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SSS랭크로 귀환한 사연 4화
“허허…… 오늘따라 협회로 가 달라는 손님들이 많네요. 카드 여기 있습니다, 손님.”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협회로 출발한 나는 입구부터 북적거리는 협회 건물에 약간 질리고 말았다.
채팅에서 봤을 때만 해도 헌터들이 많이 모였겠구나,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웬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과 구경거리가 생긴 듯 몰려들어 입구를 기웃거리는 일반 시민, 빠른 걸음으로 건물로 들어가는 헌터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내가 딱 질색인, 복잡한 상황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잠깐 밖에서 구경하면서 파악 좀 해야겠는걸.
시력을 극대화해 유리창 너머의 협회 로비를 면밀히 살펴보는데, 왠지 익숙한 몇몇 얼굴이 보였다.
내가 익숙한 얼굴이라면 몇 명밖에 없는데.
“……죽은 것 아니었나.”
마지막에 남아 있던 지구인은 오직 나뿐이었다.
대륙 전체를 이 잡듯이 뒤졌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저놈, 박민호.’
용병대 생활을 하던 중 내 뒤통수를 거하게 때리고 도망가려다 결국 걸린 놈.
같은 한국에서 왔답시고 사근거리며 접근했었고, 힘든 용병대 생활도 기꺼이 따라왔었는데.
[S급 아티팩트, 없어진 줄 알았던 이게 왜 네 방에 있는 거지?]
[형…… 형님?? 그…… 그게 아니라……!!]
내 첫 번째 배신이라는 타이틀을 거하게 가져갔던 개×끼였다.
처음 겪은 일이라 한동안 저놈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지. 그런데…….
“……살아 있어?”
자세히 확인하고 싶어 다급하게 협회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헌터들을 취재하던 기자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려고 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사진 찍히는 건 전부터 좋아하지 않았기에 얼른 얼굴을 가렸다.
“인벤토리.”
가능한 화려하지 않은 검은 로브를 꺼내 깊게 눌러쓴 채 입구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올라오는 기대를 누르며 내부로 들어섰다.
건물 한번 삐까번쩍하네.
여의도 한복판에 이 정도라니……. 돈 많이 벌었나 보다.
휘파람을 불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 로비를 구경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영 분위기가 이상했다.
싸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방금 전만 해도 협회 로비는 각종 기대감과 흥분으로 정신없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밝은 분위기로 이것저것 떠들어 대고 있었고.
……정말, 정말 몇 초 전만 해도 말이다.
초대받지 못한 파티에 와 버린 기분이다.
수백 명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는데,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1층 로비는 경외감과 두려움,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낯짝 두껍기로 소문난 나였지만 처음 등장부터 이러면 곤란했다.
괜히 기분이 나빠져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만 있었는데,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아!
방금까지 아스티란 대륙에서 있었던 추억에 젖어 있느라고 나도 모르게 그때의 기운을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강하지 않은 자들은 정면에서 받아 내기 힘들겠지.
황급히 기운을 갈무리하자 그제야 사람들은 한두 마디씩 말하기 시작했다.
“혹시……. 저…… 진짜…….”
“……SSS급?”
기운을 풀었는데도 아무도 선뜻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대부분의 헌터는 대부분 못에 박히기라도 한 듯 그대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원래 목적대로 소파 쪽으로 다가가자 아까 밖에서 봤던 박민호는 기절이라도 한 듯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하…… 하하하……. 진? 정말이었어? 진짜로 마지막 귀환자가 그 용병왕이라고??”
“……용병왕이 돌아오다니…….”
“……듣던 대로네요. 과연…….”
과연이라니? 뭐가 과연인데?
그나저나 저 박민호 놈, 누가 깨워 주지 않을래?
죽었던 놈이 왜 여기서 산 채로 누워 있는지 설명을 들어야겠는데.
내 일거수일투족을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지만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단 민호의 멱살을 쥐어 일으켰다.
“진…… 님……. 뭐 하시는……?”
말없이 손목을 휘휘 돌려 스트레칭을 했다.
경험상으론 기절했을 때는 물리적 타격이 최고였다.
뺨 몇 대 가볍게 쳐 줄 요량으로 한 손으론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퍽- 쿠당탕탕탕!!
“꺄아아아악!!”
“박민호 헌터!!”
“힐러!! 여기 치유 계열 헌터 없습니까!!”
……응? 살짝 쳤는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린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협회 로비의 벽이 부서져 있었고, 그 밑에는 민호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까뒤집고 자빠져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용병왕?”
“인성이 저세상 인성이라던데, 정말…….”
박민호를 치료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뛰어가고, 주변에선 내 욕을 하는 소리로 술렁인다.
이렇게까지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와아아…… 날아갔어…….”
졸지에 되살아난 놈을 또다시 죽인 인성 파탄자가 되어 버린 나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감정이 실렸었나…….
조졌다 싶어 당황한 마음을 숨긴 채 표정을 굳히고 있는데.
황급히 뛰어온 힐러에게 치유를 받고 부르르 떨며 민호가 정신을 차리는 게 보였다.
“할머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강 저편에서……. 손짓을…….”
“박민호 헌터! 정신 차리세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진…… 형님이 보였던 것 같은데……. 그것도 꿈……?”
“……그건 현실입니다. 저기 계십니다.”
“허어어억!!”
날 쳐다본 민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는 게 곧 또다시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럼 난 누구에게 이 궁금증을 푸냐, 이놈아!!
나는 황급히 민호에게 뛰어갔다.
“박민호, 너 어떻게 여기 있는 거냐.”
“형…… 형님?”
“너 분명 거기서 죽었고, 그걸 확실하게 확인까지 했는데.”
어버버거리는 꼴이 대답하기엔 영 글러 먹은 상태 같아 보였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랐다.
이걸 다시 한 대 팰 수도 없어서 애꿎은 주먹만 쥐었다 폈다 했다.
그걸 쳐다보는 민호는 점점 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패닉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확인? 칼로 찌르고 또 확인차 찔렀다는 말이야?”
“죽은 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확실히 그거…….”
“아스티란 다녀왔던 귀환자들이 하나같이 용병왕 인성 터졌다고 하던데…… 진짜…….”
“쉿!! 조용히 해요, 다 들려요…….”
점차 내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귀환자라니.’
계속해서 아스티란에서 돌아왔느니, 뭐니 하는 채팅을 애써 무시했지만 결국 내가 혹시나 했던 예상은 현실이 되어 다가왔다.
돌아온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마지막까지 살아 있던 지구인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면…… 민호도 귀환이란 걸 한 건가. 눈에 익은 몇 명의 플레이어들도 그렇고.
설마 죽으면 지구로 귀환하게 되는 것인가.
……그럼 내가 여태까지 해 왔던 퀘스트들은? 내 개고생은??
“형님…… 이렇게 다시 뵙게 돼서 정말…… 좋…… 좋은…….”
“좋긴 뭐가 좋아!? 똑바로 말해!!”
“사실 하나도 안 좋습니다!!”
“……뭐, 이 ×끼야?”
기어코 매를 버는 박민호였다.
재차 주먹을 휘두르려 마음먹고 손을 올라가던 차였다.
내가 봐도 개판인 이 상황을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진 님. 생각보다 협회 로비가 혼잡하게 되어 도착하시면 다시 채팅해 주시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게 되었군요. 1랭크 채널에서 말씀드렸던 가을하늘입니다. 박신우라고 불러 주십시오.”
“큼, 크흠…….”
“보시다시피 조용히 대화를 나눌 공간이 못되어서, 위층으로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닉네임과 달리 감성이라곤 없어 보이는 훤칠한 남자가 이 귀찮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몸을 바로 돌린다.
그 와중에 옆에서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쪽을 지켜보는 붉은 머리의 어린놈을 슬쩍 째려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뭐야, 박신우 헌터. 눈을 왜 그렇게 떠?”
“……진 님, 따라오시죠.”
“제발…… 제발…… 제발 길드장님……. 제가 계속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지 마시라고요…….”
“올라갈 거야? 그럼 나도 쫓아간다?”
“홍현민 헌터님, 그렇지 않아도 혼잡한 상황인데 자제해 주시죠.”
“싫은데?”
홍현민이라고 불린 저놈도 헌터인가 보다.
척 봐도 싸가지가 없다 못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게 부모님 고생깨나 시켰을 거 같은 모양새다.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아 말을 아낀 채 정면만 응시하며 박신우의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몰려 있던 헌터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누가 봐도 나에게 용건이 있어 보였다.
뭔가 싶어 자세히 쳐다보려는 찰나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진 님.”
“……강준하……?”
“정말…… 진 님이군요……. 돌아오셨군요…… 이제야…….”
어떻게 이 목소리를 잊을 수 있을까?
아스티란에서 있던 기억들은 모두 거의 하나도 잊지 않고 있지만 특히나 제일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중저음으로 낮게 떨리는 익숙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여전히 재수 없게도 잘생긴 반반한 낯짝의 강준하가 그곳에 서 있었다.
“너……!!”
왕이 되어 대륙 통일이라는 퀘스트를 진행할 때 함께 전장을 누비던 자였다.
묵묵히 믿고 따라 줬던 충직한 기사, 강준하.
하지만 내가 스스로의 강함에 취해 오만했던 나머지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었다.
그 뒤로 나는 누군가의 희생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격이 되어 버렸었지.
“너도 돌아왔었구나.”
“……네, 진 님. 결국엔 이렇게 지구에서 다시 뵙는군요……. 정말…… 기쁩니다.”
기쁘다는 말과는 다르게 얼굴은 무표정하지만 나는 안다.
귀 끝이 벌게져서 눈으론 행복하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나를 쳐다보는데
아스티란에서 보아 왔던, 좋은 의미로 겉과 속이 다른 강준하의 모습 그대로였다.
빠르게 변화한 지구와는 달리, 그는 여전히 표현하는 데 재주가 없어 보였다.
“와, 저 강준하가 주인 만난 개처럼 꼬리를 흔드는 꼴을 다 볼 줄이야.”
“그러게요. 강준하 헌터가 저렇게 감정 표현하는 건 처음 봐요…….”
“……구경났습니까?”
“저런 거 보면 재수 없는 행동은 그대로긴 한데, 뭔가 좀 다르긴 하네.”
고개를 휙 돌려 쫓아오던 헌터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모습도 여전하다.
말투는 차갑지만 사실 저건 부끄러워서 하는 행동임을 나는 잘 알았다.
“긴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고, 일단 서둘러서 올라가시죠. 협회장님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 님, 헌터 등록을 마치실 때까지 옆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반가운 사람을 만나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돌아오길 잘했다.
그때 갑자기 한 명이 생각났다.
내가 저놈을 잠깐 잊고 있었네.
뒤를 휙 돌아보자 치유를 받고 금세 멀쩡해진 박민호가 슬금슬금 몰래 협회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눈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어서, 내 눈치를 계속해서 보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헉!!”
“…….”
긴말은 할 필요 없겠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손을 들어 까닥였다.
이쪽으로 와라.
굳이 말하지 않고 눈빛으로 보여 주었다.
“……네, 형님.”
잠깐 도망칠까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나를 무시했다간 어떻게 될지 잘 아는 놈 중 하나였다.
비 맞은 쥐새끼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오는 꼴이 꽤 불쌍해 보였지만 맞을 짓을 잔뜩 한 놈이기 때문에 동정심은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나 말고도 걱정하는 사람은 여기에 잔뜩 있었다.
“박민호 헌터, 맞은 덴 괜찮아요……?”
“소리 진짜 컸는데…….”
“어떻게 해……. 진짜 아팠겠다.”
“괜…… 괜찮습니다…….”
박민호는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로 누군가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뒤통수에 흘렀던 핏자국을 닦아 냈다.
……피가 제법 많이 나긴 했었나 보다.
흠, 뭐 어쨌든 이제 상황은 대충 마무리된 것 같고.
“그럼 이제 정말로 움직이시죠.”
내 일행과 박신우만 가는 줄 알았더니 다른 헌터들도 눈치를 보며 따라오려는 기색이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꼬리를 줄줄 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아까 보니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 대던데.
용병왕, 귀환하자마자 사람 하나 잡다! 따위의 기사가 나는 거 아닐까.
‘첫 등장부터 그딴 기사라니…….’
이미 저지른 일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건 내 방식이 아니니까.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버렸다는 느낌에 영 입맛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