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5화
“……뭔 왕?”
마왕.
마계를 다스리는 모든 마족의 왕.
그러니까, 인간인 나는 들을 리가 없고, 들어서는 안 되는, 참신한 호칭이다.
심지어 지구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와 싸우던 적이 마왕이다.
용병왕이니 위대한 아스티란의 대왕이니 하물며 인성왕이라느니 별별 말을 다 들어 본 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인성왕이라는 멸칭도 인정은 하지 않고 있다지만 그건 넘어간다 쳐도…….
“어머머머, 정말 마왕님이시네요!? 마왕님!! 이때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나를 마왕이라고 부르며 호들갑을 떠는 남부 마계의 대공.
이것만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마왕니이임? 왜 말이 없으신지……?”
“혀…… 형님……. 마왕이라니요……?”
“진 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계 공작이 발산하던 살기와 마기가 눈 녹듯이 사라지자 바닥에 엎어져 있었던 강준하와 박민호가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더니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해명을 바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크흠…… 큼……. 마계의 공작, 왜 나를 마왕이라고 부르는 건가……?”
“아! 마왕님, 편하게 말씀하셔도 되어요! 그나저나 제 소개를 안 했군요!”
그녀가 살포시 웃으면서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대뜸 무릎을 꿇고 몸을 낮춘다.
“저는 마계 남부의 지배자, 마계 대공 중 하나인 아렐리아. 위대하시고 영광된 마왕님을 감히 뵙습니다.”
아렐리아라고 소개한 마족이 두 손과 양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 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올려다본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게 무언가 대답을 요구하는 듯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왕니임, 몇십 년을 기다려 왔는지 몰라요. 그래도 이렇게 다시 뵐 날을 기다리며 꾹 참고 있었답니다!”
“아니……. 뭘 기다려 왔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왜 마왕이라고 부르냐니까?”
“네에? 마왕님을 마왕님이라고 부르는데 뭔가 이유라도?”
도저히 도돌이표처럼 말에 진전이 없었다.
눈을 찡그린 채 미친 것처럼 말이 통하지 않는 아렐리아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이 잠깐 입을 벌리더니 다시 생글생글 웃는다.
“이번 마왕님께서는 인간계 출신이셔서 잘 모를 수도 있으시겠네요. 마계는 본디 오직 힘으로만 돌아가는 약육강식의 세상. 전대 마왕을 처치하셨으니 마왕 자리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셔요. 물론 전대 마왕을 죽이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지셔서 저희도 당황했지만……. 그래도 모두 마왕님의 귀환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마왕을 처치하고 지구로 귀환한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을 보고 오진 못했지만 퀘스트에 따르면 위대한 업적을 이루고 돌아왔다고 하니 마왕은 죽었던 게 틀림없을 테고.
마왕을 처치한 자가 다음 마왕이 된다라……. 나는 인간이었지만 마족들에겐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건가.
“마족이 아니어도 마왕이 될 수 있다는 건가?”
“네네 당연하지요! 그저 강함, 오직 그것만이 마족들을 지배하는 법칙입니다.”
말을 할수록 이해가 가긴 하는데…….
곧 뒤쪽에서 하나비 헌터들이 이곳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 통솔할 길드장도, 간부들도 없는 상태라 시간이 지체됐겠지.
“팀장님, 여기 한국의 헌터들이……. 헉? 대체 이 공간은…….”
“웬 이상한 여자도 하나 있습니다!”
차마 마족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는지 우리 쪽 일원으로 보이는 아렐리아도 경계한다.
이윽고 공격이라도 하는 듯이 천천히 다가온다.
하지만 아렐리아가 무언가 결계 마법을 사용한 듯 이쪽으로는 올 수 없어 보였다.
이상한 여자, 라고 하자마자 그 말을 알아들은 아렐리아는 방금까지 수줍은 소녀와 같은 얼굴을 싹 지우고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감히 인간들 따위가……. 역시 천박하기 짝이 없구나.”
“그거, 인간이니까 나도 포함인가?”
“제가 감히 마왕님을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잖아요? 우선 하실 말씀이 많으신 듯한데 이곳부터 정리하고 모실게요!”
박민호와 강준하 쪽을 돌아보니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는 눈으로 돌아보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둘 다 이 상황 자체에 진절머리가 난 듯하다.
“일단 계약 조건 좀 이행할게요! 이곳의 존재들을 모두 죽이라는 게 저의 계약 조건, 음…… 그렇다면…….”
“죽인다고? 대체 뭘 할……!
딱-!!
아렐리아가 손가락을 퉁기자 순식간에 지하였던 풍경이 하늘로 바뀌었다.
하나비 길드 건물의 상공인 듯한 곳에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박민호와 강준하도 같이 이동되어 있었다.
“젠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 거야. 마왕이라니…….”
“형님…… 저희 안전한 거 맞겠죠……?”
“진 님, 용병왕에 이어서 마왕까지…….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긴 뭘 대단해, 아오! 너까지 정신머리 못 차리고 있을래?”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저 여자, 진 님을 정말로 마왕이라고 따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마왕 토벌 퀘스트가 날 이따위로 엿 먹일 줄이야……. 마족이라니, 절대 엮이고 싶지 않은 상대다.”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언제 적으로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콰콰콰콰콰쾅!!
박민호, 강준하와 함께 아렐리아에 대해 말하고 있을 그때였다.
강렬한 마기가 내가 있던 지하에서 폭발하더니,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비 길드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아악-!!”
“살려…… 살려 줘!!”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 하나비 길드 건물.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하에 있던 헌터들은 저 정도 마기에 직접적으로 타격받았으니 아무리 강한 헌터여도 가루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죄를 저지른 길드장을 두고 있는 하나비 길드원이라도, 모두가 그 사건에 관련되지 않은 이상 저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됐다.
뭘 해 보기도 전에 아렐리아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내 귓가에 더욱 크게 들리며 나를 신경 쓰이게 한다.
“뿅! 쨔잔~ 계약 완료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왕님! 인간 따위의 부탁을 들어주긴 싫지만 어쨌든 계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서요.”
“빌어먹을……. 그래서 사람들을 모두 죽인 건가?”
“네에~ 별말씀 못 드리고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한 건 죄송해요! 계약 조건에 따라 [이곳]이라는 말대로 지하에 있던 인간들을 죽여야 했어서요. 계약자는 마왕님과 부하들을 죽여 달라는 부탁이었던 것 같은데, 뭐어……. 정확히 상대를 지정하지 않은 멍청한 인간 탓인 거죠.”
말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자기 입맛대로 계약을 받아들이는 건 아스티란에 있었을 때부터 마족들의 고질적인 수법이었다.
아렐리아의 행동은 모두 마음에 안 들었지만 다케시가 멍청했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리를 옮겨 볼까요? 원하시는 곳이 없으시면 인간의 기운이 가장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이동할게요~ 아! 저 인간 두 놈은 빼고요~”
“어? 형님!!”
이번에는 손바닥을 맞부딪쳐 짝! 소리를 내더니, 박민호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곧이어 이동하는 바람에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상공이었지만 밑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는 장소였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둘을 버리고 혼자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어볼 건 다 물어보고 마무리를 지은 다음에 빠르게 합류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 인간들은 다른 한적한 장소로 자알~ 이동시켜 줬답니다. 자~ 이제 뭐든지 물어보세요! 이 아렐리아, 뭐든지 말씀드릴 준비가 되었답니다!”
“하. 아무리 마왕이 되었다지만 마계에 있을 때와는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가 바뀌는군.”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 이제 온 마계의 주인은 마왕님이세요! 이제 얼른 다른 곳들에서도 왕이 되어 주실 거죠?”
“……다른 곳의 왕이라니?”
“그, <예언>이……. 아, <세계의 율법>에 어긋나려나……. 자세히 말씀은 못 드리지만…….”
아렐리아가 시종일관 웃고 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눈을 차갑게 빛냈다.
“<인간계>가 여섯 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진 건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스티란을 포함해서요.”
“바르시엔이니 리카니 하는 그런 곳 말이지.”
“네, 아스티란과 비슷한 곳들이지요. 그리고 마족들을 포함해 천족, 정령계 등 각자의 왕께서는 각각 하나의 <인간계>를 파괴하기 위해 침공했었답니다.”
“침공……? 너희 마족들이 아스티란을 침략해 내가 마계까지 가게 된 것을 말하는 건가?”
“네네. 저희는 아스티란을, 천족은 바르시엔을…… 뭐, 그런 식이었죠. 모두 <예언> 때문입니다. 인간이 모든 종족과 차원을 지배할 왕이 될 것이다. 저희야 강한 힘만을 따르는 게 마족의 습성이기에 전대 마왕을 처치하신 마왕님께 복속된 상태지만 아마 고상한 척하는 천족이라든지 다른 종족들은 쉽지 않겠죠.”
얼토당토않은 말들에 정신마저 혼미해져 간다.
내가…… 왕이 될 상이란 말인가?
그것도 모든 차원의?
“그게 사실 지금의 마왕님이실지 몇백 년 후의 누군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저는 기왕이면 꼬옥 지금 저희의 마왕님께서 왕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귀엽게 생기셔서 마음에 들거든요! 제 취향이에요! 하며 아렐리아가 생긋 웃으며 윙크를 날린다.
분위기에 맞지도 않는 수작질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귓가에 콱콱 박히는 이야기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스티란은 내가 마왕을 처치해 지켜 내어 파괴되지 않았다고 하면, 다른 차원들은 각 종족에게 멸망이나 그 직전까지 갔다는 거겠지.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귀환한 귀환자는 나밖에 없었으니.
“그렇다면 왕이 된다는 건 아스티란 때처럼 마계에 쳐들어가 마왕을 처치하듯 하면 된다는 건가?”
“아뇨, 예언에 따르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진행될 거예요. 도망치고 싶으셔도 결국 모두 부딪혀 올 테니까. 자세한 건 <세계의 율법> 때문에 말씀 못 드리게 돼서 너무 슬프네요. 아무리 저라도 율법을 어겨서 받게 되는 신벌은 무섭거든요.”
순식간에 파고든 정보들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아마 내 앞에 있는 그녀 때문일 것이다.
지구에서는 보지 않을 거라 생각되는 마족이었으니까.
마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이면 난리가 날 것이 뻔했다.
“후……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 계약도 끝났으니 너는 마계로 돌아가라.”
“에엑……. 싫어요! 마왕님, 마계는 그렇지 않겠지만 다른 차원계들의 왕들이 마왕님을 노릴 게 분명하다고요! 미천한 힘이지만 마왕님 곁에서 지켜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마계는 너무 심심하다고요!!”
“이렇게 마기를 풀풀 풍겨 대는데 널 어떻게 금붕어 똥마냥 달고 다녀!?”
용병왕 뒤에서 졸졸 쫓아다니며 마왕님, 마왕님 해대는 마족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내 악명은 이미 하늘을 뚫을 정도였지만 이 정도라면 수군거리는 수준이 아니고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려 버릴 것이다.
오는 적 마다하지 않는 나라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검은 탑> 공략을 위해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적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앗 그게 문제이신 건가요? 그게 해결되면 저도 데리고 다녀 주시는 거죠?”
갑자기 허공에서 아까 하나비 길드의 지하에서 봤던 커다란 알이 슥, 하고 생겨난다.
엄청나게 신경 쓰이던 물건이었는데 그게 아렐리아가 알고 있는 물건이었던 건가?
“전에 애완 용이 가지고 싶어서 드래곤 둥지에서 훔쳐 온 건데……. 마기로 키우고 있었지만 아직 얼마 먹이지 않았던 상태라 마지막에 인간인 마왕님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면 거의 없어질 것 같아요.”
“드래곤 알?”
“일단 마력을 불어넣어 주시겠어요? 최대한이요!”
대체 이걸로 뭘 하려는 건지 호기심이 있긴 했기 때문에 순순히 알에 마력을 최대한 집중해서 집어넣었다.
헌터 등록석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보다도 많은 양의 마력을 빨아들이는데, 대체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지?
마력이 거의 바닥날락 말락 해 마력 회복 포션이라도 마셔야 하나 싶었는데 알에서 빠지직- 소리가 났다.
“이거, 부화하려는 것 같은데.”
“와아아…… 역시 새끼지만 드래곤이랍시고 마력을 정말 많이 잡아먹네요. 이제 다 되었어요! 가만히 들고 있어 주세요!”
이윽고 알에서 검은빛 해츨링의 모습이 보였다.
알껍데기를 부르르 털어 내며 큰 눈망울로 날 쳐다보는데, 없어진 지 300년은 된 듯했던 내 감수성이 깨어나는 듯했다.
……생각보다 귀여운데?
“거의 마무리 되었어요! 잠시만요~ 음~ 그럼…….”
아렐리아가 무언가 마족의 언어로 주문을 중얼거린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아렐리아의 몸이 스르르 녹아 없어지듯 사라지더니 해츨링에게 빨려 들어갔다.
“[해츨링 몸 안으로 들어가기 성공! 어때요, 마기는 느껴지지 않죠? 이런 모습이면 데리고 다녀 주실까요?]”
……마족보다는 드래곤이 낫긴 하다지만 드래곤 쪽도 데리고 다닐 때 큰 소요가 일어나긴 할 것 같은데.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냐고 말하려고 해츨링이 되어 버린 아렐리아를 봤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울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발은 내가 들고 있는 팔에 턱 올려놓은 채였다.
……데려가자!
전부터 애완견…… 아니, 애완 드래곤 한 마리쯤은 키우고 싶었으니까!
사룟값 많이 들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