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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26화 (26/200)

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26화

“아니, 그러니까, 용병왕에게 리치가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니까!?”

“말이 되는 소리 좀 하십시오…….”

박신우는 아파 오는 머리 탓에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잔뜩 신이 난 채 말을 하는 홍현민 탓은 아니었다.

며칠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11층 공략.

점점 올라가는 난이도 탓에 헌터들을 잃을 걱정도 했었다.

물론 용병왕이 참여를 했다 하나 <검은 탑>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는 곳.

전전긍긍하며 탑 주변에 세워진 임시 본부에서 지낼 때였다.

하루가 지나자 탑의 입구가 다시금 열리며 헌터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전원 생존에 기쁨을 누리기도 잠시, 아직도 나오지 않은 진과 강준하 탓에 싱글벙글한 헌터들을 붙잡고 상황설명을 듣는데 하나같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인다.

“9대 미궁 중 하나가 11층 미션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그 말을 믿으라고 하시는 겁니까?”

“글쎄, 믿던 안 믿던 사실이라니까!!”

홍현민은 답답한 듯 자신의 감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그럼 대체 리치가 왜 진 헌터님 앞에서 그러고 있었답니까!?”

“우리도 전투 때문에 정신없어서 자세한 건 모른다고! 뭔가 협박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이미 죽은 자를 무엇으로 협박한단 말인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진의 귀환뿐이었다.

“저…… 지부장님. 기자들이 인터뷰 좀 해 달라 아우성인데요.”

이미 11층 공략이 무사히 이루어졌다는 소식은 퍼져 나간 상태.

하지만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은 공략에 대한 자세한 일을 듣고 싶어 했다.

“방금까지 생사를 오간 헌터들에게 인터뷰를 시킬 순 없습니다. 모두 돌려보내십시오.”

“어?? 나 괜찮은데!?”

홍현민이 철없이 헛소리를 지껄인다.

그를 필두로 주변에 있던 헌터들도 괜찮다는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모두 피로해 보이긴 하나 변화의 미궁을 공략하고 온 것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하긴 했다.

‘이게 모두 진 헌터님의 활약 덕분이라고 했지.’

설마하니 9대 미궁을 모두 진행해 봤을지는 몰랐다.

앞으로의 <검은 탑> 공략에 아스티란에 있던 9대 미궁뿐 아니라 다른 금지된 지역 역시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안전한 공략을 위해서라도 그의 참여를 부탁하거나 하다못해 공략법이라도 미리 듣고 알아 놓아야 했다.

하도 제멋대로인 진이라 상대하긴 껄끄럽지만 어찌 되었든 앞으로는 그에게 질 빚이 아주 많았다.

“그럼 지부장님이라도 간략하게 브리핑을 해 달라 하는데요.”

“브리핑…… 하아.”

지금 상황에서 무슨 기자 회견을 연단 말인가.

9대 미궁에 대한 말은 해 줄 순 있지만 홍현민이 말한 대로 리치가 울며불며 빌었다느니 하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긴 한숨을 쉬었다.

그저 입구만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아레스 길드장이다!! 용병왕도 지금 나오고 있어!!”

큰 소란이 일었다.

연신 셔터를 눌러 대며 소리치는 기자들.

그들의 말대로 그곳에는 잔뜩 지쳐 보이는 강준하와 정반대로 팔팔해 보이는 진이 있었다.

“진 님,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선택인 것 같습니다. 무려 리치를…….”

“아, 글쎄. 네가 걱정할 일은 없다니까 그러네. 아, 박신우 지부장.”

서둘러 달려가 마주친 그들은 서로 아웅대며 다투고 있었다.

결국은 항상 그렇듯 진의 승리로 끝났지만.

박신우는 남에게 지나칠 정도로 무심한 강준하가 걱정스레 말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에 잠시 당황하였지만 재빨리 표정을 고쳤다.

“어서 오십시오, 진 헌터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치신 곳은…… 없군요.”

“그래. 보아하니 나만 기다린 것 같은데, 탑 공략에 대해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군.”

진은 주변에 깔린 기자들과 구경하는 시민들을 슥 둘러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해 주는 여유를 보인다.

왕으로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더니 그런 행동이 제법 익숙한 듯했다.

“네, 피곤하신 것은 알겠지만 잠시 협회로 가 주시겠습니까?”

“어려울 건 없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협회장이 있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박신우는 멀쩡하게 돌아온 헌터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다.

그리고 깊숙이 허리를 숙인다.

그의 뒤에 대기하던 협회 직원들도 일제히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기존 타 국가들에 월드 랭커 헌터가 적다며 무시당하던 세월도 한때.

누구보다 <검은 탑>을 빠르게 클리어하고, 그 보상으로 헌터들은 점차 강해졌다.

이런 속도라면 국내 랭커 모두가 헌터 강국 미국을 제치고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

모두 진 덕분이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신우가 그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감사 인사밖에 없었다.

* * *

독하게 붙어 대는 기자들을 간신히 따돌리고 도착한 곳은 협회장실.

김동식은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미리 준비해 놓은 커피를 건넨다.

“11층 공략을 무사히 마치셨단 소식은 들었습니다. 심지어 모두 크게 다친 곳도 없다더군요. 허허허…… 이게 다 진 헌터님 덕택입니다.”

“다행히 다녀와 본 미궁이라서 쉬웠습니다.”

“변화의 미궁이라고는 들었습니다. 아스티란에 있었을 때보다 지금의 헌터들은 훨씬 강해졌다 하나 어찌 되었든 그곳은 9대 미궁. 진 헌터님이 없으셨다면 많은 고난이 있었을 텐데 다행이군요.”

강동식은 그새 박신우가 정리를 마친 보고서를 훑으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미궁을 부숴…… 크흠.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클리어하셨다고요. 대단합니다. 그런데…… 보스 몬스터와 나눌 말이 있다면서 헌터들을 먼저 보내셨다고 하셨는데. 본디 인간이었다고 하나 그는 리치. 혹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나를 주시한다.

사실 이미 이 정도 질문이 나올 것이라곤 예상했다.

리치들은 보통은 어둠의 힘 때문에 미쳐 있거나 혹은 미치고 있는 중이거나.

흔히 세간에 알려진 말들은 그러했다.

나조차도 몇백 년 동안 크레아시론이 제대로 된 이성을 지니고 있을지는 몰랐지만…….

‘생각 이상으로 집념과 정신력이 강한 탓인가. 덕분에 쓸 만한 수하 하나 얻게 되었지.’

하단에 띄워져 있는 펫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렐리아 외에도 다른 하나가 추가되어 있었다.

[크레아시론[리치]: 고대 이시스 제국의 네크로맨서. 8서클의 대마법사로 각종 흑마법에 능하다. 주특기는 죽은 자를 일으켜 세우는 소환 마법. 빼앗긴 라이프베슬의 소유자에게 절대복종을 맹세하였다.]

어째 어둠의 종족들만 모으는 느낌이라 찝찝하였지만 든든한 지원군들임은 틀림없었다.

일대일 전투에 비해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에는 비교적 힘을 쓰지 못하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전력이 되리라.

물론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 버릴 수 있는 탓에 사람이 많은 곳에선 꺼내 놓지 못하겠지만.

“진 헌터님? 곤란한 이야기십니까?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말없이 가만히 있자 김동식이 대답을 재촉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

아직 나의 성격 등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

혹시나 내가 좋지 않은 마음을 먹고 크레아시론을 이용해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정도의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미 강력한 나와 그것을 보조해 줄 네크로맨서.

힘을 합친다면 헌터들 중에서는 감히 대항할 자가 없겠지.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내 고생도 모르고 말이야. 쯧…….’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행복한 백수 라이프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스티란을 제외한 나머지 차원의 대륙에서처럼 인간들이 멸종에 가까운 사태를 맞이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데.

그런 내가 갑자기 미쳐 날뛸 리는 없지 않은가.

모든 게 처참하게 파괴된 곳에서 홀로 남아 편하지도 않은 노후 생활을 즐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닥 곤란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아는 리치였기에 말을 좀 섞어 봤을 뿐.”

“아는 리치라니요,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쨍그랑-!!

박동식이 들고 있던 찻잔에 과한 힘을 가했는지 깨져 버리고 만다.

협회장실에 얼그레이향이 가득 퍼지고, 그의 옷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흐르고 있는 찻물을 닦을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진다.

바로 곁에서 살살 눈치만 보고 있던 박신우는 허둥대며 얼른 손수건을 내밀었다.

“저, 협회장님 어서 닦으시는 것이…….”

“그자에 꾀임에 넘어가 무언가를 벌이지는 않길 바랍니다. 아무리 진 헌터님이라도 저희가 그저 관망하진 않을 겁니다.”

물론 나도 개소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리치가 무슨 동네 이웃 주민도 아니고, 그냥 대화만 했다는 걸 믿진 않겠지.

혹시나 내가 크레아시론에게 넘어가 흑마법에 관심이 생겨 사고를 칠까 걱정하는 듯했다.

‘꾀임은 크레아시론이 아니라 내가 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다만 생각하는 그런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결단코.”

단호하게 말을 끊고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따가웠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 해 줄 말은 없었다.

“……그럼 진 헌터님만 믿겠습니다.”

그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여전히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낸다.

정의감이 넘치는 것은 좋은데 융통성은 없는 스타일인가.

당분간 피곤한 일들이 제법 생길 듯하다.

한번 험악해진 분위기가 다시 돌아오려는 기색이 없자 박신우가 재빨리 말을 돌린다.

“어쨌든 진 헌터님이 공략에 많은 도움을 주신 것은 맞으니까요. 앞으로도 탑 공략에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지만 모든 층을 함께하시는 일은 불가능하실 테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협회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도움?”

“네, 진 헌터님이 알고 계신 아스티란의 몬스터와 미궁들, 각종 위험 지역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점차 올라가는 <검은 탑>의 난이도를 봤을 때 앞으로 비슷한 일들을 겪으리라 예상됩니다. 문서화를 진행한 뒤 스크롤 같은 아티팩트들을 헌터들에게 준비해 드리면 더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아티팩트라…… 확실히 예상치 못한 변수를 줄이는 데 좋은 방법이다.

세상에는 칼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으니까.

실제로 몇몇 미궁은 보조해 주는 아티팩트가 없었다면 도저히 클리어할 수 없는 곳도 있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검은 탑> 공략에 성공해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들도 탐이 나긴 했지만 여태껏 쌓인 데이터로 볼 때 저번처럼 정말로 특별한 물건이 다시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시스템이 설정한 범위를 넘는 방식이 아닌 평범한 클리어로 받을 수 있는 아티팩트는 끽해야 고등급의 무기나 장비 정도.

이미 그 정도는 내가 아스티란에서부터 그대로 들고 온 인벤토리에 차고 넘친다.

고작 그런 걸 얻고자 매번 탑 공략에 참여하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뭐, 겸사겸사 귀찮은 일도 덜고 말이지.

“정말 감사합니다. 협회에 특별 팀을 꾸리고 그들과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쉬시고, 당장 내일부터 진행하면 어떻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뺀다라…… 뭐, 큰 상관 없으니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나 역시 질질 끌 생각은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이어서 세계 헌터 협회와 뉴스 쪽에 내보낼 탑에 대한 정보들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입구까지 배웅해 주는 박신우를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후 그제야 느껴지는 허기에 식사라도 할까 싶었는데 아렐리아가 주머니에서 쏙 튀어나왔다.

“[마왕님…… 정말 너무해요.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는데요.]”

그래도 나름 주머니가 큰 자켓이었는데.

아렐리아는 한껏 뺨을 퉁퉁 부풀린 채 어느새 지정석이 되어 버린 소파 위 방석에 앉는다.

“그러니까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을 텐데.”

“[그건 더 싫어요! 혼자서는 너무 심심한걸요.]”

“그래도 소리 한번 안 내고 잘했다.”

투덜거리던 아렐리아는 칭찬 한 번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갸르릉거리며 내 손등에 얼굴을 부빈다.

‘뭔가 점점 고양이처럼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아렐리아가 듣는다면 또다시 한 소리 들을 생각을 한 후 간단하게 식사 준비를 했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붙어 있는 그녀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렐리아에게 빵 조각을 떼어 주는데 우물거리며 끊임없이 쫑알거린다.

“[념념…… 아, 마왕님. 대체 그 리치는 왜 걷어 주신 거예요? 고작 8서클의 마법사를…….]”

마법사 계열 헌터들이 듣는다면 대부분 눈물 흘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아렐리아.

쓸모야 무궁무진했지만 무슨 말을 해도 삐져 버릴 것이 뻔했다.

이미 미궁 안에서 자기 말고 수하가 왜 또 필요하냐며 한바탕 한 뒤였기에 피곤했다.

굳이 대답하지 않고 나머지 음식도 입에 넣어 주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아, 아까 얻으셨던 보상이요? 확실히 특이했죠. 도통 어떻게 써먹어야 될진 모르겠지만…….]”

크레아시론에게 복종의 맹세를 받고 난 후.

주인을 잃어버린 미궁은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고, 결국 탑이 제시한 목표인 미궁 탈출을 이뤘을 때였다.

[11층 <변화의 미궁>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숨겨진 히든 공략을 완료하였습니다. 조건: 미궁 파괴.]

[히든 공략을 성공함에 따라 특별한 아티팩트를 제공합니다.]

[변화하는 공간[L급]: 사용자가 원하는 임의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단, 이지가 있는 생명체와 SS급 이상의 아이템은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 크기: 5×5km * 최초 1회 등록한 공간으로 고정됩니다. 이후 공간을 바꿀 수 없습니다.]

특별한 미션을 달성해 얻게 된 <변화하는 공간>.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효용성이 천차만별이 될 아티팩트가 내 손안에 들어왔다.

나는 큐브 장난감을 닮은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대체 이걸 어디다 써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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