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25화
내가 아렐리아의 말을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하기엔 크레아시론이 너무 격렬한 행동을 한다.
“컥…….”
누가 봐도 정곡을 찔러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
이미 죽은 자이지만 숨이 넘어갈 듯했다.
[고대 이시스 제국의 옥새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아이템 정보가 변경됩니다…….]
[고대 이시스 제국의 옥새[SSS급]: 황금으로 만들어진 옥새. 옥새를 가진 자는 이시스 제국의 정당한 왕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시스 제국에서 반역을 일으켰던 왕궁 마법사, 크레아시론이 도주하며 부활 마법의 매개체로 사용했습니다. 소유자: 진
* 파괴 시 크레아시론의 영혼은 소멸합니다.
* 라이프베슬을 소유함으로 크레아시론을 복속시킬 수 있습니다.
(조건: 라이프베슬 소유(1/1), 크레아시론의 복종의 맹세(0/1)]
들고 있던 옥새의 아이템 설명이 바뀌었다.
“이…… 이런 망할……!!”
손에 쥐고 있던 옥새에 팔뚝에 핏줄이 보일 만큼 힘을 주었다.
물론 부숴 버릴 생각은 아니었지만 협박의 묘미를 위해 상황은 극적일수록 좋겠지.
그 상태로 리치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오랜 세월 탓에 뼈마디가 부실한지 정강이뼈를 달달 떠는 게 당장이라도 넘어질 듯하다.
“일단 소환한 해골들 치워.”
“젠, 젠장!! 알았으니 옥새는……!”
“말이 짧군.”
콰직-!
금으로 된 옥새의 겉면이 부스러진다.
“알…… 겠습니다! 당장 치우겠습니다!”
그가 소환을 해제하는 마법을 중얼거린다.
곧이어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적들이 가루가 되어 부스러지고, 헌터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멈춰 있는 게 보인다.
“이제 되었습니까? 이제 저와 대화 좀 나눠 보시면 안 될까요?”
리치가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처절하게 빈다.
‘사실 나도 옥새를 부실 맘은 없다지만.’
덕분에 여러모로 곤란하게 되었다.
고대 이시스 제국은 과거 아스티란 대륙을 통일한 나라였다.
내가 대륙을 통일하기 전 수십 개로 쪼개져 있던 왕국들은 모두 자신들이 이시스 제국의 정당한 후계라며 전쟁을 하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의 시대였다.
또한 이시스 제국에 관련된 퀘스트를 진행하며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의 피는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 않았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시스템에 적혀져 있던 것이니 의심할 바도 없이 그들은 모두 가짜라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럴싸한 명목.
내가 이세계인이었지만 한 왕국의 왕이 되고 제국의 대제까지 된 것도 옥새의 힘이었다.
옥새에는 초대 왕의 마법으로 인해 주인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전설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알 수 없는 마법이 깃들어 있다는 게 그 마법인 줄 알았는데…….’
비밀이 풀리고 나서야 그냥 전설은 전설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젠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여튼 이렇게 갑자기 귀환하게 되어서 옥새를 누군가에게 계승하진 못했지만 언젠가 아렐리아를 시켜서라도 아스티란에 있는 믿을 만한 자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곳에 있는 내 동료들과 신하들이 알아서 나라를 꾸리고 있을 테지만 장기간으로 볼 때 왕이 없는 나라는 불가능할 터.
그런 계획을 위해서라도 이미 제국의 대표 보물이 되어 버린 옥새를 라이프베슬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파괴할 순 없었다.
“시키는 일은 모두 할 테니…… 제발 그건 손에서 놓고 말씀을 나눠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골똘히 고민하는 내 모습이 이걸 당장 파괴할지, 아닐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크레아시론은 해골바가지의 얼굴로 용케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엎드려 있었다.
“미친…… 이게 뭐야……? 리치를 처치하는 데 성공해서 전투가 끝난 줄 알았는데…….”
“진 님, 라이프베슬을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까? 그런데 이 모습은…….”
“[이크, 전 다시 숨을게요.]”
다가온 헌터들 때문에 아렐리아가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간다.
그들은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진 않았는지 곧 모두 모여 우리를 둘러싼 채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와…… 리치한테 무슨 짓을 하면 이렇게 되지?”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겠네……. 이 정도는 해야 용병왕 하는 건가?”
“우리만 진 헌터님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리치까지 협박해서 항복시킨 거야……? 이거 말이 돼?”
흔치 않은 구경거리에 헌터들은 호기심을 숨기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 제발이라는 말만 중얼거리는 리치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서로 제멋대로 재밌다는 듯 추측하고 있었다.
“모두 그만.”
“…….”
귀가 따가울 정도로 북적거리는 소란을 중지시켰다.
짜증이 섞여 있는 말투였는지라 헌터들은 바로 조용히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강준하, 저기 벽에 붙어 있는 왕좌 오른쪽으로 밀어.”
“네, 알겠습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냐는 듯 보는 헌터들.
강준하는 조금의 궁금증도 표하지도 않고 바로 낡은 왕좌를 밀었다.
쿠르릉–
힘을 가하자 부드럽게 밀리는 왕좌.
그 안에는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 좁은 길이 나타났다.
“와…… 진 헌터님이 이걸 어떻게 아셨지?”
“내 말이 맞다니까? 리치한테 협박해서 알아낸 거 아냐?”
주절거리는 헌터들을 찌릿 째려보니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문다.
“저 안에 아마 밖으로 나가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있을 거다. 탑의 11층 공략 조건은 미궁을 탈출하는 것이었으니 완료가 될 테고.”
“……공략대장님은 저희와 함께 나가시는 게 아닌가요?”
내 말투가 이상한지 누군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는 리치를 향해 눈길을 주자 모두 알았다는 듯 한 명씩 통로로 향했다.
“이거 말해 주면 박신우 지부장, 아주 뒤집히겠구만.”
홍현민이 낄낄거리며 이쪽을 슥 보더니 신나는 발걸음으로 마저 빠져나간다.
이곳에는 이제 나와 크레아시론, 강준하밖에 남지 않았다.
“진 님, 혹시 리치가 공격해 올 수도 있으니 저는 남아도 되겠습니까?”
상관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대로 리치를 무시한 채 나 역시도 그냥 나가도 되는 상황.
하지만 아스티란과 연결되어 있는 미궁이 마음에 걸렸다.
옥새를 언젠가는 아스티란에 있는 다음 왕에게 넘겨줄 텐데, 그걸 찾겠답시고 미궁을 빠져나와 제국을 침공이라도 한다면…….
‘전쟁에 특화되어 있는 네크로맨서의 공격을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이프베슬과 리치는 긴밀한 마력으로 연결되어 어디에 있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마 지금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서워서, 그리고 한동안 인벤토리에 처박아 놨기에 잠시 연결이 끊겨 있었던 탓인지 오지 못했겠지만.
“자, 그래. 그럼 이제 말을 좀 해 볼까.”
“……정말이십니까!? 옥새를 파괴하지 않으실 겁니까?”
“그래,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흑마법사를 그렇게 싫어하진 않거든.”
본디 흑마법사들은 마족과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존재.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가진 힘에 만족하지 못하고, 마족에게서 힘을 빌어다 쓰는 그들을 혐오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마왕이 마족을 숭배하는 흑마법사를 내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의외군요. 모두 흑마법사가 된 저를 배척했는데.”
“죽음까지 비켜 나가는 흑마법을 부리는데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저는 죽어서도 옥새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단순히 라이프베슬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건가?’
리치가 되었지만 아직 인간적인 모습은 남아 있는 그에게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옥새를 라이프베슬로 쓸 정도로 왕의 자리에 욕심이 있는 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켜야 한다니?
단순한 이유로 고대 이시스 제국에서 옥새를 훔쳐 달아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지킨다니, 무엇으로부터?”
“빌어먹을 이시스 제국의 후계자들로부터요. 제국은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려야 했습니다. 비록 당신이 가져가 버리긴 했지만…….”
“이시스 제국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막았다, 라는 건가?”
“도망칠 때 왕위 계승자들을 없애 버렸지만 옥새가 있다면 그걸 명분 삼아 먼 핏줄인 누군가 다시 제국을 차지했겠죠. 차마 모두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얼마나 많은 자식을 두었는지…… 큭큭. 저는 그의 핏줄이 제국의 이름을 계속 잇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궁금증만 커져 간다.
생각보다 쿠데타 따위의 단순한 이유가 아닌 듯했다.
“이 미궁은 이시스의 옥새를 가둔 감옥인 셈이군. 그래서 모험가들을 영원히 헤매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고. 이유는?”
“그건 망할 이시스의 초대 왕, 테론 때문입니다. 하하하…… 빌어먹을 새끼. 그는 대륙을 통일하였지만 본래 평민인 탓에 권력이 부족했습니다. 그 권력을 채우기 위해 온갖 대귀족들의 딸을 후궁으로 들였죠. 10년간 사랑한다 믿었던 내 딸을 배신하고…….”
과거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화가 치미는지 바닥을 앙상한 손으로 내리친다.
육체적으로 강하지 않은 리치의 몸인지라 뼈다귀에 금이 간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설명을 이어 갔다.
“혼란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제국을 세우면 연인이었던 제 딸을 왕비로 세우겠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변해 갔고, 권력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릴 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가여운 제 딸은 제가 찾지도 못할 만큼 깊은 곳으로 잠적해 버렸죠. 3년 만에 흔적을 찾아갔더니 그곳에 있던 건 딸아이의 무덤이었습니다.”
굳이 뒷말을 하진 않았지만 듣지 않아도 뻔한 전개였다.
역사서에 쓰인 바로는 어둠의 힘에 정신을 빼앗긴 크레아시론이 미쳐서 초대 왕의 자식들을 모조리 죽이고 옥새를 가로채서 도망쳤다 했다.
그 뒤로 이곳을 만들고 스스로와 옥새를 가두기로 결심한 것이겠지. 영원히.
“……리치의 말이지만 일리가 있군요. 고대 이시스 제국을 세우는 데 초대 왕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크레아시론의 목숨 바친 충정도 무시 못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돌변한 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해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는데……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설명이 됩니다.”
“옥새를 계속 지니고 있던 것도 후에 찾아올지 모르는 그놈의 핏줄을 처치하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실제로도 계속 눈먼 나방들이 찾아오더군요. 덕분에 복수는 톡톡히 할 수 있었습니다.”
옥새를 누군가가, 제국의 뒤를 잇기 위해 가져간다면 본인이 계속 살아 있을 테고, 결국 크레아시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옥새를 파괴해야 한다라.
제법 머리를 쓴 계획이었다.
“그런데 내가 옥새를 가져가는 바람에 아주 속이 탔겠군 그래.”
“당신이 죽는다면 바로 미궁 밖을 나가 되찾아올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마력의 흐름이 끊기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300년이나 지났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는 계속 바닥을 향하던 시선을 나에게 똑바로 고정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시스의 핏줄은 맞는 것입니까?”
그전까지 비굴하던 태도는 온데간데없는 모습.
그곳엔 대마법사 크레아시론이 있었다.
“나는 이시스의 핏줄이 아니다.”
“으하하…… 테론 자식, 엄한 자가 본인의 자리를 차지한 것을 알게 되면 저승에서 땅을 치겠군요.”
“그리고 아스티란의 사람도 아니지.”
“……예?”
“안타깝게도 이미 제국의 왕은 나라서 그 명맥을 이어받은 이시스넨 제국을 없애 준다고 말은 하지 못해.”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소중한 자를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리는 자를 싫어하지 않는다.
멍하니 있는 리치에게 손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테론 왕의 무덤에 침을 뱉을 순 있게 해 주지.”
비록 해골이라 침은 없겠지만.
내가 그를 대신해 뱉어 줄 순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