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결전-5
꿀럭. 꿀럭.
한편.
위그드라실을 사용해 악마들을 지구에 보내던 세라핌은, 진원의 정보를 열람할 수 없자 초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바알! 놈의 마기가 벌써 이렇게나 김진원의 몸에 들어가 있는 줄은!”
위그드라실의 시스템이 김진원한테만 거부 반응을 보였다.
“계획이 다 틀어졌다…….”
인간의 몸에 마기가 자리를 잡는 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김진원… 어디 있는 거냐!”
세라핌은 균열이 생긴 허리를 부여잡으며 외쳤다.
아까부터 일부러 악마들을 계속 보내 김진원의 위치를 노출하기 위해 유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놈은 그걸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크으…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세라핌은 위그드라실을 강제적으로 제어해, 모든 악마를 지구에 풀기로 마음먹었다.
“인간들의 피란 피는 모두 빨아들여라.”
자신이 전한 메시지에, 악마들이 열광하며 지구에 연결된 포탈로 몸을 던졌다.
“크으…….”
짧은 시간에 연달아 힘을 사용한 세라핌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 속도면 100시간 안으로 소멸한다. 악마 놈들의 힘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인간들의 피를 마신 악마들을 전부 흡수한다.
그 정도면 몸이 무너지는 것은 당분간 막을 수 있다.
마기에 이성을 반쯤 잃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김진원의 몸에도 마기가 들어 있다. 차라리 이편이 수월할지도 모른다.’
세라핌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팔이 무너져 가는 와중에도 거리낌 없이 위그드라실을 제어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얼마 안 가 소멸한다. 일을 빨리 진행할 수밖에.’
* * *
악마가 출현했다는 소식은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전, 서울 한복판에서 나타난 악마가 사람들을 죽여댄 사건.
정부에서는 하급 악마들과 중급 악마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출현했으니, 당분간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말만 했을 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만 대답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다 뭐야!”
“빨리 대피소로 이동해!”
사람들은 하늘에서 수북하게 쏟아져 내리는 악마들을 보며 충격에 빠졌다.
몬스터가 비처럼 내리는 장면.
아무리 플레이어가 강하다고 해도, 저 정도의 수를 이길 수가 있을까?
“김진원… 김진원은 언제 오는 거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다면, 김진원 단 한 명밖에 없다.
인왕산에서 악마가 출현했을 때, 김진원이 나서기로 했는데 아직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인간! 인간들이 너무 많아!”
“신선한 피의 향기!”
악마들은 지면에 착지하자마자, 주위의 인간들을 사냥하기 위해 날렵하게 움직였다.
“종말! 종말이 왔다!”
“우리 모두 신의 뜻을 어긴 죗값을 치르는 것이다!”
“다들 운명을 받아들입시다!”
그 와중, 사이비 종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대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무방비한 자세로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착한 인간들이군. 고통을 느낌 틈도 없이 죽여주지.”
그들은 당연히 악마들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다.
“크흐흐! 다음을 네놈들이구나. 귀찮게 하지 말고 이리 와라!”
“사, 살려주세요!”
“꺄아아악!”
악마들은 건물들을 가볍게 뚫고 침입한 뒤, 날카로운 이빨을 세우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푸확!
“…커억?”
“크학!”
그때, 뒤에서 날아온 무형의 기탄이 놈들의 목을 깔끔하게 관통했다.
악마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다.
* * *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이야!”
진원은 이계 던전에서 100일이라는 시간을 다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남은 시간 동안 마기와 함께 시계를 제어하는 법을 터득했지만, 짧은 기간에 말도 안 되게 서울이 변했다.
순간, 이곳이 던전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악마들이 바글거렸다.
“이게 다 세라핌이 한 짓이란 말이지?”
진원은 인상을 쓰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필이면 자신이 없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갑작스럽게 울리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니, 수천 통이 넘는 문자메시지가 차례대로 도착하고 있었다.
“일단은 동생 먼저다.”
디멘션 워커가 동생은 안전하며 현재 대피소로 피해 있다고 알렸지만, 직접 확인하고 안심시켜주는 것이 일 순위였다.
‘영호나 은식이, 다른 애들도 괜찮은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리고 두 번째는, 서울을 잠식해가고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것.
멀리서 플레이어들이 악마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이 보였지만, 놈들의 숫자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얘들아. 저기 악마 놈들을 상대하면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해.”
“분부대로.”
“맡겨줘.”
“지배자님! 저의 힘을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이 일제히 대답한 뒤, 악마들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 * *
서울의 몬스터 특수 대피소.
악마들이 출현해 사람들이 죽어 나간 사건 이후.
정부는 최상급 마정석을 들이부어 엄청난 내구력을 자랑하는 대피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얼마 전 완공이 끝나, 제 기능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는 다 찼습니다! 더 이상 자리가 없어요!”
최대 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에도, 발 하나 들이밀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우리 애만 받아주세요? 네? 아직 초등학생이라고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아이들만이라도 제발!”
직원들은 억지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밀쳐냈고.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자식만이라도 들여보내려고 애썼다.
“오빠… 괜찮겠지? 응?”
대피소의 구석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김지원이 디멘션 워커를 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
끄덕.
녀석은 대답 대신 고개만 한 번 가볍게 움직일 뿐이었다.
“크…크이! 크이이이!”
“콩콩아, 갑자기 왜 그래?”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콩콩이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크게 소리 질렀다.
그 시끄러운 음성에 다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콩콩이에게로 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 김진원! 김진원이다!”
“어디?”
대피소 안으로 들어오는 진원을 본 사람들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인왕산에서 나타난 악마에 겁을 먹어 도주했다는 의혹이 있는 김진원.
몬스터들이 한국을 잡아먹고 있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힘 있는 플레이어가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어? 야! 실시간 뉴스! 이거 좀 봐봐!”
용기 있는 시민 한 명이 진원을 향해 뭐라 따지려고 한 찰나.
다른 한 명이 그에게 손짓하며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 여러분!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저기 악마들을 가볍게 처치하고 있는 인물들은 S급 플레이어, 김진원 님의 소환수입니다!
화면에는 악마들을 처치하며,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는 소환수들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어딜 가나 용기 있는 자는 있다.
기자와 카메라맨이 목숨을 걸고,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현장에 나선 것이었다.
“김진원 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와아아아!
한숨과 절망으로 가득 찬 대피소가, 잠깐의 정적 이후 엄청난 열기를 채웠다.
진원을 비난하려는 사람들도, 분위기에 휩싸여 그를 위해 열심히 소리쳤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안심시켜 줘야겠네.’
적당히 동생의 얼굴만 슥 보고 나오려고 했는데.
“오, 오빠? 오빠!”
진원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 동생을 향해 손을 한번 흔들어 준 뒤, 입을 열었다.
“악마들이란 악마는 제가 모조리 죽여버리겠습니다.”
사람들을 습격한 틈도 없이 처리해버리겠다.
이어진 짤막한 말 몇 마디.
진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등을 올려 대피소를 떠났다.
성의 없는 말이라도, 뱉은 사람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김진원! 김진원!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라면 가능하다.
생중계되는 뉴스를 보면, 악마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크이? 크이!”
“어? 콩콩아! 갑자기 왜 그래!”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던 콩콩이는 날렵하게 사람들 사이를 피해 진원을 따라갔다.
* * *
“크이! 크이이이이!”
“왜 그래. 이번에는 너도 꼭 싸우고 싶어?”
“크이!”
진원은 자신의 다리에 매달리는 콩콩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본래 같으면 당연히 돌려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수중에 차원의 조각이 있다.
이것으로 녀석을 강화시키면, 앞으로의 전투에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동생은 디멘션 워커가 잘 맡고 있으니 괜찮겠지.’
인벤토리에서 차원의 조각을 꺼내니, 콩콩이가 재빠르게 뛰어올라 삼켰다.
화아아아!
“크이이이이!”
이번에도 역시, 녀석의 몸이 환하게 빛나며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복?”
[골드 캥거루의 축복]
액티브 스킬.
지정한 대상을 8초 동안 무적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시간)
새롭게 생긴 스킬을 들여다본 진원은 콩콩이를 데려가기로 했다.
‘오늘이 바알이 말한 날인데. 세라핌은 언제 나타나는 거지?’
놈을 죽이고 모든 생명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미래.
다음 날까지 남은 시간은 22시간하고 20분 정도.
“일단 저놈들부터 막아야겠네. 징글징글한 새끼들.”
진원은 일단 쏟아지는 악마들부터 정리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크하하하! 김진원! 한국! 저 꼬라지 좀 봐라!”
같은 시각.
시젠타오는 한국에서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악마들을 보며 조소를 지었다.
전 세계 중, 어떻게 한국에만 저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죽여! 최대한 죽이고 부숴버려!”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악마들을 열심히 응원했다.
그동안 한국인, 김진원한테 당한 게 얼만데.
“아무리 놈이 강해도 숫자로 밀어붙이면 답이 없겠지. 이봐!”
“예!”
그의 손짓에,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남성 한 명이 다가와 와인을 병째로 들고 왔다.
“오늘은 푹 잘 수 있겠군. 아니지. 그냥 이 기회에 한국을 덮쳐버려?”
움찔!
‘적당히 해라, 미친 새끼야.’
‘제발 좀!’
‘중국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꼴을 꼭 봐야겠냐!’
시젠타오의 혼잣말을 들은 경호원들이 제발 선 넘는 짓을 하지 말아 달라며 속으로 되뇌었다.
“쯧. 그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는 스킬은 쓰지 않는 건가? 그거 한 방이면 악마들은 깔끔하게 날아갈 것 같은데.”
한국인이라 그런 점을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우리 쪽 건물은 몇십 채를 해 처먹었으면서!
시젠타오는 한국에 대한 복수를 진지하게 생각하려 했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려 했다.
스스스.
“시젠타오 님!”
“갑자기 소리를 왜 지르고 그러나!”
짜증 나는 듯이 대답한 시젠타오가 경호원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면, 시꺼먼 포탈이 하나둘씩 생성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생긴 현상이 중국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망할. 플레이어들 긴급 소집해! 빨리!”
“예! 알겠습니다!”
한참 재밌게 불구경을 즐기고 있던 시젠타오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중국의 협회에 연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