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리벤지-1
그림자 이동.
정확한 위치만 알고 있으면, 거리에 상관없이 이동할 수 있는 고성능의 스킬.
거기다 1명까지는 아무 조건 없이 데리고 갈 수 있었다.
“이번에는 김수환 씨의 도움이 꼭 필요해서요. 먼저 사막에 가서, 제 스킬의 범위와 위력을 측정하고, 그다음에 중국으로 갈 겁니다.”
“예, 설명은 들었습니다. 딸에게는 잘 얘기해 놓았으니, 걱정은 없을 겁니다.”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하라 사막으로 갔다가, 다시 중국으로 이동하는 것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김수환이 있다면 그 시간을 압도적으로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진원 씨, 굳이 사막까지 가야 합니까?”
스킬을 준비하던 김수환이 궁금한지 넌지시 물어왔다.
“네. 스킬 설명에는 범위가 넓다고 나와 있는데, 그게 얼마나 넓은지를 몰라서요. 던전에서 한번 사용해봤는데, 맵 자체가 날아가 버리던데요.”
“그…렇군요. 그럼 사하라 사막으로 가면 되겠습니까?”
“네, 거기로 부탁드릴게요.”
던전의 맵 자체가 사라진다라.
도대체 무슨 스킬이길래…….
잠시 생각에 빠진 김수환은, 진원이 내민 지도를 보며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사람이 없는 부근이라면… 여기쯤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쪽으로 가주세요.”
“예,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간단하게 의견을 나누고, 스킬을 준비한 김수환이 진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눈 깜짝할 사이,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휘이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모래들뿐이었다.
거기다 밤인지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하라 사막은 일교차가 심하기로 유명한데, 지금 온도는 살짝 낮은 정도였다.
“얘들아.”
진원은 곧바로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을 꺼내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김수환 씨, 그림자 이동은 하루에 몇 번 사용할 수 있다고 하셨죠?”
“두 번입니다.”
두 번이라.
되도록 그 시설과 왕 첸의 킹 길드는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데.
“대기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포션을 복용한다면, 연속으로 2번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진원은 앞으로 이곳에서 스킬을 테스트한 뒤,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설명했다.
“김수환 씨도 보셨나요? 이연우가 내뱉은 말에 대해서요.”
“예.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왕 첸을 포함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확실할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김수환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이벤트 내용이 하필 중계가 되다니.’
그리고 왕 첸과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킹 길드라면, 이미 상당한 경계를 하고 있을 터.
‘이연우의 말을 믿지는 않지만, 확인해볼 필요는 있다.’
이연우는 죽기 직전에, 제주도에서 빼돌린 용액.
그리고 대천사 길드와 왕 첸과의 관계에 대해서 입 밖으로 냈었다.
그리고 그 용액을 더욱 강력하게 개조해 사람들을 악마화 시키는 것이 이연우의 계획이었고.
“주군, 반경 5킬로미터 이내에 인간의 흔적은 없습니다.”
“나도 꼼꼼하게 확인하고 왔어.”
잠시 후, 붉은 늑대와 메시아, 그리고 소환수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에이션트 붐 범위가 설마 킬로미터 단위겠어? 괜찮겠지.’
진원은 꼬마 마도사에게 위로 올라가 범위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보라고 지시한 뒤, 스킬을 준비했다.
* * *
킹 길드의 건물 안.
직원들의 보고를 가만히 듣고 있던 왕 첸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아… 이연우. 그냥 곱게 뒤질 것이지. 개 같은 새끼!”
움찔.
직원들은 그가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움츠러들었다.
왕 첸이 눈에 띄게 화를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
“어차피 놈이 말한 건 헛소리였다고 하고, 우리랑은 실제로 관계가 없도록 잘 조치를 해 두어서 상관은 없어.”
그런데, 그 말한 대상이 하필이면 김진원이라니!
얼마 전 세계 랭크 1위를 차지하고, 이벤트에서도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여준 한국인.
“후… 내가 김진원의 힘이 저 정도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한국은 안 건드렸을 텐데.”
안 그래도 김진원은 자신에게 있어, 안 좋은 감정이 있는 상태다.
이연우의 일을 빌미로, 중국으로 넘어올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이연우도 범죄자 새끼인 건 똑같아. 웬만해서 무시해 버릴 확률이 높긴 한데…….’
이벤트 때의 김진원의 굳어져 가던 표정.
클로즈 업 된 그의 표정을 떠올리면,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똑똑.
“부르셨어요? 형님?”
“오빠가 웬일이야? 우리한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오고.”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중국인 플레이어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만두 머리를 한 20대의 여성과 꽁지머리를 한 20대의 남성.
그들은 왕 첸이 개인적으로 특별히 관리하는 플레이어들이었다.
“근데 오빠, 왜 이렇게 잔뜩 쫄아있대? 아! 알겠다! 한국의 플레이어한테 쫄았구나! 아하하하!”
S급 플레이어, 메이 링이 그를 보자마자 손가락질하며 놀려댔다.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은 기겁하며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왕 첸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너네들, 그만 나가서 일해라.”
“예!”
왕 첸은 직원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직접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형님, 저는 달달한 아메리카노로 부탁드립니다. 시럽 듬뿍 넣어주세요.”
왕 레이는 실실 웃으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편한 자세로 앉았다.
“오빠, 나는 시럽 뺀 걸로 하나.”
“알았으니까 그만 돌아다니고 자리에 앉아.”
“네!”
확연하게 차이 나는 대우.
그럴 것이, 그들은 세계 랭크에 등록되어있지도 않은 S급 플레이어들이었다.
오직 왕 첸만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들.
그리고 그 존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왕 첸뿐이었다.
“그래서 부탁할 일이 뭐야? 또 더러운 일이야?”
“야, 말 좀 이쁘게 해. 여자애가 뭔…….”
커피를 한 잔 들이켠 왕 레이가 핀잔을 주었지만, 메이 링은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됐어. 그것보다, 너희를 부른 건 알지? 일을 좀 해줘야겠다.”
왕 첸이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김진원이 단독으로 찍혀 있는 사진이었다.
“아! 이 오빠 그거 아냐? 세계 랭크 1위의 플레이어. 설마 우리보고 이 사람을 죽이라는 건 아니지?”
“형님! 우리를 버리시려고요?”
“너희들이랑 얘기할 때마다 두통이 나니까 좀 떨어져 봐.”
왕 첸은 두 팔을 잡고 매달려오는 두 명을 떨쳐내고, 말을 이어나갔다.
“김진원이 조만간 이곳으로 올 것 같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감? 형님의 감이야 날카롭기는 하죠. 그래서 뭘 하면 될까요?”
“너희들이 아껴둔 스킬. 그걸 사용해. 그리고 안 통하면 그 즉시 도망쳐라. 도주를 위한 아이템은 아낌없이 지원해 줄 테니까.”
왕 첸의 말을 듣던 메이 링과 왕 레이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걸 써야 할 정도야, 오빠?”
“그래, 놈은 그 정도로 강하다. 감지 계열의 플레이어들을 주요시설에 최대한 배치해 놓았으니까, 일단 이곳에서 대기해.”
“음… 강하긴 한데. 우리 스킬 연계 정도면 통할 것 같은데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던 왕 레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지만, 여전히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보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이곳에서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고 있을게요.”
왕 레이와 메이 링이 밖으로 나가자, 왕 첸은 추가적으로 S급 플레이어들은 더 모집했다.
김진원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일에,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대비.
그러나 왕 첸은 자신의 감을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었다.
“다른 S급 플레이어들이야 죽어도 상관없는데, 걔들은 안 돼. 너무 아까워.”
그 두 명을 잃을 바에야, 킹 길드 소속의 다른 S급들 4명을 잃는 것이 나았다.
“후. 이연우… 망할 새끼. 하필이면 연구자료에 그런 귀찮은 짓을 해놓았을 줄이야.”
이연우가 죽은 것을 알게 된 후, 놈이 연구하던 자료를 그대로 가져오려 했다.
그런데 놈이 무슨 짓을 해놓았는지 에러코드만 잔뜩 떴다.
“쓸만한 해커들이랑 보안전문가들이 달라붙어도 풀지를 못하고 있으니. 김진원이 오기 전까지만 옮기면 되는데.”
그는 빠른 시일 내로, 연구소 내의 자료들을 옮기기로 했다.
* * *
쿠우우웅!
사하라 사막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면이 진동했다.
그리고 붉은 화염이 위로 사납게 치솟았는데, 공중에 떠 있던 소환수가 날아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김수환 씨! 괜찮으시죠?”
“예? 예!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 폭발의 중심에 서 있는 진원과 김수환.
김수환은 시뻘건 화염 안에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을 받자, 신기한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 정도인 것 같네요. 확실히 세긴 세네.”
스킬이 멎어들자, 그들이 서 있던 땅은 움푹 파여,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이전, 플레이어 이벤트의 플랭크톤이 날린 포탄보다 약간 더 컸다.
“주, 주인님! 처음에 날아가 버려서 죄송합니다! 주인님 스킬의 범위는 약 400미터 정도입니다!”
김수환이 몸을 덮고 있는 그림자를 거두는 사이, 꼬마 마도사가 진원에게 날아와 감탄사를 내뱉었다.
“400미터?”
그렇게 범위가 넓다고?
물론 스킬 범위가 넓을수록 좋기는 한데…….
그건 던전에서의 이야기지, 밖에서는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잘못 없는 건물들까지 날려버리는 건 좀… 그렇긴 하네.’
목표로 한 왕 첸의 연구소나 길드 주위의 건물들도 날아가 버릴 것이 뻔하다.
그런데 뭐 어쩌겠어.
애초에 먼저 한국인들을 건드린 것은 중국 쪽이잖아.
거기다가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건드렸지.
- 손태욱 씨,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내일 밤 12시까지 킹 길드 주변의 건물들. 사람들 최대한 빠지도록 조치해 주세요.
‘이 정도만 해줘도 충분하겠지.’
진원은 손태욱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곧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자고 김수환에게 말했다.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크레이터를 한참 들여다보던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그림자 이동을 준비했다.
아무래도 상당한 스킬의 위력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위력이야 아직 체감이 잘 안 되는데, 범위만 보면 거의 미니 핵폭탄급 위력 아니냐?’
자신도 이 정도로 넓은 범위를 가졌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물론 진짜 핵폭탄에 비하면야 당연히 별것 아닌 수준이겠지만.
그러나 그 준비과정 자체가 너무나 단순했다.
그냥 스킬을 사용해 생성된 검은 조약돌을, 목표지점에 던지기만 하면 끝.
‘소모 값도 없고, 쿨타임도 그렇게 긴 편도 아니다.’
뭐 이딴 개사기 스킬이 다 있지?
밸런스를 파괴하고도 남을 만한 스킬이잖아.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는 주인님의 도움을 받아도 저런 걸 흉내조차 낼 수 없습니다!”
진원의 소환수가 작은 팔을 휘적이며, 감명 깊은 폭발이었다며 수다스럽게 떠들었다.
“뭘 보냐? 인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꼬마 마도사를 신기한 듯이 쳐다보던 김수환은, 스킬이 준비되었다며 진원을 불렀다.