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7화
박신우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일단 협회장실로 모시겠습니다. 협회장님께서 진 헌터님이 오시면 바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뭐, 보여 줄 것도 있고. 바로 가지. 아, 박민호, 강준하. 너희는 이만 돌아가.”
“네, 주변에 대기하고 있겠으니 필요하시면 다시 불러 주십시오.”
박신우는 친한 사람까지 물리는 진에게 의문이 들었다.
대체 자신에게 보여 줄만 한 것이 뭐가 있단 말인가.
별별 좋지 않은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지금 급한 일은 따로 있었기에 서둘러 몸을 돌리고는 진을 안내했다.
우선 용병왕, 아니 사건 사고의 왕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협회장님 앞에 데려다 놓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협회장실에 노크하는 것도 잊은 채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협회장님, 진 헌터님 오셨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아, 박신우 지부장도 여기 앉아서 같이 듣도록 합시다.”
그곳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대한 각성자 협회장 김동식이 무겁게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흡사 청문회 자리라도 되는 듯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는 저 멀리 아스티란으로 날려 버린 진이 웬 물건 하나를 턱 내놓는다.
“자세한 건 우선 이걸 보고 이야기하지.”
다행히 진이 꺼낸 물건은 하나비 길드장의 목 따위는 아니었다.
뭘 대단한 걸 보여 주나 싶어 자세히 그것을 살펴보았지만 녹화가 가능한, 흔해 빠진 아티팩트였다.
“이건…….”
“우선 보도록 하지. 한시가 급한 상황 아닌가.”
진의 말대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지 슬슬 궁금증이 치밀어 오르던 차였다.
박신우는 협회장 쪽을 슬쩍 보고 바로 아티팩트를 발동시켰다.
[“고귀한 어둠으로 둘러싸인 존재시여…….”]
[“……이건 마족 소환 주문……!?”]
“……×발. 이게 무슨……!”
박신우는 영상을 보고 난 후 협회장이 앞에 있던 말건 또다시 욕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리 강준하가 손써 두어 마족이 소환된 것에서 영상은 끝이 났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제기랄, 이게…… 정말입니까……?”
“흠……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티팩트는 절대 거짓을 담거나 조작을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워낙 충격적인 내용 탓에 영상구에 담긴 사실을 순순하게 믿을 수가 없었다.
김동식 역시 욕설을 내뱉은 박신우를 차마 타박하지 못하고 말을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 같습니다. 하나비 길드는 손대서는 안 되는 힘을 얻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라면 수천…… 아니 만 명은 거뜬히 넘는 목숨이 희생되었겠군요.”
“하나비 길드가 본격적으로 세워진 지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면 일본 정부 쪽에서도 모를 리가 없습니다.”
누구나 하고 있는 생각이지만 차마 입밖에 내뱉을 수 없던 말.
박신우는 일본 정부와 일본 각성자 협회에 분개했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분명 그들은 이 일을 하나비 길드 측만의 독단적인 일로 돌려 버릴 것이 뻔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길드장과 간부들은 사망했고, 길드 건물조차 무너져 버려 빠르게 발을 빼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쉬운 일일 테니까.
“여기 담겨 있는 것들은 너무나 엄청난 것들입니다. 저희끼리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로 잔인한 일이라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해도 될지도 의문이고요.”
“그냥 풀어 버려. 기왕이면 기자들에게까지 여기저기.”
“하지만…….”
“감추려고 하면 아티팩트는 넘기지 않겠다.”
진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공개를 하지 않겠다는 말이 박신우의 입에서 차마 나오지 않았다.
아스티란에서 들어 왔던 용병왕은 한다면 하는, 기가 막힌 실행력을 가진 놈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넘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아레스 길드를 통해 풀어 버릴 것이 뻔했다.
협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저 물건은 사수해야 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고생한 보람이 있도록 일을 처리해 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마족과의 싸움 끝에 부상을 입고 요양 중이라고 전해.”
“무사하신 것 같은데……?”
“그거야 내상을 입었다고 하던지 대충 맘대로 하고. 요지는 이거다. 용병왕이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강력한 상대.”
“굳이 자신을 깎아내리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진은 씨익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 * *
아렐리아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에게 물어 왔다.
“[마왕니임, 마왕님의 힘에 감히 의문을 품고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전보다 약해진 상태라고 하셔서…… 괜찮으시겠어요? 분명히 각 종족이 공격해 올 텐데…….]”
“어차피 그놈들, 사이가 좋지 않고 하지 않았나? 떼거리로 오지만 않으면 돼.”
내가 마계의 공작 정도에 당할 정도라 생각되면 눈치 보던 놈들이 공격해 올 게 뻔했다.
지금 노리고 있는 것은 그것이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놈들을 찾아 하나하나 처리하기엔 시간이 아까워. 분명 한 놈이라도 반응이 올 테지.”
검은 탑도 검은 탑이지만 지금은 어차피 제한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태.
그 전에 언제 습격할지도 모르는 적들에게, 피치 못할 상황에서 귀찮은 일을 만드느니 미리 매운맛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공포스러울 정도의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것은 언제나 결과물이 괜찮았다.
“[아마 같은 차원계에서 온 자들도 협력하진 않을 거예요. 마족도 그렇지만 고위급일수록 서로 자존심이 어마어마한지라…….]”
“그래, 그리고 지금 지구에 있는 타 차원의 종족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라고 했지?”
“[네, 저 정도의 강자는 없을 거예요.]”
<왕> 정도 되는 급들은 차원계에 묶여 지구로 올 수 없고, 끽해야 마계의 공작 정도만 이동한 상태.
그마저도 내가 아렐리아의 등장 때 의아함을 느꼈던 것처럼, 시스템의 제약으로 인해 원래의 차원에 있을 때처럼 온전히 힘을 쓸 수 없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웬만한 헌터들에게는 대재앙과도 다름없지만 나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은 누군가 덤벼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협회에 거대한 폭탄을 투척한 채 아렐리아와 함께 집에 돌아온 지 얼마나 됐을까.
일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한 협회 덕분에 하나비 길드에 대한 속보들이 계속 보인다.
리모컨을 누르며 성의 없게 구경하는데, 어느새 인터뷰까지 마친 박신우가 보인다.
아까 본 것처럼 여전히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지부장님!! 해당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본 사건은 진 헌터님께서 하나비 길드에 기습적인 공격을 받으시면서 생긴 일로, 마족과 관련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자마자 한 명의 헌터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이와 같은 잔인한 일을 묵과할 수 없다 하시며…….]
‘딱히 저 정도 거창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데. 대체 어떤 놈이 마족을 소환했는지 면상 한번 보자 싶어서 쫓아갔을 뿐…….’
나의 이미지는 더 희생될 수도 있었던 무고한 목숨을 구한 영웅이 되어 버렸고.
일본 국민들은 그 정도 일이 벌어질 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일본 협회와 정부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그것을 해결한 자가 용병왕이라는 걸 알고 기존에 있던 논란들도 싹 들어간 건 덤이다.
[○○○ 기자입니다. 일본 현지에 있는 주민들과 하나비 길드에 대해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흑흑……. 제 부모님도 행방불명되셨는데…… 게이트가 아니고 하나비 길드에 희생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저는 오늘부터 용병왕의 팬이 되었습니다! 무능한 일본 협회는 앞으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한편으로 내가 일본에서 신나게 한바탕 날뛰었을 때 일본이 난리 난 와중에 세계 곳곳에선 <검은 탑> 공략에 한창이라는 기사도 보였다.
제일 먼저 앞서 나간 미국에서는 한국의 10층 공략이 배가 아팠는지 벌써 4층까지 공략에 성공했고, 일본을 제외한 나라들도 빠르게 진행 중이었다.
“공략이라…….”
다른 나라들과 정보를 나눈 결과, 한국의 헌터들이 얻은 보상만큼 특이한 보상은 없었다.
그저 조금 좋은 장비나 무기들뿐.
아직 10층 이하로 공략해서 보상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게 그 <검은 탑>인가요?]”
화면에 비치는 탑을 본 듯 아렐리아가 물어 온다.
<예언>에도 탑에 대한 내용은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지 한껏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그래, 정복을 하지 않으면 지구를 멸망시키겠다는 빌어먹을 탑이지.”
“[멸…… 망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너라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이야? 분명 퀘스트에서는 실패 시에…….”
아렐리아가 의아한 얼굴로 말한다. 마치 그런 퀘스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래, 실패 시에는 지구 멸망.
천천히 그 문구를 읊조렸다.
그때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시스템 메시지가 하도 대충 쓰여 있는 경우가 많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번 퀘스트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퀘스트에 제한 시간이 없다.’
1년이 걸리든지 10년이 걸리든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퀘스트였다.
하다못해 100년이 걸릴지언정 탑만 공략해 준다면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검은 탑>과 인간이 살아만 있다면 언젠간 클리어한다는 소리였다.
“[<검은 탑>은 결코 인간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못해요.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까.]”
아렐리아가 내 생각에 쐐기를 박아 넣듯 말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은 누군가의 안배로 느껴졌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아렐리아가 드물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더는 말해 드리지 못해요. 저라고 모두 아는 것은 아니에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또다시 계율이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입을 꾹 닫을 게 분명했다.
그 이상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라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으니까.
“모든 건 닥쳐 봐야 알 수 있는 것들뿐이군.”
머리가 복잡했다.
생각을 비우기 위해 계속 틀어져 있던 TV에 눈을 돌렸다.
뉴스에서도 이제 비슷한 내용들만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다 알고 있는 정보들이었기에 TV를 끈 뒤 한동안 닫아 두었던 1랭크 채널 채팅을 열어서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난 모습.
[마법최고: 진 님!! 내상이 심각하시다고 하시던데, 말도 못하실 정돈가요? ㅠㅠ 마탑 쪽에서 몸에 좋은 물약 몇 개 보내드릴까요? 들고 병문안 가도 되나요? ㅠㅠ]
[진우주최고최강위대한형님: 이미 치유 마법까지 받으셨지만 마기에 당한 것이라 늦으시나 봐요……. 병문안도 사절이라고 하십니다!]
[강준하: 맞다. 기절하셔서, 아니 정신은 있으신데 다친 곳이 많…… 아니, 내상이 심각하셔서…… 하.]
박민호가 열심히 맞장구를 치며 그가 세운 계획대로 모두를 속이고 있는데, 강준하가 영 상태가 이상했다.
저 녀석, 여전히 거짓말이라곤 못하는구나.
진은 방금 전에 새로 산 핸드폰을 얼른 켜 닥치라고 문자를 보냈다.
[초코짱: 그럼 며칠 뒤 <검은 탑> 출입 제한 풀리면 당분간 탑 공략은 진 님 빼고 가야겠네염……. 다른 나라들 공략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우리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뎀.]
[영원: 저희도 다른 나라들처럼 층마다 돌아가며 길드별로 공략해도 될 것 같습니다. ^^ 보상도 보상이니…….]
[언제나야근철야: 길드장님…… 저희 이번에도 또 빠지나요……?]
“일단은 정보나 모으면서 대기해 볼까…….”
아렐리아가 슬그머니 무릎 위로 올라온다.
내가 심기가 불편한 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우선은 이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정말 잠깐의 여유밖에는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나는 아직 해가 떠 있는 밖을 보며 낮잠이라도 잘 생각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