대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잊고 있던 지구 생활에 대한 기억도 찾게 되더라고요. 예비 각성자들은 귀환자들에게 동화되고, 귀환자들은 그 반대가 되는 거죠. 일석이조랄까…….”
‘그러니까 서로가 서로의 뒤치다꺼리를 하라 이건가.’
아무리 들어 봐도 따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시스템의 얄팍한 수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질색하실 줄 알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튜토리얼 생활이 괜찮으실지도 몰라요.”
“이미 잘살고 있는 귀환자 잡아다 처넣는 게 괜찮다고?”
“하긴…… 적응을 잘하다 못해 마치 바…….”
갑자기 박민호는 흠칫 놀라며 말을 멈춘다.
“……람과 같은 속도로 하셨죠!”
“바…… 뭐?”
“아닙니다!!”
……바퀴벌레라고 하려던 건 아니겠지.
들어 올리려던 주먹을 잠시 멈추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추측만 가지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폭군만 하는 짓이다.’
눈치를 살피는 박민호와 눈이 마주친다.
“아아악!!”
나는 오늘만큼은 폭군이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 * *
[문 앞에 택배 두고 갑니다.]
“[념념…… 소리 들어 보니 밖에 또 떡이 왔나 보네요? 이번엔 무슨 맛이려나~ 저번에 딸기 찹쌀떡 정말 맛있었는데, 또 그거면 좋겠네요!]”
쉴 새 없이 떡을 주워 먹던 아렐리아가 기쁜 듯 날개를 휘두른다.
벌써 배달된 떡 상자만 200개가 넘었다.
‘또 떡인가…… 이게 집이야, 떡 공장이야. 그나마 아렐리아가 다 먹어 줘서 다행인가.’
튜토리얼에 참여하게 되는 예비 각성자들을 위해 떡을 선물하던 문화가 정착된 지 오래라고 한다.
나와는 상관없긴 하지만 관습적인 분위기 탓에 온갖 곳에서 협회를 통해 떡을 보내왔다.
덕분에 단 걸 좋아하는 그녀만 잔뜩 신이 났다.
“[한국의 떡이란 건, 정말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네요.]”
며칠 사이에 안 그래도 동글동글한 헤츨링의 몸을 하고 있던 그녀는 들고 있는 떡만큼이나 둥글어졌다.
가끔씩 아렐리아를 보고 있자면 볼링공마냥 굴려 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마계에는 미식을 즐기는 고위 마족들이 별로 없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하여간 마족 놈들은 뭐 하고 있나 몰라. 마수들의 살점이나 뜯어 먹을 줄 아는 야만족들 같으니라고. 가끔은 천족들이 우릴 폄하하는 말도 공감이 갈 정도라니까요.]”
어느새 택배 상자를 가져온 그녀는 내용물을 확인하곤 환희에 찬 소리를 질러 댔다.
“[딸기 찹쌀떡!!]”
양손에 떡을 들고 입에 욱여넣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온다.
그 조그마한 몸뚱이의 어디로 들어가는지 경이로울 정도.
배 속에 거대한 아공간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렐리아, 너…… 요새 살찐 것 같은데.”
“[느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아렐리아를 뒤로한 채 나는 요새 버릇처럼 보고 있는 1랭크 채널을 열었다.
[영원: 용병왕님이 참여하는 튜토리얼이라…… 매우 기대가 되네요.]
[아스티란짱짱: 이거 완전 양학 아니냐고……. 예비 각성자들이 기나 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오늘 역시 튜토리얼에 대한 이야기로 채널은 뜨거웠다.
요즘 1랭크 채널을 자주 확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이드북에 쓰여 있는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살아 있는 정보가 더 와닿기 마련이니까.
[홍: 그나저나 튜토리얼 하니까 생각나는데…… 그때마다 주어지는 임무가 다르잖아. 마탑대표 왔을 때는 처참하게 꼴찌하지 않았음? 왜, 그 마법사들 대거 귀환했을 때 말이야.]
[영원: 아, 아스티란의 마탑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말인가요. 그때 귀환한 국내 마법사만 50여 명이 넘었죠. SS랭크로 귀환한 김상수 헌터님까지 계신 와중에 팀별 대항전이 귀환자와 예비 각성자끼리 이루어져서 밸런스 붕괴다 뭐다 난리였는데…….]
[마탑대표: 아니, 내 이야기 하고 있던 거야? 나는 그때 잘했었다고! 다른 마법사들이 문제였지!]
[마법최고: ……저희도 억울하다고요……. 하필 튜토리얼 임무로 그게 나올 줄이야…….]
[홍: 페널티도 보통 페널티가 아니긴 했지. 온갖 마법사들 모아 놓고 체육 대회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체육 대회라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귀환자에게 페널티를 줄 수 있는 임무 위주로 배정된다고 들었지만 체육 대회라니?
체력이라곤 갓 태어난 신생아만큼이나 없는 마법사들에게 적절한 페널티이긴 했다.
[마탑대표: 예비 각성자들에게 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하여간 마법사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생각난 김에 오늘 다 같이 모아서 근력 운동이라도 할까 봐. 마탑 내에 큰 헬스장 하나 만들어 놨는데 왜 아무도 쓰질 않는 건지, 원.]
[마법최고: 지부장님, 제발 신입 마법사들 들어오면 강제로 PT 좀 시키지 마세요. 다들 바들바들 떨면서 오니까 일을 시킬 수가 없어요.]
[마탑대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거 몰라?? 마법은 정신력 싸움이야!]
[초코맛아이스크림: 아무리 생각해도 시스템 골때림……. 이번에도 그런 임무가 나오지 않을 거라곤 장담 못하지. 용병왕이 쩔쩔맬 임무라? 예상이 전혀 가지 않긴 하는데…….]
[영원: 하여간 유난히 기대되는 튜토리얼입니다. 어떤 경쟁 임무가 배정되는지도요.]
[홍: 근데 용병왕이 임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거란 기대를 하긴 하는 거야? 나라면 안 할 거 같은데.]
[세하세하: 하긴, 길드장님도 경쟁 임무를 했을 때 누워만 계시긴 했죠…… 덕분에 제일 빠르게 탈락…….]
[홍: 아니, 그걸 열심히 참여하는 귀환자 놈들이 이상한 거라니까??]
다들 이번 튜토리얼의 경쟁 임무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한다.
내가 어떤 활약을 보여 줄지, 아니면 마법사들처럼 처참하게 깨질지 흥미진진한 듯하다.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도.
홍현민의 말마따나 나는 시스템의 장난질에 놀아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만히만 있자.’
그것이 이번 튜토리얼 임무에서의 내 목적이었다.
* * *
어느덧 튜토리얼이 시작되는 날이 다가왔다.
틀어져 있는 TV에서는 <검은 탑> 주변이 중계되고 있었다.
화면에는 곧 튜토리얼을 시작할 예비 각성자들과 익숙한 길드장 얼굴이 몇몇 보인다.
“안 가길 잘했군.”
탑 주변은 이미 모여든 인파들로 가득했다.
민간인들은 통제했다지만 대충 봐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은 모두 모인 듯하다.
“[마왕님, 그 튜토리얼인가 뭔가 하는 날인데…… 이렇게 집에 계셔도 되는 거예요?]”
“어차피 시간이 되면 강제 소환될 텐데, 뭐.”
어디에 있든지 튜토리얼의 강제력은 발현되기에 장소는 굳이 상관이 없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게이트 안에서 공략을 진행하던 귀환자도 소환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튜토리얼 기간에는 모두 얌전히 소환을 기다리는 처지.
나 역시 거기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스티란짱짱: 혹시나 해서 <검은 탑> 주변에 도착했는데, 역시나 용병왕은 없네염. 다른 예비 각성자들과 기자들, 헌터들만 잔뜩…….]
[홍: 그러게 그 도떼기시장을 왜 가 있나. 튜토리얼 마치고 등장할 슈퍼 루키 기다리는 심정은 알겠다만…….]
[영원: 자유 길드장님, 그러다 저번처럼 S랭크 헌터 놓치십니다. ^^]
[세하세하: 맞아요, 길드장님……. 저희도 제발 좀 새로운 신입 좀 맞이합시다. 매번 다른 길드에 빼앗기기만 하고…….]
[홍: 그런 건 부길드장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바쁜 사람이라고!]
[세하세하: 일이나 좀 제때 하시고 그런 말을……. 하…… 아닙니다…….]
모두들 곧 탄생할 헌터들로 기대감이 가득하다.
뉴스에서도 이번 기수에서는 S급 이상의 헌터들이 얼마나 탄생할 것인가에 대한 말들을 떠들어 댄다.
튜토리얼이 가지는 영향력은 이미 한국 전체를 들뜨게 하기 충분했다.
‘하여간 본인들이 참여하지 않으니까 신이 나서는…….’
물론 이미 기분이 바닥으로 향해 가는 나는 제외였다.
[잠시 후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귀환자와 예비 각성자들은 곧 있을 소환을 대기해 주세요.]
슬슬 때가 되었다 싶었는데,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린다.
밀려오는 귀찮음에 한숨을 길게 쉬었다.
“가능한 빨리 끝났으면 좋으련만.”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혼자선 너무 심심하단 말이에요.]”
아렐리아가 투정을 부리듯 말한다.
여태껏 계속 경쟁 임무에 데려가 달라고 졸라댔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를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사실 그 안에서 펫이 소환될지도 의문이긴 했지만.
[제 17기 튜토리얼을 위한 소환을 진행합니다.]
“시작인가…… 기다리고 있어.”
“[앗! 이제 가시는 건가요? 잘 다녀오세요~]”
그녀의 말이 점점 작게 들린다.
시야는 서서히 흐려지고, 눈앞이 희뿌옇게 물들었다.
이윽고 어디론가 이동되는 느낌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헐, 이번 튜토리얼에 용병왕도 참여한다더니…….”
“와…… 이렇게 가깝게 보는 건 처음이야.”
내 앞에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둘러싸고 있는 예비 각성자들이 있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천 명가량의 대인원이었다.
[환영합니다, 귀환자님! 이곳은 대기실입니다. 곧 경쟁 임무를 산출한 뒤 해당 공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경쟁 임무 동안은 인벤토리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E랭크 그룹에 소속되었습니다.]
‘뭐? 내가 하위 랭크의 그룹이라니?’
경쟁 임무가 아무리 제각각이라지만 등급별로 나눠지는 임무는 처음 듣는다.
보통은 전체 등급이 섞여 주어진 임무의 성공을 위해 경쟁한다.
귀환자가 섞인 튜토리얼은 페널티가 상당하다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모두가 하고 있는지 곧 대기 공간은 소란으로 가득 찼다.
“여기에 E급 예비 각성자만 있다고? 그럼 다른 랭크의 그룹도 있다는 건데……. 잠재 등급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스탯도 서로 다른데 어떻게 이기라는 소리야!?”
“용병왕 때문에 이런 경쟁 임무가 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열심히 해서 D랭크라도 부여받으려고 했는데, 망했나…….”
한 남자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숨을 쉰다.
그에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허탈하게 여기저기서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용병왕님이 계시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전에 마탑 귀환자들 이야기 못 들었어요? 저희는 이미 엄청난 페널티를 끌어안고 시작하는 셈이라고요.”
“그 임무는 거의 전설로 남긴 했죠…….”
그러면서도 몇 명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겠는지 나를 부담스러운 눈으로 힐끗거린다.
그래 봤자 최대한 빨리 임무에 실패하려는 내 의지는 꺾이지 않았지만.
“저, 진 헌터님……? 그래도 잘 부탁…….”
예비 각성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우물쭈물 말을 걸어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주변에 있는 벽에 기대어 눈만 감고 있었다.
의욕이라곤 쥐뿔도 느껴지지 않는 내 상태가 잘 느껴졌는지 그는 주춤거리면서 돌아간다.
“어떻게 해……. 용병왕님은 경쟁 임무에 관심이 전혀 없으신가 봐요…….”
“대부분의 귀환자분이 그렇긴 했죠…… 강제로 소환되는 일이라, 끌려온 거 자체에 불쾌해하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럼 저희 빠르게 탈락하겠네요……. 저희같이 스탯도 낮고, 스킬도 변변찮은 예비 각성자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저는 마법사 계열로 각성했지만 기본 스킬은 파이어 볼 하나뿐이에요. A등급은 5서클 마법까지 가지고 시작한다던데.”
어떤 자는 본인은 생산계라 그림 그리기 스킬밖에 없다며 하소연한다.
그를 향해 모두 짠한 눈빛을 보낸다.
본인은 그래도 저거보단 낫다, 싶은 얼굴들이다.
‘예술계는 어딜 가도 대우받지 못하는 건가.’
그게 헌터계에까지 통용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특히나 여길 나간다면 모를까 사실상 지금은 전혀 쓸모가 없는 스킬이기도 했다.
당장 어떤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짐 덩어리와 다름없을 테니까.
대기실은 시작하기도 전에 짙은 패배감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과연 그것까지 시스템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막가는 시스템이라지만 최소한의 장치마저 없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