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2화
어느 정도 난리를 친 후 잔뜩 쥐어 터져 뭉개져 보이는 박민호를 벽을 보고 세웠다.
“넌 여기서 반성 다 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라.”
“훌쩍……. 네…….”
“그나저나 나는 스킬 봉인 해제권에, 민호는 닉네임 변경권인데……. 강준하 너는?”
“흠……. 저도 일반적이지 않은 아이템을 얻었는데……. 만약 제 예상이 맞는다면 이건 진 님이 가지시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얻은 아이템 설명도 그렇고요.”
“시스템에서 준 보상에 소유자가 적혀 있는 거 보니 귀속 아이템인 것 같았는데, 무슨 아이템이기에?”
“아마 각자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건 헌터 개개인의 욕망에 반응하는 아이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박민호 헌터 같은 경우는 힘에 대한 욕심이 없기에 저런 아이템을 얻게 된 거고요.”
“네! 맞습니다, 형님! 저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너, 내가 조용히 있으라고 했지.”
또다시 주절거리려는 박민호를 향해 휙 고개를 돌려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금세 기죽은 그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저 같은 경우도 강함에 대한 열망은 없었는지라……. 진 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준하가 인벤토리를 열어 스크롤 하나를 슥 꺼내 보인다.
[<검은 탑>의 상자: 믿을 수 없이 위대한 업적을 세운 각성자들을 위한 선물 상자입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 들어 있습니다.
-소유자 강준하: 스킬 봉인의 스크롤
사용자 주변을 중심으로 일정 지역에 위치한 모든 헌터들의 스킬을 잠시간 봉인합니다. 지속 시간: 10분 (* 양도가 가능한 아티팩트입니다)(1회용)]
설명만 읽어 봐도 스킬이 봉인되었던 내가 얼마나 걱정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스킬을 모두 사용할 수 없으니 너도 못 쓴다! 라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적인 아이템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잠시간이나마 정말 위기 상황이 온다면 시간을 벌다 못해 내가 가진 스탯들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필살기가 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건 확실히, <검은 탑>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아티팩트네.”
“네, 앞으로도 탑 공략을 계속할 텐데 어떤 아이템이 나올지……. 다른 나라들에서 획득한 아이템도 이렇다면 상당히 과열된 분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탑의 출입 제한이 풀리는 그 즉시 다시 공략대에 참가해야 하나.
굳이 99층까지 모두 참여할 생각은 없었다만, 지금이라면 생각을 바꿔야 할 때였다.
아아악-!!
그때 밖에서 들리는 엄청난 비명 소리와 차 경적 소리.
우리는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모두 창가로 뛰어들어 밖을 내다보았다.
“뭐지? 사고라도 난 건가?”
지이잉-
[긴급 경보: 2급 재난. 용산역에 추정 B급 게이트 발생. 시민 여러분들은 조속히 대피해 주세요.]
[긴급 경보: 2급 재난. 파주에 추정 A급 게이트 발생. 시민 여러분들은 조속히 대피해 주세요.]
.
.
.
“길드장님!! 협회에서 지원 요청을 해 왔습니다! 전국적으로 열린 돌발 게이트가 무려 11개라고 합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의 재난 문자와 함께 부길드장이 길드장실로 뛰쳐 들어온다.
그의 얼굴에서 다급함이 묻어 나온다.
“탑 출입이 제한되면서 돌발 게이트가 열린다곤 했지만…… 이런 식일지는.”
[가을하늘: 현재 용산과 강남 부근 돌발 게이트에 민간인들이 대량으로 휩쓸려 갔습니다!! 제일 가까이에 있는 헌터분들은 우선 게이트에 진입해 구조 부탁드립니다!!]
[홍: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영원: 저희도 제일 가까운 게이트부터 공략하겠습니다!]
시스템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진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정도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은가.
“우선 길드 본부 근처에 있는 곳부터 가 봐야겠습니다.”
“그래. 파주 게이트는 A급이니 일단 내가 출발한다.”
“알겠습니다. 이곳 상황이 마무리되면 뵙죠. 박민호 헌터, 저희 길드와 함께하시죠. 한 명의 랭커라도 급한 상황입니다.”
“네! 형님, 그럼 다음에……!”
강준하가 던지듯 준 차 키를 들고 빠르게 파주로 향했다.
이미 도로는 경찰들과 협회 직원들이 대피 작업을 마친 뒤라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빠르게 악셀을 밟아 서울을 빠져나왔다.
어느 정도 달렸을까, 처음에는 급해서 몰랐지만 무언가 점점 이상함을 느꼈다.
‘설마…… 뒤따라오는 것인가?’
룸미러로 보이는 검은 차량.
언제부터 따라붙었는지 모르겠지만 속도를 유지하며 벌써 몇십 분째 나를 쫓아오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시골길에 가까운 한적한 국도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역시나 그 차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한다.
명백한 추적자.
그를 따돌리기 위해 유턴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부아앙-!!
당연히 나를 피해 갈 줄 알았던, 맞은편에서 오던 트럭이 기다렸다는 듯이 돌진해 온다.
“젠장……!!”
앞과 뒤가 모두 막힌 상황.
심지어 피하기도 어려운 속도였기에 단단한 내 몸뚱어리를 믿고 그대로 부딪혔다.
콰앙!!
다행히 그 트럭은 사고 나는 족족 이세계로 보내 버린다는 그 유명한 환생 트럭은 아니었는지 골이 좀 울릴 뿐 멀쩡했다.
완벽하게 부서진 차.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하고도 남았을 만큼 엄청난 사고였다.
문을 발로 차 부숴 버리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피슉!!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나를 향해 정확히 날아왔다.
어렵지 않게 화살을 붙잡아 살펴보자 꽤 강력한 마력이 느껴진다.
제법 강한 헌터가 쏜 것이리라.
“이건 또 무슨…….”
이윽고 트럭의 뒷문이 열리더니 열 몇 명의 헌터들이 우르르 내린다.
하나하나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것이, 나보다는 못하지만 지구에서 꽤 날리는 헌터들 같았다.
특히나 두 명의 헌터는 협회에서 봤던 협회장만큼이나 강자로 보였다.
“……대부분 눈에 꽤 익은데?”
지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내가 이렇게 많은 헌터들을 잘 알고 있을 리가 없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언제 마주쳤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스티란에서 봤었던 일본인 헌터 길드였다.
“설마……. 하나비 길드?”
“오랜만이군, 용병왕.”
분명 일본어로 말하고 있는 건 확실했지만 신기하게도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다.
<검은 탑> 등장 이후 전 세계의 헌터들 간에 언어 장벽이 사라졌다더니, 통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듯했다.
영어 안 배우고 버티기 잘한 것 같네. 언젠간 이런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역시 존버는 승리하는 법이지.
“지구 귀환 선물로 화살이라도 하나 챙겨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고…….”
“여전히 건방지군. 언제까지 그 여유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확연하게 느껴지는 살기.
오늘 기어코 끝을 보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진다.
내가 SSS급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그들의 모습에서는 전투 직전의 흥분감이 느껴질 뿐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도 나한테 몰살당한 거 잊었나 보군. 심지어 제일 강한 길드장이라던 놈은 없고……. 그 정도로 충분할 것 같나?”
“스킬도, 변변찮은 아티팩트도 없는 너 따위에 질 우리가 아니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거지.’
스킬이 봉인되었다는 건 비밀로 하고 있어 단 두 명 빼고는 모르는 사실.
강준하와 박민호가 어딘가에 흘렸을 리는 없겠지.
자체적으로 알아낸 정보라는 건데……. 내 눈을 속이고 감시할 수 있을 정도인 헌터가 있었다는 건가.
“그래? 그럼 이건 생각도 못했겠네?”
인벤토리를 열어 페르아렌을 꺼내 손에 들고 휘휘 휘둘렀다.
척 봐도 심상치 않은 무기라고 생각했는지 하나비의 헌터들이 잠시 술렁인다.
하지만 곧이어 전투 대형을 바로잡는다.
“<검은 탑>에서 얻은 무기라도 되나 보지. 하지만 두 번째로 탑 공략에 성공한 우리보다는 보상이 좋지 못할 터.”
감히 온갖 퀘스트를 깨며 간신히 얻어 낸 내 소중한 검을 무시해?
이 검 덕분에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적이 몇 번인데!
“얼마나 대단한 아티팩트를 얻었길래 그렇게 자신만만한지 궁금할 정도인데. 한번 구경이라도 시켜 주지 그래.”
“……여전히 재수 없는 말투군. 유우키! 시작해!”
“……분석 완료! 현재 제 능력으로는 용병왕의 신체 전체를 구속할 수 없습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손만이라도 봉인하겠습니다! <속박의 술>!”
순식간에 준비된 그들의 마법. 발밑에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진다.
그와 동시에 하나비 헌터들이 타고 왔던 트럭 뒷부분이 갑자기 폭발했다.
양팔에 빛으로 된 사슬이 단단하게 감겨 온다.
챙강-
들고 있던 페르아렌도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당황한 마음에 상황을 파악하려고 황급히 주변을 세세하게 뜯어봤다.
산산조각 난 트럭의 잔해들에는 마법진으로 보이는 조각들이 그려져 있고, 부서진 마석들의 조각이 빛나고 있었다.
“마석 조각……!?”
부서진 트럭 사이에 반짝거리는 게 보여 자세히 살폈다.
엄청난 크기와 많은 개수의 마석들이 한순간에 마력이 빠져나가고 텅 빈 채 있었다.
방금 전의 마법을 위해 저 수많은 마석의 마력을 한 방에 털어 넣은 듯했다.
‘트레일러 안쪽에는 고등급 속박 계열의 마법진을 그려 넣고, 헌터가 타고 있던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마석으로 채워 놨다, 라는 건가.’
트럭 자체가 나를 봉인하기 위해 제작된, 거대한 아티팩트가 된 셈이다.
이때를 위해 하나비 길드 측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우키!”
마석과 미리 준비된 마법진을 이용해도 완전히 속박시키는 건 힘에 부치는 일이었는지 유우키라고 불리는 헌터가 피를 왈칵 토하며 쓰러졌다.
“젠장……. 신경 쓰지 말고 우선 공격해!”
하나비 간부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온갖 스킬이 날아온다.
피하려고 애썼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스킬을 두 손이 묶인 채 완벽하게 피하는 것은 조금 무리였다.
“크윽…….”
스치듯 날아온 화살촉에 뺨이 긁혀 피가 주륵 흐른다.
‘피를 본 건 굉장히 오랜만인데…….’
치명상을 입을 만큼 유효한 공격들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도 자존심이 꽤 상했다.
하지만 내 여린 마음에 상처를 준 하나비 쪽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걸 모두 피했어……!?”
“젠장……. 역시 용병왕…….”
“그래도 모두 피한 건 아닙니다! 상처 입히는 데는 성공했다고요!”
헌터 한 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나 빼고 모두 즐거워 보인다. 꽤 소외감이 느껴졌다.
역시 이지메의 나라. 사람 하나 외롭게 만드는 데는 도가 튼 듯했다.
“재밌어 보이네. 거기에 못 끼는 게 서운할 만큼.”
“헛소리도 여기까지다!”
다시 몇 개의 스킬이 날아온다. 조금만 하면 끝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까보다 더 강한 마력들이 느껴졌다.
“인벤토리.”
[<검은 탑>의 상자: 믿을 수 없이 위대한 업적을 세운 각성자들을 위한 선물 상자입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아이템이 들어 있습니다.
-소유자 진: 스킬 봉인의 스크롤
사용자 주변을 중심으로 일정 지역에 위치한 모든 헌터들의 스킬을 잠시간 봉인합니다. 지속 시간: 10분]
“스크롤을 꺼내 봤자 두 손이 묶여서 사용할 수는 없을……!”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온 스크롤이 공중에 떠올랐다.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얼른 입으로 낚아채고 이빨 사이에 물어 강하게 질겅질겅 씹었다.
염소 같은 내 모습에 잠시 하던 공격을 멈추고 당황하는 모습이 일품이었다.
뭘 봐, 사람 종이 먹는 거 처음 봐!?
내가 이딴 우습지 않은 짓거리를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스크롤이라는 건 원래 찢어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약간의 물리적 타격으로 발동시키는 것.
그래서 마탑에서는 스크롤을 제조할 때 어느 정도 물리 충격이 주어져도 시도 때도 없이 발동되지 않게, 그렇지만 찢는 정도로는 사용할 수 있게 만든다.
초보 마법사들은 그 조절을 잘하지 못해 연구소에서 스크롤을 제작하다가 펑펑 터트려 버리지.
그러니까…….
“속박하려면 내 입도 막았어야지, 이 새×들아!”
[스킬 봉인의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플레이어 진을 중심으로 1킬로 반경 헌터들의 스킬을 잠시간 봉인합니다(남은 시간: 00: 09: 59).]
“스킬 봉인!? 저런 아이템이 존재한다고!?”
단 10분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도망가려는 기색조차 없이 두려움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하나비 헌터들을 보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쇼 타임이다, 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