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6화
“데리고는 가겠지만 혹여 사고라도 치면…… 알지?”
“[네! 당연하죠! 받아 주시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마왕님!]”
[<아렐리아[드래곤]>가 펫으로 종속되길 원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왔다.
‘펫, 그것도 마족도 아니고 드래곤이라고?’
소환수들에게나 뜨는 시스템창에 잠시 당황했다.
단순한 형태만 바꾸는 폴리모프 마법이 아닌, 영혼 자체가 드래곤의 몸에 깃든 상태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락을 누르니 나에게서 약간의 마력이 빠져나가더니 아렐리아에게 깃들었다.
[아렐리아[드래곤]: 블랙 드래곤 일족의 헤츨링. 하지만 영혼이 소멸되어 버린 빈 껍데기에는 마족이 들어가 있다.]
펫창의 정보에는 그녀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출력되고 있었다.
사실 마족이라는 족속들은 배신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지르는 자들이다.
지금은 마왕님이라며 따르고 있지만 겉이야 그렇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허락한 것도 반쯤은 충동적이었지만 어차피 말려도 쫓아올 것이라 차라리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시스템으로 묶인다면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못하리라.
“[마왕님?]”
눈을 꿈뻑이는 그녀의 맨들맨들한 뒤통수를 살짝 쓰다듬었다.
절대로 나를 배신할 수 없는 고위 마법사.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제 발로 걸어온, 훌륭한 노동력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리고 정리가 되었으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갔으면 하는데.”
“[네~ 맡겨만 주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형님이 있는 곳으로……! 어? 형님!?”
“진 님, 무사하셨군요.”
돌아오니 어느새 12시가 넘어간 새벽이었다.
하루 종일 사건 사고가 많았기에 몸의 피곤보다는 정신이 피로했다.
어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녀석들은 오자마자 설명을 요구하며 나를 들들 볶아댄다.
“형님!! 그 마족은 어떻게 된 건가요? 곁엔 없는 것 같은데…… 순순히 돌아간 건가요!?”
“……같이 있어 봤자 헌터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나 받을 게 뻔하니까 마계로 가라고 했다.”
“잘하셨습니다! 거기나 여기나 마족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으니까요. 그나저나 형님이 마왕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아, 아닌가. 형님이라면…… 음…….”
박민호가 말꼬리를 흐리더니 어울리는 것 같으시기도 하고…… 라며 중얼거린다.
나도 모르게 울컥해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아…… 갑자기 졸리네~”
눈치 빠른 박민호가 재빨리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딴청 피운다.
“진 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우선 한국으로 돌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비 길드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상황이 귀찮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강준하가 핸드폰을 꺼내 속보로 떠 있는 뉴스 중 하나를 보여 주었다.
예상은 했지만 나와 하나비 길드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목격자가 많았기에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중 재밌는 건 일본의 반응과 한국의 반응을 비교해 놓은 기사였다.
[일본]
-당장 저 범죄자를 잡아 출국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헌터 간의 싸움이 아닌 국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전쟁이다.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어서 수색대를 풀어라.
-다들 랭킹 보드 오늘 자로 업데이트된 거 봤어? 월드 랭킹 7, 9, 10위도 바뀌었어.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헌터들이 사라지다니, 용병왕의 짓이 틀림없어.
[한국]
-헌터 강국 일본이 갑자기 이렇게 떡락을……. 근데 아직 용병왕이 했다는 확증은 없지 않음? 난 일단 중립 기어 박는다.
-용병왕 무지막지하게 쎄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월랭 10위권 3명을 모조리 쓸어 버릴 정도인 줄은…….
-다들 용병왕 말만 하는데 길드장 죽인 건 확실하진 않잖아! 하나비 길드에 갔던 건 맞지만……! 길드 건물도 부숴 버렸다지만……! 그치만……!
대체적으로 나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일본인들과 그걸 믿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이 대비되었다.
그동안 일본이 보유한 랭커들을 내세우며 국제 사회에서 워낙 양아치 짓을 했기에 통쾌하긴 하다, 정도의 의견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저지르고 온 일이 어찌 되었든 범죄기 때문에 차마 대놓고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하나비 길드가 마족에게 힘을 빌려 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반응은 뒤바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증거는 이미 지하 깊숙한 곳에 파묻혀 버렸다.
그걸 파낸다고 해도 얼마나 증거가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진 님, 딱히 걱정하실 필요는 없으실 것 같습니다.”
강준하가 아레스 길드의 힘을 빌리려는 듯 나를 위로해 온다.
하지만 나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기에 가능한 스스로 처리하고 싶었다.
‘기왕 마왕까지 된 거 그냥 일본 협회고 나발이고 다 부숴 버릴까…….’
이런 생각 중에도 강준하의 핸드폰과 랭커 채널은 온갖 연락으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가을하늘: 일본 가신다더니 무슨 일을 하고 다니시는 겁니까…….]
[마탑대표: 진 헌터님, 랭커 채널 확인하시면 빨리 돌아오세요!]
“[마왕님, 고작 인간들의 평판을 신경 쓰시는 건가요?]”
“이게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게…….”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아렐리아가 짧은 팔로 아장아장 기어 올라와 어깨에 올라탔다.
검은빛의 비늘을 빛내는 해츨링을 그제야 발견한 박민호와 강준하가 흠칫 놀란다.
“진 님, 이건……?”
“마족이 갔더니 이젠 드래곤……. 잠깐 사라지셨을 때 무슨 일들이 있으셨던 건가요…….”
“어…… 그게…… 한번 키워 보고 싶어서?”
“아까 보였던 것은 역시 드래곤의 알이었나요? 그걸 길들이기까지 하시다니……. 형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차마 그 마족이 드래곤의 몸 안에 들어갔다고 하기도 좀 그렇고, 이것저것 설명하기엔 복잡한지라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 아렐리아의 말이 그들에겐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녀가 펫으로 종속되어 버려서 그런 것일까.
분명 마왕님이라고까지 말했는데 박민호는 내 어깨에 매달린 헤츨링을 그저 평범한 드래곤 취급하고 있었다.
일단 드래곤이라는 데서 평범하진 않지만.
“[방금 일 때문이시면 저 멍청이 같은 인간 말고 낯짝 번지르르한 재수 없게 생긴 인간이 해결 방법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재수 없게 생긴 인간이라면 강준하를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라고?’
의아한 마음에 강준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박민호 때문에 말이 끊겨서 뒤 내용을 듣지 못했었지.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고는 했던 것 같은데…….
“복잡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긴 해야 합니다. 하지만 진 님께서 잠적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뭔가 방도가 있나?”
“하나비 길드 건물에 들어갔을 때부터 녹화 아티팩트를 켜 놓고 있었습니다.”
강준하가 인벤토리에서 웬 둥그런 구슬을 하나 꺼내며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뭐? 녹화 아티팩트? 아니, 이 장한 녀석 같으니라고……!
준비성 하나만은 전부터 소름 끼치게 철저하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 님이 분명 앞뒤 가리지 않고 길드부터 부숴 버리자 하실 것 같아 미리 준비했습니다.”
……그래, 내가 죄인이다.
어쩐지 일단 길드장부터 족치자는 나의 계획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가만히 있었지.
“어느 정도는 편집하겠지만 마족을 소환하는 부분을 협회에 넘겨주면 귀찮은 일은 피하실 겁니다.”
“잘됐군. 그럼 일단 한국에 가는 게 제일 우선이겠고.”
“쉽진 않을 겁니다. 아마 저희의 출국 자체를 막으려고 들 게 분명합니다. 무시해도 되겠지만 혹시 일본 측에서 비행기를 폭발시켜 버릴 수도 있습니다.”
“헉. 그럼 텔레포트를 사용해야겠네요. 저는 없는데……. 혹시 스크롤 남은 건 없으십니까?”
물론 국가 간 이동을 할 수 있는 장거리용 텔레포트 스크롤이 내 인벤토리에 넘쳐 난다.
하지만 벌써 쓸 필요는 없다. 나에겐 인간 비행기…… 아니, 마족 비행기가 있으니.
“얘가 있잖냐.”
나는 졸린 듯 하품을 하고 있는 아렐리아의 코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자신을 말하는 거냐는 듯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가만히 쳐다본다.
“하지만 헤츨링 아닙니까? 그 정도 작은 크기면 마법은커녕 브레스도 조절 못할 텐데요.”
“이건 좀 특별해서.”
“[마왕님, 텔레포트 필요하세요? 바로 이동할까요? 좌표만 불러 주시면 된답니다.]”
“그래, 바로 협회로 가자.”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아레스 길드나 집보다는 협회로 가서 바로 처리하는 게 낫겠지.
나는 협회 로비 좌표를 아렐리아에게 불러 줬다.
“협회라. 좋은 생각이십니다. 굳이 미룰 필요는 없겠죠.”
“[그럼 이 좌표로 바로 이동할게요~거리가 조금 돼서 어지러우실 수도? 아! 마왕님은 상관없으시겠네요. 흐음, 뭐 그럼. 다른 인간들이야 어지럽든 말든…….]”
* * *
[1랭크 채널]
[가을하늘: 아레스 부길드장님, 아직도 길드장님과 연락 안 되십니까?]
[언제나야근철야: ㅠㅠ…….]
[가을하늘: 하…… 혹시라도 뭔가 소식 들어오는 것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언제나야근철야: 길드장님…… 보고 계신가요……. 흑흑 제발 전화라도 받아 주세요…….]
[홍: 하나비 길드한테 공격당했다더니 일본 가서 바로 찢어 놓는 클라스, 캬…….]
[초코맛아이스크림: 하나비 길드에서 습격한 건 대체 언제까지 저희끼리 쉬쉬해야 되나여. 지금 기사들 쏟아지는 거 장난 아님여.]
[마탑대표: 그런데 돌아오셔도 하나비 길드장을 죽인 건 좀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만……. 뭐, 협회가 알아서 다 해 주겠죠? 협회 화이팅!!]
‘……×발.’
오늘도 불철주야 용병왕이 치고 다니는 사고를 처리하기 바쁜 협회의 공무원, 박신우.
그답지 않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혹시 무슨 소식이 들려올까 1랭크 채널 채팅창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손은 바삐 놀리고 있었다.
아무리 헌터라지만 며칠째 반복되는 철야에 지쳐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채 정신없는 모습이었다.
용병왕만 아니면 뒤통수라도 한 대 후려쳐 주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검은 탑> 클리어하신 것만 해도 바빠 죽겠는데…….’
물약 중독 상태 이상에 걸릴 만큼 오늘도 피로 회복 물약을 들이켜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데.
갑자기 협회 직원 한 명이 허겁지겁 뛰어왔다.
“지부장님!! 왔, 왔어요!!”
“뭐가 왔단 말입니까. 제가 항상 보고를 할 때는 기승전결에 맞게…… 설마…….”
“네!! 그분이 아레스 길드장과 박민호 헌터와 함께 지금 1층 로비에 계십니다!!”
우당탕-!!
박신우가 자리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듯 빠르게 튀어 나가 1층 로비로 뛰어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 계단을 이용하는데, 로비에 가까워질수록 웅성대는 소리가 커져 갔다.
“어? 지부장 벌써 왔네.”
용병왕이 느슨하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보인다.
여태까지 고생시켰던 용병왕이지만 방금까지 욕을 하던 건 모조리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지금만큼은 그의 얼굴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