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8화
“여기인가? 게이트가 생길 곳이…….”
강준하가 알려 준 주소는 인천의 어느 한적한 항만.
이미 민간인들의 대피는 완료했는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컨테이너 사이로 협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게 근처 통제해! 기자들 절대 들여보내지 말고!”
“게이트 열리기 20분 전입니다! 모든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진 헌터님이 천상 길드 대신 게이트 들어가시는 게 맞습니까?”
“내가 그 용병왕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사인해 달라고 하고 싶다…….”
끼이익-
강준하가 빌려준 번쩍이는 스포츠카가 근처에 멈추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차 문을 열고 나가니 협회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온다.
“이게 그 게이트?”
“헉!! 진 헌터님 오셨습니다! 헌터님! 이쪽으로 오시죠!”
막아 놨던 바리케이드를 황급하게 치워 준다.
그들이 안내하는 대로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저게 열리기 직전의 게이트라는 건가.’
곧 터질 듯한 마력으로 가득한 게이트.
마치 알을 깨고 나오기 직전인 병아리 같았다.
볼 꼴 못 볼 꼴 다 본 나조차도 처음 본 광경에 놀라 벌어지려는 입을 다물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파괴도 가능한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그때였다.
“안녕하세요, 진 헌터님.”
누군가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슥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웬 정장 차림의 화려한 미인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붉은색 립스틱이 도드라져 보이는 그녀는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품고 있는 기운과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날카로워서 무시 못할 강자로 보였다.
아름다움에 넘어가서 방심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가시에 찔리고 마는 붉은 장미 같다.
“저는 천상 길드의 간부, 차은진이라고 합니다. 저희 길드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에 오신다길래 직접 뵙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무슨 용건인지?”
“안타깝게도 별다른 용건은 없네요. 진 헌터님께 길드 이름도 알리고 싶어 왔습니다. 원래 저희가 차지했어야 하는, 오랜만에 나온 A급 게이트라 조금 아쉬운 것 빼면요. A급 게이트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꽤 고가거든요.”
차은진은 눈은 차갑게 빛내며 비즈니스용 웃음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게이트 자체가 목적이라 부산물은 필요 없는데. 원한다면 가져다주지.”
“시간이 많이 흘렀을 텐데 아스티란에서 뵀을 때 모습 그대로시네요. 여전히 차가우셔라~”
“날 본 적이 있나?”
나를 아는 듯한 그녀의 말에 그곳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뵌 게 전부라 저를 모르시겠지만요. 몬스터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괜찮습니다. 사실 이미 아레스의 길드장님께 충분한 대가를 받았거든요. 덕분에 체면은 차렸죠.”
한 이 정도? 하면서 화려한 네일과 비싸 보이는 보석 반지들로 장식된, 쭉 뻗은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그러다가 박수를 짝 치더니 잊고 있었다는 듯이 명함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너무나 작위적인 행동.
실수라도 한 듯 과하게 행동하는 게 절대 잊고 있었던 것 같진 않았다.
“나중에 시간 되시면 저희 길드 본부에 오셔서 여러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건 어떨까요? 드릴 제안이 잔뜩이랍니다. 뭐, 저를 보러 오시면 더 좋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윙크를 하는데 웬만한 연예인 뺨치게 생긴 차은진인지라 웬만한 남자들은 껌뻑 넘어갈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미 주변에서 우리 둘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협회 남직원들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침 떨어지겠다, 이놈들아.’
하지만 웬만한 사내가 아닌 나에게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미인계라도 쓰는 건가? 안타깝지만 그 정도로는 별로 마음이 가진 않는데.”
“아하하! 그렇게 보이는 건가요? 하지만 그런 걸 쓸 만큼 무능하지 않답니다. 외모에 기대다니, 하책 중 하책이지요.”
그러면서 싱긋 웃던 얼굴이 잠깐 무표정하게 돌아간다.
눈빛이 제법 매섭다.
아마 그 모습이 차은진의 원래 얼굴이리라.
그 모습에 나 역시 덩달아 표정을 굳히고 눈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읽은 그녀가 바로 방금까지 보이던,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띤다.
“바쁘실 텐데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죠. 부디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길 바랄게요.”
차은진은 그럼 제가 아니더라도 꼭 찾아 주세요! 하면서 대기 중인 차를 타고 돌아갔다.
길드장인 영원은 그렇게까지 머리가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스타일로 보이진 않았는데. ……하긴, 저런 보좌 한 명만 있으면 백 명이 넘는 머리보다 나을 것이다.
“저…… 진 헌터님? 곧 게이트가 열릴 것 같습니다.”
나와 그녀 사이를 긴장하며 쳐다보던 협회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그 말에 게이트 쪽을 돌아보니 일렁임이 확실히 격렬해진 게이트가 보였다.
“바로 진입하겠다.”
“아…… 네, 알겠습니다! 3팀! 준비해!”
게이트 안에서 다 때려 부수는 건 나인데 뭘 준비하는진 모르겠지만 행정상에 뭔가가 있겠지.
잠시 후 게이트가 열리고, 느긋하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말한 게 얼마나 지났다고.
이딴 곳에 제 발로 스스로 들어가다니…….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긴……. 북부 지역인가…….”
게이트를 지나니 방금 전까지 따듯했던 날씨와는 정반대의 새하얀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아스티란에서 이 정도 추위를 지닌 곳은 북부밖에 없었다.
우선 주변으로 마력을 넓게 펼쳐 보았다.
몇몇 몬스터가 근처에서 움직임이 있었고, 멀지 않은 곳엔 보스 몬스터로 느껴지는 강력한 개체가 한 마리 느껴진다.
그리고 그보다 더 바깥쪽에서 느껴지는, 매우 이질적인 마력.
이 공간을 막아 놓는 듯한 보호막, 결계 같은 것도 포착된다.
“이게 그 <벽>이라는 건가?”
보스 몬스터를 바로 제거해 버리면 출구가 생기며 게이트가 닫힌다니 우선 저 정체불명의 기운까지 도달해야 할 듯했다.
눈을 박차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그 <벽>에 다가갔다.
중간중간 앞을 가로막는 일반 몬스터들은 간단한 손짓으로 날리며 원하는 곳에 도달하자 멀리서 느낄 때보다 더욱 강대한 기운에 오싹해졌다.
생각보다 더욱 강력한 기에 눌릴 것만 같았다.
“……이 정도면 마왕보다 강력한 것 같은데.”
아스티란에서 감히 최강이라고 불리는 마왕보다도 강력한 힘이라니.
대체 이건 뭐란 말인가.
시스템이라는 존재에 더욱 의문이 갔다.
[경고: 이곳은 게이트의 <결계의 벽>입니다. 게이트의 끝에 도달하였으므로 이 앞은 더 이상 플레이어의 진입을 불허합니다. 힌트: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면 게이트의 출구가 나타납니다.]
벽에 손을 대자 시스템 메시지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게이트를 파헤치기 위해 많은 헌터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닐 때도 보였다는 문구였다.
혹시 파괴할 수 있을까 수많은 공격을 퍼부어도 어떻게 된 건지 흠집 하나 없이 멀쩡하다고 했지.
내가 게이트에 오고 싶어 한 것도 바로 그 이유였다.
벽이 무수한 공격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는 것.
다른 헌터들은 모두 포기하고 돌아갔다 해도 시도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공격들이 튕겨져 나온다면 모를까 결국 지나치게 단단한 무언가일 뿐이었다.
또한 결계라는 것은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터.
시스템 메시지가 말한 이 <앞>이라는 것도 무언가가 있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인벤토리.”
전설로 불려도 손색없을 만한 각종 훌륭한 무구들을 뒤로하고 우선 간단한 것부터 시도해 보기로 했다.
마지막에 마왕의 목숨을 거둔 애검, 폭렬의 페르아렌을 익숙하게 꺼냈다.
지구에 돌아오면 다시는 이런 건 만지지 않게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맹렬한 힘을 머금고 있는 검을 단단히 고쳐 쥐었다.
쾅-!!
있는 힘껏 휘둘렀지만 손목만 얼얼할 뿐 역시나 벽은 멀쩡했다.
가이드북에 쓰여 있는 대로였다.
“하지만…….”
‘공격이 먹힌다.’
수많은 전투를 해 왔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전체 내구도에 비하면 아주 극소량일지언정 분명히 유효하게 들어가고 있는 공격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 무너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언제 내가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지.’
항상 현재의 나로선 도저히 깰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얼토당토않은 퀘스트들과 강력한 몬스터들이 길을 가로막았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무런 반격도 하지 않는 벽은 손쉬운 적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불가능할 것 같은 것엔 무언가의 방법이 있었고, 나는 항상 그것을 찾아냈다.
“<극의의 일격>!”
가진 스킬 중 최고의 단일 대미지를 자랑하는 <극의의 일격>을 발동해 막혀 있는 벽을 향해 재차 검을 휘둘렀다.
카앙-!!
이곳의 보스 몬스터쯤은 한 방에 목이 날아갈 만한,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스킬을 사용해도 벽은 미동도 없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긴 했냐는 듯이 여전히 고요하게 기운을 뿌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첫술에 배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많은 스킬 중에 굳이 내가 이 스킬을 꺼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대미지가 점차 증가된단 말이지!”
카앙!! 카앙!! 카아앙!!
점보다도 작은 곳에 극도로 집중하여 한 곳만을 공격해 적을 무너뜨리는 기술.
사용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이 스킬을 사용하면 상당한 힘의 차이가 벌어져 있는, 감히 상대 못할 적들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기 일쑤였다.
역시 때린 곳 또 때리기는 굉장히 치사한 기술이란 말이지.
[스킬 <극의의 일격>이 놀랄 만큼 정확한 지점을 공격합니다! 10회 공격 보너스, 해당 대상 공격력 +10%…….]
[스킬 <극의의 일격>이 놀랄 만큼 정확한 지점을 공격합니다! 20회 공격 보너스, 해당 대상 공격력 +20%…….]
움직이며 반격하는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보단 훨씬 쉬운지라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집중했다.
[무아지경! 극도의 집중력으로 <극의의 일격>이 더욱 놀라운 효과를 발휘합니다. 방어 무시 +100%]
그동안 몇 번 보지도 못했던 스킬의 숨김 효과까지 발동했다.
그렇게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검을 휘둘렀을까…….
치지지직-
[……경고!! 경고!! @! #-&@#$구역 보호막에 이상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경고!!]
평소 듣던 시스템의 창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내용은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벽>은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약하게 진동했다.
‘반응이 온다.’
눈에 마력을 두르고 좀 더 자세히 결계를 살펴보았다
웬만한 헌터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이상 현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이 보호막이라고 부르는 그 <벽>에 아주 미세한, 작은 균열이 생겨 있었다.
마치 유리창이 깨지기 일보 직전인 것처럼.
분명히 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던 무언가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시스템, 넌 ×됐다.”
사람을 가지고 놀았으면 이 정도는 충분히 예상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