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20화
“허, 그래서 그 말을 듣고 여기까지 왔다?”
“네, 마왕님. 요정족들은 인간들 사회에 녹아들어 활동하는지 온갖 정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질 삼을 인간이 누구였는지도…….”
어차피 그렇게 마왕이 된다 치더라도, 마계에 돌아가면 다른 마족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정도 머리는 안 돌았나…….
마계의 수많은 마족 중 발록족들은 유난히 멍청하다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말문이 막혔다.
“이거 아무리 봐도 남의 손을 빌려 처치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성공해도 좋고, 아니면 발록도 조용히 처치할 수 있을 테고.”
“[요정들 계략에 제대로 당했네요.]”
아렐리아가 명쾌하게 대답해 주었다.
누가 봐도 요정족이 발록을 가지고 논 것이었다.
“제가 힘을 빼놓으면 직접 와서 공격에 도움도 준…… 다고…….”
발록도 그렇게 말하곤 이상함을 깨달았는지 말을 흐린다.
도와준다는 요정은커녕 주변에 기감을 퍼트려 봐도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접근하고 있지 않았다.
발록이 마족 중에서도 단순무식하기로 손에 꼽는다더니…….
그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발록 할애비가 와도 차마 편을 들어 주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형님, 더 들을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정보를 얻기엔 그냥 멍청한 발록 한 마리가 있을 뿐이었다.
이제 이걸 소멸시켜, 말아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내 생각을 읽은 듯 발록이 허옇게 질린 얼굴이 된다.
“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마계에 돌아가면 모두에게 소문을 퍼트리겠습니다! 현 마왕님은 감히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시다고요! 제가 이래 봬도 군단장 중 한 자리라 그래도 웬만한 놈들은 막을 수 있습니다!”
발록이 기겁하며 소리친다.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또 저렇게 머리가 비어 버린 놈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어느 정도 사건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나름 마계의 왕으로서 마족을 처리하는 게 내심 찜찜하기도 했다.
“후…… 일단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 이번만큼은 봐준다. 넌 이만 마계로 돌아…… 잠깐.”
요정은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으면 웬만하면 떠나지 않고 터를 잡고 지내는 특성이 있다.
각종 오염으로 가득 찬 지구에서 그나마 머무를 정도의 장소라면 아직도 그곳에 있지 않을까?
“너, 그 요정들을 본 곳이 어디지?”
“네…… 네!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인벤토리에서 한국 지도를 하나 던져 주니 이리저리 살피다 한 곳을 집어 보인다.
과연 자연을 사랑하는 요정족들이 있을 만한, 첩첩산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요정족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요? 마족이 복수하러 올 수도 있을 텐데…….]”
“아마 나를 처치하지 못했다면 소멸당했다고 생각할 거다. 깊게 생각하지도 않겠지.”
“[하긴, 요정들은 머리가 해맑기로 유명한지라…….]”
그런 종족에게 머리를 쓰지 못해 당한 이놈은 뭔지.
언짢은 얼굴로 발록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큰 덩치를 반으로 구깃구깃 접으며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저…… 이만 돌아가도 될까요?”
한 대 더 맞을까 두려운지 눈치를 살핀다.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냉큼 마계 차원문을 열어 도망치듯 떠난다.
“……마족들이 다 저렇게 멍청하진 않겠지.”
언젠가 마계에 가서 마왕 노릇도 조금이라도 하고 와야 할 텐데.
모두가 저따위면 곤란했다.
“[대부분이 그렇진 않아요! 음, 아…… 마도?]”
아렐리아가 말을 흐린다.
답답한 마음에 먼 하늘을 응시했다.
“하…….”
“저, 형님? 그…… 일단 저 게이트부터 처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발견된 지 며칠째라 폭주할지도…….”
조용히 있던 박민호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게이트 쪽에 시선을 던지니 마력이 과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헌터들은 다 돌려보냈으니 어쩔 수 없나. 박민호, 따라와.”
“네! 저도 데려가 주시는 겁니까? 영광입니다!”
게이트 공략도 공략이지만 사실 내심 궁금한 것이 있기도 했다.
‘여기도 <벽>이 있을 텐데……. 혹시 전처럼 부술 수만 있다면.’
<검은 탑>의 공간과 게이트 속 공간이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저번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파괴가 가능하다면 탑 99층을 공략하는 일쯤은 손쉬울 것이리라.
‘인생 날로 먹고 싶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으니 지구에서만이라도 더욱 날로 먹고 싶었다.
감격한 듯한 박민호와 아렐리아를 끌고 게이트에 바로 입장했다.
여전히 아스티란의 풍경 그대로인 게이트 안.
이번에는 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당장 보스 몬스터를 공략하려 가야 하지만 애초에 게이트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강력한 결계 같은 걸로 막혀져 있는 게이트의 테두리.
“박민호, 넌 여기서 일단 버티고 있어라. 잠깐 다녀올 곳이 있으니.”
“네?? 형님?? 아무리 그래도 A급 게이트인데 몰려들기라도 하면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목숨만 붙어 있으면 살려는 주마. 회복 아티팩트는 넘칠 만큼 있으니까.”
“아니, 그게…… 죽지 않을 자신은 있지만…….”
죽지도 못한 상태로 살아 있을 것 같다며 박민호가 형니임, 하면서 울부짖는다.
아니, 이놈 ×끼는 S랭크까지 되었다더니 언제까지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 줘야 되는 거야?
“손 내밀어 봐라.”
여전히 묵직한 어깨에 얹어져 있는, 자기 자리인마냥 편안하게 매달려 있는 아렐리아의 뒷덜미를 잡아 민호의 손에 던져 주었다.
뭘 주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뭔가를 들이밀자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던 박민호가 두 손 가득 차 있는 헤츨링을 보며 놀란다.
“형…… 형님? 왜 갑자기 헤츨링을 주십니까?”
“[꺄아아악!! 불결해!! 더러워!! 마왕님!! 저를 왜 미천한 인간의 손에 놓으시는 거죠!?]”
“혹시 모르니까 데리고 있어라. 넌 말 잘 듣고 있어.”
“[아무리 마왕님이시라지만!! 정말 너무해요……!]”
아렐리아가 박민호의 손 위에서 미친 듯이 바르작거린다.
그 모습은 소금을 뿌려 놓은 지렁이의 몸짓과 닮아 있었다.
“이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드래곤이 맞긴 합니까……?”
나한테는 눈치가 없으면서 이상하게 다른 데서는 눈치가 빠른 박민호였다.
그는 손바닥 위에서 날뛰고 있는 헤츨링을 얼떨떨하게 쳐다본다.
박민호를 믿는 만큼 그녀의 정체에 대해 말해 주어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어린애들에게 상상력을 키워 주는 교육은 중요한 법이지.
비록 다 큰 민호지만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말없이 게이트의 경계 쪽으로 향했다.
높게 솟은 나무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빠른 속도로 달리니 곧 <벽>에 도착했다.
“자, 그럼 한 번 더 해 볼까.”
아직도 <벽> 뒤의 모습이 생생하다.
시스템 그 자체의, 절대 봐서는 안 되는 비밀을 마주친 듯한 느낌.
실제로도 더 이상 출입하면 안 된다는 듯 스킬까지 봉인당했었다.
덕분에 전력의 반 정도밖에 힘을 쓰지 못하게 됐지만…….
‘시스템에게 엿을 먹였다는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짜릿했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인벤토리에서 폭렬의 페르아렌을 꺼내 들었다.
“<극의의 일격>!!”
콰직-!!
저번 이후로 보호막에 별다른 장치는 하지 않은 것인가?
손맛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유효타가 제대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
‘좋아, 이번에도 한번 해 보자.’
“<극의의 일격>!”
[경고! 경고! 시스템 결계 손상 중, 원인: 진 플레이어.]
저번과 비슷한 시스템 메시지가 눈앞을 가린다.
이번에도 맞아떨어진 건가? 멍청한 시스템 같으니라고…….
이런 기세라면 그깟 탑 공략쯤은 일주일 안에 모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결 방법 도출 중…….]
‘이번 해결 방법도 일단 첫 번째는 몬스터 소환 정도려나……. 그 정도쯤은…….’
[진 플레이어에게 경고! 더 이상의 공격 시 모든 스탯이 50% 하락합니다.]
멈칫-
어이없는 시스템 메시지가 보인다.
나는 휘두르던 검을 그대로 멈춘 채 그대로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이 미친 시스템은 여전히 적당히가 없었다.
그래도 저번에는 경고도 없이 스킬이 봉인당했는데 이번에는 나름 친절…… 은 개뿔.
‘진짜 이 × 같은 시스템…….’
<벽>의 힘을 더욱 단단하게 할 수는 없는 건지, 아니면 하지 않는 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칠 능력도 없으니 일단 주변에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지뢰부터 뿌려 놓는 행태이다.
하지만 효과는 그 무엇보다도 좋았다. 분하게도.
‘이따위로 나에게 또다시 페널티를 주려 하다니. 퉤.’
내가 한 행동도 있지만 남 탓을 하는 게 세상 사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이기에 나는 끊임없이 시스템 욕을 지껄였다.
“혹시나 했지만, 허참.”
어쩔 수 없이 터덜터덜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까 박민호를 두고 왔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곳에는 전투가 있었는지 몇십 마리의 오우거들이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살아 있는 박민호였지만 그는 여기저기 불에 그을린 채였다.
……응? 오우거가 화염 마법을 쓰던가?
“새끼 드래곤이라 그런가?? 마법 조절이 왜 이렇게 시원치 않지?”
“[천박한 인간!! 이깟 마법 쯤은 알아서 피하면 될 걸 왜 맞고 있는 거야?]”
“뭐라고 찍찍대기는 하는데…… 형님 아니고선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우쮸쮸, 아렐리아라고 했나? 잠깐, 그때 마계 공작도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 으악!!”
“[어디다 손을 대는 거야!? 변태 같은 인간!! 더러워!!]”
박민호가 아렐리아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내밀자 콱 깨물려 피가 철철 난다.
“너네 뭐 하는 거냐…….”
“[으아앙-마왕님!! 왜 이제 오셨어요!! 저놈이……!]”
“형님, 오셨습니까? 드래곤이 좀 난폭, 하네요, 하하…….”
박민호는 피로 물든 손을 움켜쥐며 괜찮다는 듯 억지로 나에게 웃어 보인다.
하지만 척 봐도 절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출혈이 조금 있는 수준이 아니라 뼈가 드러날 정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드래곤은 드래곤.
단단하기로는 아만다티움 금속에 버금가는 드래곤의 이빨이니 이 정도로 다친 게 다행일지도.
그렇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굴면 곤란했다.
개 조심 스티커를 붙여 놓을 수도 없고, 아렐리아를 어디서부터 훈련시켜야 하는 건지 한숨만 나온다.
“일단 볼일은 마쳤고, 게이트 공략이나 끝낸다.”
“네, 네! 멀지 않은 곳에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윽.”
“……일단 치료부터 해.”
“살짝 긁힌 건데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바닥은 이미 피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심지어 얼굴은 혈색 하나 없이 허옇게 질려 있는 박민호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웃어 보인다.
그대로 놔둔다면 좋지 않을 것이다.
인벤토리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박민호에게 넘겨줬다.
그냥 치유 포션 정도면 되겠지?
독이나…… 뭐 그런 건 없을 테니 말이다.
“아렐리아, 혹시 광견병…… 아니다.”
“[예!? 마왕님!?]”
그래, 야생 너구리도 아니고 드래곤인데, 그런 병은 없겠지.
내 예상이 맞는지 포션을 붓자마자 빠르게 상처가 낫는다.
전부 치유된 것을 확인하고, 박민호와 아렐리아와 함께 보스 몬스터가 있다는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보스로 보이는 트윈 헤드 오우거가 보인다.
부족의 우두머리인지 웬 짐승의 가죽들로 꾸며 놓은 의자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머리가 하나건 둘이건, 그래 봤자 고작 오우거지.’
주변에 있는 다른 몬스터들은 무시한 채 보스에게 돌격했다.
이 정도면 스킬도 필요 없다.
서겅-
역시나 칼질 한 번에 거대한 오우거의 몸뚱이가 천천히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열리는 출구의 게이트.
[띠링!]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58분 22초 기록. 게이트 출구가 열립니다.]
이제 남은 건 요정족인가.
혹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도주할 수도 있으니 쉬지 않고 바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박민호, 너는 협회에 가서 대충 설명하고 와. 대신 발록에 대한 건 말하지 않는 것…… 알지?”
“네, 형님. 맡겨만 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바보는 아니니까.
나는 그대로 발록이 말해 준 곳으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