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승급 퀘스트-1
“그러죠.”
진원은 짧은 대답과 함께 그가 안내해준 자리에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많은 경호원이 총기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김진원 님께서 오셨다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부디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시젠타오는 총을 힐끔 쳐다본 진원에게, 평소에도 경비는 이 정도로 유지한다며 재빠르게 설명했다.
‘그래 봐야 아무런 느낌은 없다만.’
잠시 후.
마실 것과 함께 간단한 다과가 나오자, 시젠타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진원 님께서 직접 이곳으로 찾아온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겉으로는 최대한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속은 벌써부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망할 놈. 보란 듯이 중국의 건물을 수십 채나 해 처먹고, 이번엔 또 무슨 목적인 거지?’
마음 같았으면 자신이 그를 향해 직접 총을 갈기고 싶었지만, 상대는 세계 1위의 플레이어.
화를 최대한 억눌러야 했다.
그랬다간 중국이 지도에서 지워질지도 몰랐으니까.
“중국에 발생한 포탈이 많죠? 제가 처리 좀 해 드리려고요. 얼마 전에 손해를 끼친 것도 있고 해서.”
“포탈… 말씀이십니까.”
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린 시젠타오가 어금니를 굳게 깨물었다.
그냥 던전을 혼자서 독점하러 온 것이 목적인데, 마치 선심 쓰는 척하는 저 태도라니!
‘…크윽!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애초에 자신이 거절한다고 해도, 김진원이 강제로 던전에 들어가면 그만이다.
그는 그만한 힘을 가졌으니까.
오히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어떤 보복이 돌아올지.
상상만 해도 손이 떨렸다.
“그거야 물론… 괜찮습니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겠지요.”
시젠타오는 애써 웃으며 던전에 관한 건은 자신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곧바로 던전에 가보겠습니다. 던전 브레이크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니까요.”
진원은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의 마지막 말은 시젠타오가 애써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으아아아아! 김진원! 한국인! 한구우우욱!”
그리고 잠시 후.
진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시젠타오는 경호원이 들고 있는 총을 뺏어 천장을 향해 난사했다.
“그게 다 돈! 돈이란 말이다! 내 돈이라고!”
“시젠타오 님! 진정하십시오!”
“놔라! 놔!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냐! 한국인 단 한 명한테 중국이 휘둘리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냔 말이다! 왕 첸이라도 빨리 잡아! 무슨 수를 써서든!”
경호원들은 그를 조심스럽게 말리려 했지만, 혹시라도 잘못했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거리를 벌렸다.
* * *
“중국이 아주 그냥 노다지네. 진작에 여기로 올걸.”
순식간에 A급 던전 하나를 뚝딱 하고 나온 진원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마의 근원은 여전하네.”
몬스터들과 보스까지 처리해서 0.2퍼센트라.
동화율이 정말 더럽게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시간 안에는 충분하겠는데.”
갈 길이 한참 남았지만 상관없었다.
이 주위에 널린 것이 포탈이었으니까.
“바로 다음으로 간다. 아, 그전에 붉은 늑대.”
“예, 주군.”
진원은 모습을 드러낸 붉은 늑대에게 이전 왕 첸의 금고에서 가져온 마사무네를 내밀었다.
“미리 준다는 걸 잊고 있었네.”
“주군, 이 검은…….”
마사무네를 본 붉은 늑대의 눈동자가 조금씩 흔들렸다.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검 중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정말 이것을 받아도 되겠습니까.”
푸른 빛이 감도는 도신.
한참 동안 마사무네를 쳐다보던 붉은 늑대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저는 주군이 위험해 처했을 때, 움직이지 못한 적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네 잘못 아니니까 상관없다.”
진원은 자책하듯이 말하는 그의 얼굴 앞으로 검을 내밀었다.
“애초에 너무 강한 놈을 만난 게 문제였지. 이걸 써서 더 강해지면 된다.”
그래 봤자 바알과 세라핌, 최종 보스 격인 그 두 놈이 전부였지만.
“주군…….”
진원이 붉은 늑대를 보며 고개를 한번 끄덕이자, 그는 두 손을 모아 공손하게 검을 받았다.
“진원…….”
어느새 나타난 메시아가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너도 나중에 줄게. 조금만 기다려.”
“응.”
소환수를 제외하고 이 녀석들은 특수하게, 장비들을 통해 스펙 업이 가능했으니까.
조만간 레전더리 아이템을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이제 가볼까.”
진원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파티를 맺어 최소 일주일 이상 걸리는 던전들을, 1시간 내로 빠르게 공략해나갔다.
특히 새로운 검을 얻게 된 붉은 늑대가 굉장히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12개라.”
A급과 B급 던전을 섞어가면서 던전을 클리어하길 7시간 정도.
드디어 레벨이 올랐다.
“이제 76레벨인데 언제쯤 퀘스트가 뜨는 거냐?”
현재 자신의 목표는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던전을 클리어해, 레벨을 올리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의 근원의 동화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슬슬 레전더리 승급 퀘스트 알림이 올 것 같았지만, 여전히 잠잠했다.
“뭔가 특별한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발렌타인에게 연락해 물어볼까 했던 진원이었지만, 일단 80레벨까지는 찍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 여성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해올지 모르기도 하고.
“도저히 안 되면 그때 가서 물어보면 되니까. 아직 시간은 많다.”
그는 다시 포탈이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같은 시각.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음… 뭔가 새로운 컨텐츠가 없을까?”
최은식은 불꽃 남자 김진원 채널을 띄워놓은 채로, 고민에 빠졌다.
처음엔 형의 명예 포인트를 얻기 위해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익이 들어왔다.
‘이대로 꾸준히 관리만 해 나간다면 월 억은 우스울 수준일 텐데.’
진원이 세계 랭크 1위가 되고 나서, 엄청나게 붙은 구독자들.
그의 채널은 무려 천만 구독자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진원! 이것 봐라! 내가 드디어 엄청난 아이템을 만들었다!”
최은식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진 사이.
한동안 길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블라즈코비츠가, 가쁜 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한동안 아이템 제작에 집중하기 위해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 듯했다.
“후우. 다, 다행이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최은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 블라즈코비츠가 진원의 전용 아이템을 만들어주겠다고 엄청난 금전을 요구했을 때.
그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100억이라는 금액을 바로 건네줬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계속 길어지고, 그녀와의 연락도 끊기자 내심 안달 나 있던 상태였다.
“와, 레전더리네요. 이걸 겨우 100억으로 만들었다구요?”
“그렇다. 이게 나다. 연금술사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균형의 반지]
연금술사의 엄청난 역작!
종류: 장신구
등급: 레전더리
효과: 모든 스텟+20
제작자: 블라즈코비츠
최은식은 그녀가 들고 있던 아이템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괴랄한 성능의 반지.
그 등급이 레전더리인 것만 해도, 엄청난 가격표가 붙는다.
‘연금술사가 만드면 저런 옵션이 붙는구나.’
그런데 모든 스텟이 20씩 오른다니!
도대체 몇 레벨이 올라가는 효과인 거야?
100억은 무슨, 500억을 주고 저걸 구하라고 해도 못 구할 수준의 아이템이었다.
‘괜히 연금술사가 귀한 직업이 아니구나…….’
“이게 바로 나다!”
블라즈코비츠가 최은식의 반응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는 도중.
“…그런데 김진원은 또 어디 간 거냐?”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진원이 또 던전에 간 것이라 생각하며 이시현에게 다가갔다.
“아, 김진원 씨는 지금 중국에 가 계십니다.”
“중국? 거긴 또 왜 가는 거냐?”
“단기간에 최대한 레벨을 올리실 계획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 돌아오는 거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블라즈코비츠는 이시현의 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흠, 흥이 깨졌다. 국밥이나 먹으러 간다.”
그녀는 나중에 진원이 오면 꼭 자신에게 연락해달라고 말을 남기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저분도 마이웨이네.”
“저도 동감합니다.”
최은식이 쓴웃음 짓자, 옆에 있던 이시현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2일 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진짜 미친 듯이 던전을 클리어했는데 지금까지 겨우 2레벨 업이라.”
짜다.
경험치가 짜도 너무 짜다.
주위의 포탈이란 포탈은 닥치는 대로 들어가던 진원은, 38개째를 처리하고 나와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중국이 땅 하나는 기가 막히게 넓네.”
포탈로 이동하는 시간만 절약했더라도, 50개는 충분히 클리어 했을 텐데.
이동 관련 스킬이 없는 것이 이럴 때 아쉬웠다.
“후, 그래도 꽝을 뽑은 게 도움은 되긴 한다만.”
상점 레벨이 오르면서 구매횟수가 초기화된 행운의 랜덤 아이템 박스.
그동안 상당히 좋은 아이템들이 튀어나왔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원기 맥스 파워라니. 유치해 죽겠네.”
그러나 이번에는 몸의 피로도를 완전히 없어지게 해주는 비약이 하나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안 그래도 10 레벨을 올릴 때마다 겨우 하나씩 주는 아이템이었는데, 내용물이 너무 짰다.
나머지 아이템 박스도 마찬가지.
“계속 좋은 것들만 나오는 게 말이 안 되기는 하지.”
그래도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투웅.
진원이 근처에 있던 쓰레기통에 아이템을 버리고 몸을 일으켰다.
이대로 대략 5일 정도만 던전을 꾸준히 클리어한다면, 80레벨을 달성할 수 있다.
“아, 이제 진짜 없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많던 포탈도 진원이 미친 듯이 클리어해버렸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들은 C급이나 D급들뿐이었다.
“이런 곳들은 아무리 클리어해도 안 될 텐데.”
마음 같아선 S급 던전들을 클리어하고 싶었지만, 한국인 출신의 용병들이 드문드문 보였기 때문에 그만두기로 했다.
“77레벨에 동화율은 이제 9퍼센트 정돈가.”
자신의 몸에 존재하는 마의 근원.
동화율이 높아질수록, 공격에 마기가 담긴다고 했는데 특별하게 눈에 띄는 변화는 알 수 없었다.
“이제 겨우 9퍼센트라 그렇겠지.”
진원은 몸을 한번 풀고, 근처에 있는 C급 던전이라도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띠링.
그리고 잠시 후.
[계약 소환사 전용 퀘스트를 수행하시겠습니까?]
Y/N
진원의 눈앞에 그토록 바라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대체 조건이 뭐지?”
직업 전용 퀘스트.
77레벨을 달성하고 시간이 꽤나 흘렀는데 갑자기 나타나냐.
[5, 4, 3…….]
그가 고민할 새도 없이, 같이 생성된 타이머의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 멋대로네.”
진원은 인상을 쓰면서도,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버튼을 눌렀다.
스스스.
그러자 등 뒤에서 포탈이 나타나, 그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