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 리벤지-3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킹 길드의 경비들은 진원을 조준한 채로 위협했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일단 빨리 저것들을 처리해. 시끄러워 죽겠다.”
“예.”
웬 정신병자 놈이 여기 와서 행패인지 원.
남성의 지시에, 세 명의 경비들은 경보기들이 뛰어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원,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은 다 빠졌어.’
‘그래? 수고했다. 바로 다음 스킬 준비해줘.’
‘알았어.’
그 사이, 킹 길드 건물 근처의 기척을 잡아내던 메시아가 보고해왔다.
‘남아 있어도 얄짤 없이 다 날려버리려 했는데.’
이럴 때는 그래도 말을 잘 듣네.
그렇게 생각하며, 순간 가속을 사용해 경비들의 복부를 한 방씩 가격했다.
“크억!”
“카학!”
“이야. 그냥 개떼네, 개떼.”
남성들이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사이, 킹 길드 유리벽 너머로 무장한 병력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럴 땐 이거 만한 게 없지.”
진원은 피식 웃은 뒤, 와인드업하고 마구: 블랙홀을 사용했다.
“이 새끼 플레이어다! 그냥 갈겨!”
“이건 뭔… 한국! 한국인이다! 저 새끼! 한국말 했다고!”
“끄아아아아!”
진원은 묠니르로 놈들을 적당히 기절시키려고 했다가, 순간 생각이 바뀌었는지 망치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생각해보니까 괘씸하네, 이 새끼들. 한국인들을 실험대상으로 쓰려고 했는데 내가 봐줄 필요가 있나?”
이연우, 그리고 왕 첸이 주도했다고는 하나 이놈들 역시 공범과 마찬가지다.
“네놈 새끼들도 똑같다. 왕 첸이 더러운 짓을 하나만 했겠냐? 파면 끝없이 계속 나오겠지. 그냥 다 뒤져!”
진원은 스킬에 뒤엉켜 모여 있는 중국인들에게 마구: 칼날 폭풍을 사용했다.
드드드드드.
“저, 저거!”
“막아! 방패는 폼으로 있냐!”
“몸이 내 맘대로 안 움직인다고, 망할! 으아아아아!”
경비원들치고는 상당히 중무장이었다.
그러나 마력 스텟이 160인 진원의 스킬은, 그들의 몸에 걸친 두꺼운 철판들을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렸다.
“다시는 한국을 못 건드리게 해 줄게.”
킹 길드 1층 로비에 널브러진 시체들.
그러나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은 1도 들지 않았다.
“사람 보자마자 총구 들이대는 네놈들이 잘못한 거야. 알겠냐?”
우스꽝스러운 토끼 가면을 쓴 남성이라면 그럴 만도 했지만, 어쨌든 건드린 대상이 진원이었으니 운이 없는 셈이었다.
‘새로 얻은 스킬이 없었으면 이 정도로 깽판은 못 쳤겠지.’
방금 자신의 행동은, 중국에 대한 선전포고와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놈들이 에이션트 붐의 위력을 알게 되면 알아서 적당히 넘길 것이다.
그 정도로 강한 확신이 들었다.
“진원, 스킬 준비 다 됐어.”
“좋아, 그럼 내가 부탁한 것들 위주로만 찾아줘. 임프, 너도.”
“키기긱!”
메시아가 스킬을 사용해, 수십 마리의 쥐들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임프도 모습을 바꿔, 각자 다른 방향으로 재빠르게 흩어졌다.
“진원 씨, 저도 가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문제 있으시면 바로 붉은 늑대에게 말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알 수 있습니다.”
김수환은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근처에서 구매한 배낭을 등에 멘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바로 이거지.”
진원은 묠니르를 들고 땅을 힘차게 내려찍기 시작했다.
쿵! 쿵! 쿵!
+10으로 강화된 묠니르.
온 힘을 다해 내려찍으니, 마치 지면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멘트로 굳혀진 지면들이 움푹 파이며 위협적인 충격음을 내는 사이.
- 던전 브레이크다!
- 죽기 싫으면 빨리 도망쳐라!
경보기들은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해주고 있는 듯했다.
몇 개가 줄어든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 상관없었다.
‘왕 첸. 오늘 끝을 보자, 이 새끼야.’
* * *
‘후, 괜한 걱정이었나 싶었는데 진짜로 왔군. 김진원.’
왕 첸은 킹 길드의 고층 유리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괴상한 가면은 왜 쓰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대놓고 묠니르와 소환수들을 부리다니.
“하…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중국이 세계를 먹는 거였다고!”
이연우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용액들은 완벽에 가까워져 있다.
놈이 마지막으로 연구하던 자료들만 입수하면, 완성하는 것은 시간문제.
왕 첸은 근처의 가구들을 사납게 부수면서, 중국어로 알 수 없는 욕을 연달아 뱉었다.
“그런데 왜! 너랑 아무 상관도 없는 인간들을 건드렸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김진원!”
왕 첸은 당연히 실험대상을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바꿨었다.
괜히 진원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솔직히 한국 말고도 실험할 나라는 넘쳐흘러. 그런데 왜 하필 이런 타이밍에!”
하지만 진원이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후우, 일단 둘을 보내야겠어.”
사납게 숨을 내뱉던 왕 첸이 크게 심호흡을 하며, 냉정함을 되찾았다.
“솔직히 김진원을 죽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안 들어. 그래도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겠지.”
왕 첸은 메이 링과 왕 레이, 그 둘과 합세한다면 진원과 한판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 일단 연구자료와 아이템들을 챙기는 것이 먼저다.”
입구에서 몰려 들어온 수많은 쥐.
놈들이 뭔가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면, 분명히 김진원이 수작을 부렸겠지.
‘용액은 양산하는 게 어려워. 일단 그것을 최우선적으로 빼돌린다.’
왕 첸은 건물 내에 남아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건물 앞의 인간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어차피 저놈들은 버려도 된다. S급 플레이어들이야 아깝지만, 시간만 지나면 나오게 되어 있어.’
그리고 놈들은 그중에서도 약한 녀석들이다.
죽어도 그렇게 큰 손실은 아니다.
“개 같은 놈.”
왕 첸은 용액을 보관하고 있는 지하연구실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같은 시간, 엘리트 길드의 사무실.
소파에서 최은식과 손하윤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계약 조건은 이 정도로 될까요?”
“네! 이 정도면 괜찮아요!”
꼼꼼하게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한 그녀는, 시원스럽게 도장을 찍고 사인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최은식은 쓴웃음을 지었다.
‘형이야 돈 적게 줘도 된다고 하셨지만, 그러면 안 되지.’
서울대학교 플레이어학과 출신에, 학과 내의 유일한 유니크 직업 보유자.
그리고 충분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형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했으면 이미 끝났지.’
무엇보다… 협회장 손태욱의 손녀인 점이 가장 컸었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궁금한 점 있으면 여기 있는 직원들이나, 저한테 마음껏 물어보셔도 됩니다. 길드원이 이제야 5명이라, 좀 불만스러울 수도 있어요.”
“전혀요! 오히려 전 길드원들이 적은 게 좋아요!”
손하윤은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활짝 웃다가, 5명이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다.
“진원 오빠에… 최은식 씨에… 그런데 나머지 2명은 누구예요?”
“아, 현재 학생인 이서훈과 러시아의 연금술사 블라즈코비츠입니다.”
“연금술사…….”
최은식은 인상을 쓰는 손하윤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려 했지만, 그전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수업이 있어서, 바로 가볼게요. 그런데 진원 오빠는 해외에 있어요?”
“네? 해외라뇨?”
손하윤은 진원에게 전화하자 국제통화로 연결되는 메시지 음이 나왔다며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형이 워낙 좀 그래요. 마이웨이 기질이 있거든요. 던전이라도 가셨지 않을까요?”
최은식은 최대한 던전을 예약해 달라는 진원의 말을 떠올리며, 같은 목적으로 해외를 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하라가 왜 인기검색어에 뜨지?”
사하라 폭발.
사하라 플레이어.
사하라 핵폭발?
손하윤이 길드 사무실을 나가고, 최은식은 호기심에 인터넷 기사를 들여다보았다.
“…형이 해외에 언제 가셨더라? 어디 간다고 딱히 말은 안 하셨는데.”
그리고 사건의 날짜와 함께, 형이 새로운 스킬을 얻었다는 말이 떠오르며 순간 몸을 떨었다.
“에,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정도 규모의 스킬이 말이 될 리가 없어.”
설마 또 형이? 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냥 흘려넘기기로 했다.
만약 저게 형이 사용한 스킬이라면…….
정말 무서워서 밥조차도 같이 못 먹을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신가?’
업무에 집중하던 이시현이 그를 슬쩍 쳐다보고, 별일 아니겠지 하며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이 새끼들… 미친놈들이야, 뭐야?”
진원은 자신 앞으로 널브러진 수많은 시체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줘, 플레이어들의 전의를 상실시키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된 게 겁이 하나도 없냐.’
놈들은 오히려 소리를 질러대며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기합만으로는 어떻게 될 리가 없었다.
놈들은 디멘션 워커의 메가모프 스킬에 별 저항도 못 해본 채로, 허무하게 튕겨져 나갔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메시아가 알아서 처리해 주었고.
‘어쨌든 난 가만히 있었는데 너희들이 먼저 공격한 거다. 혹시 몰라서 메시아를 곁에 남겨뒀는데, 약한 놈들만 올 줄은 몰랐네.’
[4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진원은 천천히 골드를 모으며, 메시아와 붉은 늑대의 보고를 기다리던 중.
“역시 한국의 김진원. 자비란 1도 없다.”
“이거 강해 보이잖아. 왕 첸은 우릴 버리는 패로 쓰는 것 같은데?”
“그럼 그냥 튀자.”
멀리서 자신을 훔쳐보던 플레이어들이 후다닥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냥 놔두자.”
딱히 무슨 짓을 해올 것 같지는 않아, 그냥 가볍게 무시하고 있었는데.
굳이 도망치는 놈들까지 처리할 필요는 없지.
진원은 방금 도망친 놈들이 S급 플레이어라는 사실은 모른 채로, 킹 길드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왕 첸, 분명히 또 도망칠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메시아의 능력으로 인해, 놈의 위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도 증거는 확보해야 하니까.’
현재 자신이 저지른 짓들.
당연히 사회적으로는 시선이 좋지 않을 것이다.
마치 학살과도 같은 일을 저질렀으니.
그러니 현재의 최우선 목표는 킹 길드가 숨겨둔 연구 일지와 함께, 용액들을 손에 넣는 것이 먼저였다.
‘네가 빠르나 내가 빠르나 한번 보자.’
진원은 메시아에게 왕 첸의 발을 묶어두라고 말한 뒤, 로비의 구석으로 가 앉았다.
김수환 씨와 붉은 늑대.
메시아의 피조물들과 꼬마 임프.
자신은 이곳에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너희들은 또 뭐야?”
그렇게 묠니르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있을 때,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와 훤칠한 외모의 청년이 자신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 우와, 오빠. 실제로 보니까 되게 잘생겼다.”
“플레이어 김진원, 어째서 우리 길드원들을 저렇게 죽인 거냐!”
반갑다는 듯이 팔을 좌우로 흔드는 메이 링.
왕 레이는 로비와 바깥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며, 성을 냈다.
“니들은 한국어 좀 하네. 왕 첸이 먼저 우리나라를 건드렸어, 이 새끼들아. 그리고 저놈들이 먼저 선빵쳤다.”
진원은 망치로 시체 쪽을 가리키며,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