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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27화 (27/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27화

“진 헌터님, 여기 말씀하신 커피와 목베개…….”

“어, 그래. 놓고 가라.”

협회 직원이 놓고 간 커피를 빨며 오늘도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을 구경했다.

나를 극진히 모시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내 수발을 들랴, 공략 지침 정리하랴 정신없어 보인다.

혼자만 놀고 있는 꼴이라 약간의 양심의 가책은 생겼으나 내 알 바 아니지.

그래도 어느 정도 도와주고는 있었다.

공략에 대해 말이라도 해 주는 게 어디야.

“진 헌터님, 개미굴 미궁에서 필요한 물품은 이 정도면 될까요?”

“아쿠아 계열 스크롤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아이템들보다는 레인 캐스팅 스크롤이 몇백 장 더 있어야 해.”

“레인 캐스팅이요? 그냥 비 내리게 하는 마법 아닌가요? 공격 마법도 아닌걸 몇백 장이나…….”

‘이 자식은 회의 때 졸기라도 했나…….’

이미 실컷 한 설명을 다시 하려니 짜증이 난다.

한 소리 해 주려다 협회 직원들의 노고를 알기에 마음을 돌렸다.

며칠째 집에도 못 가고 각종 던전의 공략법부터 그에 필요한 아이템들의 발주까지.

웬만한 체력으론 버틸 수도 없을 강행군에 다들 지쳐 있을 법도 했다.

“개미굴은 전체적으로는 수직으로 뚫린 큰 통로를 중심으로 층층이 뚫린 미로 구조다. 밑으로 갈수록 강한 개미 몬스터가 등장하지만 헌터들이 던전에 입성하면 아마 상층부에서 시작하게 되겠지. 여기까지 말해 주면 이해하겠나.”

“예……? 모르겠는데요…….”

헌터 협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전투 관련 헌터들을 직원으로 뽑지만 당연히 머리 쓰는 일을 할 민간인도 뽑는다.

사기업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고연봉과 각종 복지 혜택으로 무장한 협회는 당연히 경쟁률이 치열하고, 이제는 웬만한 대학 출신은 넘보지 못할 정도.

고로, 내 앞에서 멍청한 얼굴을 한 이 직원도 예전에는 머리 좋기로 유명한 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공부 머리와 이런 머리는 좀 다른가.’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어 꾀죄죄한 몰골의 그를 보며 다시금 솟아오르려는 화를 억눌렀다.

그래, 혈액 대신 커피가 흐를 정도일 텐데.

잠시 뇌와 겁대가리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할 수도 있지.

“일단 중심 통로를 발견하기만 하면 거기에 레인 캐스팅을 퍼부으라고 해. 몬스터이지만 기본적으로 개미. 물에 취약하기도 하고 개미굴 전체가 잠길 정도면 웬만한 몬스터들은 손대지 않고도 처치할 수 있을 거다. 아마 여왕개미는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그 정도야 일반적으로 해야 할 개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아! 대다수 개미 몬스터들은 익사시키고 보스 몬스터만 처치하는 방법이군요.”

“마탑에서 지원 나온 마법사 몇이 공략대에 무조건 끼어 가는 건 알지만 마나가 텅 빌 때까지 마법을 써도 그 넓은 개미굴을 모조리 잠기게 하지는 못할 테지. 그리고 그 정도로 마나를 낭비하면 전투에 지장도 생길 테고.”

설명을 마치자 직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여전히 눈은 피곤 탓에 동공이 풀려 있어 이해를 하긴 한 건지 불안했다.

“일단 적어. 모조리.”

“네엡…….”

직원은 들고 온 노트에 느릿하게 펜을 움직인다.

제대로 적고 있나 슬쩍 메모를 확인했다.

[일단 적어. 모조리.]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고 한 건 취소다.

그는 미친 기억력으로 마치 녹음기를 들고 온 듯 내 말투 하나까지 모조리 적고 있었다.

그것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감사합니다…….”

머리를 꾸벅 숙이더니 다시 힘없는 발걸음으로 본인의 자리로 돌아간다.

책상 위에는 온갖 문서들과 수십 개의 커피 컵이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그 직원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책상들이 같은 꼬라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모두가 며칠째 철야를 한 탓에 흐느적거리며 일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진 헌터님, 진행은 잘되고 계십니까?”

그때 나를 이 혼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주범이 나타난다.

양손에는 커피 열 몇 잔이 테이크 아웃 트레이에 들려 있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커피들과 똑같은 브랜드의 커피였다.

“으어어…… 커피다…….”

“나도…… 나도 마실래…….”

사방에서 카페인 좀비들이 달려든다.

말없이 커피를 받자마자 벌컥벌컥 마시는 소리가 들리고, 그제야 반쯤 사람의 몰골로 돌아온 직원들이 우르르 제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사방에서 전화 돌리는 소리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이게 잘하고 있는 걸로 보이나?”

이를 악문 채 대답하는 나를 박신우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뭐, 나야 잘하고 있지. 그런데…… 이게 정상으로 보이나?”

내 대답에 박신우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현재 80퍼센트 정도 진행 중이라고 보고받았습니다만…… 혹시 문제라도?”

그는 무심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더니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건 없다는 표정.

“으어어…… 콜록콜록…….”

죽기 일보 직전으로 보이는 저 직원들을 보면서 정녕 아무런 느낌이 없는가.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닌 게 분명했다.

나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인성이었다.

“애들 집에는 보내 주며 일을 시켜야지. 송장 하나 치워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거 안 보이나.”

물론 그들의 업무와 함께 내가 시키는 온갖 자질구레한 심부름 때문에 바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중소기업 대리 시절, 이를 갈며 회사를 다녔던 탓에 이런 것에는 나도 모르게 예민해진다.

내가 아스티란에서 황제로 지내며 귀족들을 이리저리 굴려 먹을 때도 적어도 퇴근은 시켰었다.

비록 정시 퇴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이틀 정도만 더 고생하면 끝날 텐데 직원들도 이해해 줄 겁니다. 이 정도는 평소에 종종 있던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3일간 휴가와 포상금도 지급할 예정이며 특별 야근비도 다 계산되고 있습니다.”

줄 거 다 챙겨 주는데 뭐가 문제냐는 듯 평이한 어조로 대답한다.

이 사이코패스와 더 이상 말을 섞다가는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박신우는 그 뒤에도 근황을 묻는 몇 마디를 하더니 바쁜 걸음으로 협회 직원 중 가장 상위 직책자인 팀장에게 다가간다.

‘지부장이 왔으니 직원들이 당분간 고생 좀 하겠군.’

제법 꼼꼼한 성격인지 전체적인 일들을 체크하고 가면 직원들은 숨 쉴 틈도 없이 바 빠진다.

이미 죽상인 팀장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느긋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니 이제는 모든 직원이 박신우에게 마무리 컨펌을 받기 위해 다가간다.

나에게 물어보러 오는 직원도 슬슬 없어질 것 같아 잠깐 낮잠이라도 잘까 싶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때 내 귀에 거슬리는 큰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진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쪽과는 한두 해 협업하던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제법 고성이 오간다 싶더니 기어코 소리를 지르는 박신우.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지 심각한 얼굴이다.

흔치 않은 소란에 웬만한 일로는 꿈쩍도 안 하는 직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항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였기에 나 역시 호기심이 들었다.

“저희가 생각해도 너무 이상한지라 마탑에 정확한 답변을 요구했지만…… 마법 재료가 부족하다느니 제작 계열 마법사들이 없다느니 말을 돌려댑니다.”

“영국에 있는 총괄 마탑에는 연락을 취해 봤습니까? 한국 지부 마탑에서 처리할 수 없다면 그곳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물론 해 봤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답변을 내놓더군요. 여러모로 변명을 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왠지 모르게 내 눈치를 슬쩍 본다.

아무래도 내가 연관이 있는 일이 벌어진 듯하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김현도 팀장, 무슨 일이지.”

“아, 진 헌터님. 이런 말씀드리기가 좀…….”

그동안 사무실에서 같이 먹고 자며 제법 친해졌지만 아무래도 나와 박신우는 어려운 상대.

가운데 끼어 버려 이도 저도 못하는 김현도는 울고 싶은 얼굴이 되어 버린다.

“상관없어. 아무래도 나로 인해 마탑과 트러블이 생긴 것 같은데.”

“진 헌터님 때문은 아니고…… 아니, 맞습니다. 후…….”

그는 긴 한숨을 쉬더니 본인의 머리를 마구 헤집는다.

여간 고심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프리랜서 마법사들이 있긴 하지만 웬만한 마법사들은 모두 마탑 소속인 것, 아시죠? 그래서 저희도 마탑과 장기 계약을 하며 각종 마법 물품들을 주기적으로 받고 있었고요.”

“그런데?”

“<검은 탑> 11층 공략을 마치고 난 뒤에 저희가 진 헌터님의 도움으로 앞으로 나올 탑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소식을 슬쩍 했습니다. 당분간 대량 발주가 있을 수도 있으니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물건이 필요하며 한국 마탑 지부의 마법사들로도 부족하면 영국 본부 쪽에도 도움을 요청하려고요.”

김현도 팀장은 그러면서 고풍스러운 양피지에 적힌 편지를 하나 꺼내 보여 준다.

그곳에는 마탑 고유의 인장이 찍혀 있다.

21세기에 온갖 연락 매체가 넘쳐 나지만 아직도 원시인마냥 행동이 마법사들다웠다.

‘지구에 왔으면 문명의 이기 좀 사용하고 그래야지. 이놈들은 햄버거 가게 가서 키오스크도 못 쓸 새끼들이야. 하여간…… 응?’

편지의 내용을 훑어보았더니 가관도 아니다.

긴 내용으로 주절주절 쓰여져 있지만 결국 내용은 대량 발주는 불가능하며 재료들이 부족한지라 앞으로도 계약한 마법 물품들을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는 내용.

“최근 마법 재료 수급이 어렵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심지어 필요한 재료들은 협회 측에서 최대한 제공해 보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마법사가 부족하답니다.”

마탑에 마법사가 없다니.

이게 무슨 길드에 헌터 없다는 소리인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아마 영국 본부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 같습니다. 한국 마탑 본부장에게 연락이 한 차례 오긴 왔습니다만…… 최근 영국 쪽에서 동향이 심상치 않은가 봅니다. 아무래도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습니다.”

“타 국가들에서 한국만 유난히 탑 공략이 빠른 것에 탐탁지 않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적으로 손을 쓸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이군요.”

박신우는 머리가 아파 오는지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 꾹 누른다.

이래서 내가 관련이 있다고 했나.

벌써 <검은 탑> 11층 공략이었다.

다른 국가들은 아직도 5층 언저리에서 고생하는 중이었으니 빨라도 너무 빠르긴 했다.

탑 공략 성공 보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는지라 누구 하나가 치고 올라오면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목숨 걸고 고생해 봤자 한국 헌터들이 가지고 남은 찌꺼기들을 얻게 되는 셈이니까.

“돼지 새끼들이 공략 보상에 눈이 멀어 버렸나. 그래서 일부러 세계 헌터 협회에서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헌터 수를 제한했을 텐데.”

“한국이 압도적인 상황이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뒤처질 테니 미리 방해를 해 두고 싶은가 봅니다. 조금이라도 발목 잡기 위해서요.”

사방에서 온갖 제약을 걸어온다.

역시나 누구 하나가 특출나면 주변에선 시샘을 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지구 멸망을 막는다는 하나의 목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깡그리 멸망당하고 싶어서 안달 났군.”

내 말에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은 언제라도 쳐들어올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종족들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

물론 그걸 알고 있는 것은 현재 나뿐이지만 언젠가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헌터 전체의 전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래서는 곤란했다.

“지부장님, 김상수 헌터님 오셨습니다. 이리로 모실까요?”

김상수라면 닉네임 마탑대표던가.

그는 현재 한국 마탑 지부의 지부장이었다.

심각한 사안이기에 누군가가 직접 만나 보자며 연락을 한 모양이다.

“박신우 지부장님, 이번 건은 제가 생각해도…… 아. 진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여기서 협회를 돕고 계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좀 더 좋은 자리에서 뵐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다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김상수.

처음 협회에 왔을 때 보았던 그는 마법사 특유의 긴 로브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때보다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마치 집에서 쉬고 있다 호출을 받고 헐레벌떡 들어온 듯하다.

‘저게 마법사야, 헬스 트레이너야.’

힘 법사라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김상수를 말하는 지칭어일 것이다.

펑퍼짐한 로브에 가려져 있던 팔뚝은 그야말로 통나무 같았다.

얼굴은 마법사 계열 헌터 특유의 허여멀건 인상이었는데, 거대한 근육의 몸뚱이와 매치가 잘되지 않는다.

듣던 바에 의하면 그의 개인 연구실에는 마법 장비들이 아니라 헬스 기구가 즐비하다더니.

“오셨습니까. 마탑 본부에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데, 대충 짐작은 갑니다만…… 그래도 마탑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박신우가 건네준 편지를 읽던 김상수의 얼굴이 점점 붉어진다.

이마에는 핏줄도 솟아나는 게 진심으로 화가 난 듯하다.

“이 자식들이…… 그렇지 않아도 보내오던 S등급 마법 재료 수량을 갑자기 줄이더니 기어이 일을 이딴 식으로 만드는군요. 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6서클 이상의 스크롤을 만들 때는 상부에 면밀하게 보고하라 지시받았습니다.”

“저등급의 마법 물품들은 그래도 제작하실 수 있다는 거군요. 5서클 이하는 한국 마탑의 마법사들과 암시장을 통해 충당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암시장만으로 충당하긴 힘들 텐데.”

“고등급 마법 물품들은 마탑이 독점하고 있어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것을 구매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 골치가 아프군요.”

“어쩔 수 없이 마탑에 몸담고 있지만 저도 한국인입니다. 국가에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모른 체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지시가 있긴 하지만 신연주 마법사와 제가 몰래 제작하고 있겠습니다. 물론 많은 양의 물품들을 제공해 드리진 못하겠지만…….”

“도움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등급 마법 재료가 나오는 상시 게이트는 영국 마탑에서 독점하고 있어서 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힘들겠군요.”

사방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로 사무실이 가득 찬다.

<검은 탑> 공략을 하루라도 더 빨리 시작하기 위해 철야까지 감행했는데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들이 조금씩 적선하듯 내놓는 마법 물품들을 받아 진행하다간 다른 나라들에 따라잡힐 수도 있는 상황.

그것이야말로 마탑 본부, 아니 영국이 원하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과한 망상일 수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서 다른 나라들도 영국과 손을 잡고 합심해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고위 마법사와 재료만 있으면 된다는 건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내 머릿속에 한 가지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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