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리벤지-6
“진원 씨가 증거를 제대로 확보해 주신 덕분에, 일이 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마 킹 길드의 은신처를 집중적으로 수색할 것 같습니다.”
킹 길드와 그에 소속된 수많은 플레이어가 죽었다.
그리고 중국의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른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부터 시작해서 일본, 프랑스, 러시아 등등..
“놈들도 섣불리 못 움직일 겁니다. 단시간에 밝혀진 범죄만 해도 백 가지가 넘거든요.”
“네. 그리고 여기, 제 소환수가 찾아낸 장손데 이곳을 먼저 수색해주세요.”
진원은 자신의 무릎 위에서 과자를 먹는 메시아의 입가를 한번 닦아주고, 지도의 한 부분을 표시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원 씨… 그 강력한 스킬. 혹시 이벤트에서 보상으로 받으신 겁니까?”
손태욱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 강력하고 엄청난 범위의 폭발.
소환사라는 직업계열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스킬이었다.
“네. 지난 이벤트에서 1위를 해서 받았습니다.”
“허어… 어쨌든 감사합니다, 진원 씨. 덕분에 중국의 힘이 상당히 약해졌습니다.”
역시나 진원 씨의 스킬이었군.
‘그런데 어떻게 중국을 건드릴 생각을 했는지…….’
그의 과감한 행동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 제 손녀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 하윤이가 말하던가요?”
“네, 엘리트 길드에 들어갔다고 아주 그냥… 귀에 딱지가 앉을 뻔했습니다.”
손태욱이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즘 들어 심하게 무리하는 것 같아, 뜯어말렸지만 원하는 목표가 생겼다고 하길래 뭔가 싶었는데.
‘엘리트 길드면… 충분하고도 남지.’
말이 소규모 길드지, 이미 그가 세운 공적은 상당하다.
중국 건으로, 문명호 대통령이 진원 씨에게 어떤 보상을 줘야 할지 진지하게 상담해 올 정도였으니까.
“안 그래도 하윤이 데리고 던전 좀 돌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애라서요.”
“그렇군요.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100일 안으로 최종 보스와의 결전을 치룰 것이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일이 잘못되면 망한다.’
바알은 죽기 전, 들키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세라핌이 모니터링이라도 하는 건가. 망할 놈.’
일단 최우선 과제는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마의 근원의 동화율을 높이는 것.
그리고 레벨을 계속 올려, 직업 등급의 상승을 노리는 것.
‘하는 김에 하윤이나 은식이 레벨도 좀 올려줘야겠어.’
진원은 이시현에게 자신이 부탁했던 던전의 예약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아! 진원 씨, 제가 말하는 것을 잊었군요. 잠시 이것을 봐주시지요.”
손태욱이 모니터를 켜며, 레전더리 등급 아이템 목록을 보여주었다.
“개수가 많이 늘었네요.”
“예, 뭔가 느낌이 오시지 않습니까?”
본래는 몇 개 없던 레전더리 아이템들.
그런데 지금은 10개가 넘게 등록되어 있었다.
“킹 길드가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나?”
“바로 그겁니다. 진원 씨가 킹 길드를 박살 내고 중국에 엄포를 놓자마자 귀신같이 매물들이 올라왔습니다.”
손태욱이 속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혹시 돈이 부족하다면 국가 차원에서 미리 구입해 줄 수도 있다며 말해왔다.
“네, 정 급하면 부탁드릴게요.”
“예, 언제든지 연락 주시면 됩니다. 이 아이템들은 진원 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허허허!”
세계 랭크 1위의 레전더리 아이템 독점권한.
그제서야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당분간 던전 빡세게 돌아야겠는데.’
진원은 오늘 안으로 10개 이상의 던전을 클리어하기로 마음먹었다.
* * *
중국의 지하수로.
왕 첸은 메이 링과 합류해 미리 확보해 둔 은신처로 도주했다.
“신중하게 포위해!”
“거리를 두고 스킬에 대비해라!”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10곳이 넘는 은신처 중 절반 이상이 벌써 적발당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위로 무장한 군인과 경찰들이 따라붙었다.
“오빠, 언제까지 도망만 쳐야 해! 그냥 이놈들 다 죽여버리자!”
“입 다물고 따라오기나 해! 우린 걸리면 끝이다!”
왕 첸은 그녀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망할, 그 새끼는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엄청난 규모의 폭발로 인해, 킹 길드와 그 주위의 건물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그것도 단 한 순간에.
중국 정부는 그동안 왕 첸과 킹 길드의 범죄행위를 묵인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그들을 사로잡는 데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후, 개 같은 놈들. 이때다 싶어서 꼬리를 자르다니.”
자신은 상관없다.
차원 도약을 아껴두고 있고, 여차하면 스킬로 도망치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메이 링이었다.
안 그래도 전력 손실이 큰데, 저 녀석은 잃는 것은 너무나도 아까웠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왕 첸은 옆구리에 끼고 있던 용액의 병을 열고, 보라색 액체를 조금 흘려보냈다.
“이건! 중국에서 발표한 그 용액이다!”
“밖으로 외부에 유출되지 못하게 막아!”
“조심해라! 피부에 절대로 닿으면 안 된다!”
역시 예상대로 놈들의 발소리가 멈췄다.
‘은신처는 아직 남아 있다. 그중에 하나라도 살아있으면 된다.’
만약 운 없게 모든 은신처가 발견 당했다?
‘그럼 옆구리에 낀 이 용액을 강가에다가 뿌려주지. 남은 용액은 한국으로 가서 뿌려주마.’
그리고 메이 링은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연구 데이터든 뭐든 다 필요 없다. 이미 김진원 그놈 때문에 망하게 생겼어.’
지금까지 쌓아 올린 부와 권력, 그리고 명예.
고작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연우가 내뱉은 말이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이야.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 김진원.’
왕 첸은 속으로 이를 갈며 다른 은신처로 내달렸다.
* * *
같은 시각.
진원은 손하윤과 최은식을 데리고 A급 던전으로 향했다.
‘형이 웬일이지?’
보통 같았으면 나 정도 레벨 되면 던전을 혼자서 독식해야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형이, 한 명도 아니고 손하윤까지 데려가다니.
“일단 여기는 내가 처리할게. 다음 던전은 너네 둘이서 한 번 해봐.”
“네. 그럴게요, 형.”
최은식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진원이 던진 스킬 하나에 맵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띠링.
[던전을 클리어 하였습니다!]
랭크: S
추가 보상: 상급 마정석 1개
[귀환 포탈이 생성됩니다.]
“와, 한 방…….”
파티원을 편성해 아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A급 던전.
진원은 에이션트 붐 한 번에 아주 깔끔하게 클리어했다.
“형, 이거 설마…….”
최은식은 입을 떡하니 벌리며 감탄사를 뱉은 손하윤을 뒤로 하고, 진원에게 다가갔다.
“형, 사하라 사막도 형이 한 거 맞죠?”
“…알아보겠냐?”
“네, 색깔이 워낙 진해서요.”
“이전에 있었던 이벤트 보상으로 받은 거다.”
“와우… 그런데 그 주변의 나라에서 피해보상을 해달라고 하던데요.”
“그냥 모른 척할 거다.”
손하윤은 두 명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자, 뭔가 소외감을 느껴 가까이 다가갔다.
“왜 저만 빼놓고 얘기해요? 저도 이제 길드원인데.”
“아, 그냥 형한테 확인할 게 하나 있어서요. 별건 아닙니다.”
“그게 뭔데요?”
“방금 사용한 스킬, 에이션트 붐이다. 그리고 플레이어 이벤트에서 받은 거야.”
진원은 딱히 길드원들에게는 숨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스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형, 소모 값이 없다고요? 그게 뭔 개사기 스킬이에요?”
“그러니까 1시간에 한 번씩 사용할 수 있다구요? 와…….”
두 명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도 개사기 스킬인 건 알아.”
그런데 어쩌겠어.
이벤트에서 1등 해서 받은 건데.
이것보다 더한 스킬이 존재한다는 말은… 그냥 안 하기로 했다.
“어쨌든 다음 던전은 너네 둘이서 한번 해봐. 위험할 것 같으면 도와줄 테니까.”
진원은 꼼꼼하게 골드를 챙기고, 소환수들이 가져온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예!”
“네! 오빠!”
둘은 꼭 진원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귀환 포탈로 향했다.
* * *
B급 던전.
마력 수치도 적당한 수준.
진원은 뒤에서 자리를 잡고, 최은식과 손하윤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 녀석들도 되도록 강해졌으면 좋겠는데.’
자신만큼은 아니더라도, 몸 하나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수준이 되었으면 했다.
“제가 어그로를 모을게요. 한 번에 확 쓸어버려요!”
“네!”
최은식이 방패를 치켜세우고 몬스터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튼튼아!”
그 사이, 손하윤은 탱크의 크기를 키워 공격을 준비했다.
‘일단 은식이 저놈은 쓸만하다.’
이전 이벤트에서 녀석이 보여준 스킬, 보호구역.
확실히 방어에 관해서는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저 녀석의 어그로 관리나 방어 센스도 나름 괜찮았고.
‘그럼 남은 건 손하윤인데.’
던전으로 이동하는 사이, 그녀의 스킬에 대해 물어봤었다.
새롭게 획득한 스킬 대부분이 튼튼이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을 높여주는 버프형들이었다.
‘일단 얼마나 먹히는지 봐야겠네. 위치만 잘 잡으면 유리할 것 같기는 하니까.’
비상시에 튼튼이 쪽으로 어그로를 끌어 버틸 수도 있고.
“10마리 정도 끌고 왔어요!”
“네! 맡겨주세요!”
잠시 후, 최은식이 뒤에 몬스터들을 끌고 손하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튼튼아! 무거운 걸로 한 방 날려!”
타앙!
손하윤은 최은식이 옆으로 빠지는 순간에, 곧바로 몬스터들을 향해 공격했다.
“크워어억!”
“크워억!”
무리를 지어 달려오던 오우거들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오, 확실히 레벨에 비해서 공격력은 강해.’
39레벨이라고 했었나.
오우거들의 피부는 질겨서, 생각보다 방어력이 높은 편인데.
한 발에 절반이 넘는 수를 쓰러트리다니.
‘얘 생각보다 재능있는 애 아닌가?’
진원은 남은 오우거들을 어떻게 쓰러트릴지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 * *
“헉… 헉…….”
“허억! 헉!”
결국 던전의 보스는 진원이 처리했다.
30마리가 넘는 오우거들을 침착하게 처리한 건 좋았지만, 역시 두 명이서 보스까지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듯했다.
“그 정도면 다들 잘했다.”
진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두 명에게 포션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보스를 못 죽이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손하윤은 아쉬운 듯이 말하며 포션을 건네받았다.
“아쉽네요. 저도 좀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네 정도면 괜찮으니까 열심히 해.”
진원은 최은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본래 B급 던전이라도 최소 8명 정도로 파티를 구성해야 안정적으로 클리어 할 수 있다.
그런데 저 두 명은 보스를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을 단시간에 쓰러트렸다.
‘은식이야 레전더리 아이템도 있고, 레벨도 높다고 쳐도 손하윤이 생각보다 잘해줬네.’
저 녀석에게도 아이템을 하나 챙겨줄까.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킨 찰나.
“설마?”
검붉은 색으로 빛나는 포탈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