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결전-4
스스스.
“인간들이다!”
“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겠는데!”
“크케케켁!”
하늘을 올려다보면, 공중에 생긴 수많은 포탈에서 몬스터들이 조금씩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진짜 미쳐버리겠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과거, 튜토리얼로 인해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그 장면과 유사했다.
최은식과 신혜진은 허공에서 떨어지는 악마들을 보며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하죠?”
“은식이 너랑 하윤이 둘이서 저놈 최대한 묶어 놔!”
신혜진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며 장소를 벗어났다.
“크르르. 나를 얕보고 있는 건가, 인간들이.”
발레포르는 도망치는 인간들을 굳이 쫓아가지 않았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특상품인 김진원이라는 놈이 온다.
질이 낮은 피를 굳이 찾아서 마실 필요가 있을까?
“조금만 더 놀아주마, 인간들아.”
“튼튼아! 이제 뒤로 빠져!”
발레포르는 자세를 잡고 앞으로 다가오는 최은식을 향해, 길고 예리한 손톱을 크게 휘둘렀다.
* * *
“메시아, 정말 잘했어. 너밖에 없다.”
“응.”
진원은 상자에서 차원의 조각이 5개가 나온 것을 확인하고 메시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걸로 붉은 늑대의 모든 힘을 해방시킬 수 있다.’
남은 2개는 콩콩이한테 먹이면 되겠고.
‘내가 뽑았으면 1개나 2개가 떴을 것 같은데.’
진원이 뽑기성 아이템을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예전, 인터넷 행사나 마트의 응모권을 사용했을 때.
당첨확률이 80퍼센트가 넘는 최하위 품목조차, 빈번히 실패했을 정도였으니까.
“붉은 늑대.”
진원은 차원의 조각 3개를 붉은 늑대에게 건넸다.
“분부대로.”
녀석은 예를 취하며 공손하게 조각을 받았고, 동시에 몸이 환하게 빛났다.
띠링.
[차원의 조각을 모두 모아, 붉은 늑대가 힘을 완전히 되찾습니다!]
[붉은 늑대의 모든 스킬의 소모값이 사라집니다.]
[붉은 늑대의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흉터가 드디어 없어졌다. 잘됐네.”
“평생 짊어져야 하는 제 죄입니다만…….”
녀석의 얼굴 절반 가까이를 덮고 있던 화상이 깔끔하게 치료되었다.
이전, 희석된 엘릭서까지 사용해가며 붉은 늑대의 얼굴을 치료하려고 했을 때는 아무 효과도 없었는데.
“훨씬 낫네. 그리고 지금 네 주군은 나다. 과거는 생각할 필요 없어.”
“예.”
진원은 새롭게 생긴 붉은 늑대의 스킬을 열람했다.
[귀기 해방 Lv.10]
액티브 스킬.
몸 안에 응축된 귀신의 힘을 일순간 해방합니다.
300초 동안 모든 능력치가 2배 상승합니다.
또한 검에 귀신의 기운이 서려, 적에게 강력한 피해를 입힙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시간)
[강령술 Lv.10]
원한이 맺힌 귀신을 다수 소환합니다.
붉은 늑대가 지정하는 적을 향해 공격합니다.
공격에 적중당한 적은 저주 상태 이상 효과를 받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30분)
“괜찮네.”
레벨 100에 추가된 2개의 스킬.
차원의 조각 3개로, 붉은 늑대는 자신의 레벨을 훌쩍 뛰어넘어 엄청난 힘을 되찾았다.
힘을 완전히 되찾은 메시아와 붉은 늑대.
그리고 소환수들까지.
‘나만 잘하면 된다.’
이제 바알이 알려준 날짜가 되기 전, 마기와 기괴한 시계를 완벽하게 제어하기만 하면 준비는 끝난다.
“이제부터 주군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붉은 늑대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예를 취했다.
“타노아.”
“넵!”
진원은 구석에 박혀 있는 타노아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가락질했다.
그러자 녀석은 아주 조심스럽게 날아 자신에게 왔다.
“뭘 그렇게 쫄아 있어.”
‘당신의 엄청난 마기 때문에요.’
라고 말했다가는 어떻게 될지 몰랐기에, 최대한 웃으며 좋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날 죽일 기세로 공격해.”
“……네?”
타노아가 잘못 들었다는 듯이 두 눈을 껌뻑였다.
“기괴한 시계를 내 의지대로 다루는 연습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
“아무리 그래도 김진원 님을 공격하는 건 좀…….”
타노아는 메시아나 붉은 늑대, 그리고 자신의 소환수들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거부했다.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이거 살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진원은 녀석을 슥 쳐다보고 상점 창을 열어, 고추 참치를 30개 정도 샀다.
추가로 다른 통조림까지 넉넉하게 구매했다.
“어? 어어?”
“참치! 참치입니다!”
관리자와 타노아는 자신의 앞으로 수북하게 쌓이는 음식들을 보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래도 못하겠냐?”
“하겠습니다! 할게요! 그만두라고 해도 계속할게요!”
의욕적으로 대답하며 공격을 준비하는 타노아.
“주군…….”
“진원…….”
붉은 늑대와 메시아는 그런 녀석을 불만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갑니다!”
“내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 공격해. 봐주거나 하면 저기 음식들은 없다.”
“넵!”
타노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작은 창들을 만들어 진원에게 발사했다.
‘상황을 유리하게.’
자신에게 무수히 쏟아지는 가시들.
진원은 손에 쥔 회중시계에 마기를 흘려보냈다.
스스스스.
“어? 어어?”
그러자 진원을 향해 쏘아지는 창들이 돌연 방향을 틀어, 타노아에게 달려들었다.
“메시아, 막아줘.”
“…알았어.”
그녀는 마지못해 살려준다는 느낌으로, 타노아의 앞에서 되돌아오는 창을 막아냈다.
“사, 살았다아.”
타노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진원을 시선을 느끼고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저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닌데.’
진원은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은 상황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불리한 상황을 유리하게 바꿔주는 바알의 전용 아이템.
말만 들어보면 이것보다 개사기 능력을 가진 아이템은 없을 것이다.
‘타노아의 창들을 내 쪽으로 고정하려고 했는데.’
그러나 시계를 제어하는 것은 확실히 어려웠다.
바알에게 듣기로는, 자신이 컨트롤 하고 싶은 상황에 알맞은 마기를 집어넣으면 된다고 했었는데.
‘말이 쉽지, 도대체 얼마나 넣어야 하는 거야?’
마기를 기괴한 시계에 주입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알이 말한 상황에 따른 일정량의 마기.
‘…이걸 10일 안으로 완벽하게 제어하라고?’
바알 새끼.
시간 좀 더 주지.
결국엔 감각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거잖아?
“저… 이제 공격할까요, 김진원 님?”
“잠깐만 있어 봐.”
진원은 다음 공격 준비를 마친 타노아에게 손을 들어 올리며 기다리라고 말했다.
‘일단 방금처럼 마기를 넣으면 안 된다.’
뭔가 시계에 마기를 과하게 주입한 느낌이 들었다.
‘방금 것보다는 확실히 적게 주입해야 한다.’
진원은 그 날부터 철저하게 단련을 시작했다.
* * *
플레이어 협회의 협회장실.
“미국의 브랜든이 도와주러 오겠다고? 그럼 브랜든을 그 악마 놈한테 붙여!”
손태욱은 그날부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정신없이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악마 한 마리.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하급 악마들이 일정 주기마다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큭! 하필이면 이럴 때 김진원 씨가…….’
진원 씨에게 연락한 지는 3일이 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에게 연락이 없다.
약속을 절대로 어길 분이 아닌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동생에게 연락해 보았지만 가족조차 모르는 듯했다.
‘도대체 어디에 계시는 거지?’
따로 강력한 악마라도 마주친 건가?
그렇게 혼자서 고민에 빠지기도 전에, 다시 전화가 울렸다.
“러시아의 플레이어들이 공항에 도착했다고? 그럼 곧바로 악마 놈들이 많은 지역부터 돌려!”
그나마 다행인 건 미국과 일본, 인도, 그리고 러시아 등 총 9개의 국가에서 한국을 지원해주겠다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점이었다.
“후우, 이것도 김진원 씨 덕분이겠군.”
아마 그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거나 어떻게 해서든지 빚을 만들어 두려는 것이리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인왕산 쪽에 나타난 악마는 확실히 문제였지만, 서울에서 쏟아져 내리는 하급 몬스터 정도는 한국의 플레이어들로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다.
‘마치 처음 몬스터가 나타났던, 그 상황을 보는 것 같군.’
끔찍했던 튜토리얼.
하지만 지금 상황은 튜토리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었다.
“송현성 씨도 곧 한국에 도착한다. 발레포른가 뭔가 하는 그 악마만 막아내면 된다.”
그 몬스터 하나 때문에 A급 플레이어 4명이 의식불명, 3명이 중상이다.
“후우…….”
하필이면 그런 곳을 하윤이가 가다니.
할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진원 오빠가 실망할 거라는 대답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님, 뭔가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손태욱은 문명호에게 연락해, 군대와 경찰을 적극적으로 동원해야 된다고 알렸다.
-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해외에서 플레이어가 오는 거야 우리가 요청한 것이 아니니, 상관은 없다만.
상당히 과한 대응에 문명호가 설명을 요구했지만,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건 ‘감’뿐이었다.
- 아무리 자네가 협회장이고 감이 날카롭다고 해도, 섣불리 군대를 움직일 수는 없네.
문명호는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하며, 경찰들을 추가로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후우… 역시 안 되나.”
손태욱은 한숨을 내쉬며, 그동안 묵혀둔 장비를 챙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내 딸을 볼 면목이 없다.”
* * *
진원이 이계 던전에 머무른 지 4일이 지났다.
“야, 그런데 저걸로 마기를 다룰 수 있는 거야?”
“저한테 물어보셔도 잘…….”
타노아와 관리자는 로비의 중앙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는 진원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서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잘 움직이네.’
눈을 감고 몸 안의 마기를 컨트롤 하던 진원이 숨을 길게 뱉었다.
그동안 바알이 알려준 대로 마기를 제어하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녀석의 말이 도움이 안 되는 게 문제였지만.’
마기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받아들여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게 연습을 반복해라.
이것이 끝이었다.
마치 수능 만점자가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면 됩니다.’ 같은 성의 없는 말이었다.
‘어쨌든 시간이 꽤 남았다.’
훈련에 훈련을 반복해 마기를 다루는 것에 능숙해졌다.
몸 안에 있는 마기의 양과 그것을 조절하는 것은 이제 쉽게 느껴졌으니까.
‘이게 세라핌한테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한테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소환수한테 사용하기는 좀 그렇고.’
타노아나 관리자 역시 마기를 조금 뿜어내자마자 기겁하며 도망치기 바빴으니, 그냥 밖으로 나갈 때까지 참기로 했다.
“타노아.”
“네엡!”
통조림에 머리를 박고 정신 없이 식사를 하고 있던 타노아가 입가를 슥 닦으며 공격을 준비했다.
‘6일 뒤에 보자. 금방 끝내줄 테니까.’
진원은 그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시계를 다루기 위한 훈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