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10화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강준하와 함께 식당을 찾았다.
하도 집중해서 벽을 부수다 보니 게이트에서 며칠을 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식당의 메뉴를 모조리 시킨 듯 잔뜩 깔려 있는 음식을 정신없이 먹기 시작하자 테이블에는 침묵만 가득했다.
그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묵묵히 나를 기다렸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고 어디서부터 말을 꺼낼지 몰라서 일단 제일 중요한 말부터 꺼냈다.
“아, 맞다. 나 스킬 전부 봉인됐다.”
“푸웁!!”
아니, 이 새끼가 신성한 식탁 앞에서 더럽게 무슨 짓이야?
밥상머리 교육을 뭘로 받았는지 모를 강준하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먹던 음식을 뿜었다.
“콜록콜록……. 그게 대…… 체 무슨 말씀이신……!?”
“더 이상은 나도 입 아프게 말하기 싫다. 중요한 건 결과니까.”
“…….”
강준하는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한 듯했다.
내가 자세히 대답해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 봉…… 인되었다는 건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신 적 있습니까?”
“게이트 나오자마자 바로 식당에 왔는데 말할 곳이 어딨겠어.”
“그러시긴 하겠지만요. 아, 그리고 이 이후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시면 바로 협회로 출발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게이트에 계신 동안 <검은 탑>을 공략할 준비를 모두 마치고 오늘 진입한다고 합니다.”
“나를 빼고? 게이트에 며칠이나 있었다고 그래? 분명 공략 회의가 먼저라고 하지 않았나?”
“그게……. 상황이 제법 급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지금 출발하시면 아슬아슬하게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 아레스 길드장 진짜 공략 참여 안 할 거야?? 5대 길드 중 하나인 곳이 책임감 뒈져 버렸어??]
홍현민이라던 헌터가 그와 동시에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시비를 걸어 댔다.
저놈 말본새, 전부터 느꼈지만 그야말로 예술이다.
[강준하: 진 님께서 게이트에서 나오셨으니 같이 바로 출발하겠다.]
[홍: 헐, 용병왕 드디어 나옴??]
[진개색끼: 형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영원: 마침 출발하던 차였는데 좋은 소식이네요 ^^]
[가을하늘: 그럼 두 분의 준비까지 협회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영국까지 벌써 1층 공략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마탑 대표: 빨리빨리의 민족인 우리가 밀리다니……. 자존심 상한다…….]
게이트에 있던 그사이 벌써 다른 나라에서 탑 공략을 성공했다고?
항상 침착하던 강준하답지 않게 서두르려는 모습을 보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식사를 다 하셨으면 바로 가시죠. 탑에 대한 설명은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합류하기로 한 <검은 탑>으로 향하는 길.
강준하가 말해 준 소식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아이템이…… 선착순이라고? 그럼 웬만큼 좋은 아티팩트들은 이미 없겠는데.”
“네, 현재 다른 국가들도 모두 탑에 입성한 상태라고 합니다. 탑 클리어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 저희도 조속히 참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템은 이미 충분할 정도로 많았지만 스킬 봉인이라는 변수가 생긴 지금 보험은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심지어 게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특별한 아이템들이 보상으로 나온다고 하니 제법 궁금해졌다.
‘당분간은 탑 공략에 매진해야겠는데.’
급한 만큼 미친 듯이 차를 밟았다.
덕분에 올 때보다 절반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울 한복판에 하늘 높은지 모르고 서 있는 <검은 탑>.
내 모든 고생의 원흉 같은 그 탑을 보니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시발 거…….’
저 망할 탑……. 물어뜯어서 이빨 자국이라도 내놓고 싶다.
하지만 게이트 때처럼 쉽게 파괴당하진 않겠지.
이미 저 탑이 생겼을 때 온갖 실험을 해 봤다고 했다.
지금은 2위로 밀려났지만 한때 지구의 최강자라고 불리던 길리안이 마력을 모조리 쏟아부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고 했지.
“진 헌터님! 강준하 헌터님! 드디어 오셨군요!”
“형님! 오셨습니까! 그동안 게이트 가셨었다고요? 다음번엔 저도 꼭 데려가 주세요!”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기는 한국의 여러 헌터들.
박민호는 호들갑까지 떨어 대며 나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진 헌터님, 강준하 헌터님. 처음 뵙겠습니다. 주몽 길드의 길드장, 주혜라라고 합니다.”
전에 봤던 주몽 길드의 부길드장 권지나가 자기 키보다 더 큰 활을 들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 오고.
그 옆에는 그보다는 작지만 화살을 거는 부분이 없는, 특이한 흰색의 활을 들고 있는 주몽 길드의 길드장이 차분하게 인사를 했다.
긴 생머리의 하얀 얼굴을 가진 그녀는 굉장히 청량한 느낌의 늘씬한 미인이었는데, 왠지 모를 숲의 향기가 났다.
마치 아스티란에서 봤던 엘프와 같은 느낌이었다.
“주인공께서 드디어 오셨으니 바로 출발하지 그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부길드장님께서 저를 보내면서 길드장님 입단속을 시키라고 했던 이유를 알겠네요. 무려 그 용병왕님 앞인데…… 하아…….”
옆에는 여전히 싸가지를 아스티란에 두고 온 듯한 홍현민과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곱게 늙은 중년의 여성 한 명으로 이루어진 자유 길드 소속들.
아마 부길드장은 본인이 감당이 안 되니 어르신 말씀이라면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까 싶어.
예절 선생 겸 보호자 겸 보낸 것 같은데, 그 녀석의 싹퉁머리에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
귓가에 자유 길드 부길드장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반갑습니다. 천상 길드의 길드장 영원, 이영우입니다.”
“간부인 차은진입니다. 저희 며칠 전에 게이트 앞에서 뵀었죠? 이렇게 빠르게 또 만나게 되다니…… 운명이라도 되는 걸까요?”
천상 길드에는 길드장인 이영우.
그리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차은진이 윙크를 하며 웃어 보인다.
“그럼 강준하 길드장님과 진 헌터님도 도착하셨으니 출발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래도 용병왕님이 있으셔서 다행이에요.”
“맞아요. 다른 국가들 정보 들어 보면 탑 1층 난이도가 상당하다던데, 저희는 한시름 덜었네요.”
‘젠장, 지금 스킬 하나 없는 거지 상태인데.’
하필 이 타이밍에 탑 공략인지.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부담된다.
……어떻게든 스탯 빨로 버텨 봐야겠다.
* * *
한국의 헌터들이 <검은 탑> 1층 공략으로 떠난 그때.
멀리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검은 옷의 감시자가 있었다.
심장 소리마저 숨기는 은신과 멀리 있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감시에 특화된 스킬들을 보유하고 있는 암살 계열의 일본 헌터였다.
그는 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다케시에게 보고하기 위해 파견된 하나비의 일원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흥분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길드장님, 방금 한국의 헌터들이 <검은 탑> 공략에 진입하였습니다. ……그리고 진의 스킬이 모두 봉인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네. 아레스의 강준하 헌터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스킬 봉인이라니, 이유는?]
[강준하에게도 설명을 하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도 놀라면서 용병왕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더군요. 확실한 정보는 맞는 것 같습니다.]
[알겠다.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는군. 이쪽도 모든 준비가 되었다.]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그는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전율로 떨려 왔다.
‘스킬이 없는 진이라니…….’
비록 아직 가지고 있을 높은 스탯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계획에 큰 문제는 없을 터.
아니,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수확에 흥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템도, 스킬도 없는 용병왕은 그야말로 맨몸뚱이밖에 없을 터.
“모두 정말로 많이 기다렸군.”
“거사를 진행할 날이 드디어 잡혔군요.”
복수는 참고 참을수록 터트릴 때 달콤한 법.
통화를 함께 듣고 있었던 하나비의 헌터들은 모두 당장이라도 한국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눌렀다.
“그가 탑에서 나온 후, 혼자가 되는 때를 노린다.”
* * *
지구의 귀환자들이라면 익숙할 만한 풍경.
아스티란의 한 귀퉁이를 떼어 온 듯한 그곳에 한국의 헌터들이 발을 들인다.
“여기가 탑 1층 내부라고? 게이트가 아니고?”
“미국에서 보내 준 정보에 의하면 6대주에서 열린 각각의 차원과 같은 곳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아시아에 속하니 아스티란과 똑같은 게 맞습니다.”
헌터 교본서에 보면 아시아 귀환자는 아스티란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나머지 구역들은 각각 다른 이름을 가진 차원에서 귀환했다고 했다.
서로 비슷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다른 곳이긴 한지라 지금 나올 적들이 생전 초면인 몬스터들이면 곤란했다.
“뭐, 그러면 쉽겠네. 항상 보던 몬스터들이니.”
“무시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서 열렸던 S급 게이트와 비등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각 국가도 최정예들을 이끌고 들어갔었고요.”
“그래도 게이트보다는 몬스터가 훨씬 적게 출몰한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용병왕님도 계시고…….”
“형님, 저도 형님만 믿고 있습니다.”
박민호가 긴장한 듯 양손에 쥔 단검을 똑바로 고쳐 쥐었다.
공략대 인원 중에서는 랭크가 낮은 축에 속하기에 그 누구보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를 믿는 놈이 아이디를 그따위로 지어, 이 새끼야?”
“형님……. 그건 이미 잘 풀어낸 것 아니었나요…….”
“풀긴 뭘 풀어?? 앞으로 1랭크 채널에서 니 아이디 계속 볼 생각하면 머리가 다 아파. 아오, 이 골 때리는 새끼. 또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자 그걸 보고 있던 박민호의 낯빛이 허옇게 질린다.
이미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한 방 날려 버려서 또 때리기도 그렇고.
“앞으로 1랭크 채널에서 절대 한마디도 안 하겠습니다. 절대, 절대로요…….”
그나저나 이런 분위기, 절대 좋지 않은데.
공략대는 나를 너무 믿고 긴장을 놓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불세출의 영웅이라고까지 불렸던 나지만 정말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열 몇 명의 인원을 모두 보호하며 싸우긴 힘들다.
지금은 스킬이 없는 상태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이런 상황에는 무언가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겼지.
항상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빌어먹게도 나쁜 운을 가진 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주시했다.
그러자 방금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무엇인가가 내 눈에 보였다.
[지직…… 지지지직.]
“이거 왜 이래?”
무언가 노이즈와 비슷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기계음같이…….
[오류! 오류! 대한민국의 <검은 탑> 1층 정보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원인: *&$##지역 파괴…….]
1층이 있었는데요, 없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