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혼자 상점스킬-195화 (195/200)

195. 결전-2

이계 던전, 연옥 1층의 로비.

관리자는 오늘도 심심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타노아 역시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늘어져 있었다.

“흐아암, 진짜 어떻게 된 게 인간이 하나도 안 들어올 수 있지?”

“타노아 님, 방금 그걸로 1,000번은 넘게 말씀하셨습니다.”

“심심한 걸 어떡해! 김진원 그 인간이 다른 인간들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잖아!”

타노아는 작은 팔을 휘적이며 불만을 토했다.

본래 같으면 인간들이 바글거려야 할 로비가, 이렇게 썰렁하다니.

이게 다 그 김진원이라는 인간 때문이다.

“이럴 거면 참치라도 더 주고 가지.”

그 인간이 주고 간 고추 참치…라고 한 음식.

지금까지 먹어본 것들 중에 가장 황홀한 맛이었다.

관리자 것은 당연히 뺏어 먹은 지 오래였지만, 자신의 몫은 비밀장소에 고이 모셔뒀다.

“참치… 또 먹고 싶다. 이제 슬슬 뜯을까? 응? 뭐야? 너 왜 그래?”

“저, 저기. 저기!”

잠시 고추 참치의 여운에 잠겨 있던 타노아는, 포탈의 입구 쪽을 바라보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후우.”

“기, 김진원 님!”

그곳에는 뭔가 화가 난 듯한 김진원이 서 있었다.

“어, 방금 한 말은 제가 너무 심심한 나머지 헛소리 한 거예요! 절대 진심이 아니에요!”

“비켜.”

“넵!”

그의 가시 돋친 말에, 타노아는 재빠르게 옆으로 비켰다.

‘야, 네 말대로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여기서 어쩌라는 거냐.’

일단 바알의 말대로 이계 던전으로 들어오긴 했다.

녀석의 말 대로 지구가 소멸하지 않는 미래가 하나밖에 없다면,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서 지원이한테 소환수를 하나 붙여놓기는 했는데.’

진원은 디멘션 워커에게 동생을 대피소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스스스스.

“뭐냐!”

그러던 사이.

가슴팍에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더니,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감쌌다.

검은 연기는 어느새 커다란 구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김진원님! 야! 저건 또 뭐야!”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현상.

타노아와 관리자는 지면에 둥둥 떠 있는 구를 보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마, 만약 저기서 김진원 님이 나왔는데 이성을 잃고 우리를 죽이면 어떻게 하죠?”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일단 튀자!”

타노아는 숨겨둔 고추 참치부터 챙기기로 하고, 날개를 파닥거리며 연옥 1층을 향해 날아갔다.

* * *

“얌마, 김진원! 빨리 불펜 가서 몸 풀어!”

최영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와, 저놈은 이제 긴장도 안 되나 본데?”

진원은 다른 동료들이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갑자기 또 뭐야?’

분명히 이계 던전으로 가서, 거기서 검은 연기가 내 몸을 집어삼켰는데.

여기는 또 어디야?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와아아아아!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야구장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최영호와 자신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4번 타자네.”

“갑자기 뭐라는 거야. 너 선발이니까 빨리 가서 몸 풀어, 임마.”

“미안한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악마가 서울을 휘젓고 있다.”

진원의 대답에, 최영호와 동료들은 잠시 시선을 나눴다.

“내가 그러니까 말했잖아. 이 새끼 머리에 공 맞았을 때 정밀 검사해 봐야 했었다고.”

“악몽이라도 꿨냐? 힘들면 교체해달라고 할까?”

최영호는 진지한 진원의 표정을 보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여기 근처에 포탈이나 몬스터는 있냐? 플레이어는? 협회는?”

“…너 안 되겠다. 당장 병원부터 가자.”

슬슬 진원의 심각성을 인지한 최영호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상태 창.’

진원은 영호를 가볍게 밀쳐내고, 상태 창을 불러왔다.

‘정상적으로 나타난다. 인벤토리도 그렇고.’

붉은 늑대와 메시아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다른 소환수도 마찬가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몬스터가 없고, 포탈이 없다.

그리고 플레이어도 없지만, 자신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쩌저적!

[행성 338번의 실험을 종료합니다.]

그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하늘이 갈라지며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게 뭐냐.”

그리고 허공에서 수많은 포탈이 생성되며,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망쳐! 뛰어! 뒤지기 싫으면 빨리 뛰라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

진원은 마운드에 올라가, 응원을 준비하고 있던 관객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크아아악!”

“꺄아아아악!”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재빠르게 출구로 향했지만, 몬스터들은 예상보다 훨씬 날렵했다.

‘뭐냐, 저것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C급 던전의 몬스터들.

고블린과 같은, 그런 종류의 약한 놈들일 텐데.

‘움직임이 제대로 안 잡히잖아!’

놈들은 말도 안 되게 날렵했다.

내 민첩 스텟은 진작에 300을 넘었을 텐데!

“큭!”

진원은 인벤토리에서 묠니르를 꺼내 놈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킥! 키키킥! 인간! 약하다!”

“크키키킥!”

고블린들은 오히려 자신을 약오르는 것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냥 한 방 툭 치면 죽는, 그런 하급 몬스터가 말이다.

“개 같은 놈들이!”

순간 열 받은 진원이 스킬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몬스터들은 인간을 잡아 와 방패로 삼았다.

“키기긱! 해봐라! 해봐!”

“인간들이 죽고 싶다면 해봐라!”

진원은 고작 고블린이 저렇게 강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인벤토리에서 백과사전을 꺼내 사용했다.

“고블린의 레벨이… 200?”

몬스터의 말도 안 되는 레벨을 보고 순간 충격에 빠졌다.

“죽인다! 다 죽인다!”

몬스터들은 진원은 내버려 둔 채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망할 새끼들…….’

진원은 그저, 이를 악문 채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 * *

고블린들에 의해 허무하게 멸망한 지구.

그것에 끝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지구는 다른 방법으로 멸망했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되는 밸런스.

압도적인 전력 차.

진원은 수백 번 동안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거야? 정신 나갔냐! 바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담으며,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시계가 너를 시험해 본 것이다.”

그러자 잠시 후, 바알이 자신과 같은 체구를 가지고 나타났다.

“정확히는, 내가 강제로 시킨 것이지만.”

“시험? 갑자기 뭔…….”

진원이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짓자, 바알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이었다.

“기괴한 시계는 의지를 가진 녀석이지. 녀석은 계속되는 절망을 소지한 자에게 보여준다. 네놈을 주인으로 인정할 때까지 말이다.”

“절망…….”

확실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진작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자신 또한 속으로 이런 장면을 환상이라고, 수십 번 되뇌었지만 너무나도 생생했으니까.

“환상이 아니다.”

“…뭐라고?”

“방금 네가 본 것들은 전부 내가 본 미래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미래를 9만 개 가까이 보았다.

오직 세라핌이 죽는 미래가 나올 때까지.

“9만 개…….”

고작 수백 개를 본 자신도 마음이 흔들릴 지경인데, 9만 개라니.

“약해졌다고는 해도, 세라핌은 최고위의 천사다.”

“잠깐만. 그럼 놈이 신이라도 된다는 거냐?”

“그건 아니다.”

“뭐라고?”

진원은 바알의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도 여태껏 본 적이 없으며 현재 이와 같은 일을 묵인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정 주기마다 교체해야 하는 최고위의 천사, 세라핌이라는 존재를 불멸로 만드는 것에 대해 중립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이라는 놈이 행성 수백 개의 목숨보다 세라핌 쪽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건가?”

“그렇겠지. 나는 신이 어떤 기준으로 그런 판단을 하는지는 모른다.”

천사들을 죽이면서까지 목숨을 연명하는 버러지 같은 놈을 가만히 놔둔다라…….

‘신이라는 놈도 결국엔 사이코였네.’

진원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이, 바알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진지한 표정과 함께 와인드업 하는, 자신이 서 있었다.

“방금 찾아낸 미래다. 저곳은 유일하게 세라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바알은, 만약 네가 원한다면 저곳으로 정신을 옮겨주겠다고 말해왔다.

“선택해라. 앞으로 너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싸울지, 아니면 저곳에서 아무 걱정 없는 삶을 살지.”

바알이 오른손을 들어 한 지점을 가리켰다.

유명 야구선수가 된 자신이 나타났고, 그 옆으로 축하해주는 동료들과 동생.

그리고 부모님이 보였다.

“네놈에게 있어서 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완벽한 미래다.”

“너 말이야. 그렇게 많은 미래를 읽을 수 있으면서, 어떻게 너 자신과 가족이 죽는 미래는 찾을 수 없었냐.”

진원의 말에, 바알은 잠시 입을 닫았다.

“찾을 수 없었다.”

바알은 아무리 많은 미래를 읽어도, 자신의 동생 카리나가 죽지 않는 미래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지. 나의 힘은 강력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으니.”

그래서 놈을 소멸시키기로 했다.

나의 동생을 죽였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다.

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생명체들이, 놈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 또한 싫었다.

바알은 악마에 어울리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서열 1위의 악마.

지금껏 본 악마 중에, 가장 착한 녀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간, 대답은 정했나?”

“굳이 물어볼 필요가 있냐?”

바알이 보여준 몬스터도 없고, 세라핌도 없으며, 악마들 또한 없는 완벽한 해피엔딩의 미래.

하지만 그곳은 본래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었다.

“은식이도 없고, 스승님도 없고, 다른 길드원들도 없잖아. 그리고 내가 저쪽으로 넘어가면? 원래 있는 곳은 당연히 끝장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

진원은 더 이상 말해봐야 입 아프다며, 어서 이곳에서 빼내 달라고 대답했다.

“역시 너는 재밌는 인간이군.”

바알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미래가 너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뭐냐, 싸우자는 거냐?”

“이게 인간들 사이의 터프한 인사방식이라더군.”

바알의 대답을 듣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녀석의 주먹을 맞대며 가볍게 쳐준다.

“이곳에서 나가면, 나의 마기가 네놈의 몸속에 본격적으로 녹아들 것이다.”

“아직 동화율 다 못 채웠는데 괜찮냐?”

기껏해야 60퍼센트.

절반하고 조금 더 채운 수준이다.

이걸로 세라핌을 소멸시키기엔 부족할 것 같은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기괴한 시계가 부족한 마기를 채워줄 테니까.”

스스스스.

바알의 말과 함께, 자신의 손바닥 위로 회중시계가 하나 나타났다.

그 시계를 들여다보고 나서야, 녀석이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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